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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개학 날 가장 중요한 것

 

 

'처음' 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은 항상 특별하다. 첫사랑, 첫학기, 첫등교, 첫만남 등. 매년 3월이 되면 학교는 다시 처음을 맞이한다. 새 학년, 새 학기의 출발이다. 움크렸던 겨울을 지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이 될 때, 아이들은 한살 더 커서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러 학교로 온다.

항상 설레기만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설렘보다 떨림이 더 많다. 나만해도 그렇다. 개학날이면 늘 배가 아팠다. 원체 예민한 장을 가졌기도 했고, 불안과 걱정 많은 성격이 장을 괴롭힌 탓이기도 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학교에 도착하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교문에서부터 교실까지 가는 길이 꽤 멀게 느껴졌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면 뛰어가서 나와 같은 반인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서며 아는 얼굴을 찾아 두리번 거렸다. 친한 친구가 반에 앉아 있으면 기뻤고, 아는 얼굴이 보이면 배 아픔과 심장의 덜덜거림이 좀 나아졌다. 운 나쁘게 생면부지의 사람들만 그득그득 할 때도 있었다. 그때부턴 일주일 내로 어떻게든 친밀한 존재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쳤다. 운 좋게도 반에는 나와 기운이 맞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의 기운을 영양분 삼아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새학기 개학을 맞으며 담임 선생님이 누구인지 중요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혹은 좋은 사람인지는 나중 문제였다. 1년 동안 선생님의 존재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채로 다음 학년으로 넘어간 해도 있었다. 시급한 건 반에서 친구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 해의 성패는 친구 관계가 어땠냐로 평가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친구들과 친해질까 고민이 드는 첫날 옷 주머니에는 항상 작은 간식을 챙겨가곤 했다. 앞 뒤 자리에 앉은 친구들에게 '너 이거 좋아해? 너도 먹을래?' 하고 새콤달콤을 하나씩 건네면서 말문을 트곤 했다. 쉬는 시간이 10분으로 짧디 짧고 수업시간은 말도 안되게 길었지만 10분 동안 같이 떠들어 줄 사람의 존재가 중요했다. 학교 생활의 즐거움은 결국 친구들에서 나왔다.

아이들에겐 교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데 교사가 되고 보니 아이들 한명 한명이 너무 중요하다. 덕분에 교사가 되어서도 개학날이면 여전히 배가 아프다. 개학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근심 걱정으로 잠을 설치고 출근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개학을 앞두고 다시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작은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이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교사 책상에 앉아있으니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교실 뒷문으로 들어갈 일은 없다. 대신에 쭈삣거리며 교실로 들어오는 어린 얼굴들을 마주해야 한다. 낯설어서 한껏 굳은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인사를 건넨다. 그 찰나에 이 아이와 일년 동안 별 탈 없이 지내게 해달라고 살짝 기도한다. 아이들은 대체로 얼어붙어 있는데 넉살이 좋은 친구가 반응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번 개학은 온라인 쌍방향 수업으로 정해졌다. 교실이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첫 인사를 하게 되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한편으론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확인하고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다. 아이들은 이미 학급 명단에서 서로의 이름을 확인했지만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다들 자다가 일어나서 세수를 끝내자마자 수업에 들어올테니 첫날이라서 배가 아픈 아이는 없지 않을까. 이건 나만의 생각이고 아이들도 개학이라 잠을 설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반 아이들은 친구가 제일 중요해지는 시기에 접어 들었다. 올해 교실에서 친구 때문에 울고 웃을 일이 많을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거나 상처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실 이건 유토피아 교실을 꿈꾸는 교사의 바람일 뿐이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생겨서 학교 오는 게 즐거우면 최고이고, 가끔 수업도 재밌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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