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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잔디광장

잔디광장

                                  /조은길



잡초 뽑는 여자들이 납작 엎드려 훑고 지나간 시청 앞 잔디광장은 초록 콜타르로 미장을 하 듯 초록으로 만장일치다 만장일치로 주저앉아 있다



날 선 구둣발이 머리통을 마구 짓밟아도 구린 엉덩이로 숨통을 틀어막아도 만장일치로 침묵하고 민장일치로 인내하는 저 무지막지한 평화주의자들



가까이 가서 보니



아무도 들고 일어나지 못하게 서로의 오금을 껴당기고 있다 핏줄이 시퍼렇게 뒤엉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초록에는 제 살을 꼬집으며 참는 긴긴 설움의 가족사가 있다

- 시집 ‘입으로 쓴 서정시’ / 천년의 시작·2019

 

 

햇볕을 가릴 수 있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일렬로 나란히 앉아 잔디에 섞여 있는 풀을 뽑아나가는 여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펼쳐진다. 그들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면서 풀에 가려져 있던 잔디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때로는 뿌리가 뽑힐 때도 있지만 그 뿌리는 얽히고설켜서 한 몸처럼 되어 있다. 시인은 ‘만장일치로 침묵하고 만장일치로 인내하는 무지막지한 평화주의자들’이라고 말한다. 그 평화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는 ‘서로의 오금을 껴당기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제 살을 꼬집으며 참는 긴긴 설움의 가족사’다. 넓은 잔디광장에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부모,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짓밟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천대를 견디는 한 덩어리의 초록을 추모하는 시인의 따뜻함이 조금이나마 위로로 가 닿기를.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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