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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의 마지막 여정 산티아고에 입성 ‘가슴 벅찬 감동’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우연에 맡길수록 더 빛나는 여행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 후
숙소인 알베르게 찾기 시도 ‘여유만만’

신학교로 지어진 유서깊은 석조건물에
침대 배정 받자마자 가방 내던지고
달려간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
서서히 드러나는 위용에 눈물이 왈칵

남쪽 광장서 에스닉 음악축제 한창
관타나메나광장 돌바닥에 누워보니
오로지 나 혼자 있는 듯 자유로움 만끽
진정한 순례자로 다시 한 번 찾으리라

 

 


드디어 순례자들의 마지막 여정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문명을 등진 갈리시아의 깊은 산속 마을 ‘오 세브레이로’에서 출발한 버스는 루고와 오 코루나를 거쳐 오후 8시에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언제부터인지 숙소 정하는 일까지 우리는 우연에 맡기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 우연이 감독하게 할수록 여행은 더 빛이 나기 때문이다. 두려움 대신 설렘으로 무장하면 불편함도 재미가 될 수 있다.

어느 종교든 ‘나’라는 예고를 내려놓는 것이 핵심이다. ‘나’에서 벗어날수록 그만큼 자유가 내게 오기 때문이다.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인생의 역설이 여행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죽고 우연이 살아나면 여행은 예술이 된다. 삶의 가장 멋진 메타포가 여행이듯, 여행을 잘 즐길 줄 알면 삶 역시 그렇게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짐을 끌고 시내를 향해 걸었다.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래 전부터 숙원해온 나의 동행을 위해 처음으로 알베르게를 시도해보는 날이었다. 그 동안 우리는 개인들이 빌려주는 집과 호(스)텔에서 주로 잠을 잤다. 숙소를 얻기엔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뭐 어때서?” 하는 마음으로 나아갔다. 이미 여러번 특별한 경험을 한 이후였기에 우리는 여유만만이었다. 설사 방이 없으면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Praza do Obradoiro)에 자리 깔고 자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화창한 날씨도 여행길을 도와주니 걱정될 것이 없었다.

 


사실 순례자들의 성지인 그곳에서 하루 밤을 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에 다시 해볼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한껏 흥분된 마음이 컸다.

걷다 보니 외관이 괜찮아 보이는 한 알베르게가 눈에 띄었다. 들어가 방이 있는지 물어보니 이미 방이 다 나가고 없다는 답변이다. 짐을 끌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만 빼면 불편할 건 없었다. 여행의 기대와 즐거움 때문인지 방이 없다는 우연 역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우연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틀을 묵게된 이곳의 정식이름은 세미나리오 메노어 알베르게(Albergue Seminario Menor)이다. 애초 신학교로 지어진 유서깊은 석조건물로 5성급 호텔로 개조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말 남다른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말쑥하게 단장된 중정은 건물에 위엄을 더하며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구 시가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드넓은 초록의 벨비스 공원(Belvis Park)이 코 앞에 자리하고 있어 눈마저 싱그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침대를 배정받자마자 우리는 가방을 내던지고 시내로 달려갔다. 미로 같은 중세 골든을 지나 10분도 채 안돼 우리는 장엄한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 다다랐다. 은은한 조명 아래 서서히 위용을 드러내는 성당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800km(카미노 프랑세스의 경로를 택해 왔을 경우)를 한 걸음 한 걸음 악조건들과 싸워가며 마침내 이곳에 도달한 순례자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올랐다. 비록 우리는 직접 발로 걷지는 못했지만 여행의 반 이상을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경로를 따라 이곳에 왔다. 부르고스, 히혼, 오비에도, 레온, 오세브레이로를 거쳐 대망의 산티아고에 입성한 것이다.

성당 남쪽 광장에서는 에스닉 음악 축제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곳에서 울리는 메탈 음악이 성당의 지붕을 넘어 우리 귀를 흔든다. 성당 맞은편 건물의 회랑에서도 스페인 전통 악단이 귀에 익은 관타나메나(Guant Anamena)를 연주하고 있다. 남부에서부터 너무 자주 들어서 이 노래가 쿠바 독립의 아버지 호세마르티가 작곡한 쿠바민요라는 걸 잊을 정도다.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관타나메나광장 돌바닥에 벌러덩 누워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늘 뿐, 토스카나의 시에나 캄포 광장을 연상시키는 이 넓은 공간에 오로지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모든 소음은 사라지고 가슴에 평화 만이 가득 차오르고, 내가 있는 이곳은 더 이상 이역 만리 타국 땅이 아닌 잘 알고 있었던 곳처럼 편안하다.

산티아고에서는 이틀을 머물고 내일 모레 정오에는 포르투(Porto)로 넘어갈 계획이다. 따라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반, 유구한 역사와 이야기를 가진 한 도시를 탐험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아쉽지만 이 도시는 미지의 도시로 남겨두고 진정한 순례자로 다시 한 번 이 곳에 서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그동안 전혀 관심이 없던 지역이었던 이곳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에 깊이 끌리고 있다. 로컬 여행사가 진행하는 투어, ‘Finesterre-Costa da Morte’를 신청하고 다음날 구불구불 리아스식 해안으로 유명한 갈리시아 해안을 제대로 체험할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순례자들의 진짜 라스트 여정지인 땅끝 마을 ‘피네스테레’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우연은 또 내일 저에게 어떤 인연과 감동을 가져다줄지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여러분 부에나스 노체스 Buenas noches!”

/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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