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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먼저 만나는 미래



새해를 며칠 앞둔 2020년 연말 교육청에서 공문이 하나 왔다. 올해 다문화 교육 관련 연수를 들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고양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다문화 교육 연수가 필수이니 얼마 남지 않은 12월 31일까지 꼭 15시간 이상 연수를 이수하라고 해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소동은 21년 내에 연수를 학습하라는 수정 안내로 마무리 되었다.

다문화 교육이 필수 연수가 된 건 교실에 다문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문화와 크게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는 고양시 일산구 어느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우리 학교에도 한 학년에 몇 명 정도 학생이 다양한 국적을 가졌거나 부모님 중에 한분 혹은 두분 모두 외국인이신 친구들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비율을 따지면 대략 5% 남짓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비율인데 조금씩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몇 년 전에 2시간 정도의 짧은 다문화 연수를 들었다. 강사님은 경기도에서 가장 다문화 학생이 비율이 높은 안산시 원곡동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셨다. 그곳은 다문화 학생 비율이 90% 이상인 학교였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학생은 10%가 채 안된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입학식 때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을 위해 환영 인사말을 5개 정도의 언어로 하는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신다고 했다.

원곡동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종종 듣는 질문은 무엇일까. 전혀 상상하지 못한 내용의 질문이었다. 바로 “선생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였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만나는 어른들은 당연히 한국 사람일 것이다. 외국에서 살다가 얼마 전에 한국에 온 아이가 교실에 도착해서 보니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면 선생님의 국적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한 듯 싶다. 학교에 한국사람만 일하는 것도 아닐텐데 당연히 그럴 것으로 믿어왔다. 아이의 질문으로 편견이 하나 깨졌다.

연수의 마지막 즈음에 강사님은 원곡동의 작은 초등학교가 한국이 ‘먼저 만나는 미래’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오래 지나지 않아 전국 학교에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가진 학생들이 입학할 거고 학교와 교사는 그 학생들을 위해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연수를 들을 때까지 한번도 다문화 학생을 담임한 적이 없어서 겉으로는 끄덕끄덕하면서도 속으로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원곡동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다문화 학생이 많은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연수가 끝난 다음 해에 내가 맡은 반에는 두 명의 다문화 학생이 있었다. 아이들은 언어에 빠르게 적응해서 저학년 때부터 학교에 다녔으면 고학년이 되면 한국어를 사용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학생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게 방과후 학교 형식이나 다른 방식으로 지원을 한다. 문제는 아이보다 한국어 환경에 덜 노출되는 학부모님들이었다.

우리반 A의 부모님은 두 분 다 한국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셨다. 저학년이었던 아이가 필요한 내용을 부모님께 전달해줬다. 다행히 A가 여느 저학년 친구들보다 똘똘해서 빠뜨리는 내용없이 부모님께 잘 알려드렸고, 학부모님이 영어를 어느 정도 사용하셔서 급한 연락이나 안내 정도는 내가 직접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정말 필요한 심도 깊은 내용의 학부모 상담은 불가능 했다. 다음 해 A의 담임 선생님이 코로나 때문에 학생 부모님과 연락을 해야하는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나에게 SOS를 치셨다. 나도 학생을 통해 부모님과 연락을 주고 받은 거라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럴 때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문화 학생들을 일 년 동안 겪으면서 한국 국적 학생들과 두 아이들 사이의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미 한국에서 생활한지 오래된 아이들이라 국적보다는 개인의 성격에서 오는 학교 생활의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먼저 만나는 미래가 떠올랐다. 다문화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십 년 뒤 어느 날에는 ‘선생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보다 더 상상하지 못할 질문이 오고 가는 교실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일단 연수부터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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