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문은 올해 초 국가정보원이 시민단체 ‘내놔라 내파일’을 대상으로 공개한 자료 63건 중 일부를 단독 입수해 이명박 정부 시절 전방위 사찰을 세상에 알린 바 있다.
이 가운데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 홍보기획관 시절 4대강 사업에 반대한 환경단체와 인사들을 대상으로 불법 사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주요 인사들의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박 후보는 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 경기신문, MB 시절 불법 사찰 문건 단독 입수…‘국정원 개혁’ 첫 신호탄
앞서 경기신문은 지난 1월 20일 국가정보원이 시민단체 ‘내놔라 내파일’을 대상으로 공개한 자료 63건 중 일부를 단독 보도해 국정원 개혁의 선봉에 섰다.
당시 경기신문이 확보한 문건은 2010년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 의해 작성된 ‘문화예술·체육인 건전화 사업 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이었다. 그 안에는 ‘보수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를 적극 지지하고, 좌파 성향의 예술인들에 대해서는 정치개입 활동을 차단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해당 문건의 기본 방안에는 ▲대중·순수 문화예술계 및 체육계 건전 분위기 정착 사업 활성화 ▲정부 출범 3년차를 맞아 보수 성향 방송·문화예술계 및 체육계 인사들을 적극 지원, 조직화함으로써 국론 결집에 기여 ▲방송·예술계 및 체육계 좌파인물 활동 실태를 수시 점검, 압박 활동을 강화하고, 지방선거 등 무분별한 정치개입 활동 차단에 주력 등의 지침이 마련돼 있었다.
게다가 '좌파 연예인의 방송활동 차단 강화'에 대한 구체적인 강령으로, 방송사 간부·광고주 등에게 좌파 연예인들의 정치활동을 배제하고, 이들의 비리를 밝혀 사회적 공분을 유도하라고 제시하는 내용도 있었다.
◇ KBS, 박형준 불법 사찰 개입 원문 입수·보도
이런 상황에서 박 후보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 홍보기획관 시절에 불법 사찰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진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지난 10일 <KBS>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이었던 박형준 현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불법 사찰 내용을 요청하고, 보고 받은 것으로 나온다”며 4대강 사업에 반대했다가 국가정보원의 불법 사찰 피해를 입은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등 5개 환경단체들의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한 ‘4대강 사찰 요약문건’을 공개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박 후보가 등장하는 문건은 총 2건이며, 2건 모두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 요청에 의해 2009년 7월 각각 작성된 문서다.
문건에는 ▲사회단체 주요 반대인물 3명은 친분인사로 관리라인을 구축해 투쟁계획을 사전에 파악하고 종북 좌파활동을 공개해 국민적 거부감 조성 ▲환경단체 반대인물 4명은 환경부에서 전담관을 지정해 단체간 갈등 및 주도권 다툼 등 취약점을 집중 공략하고 연대 차단과 반대활동 무력화 ▲종교단체 4명은 친분인사를 통해 순화, 가톨릭 신자 등을 통해 간접 압박 ▲교수들의 경우 반대 주도 인물들에 대한 비리 발굴을 통해 활동 약화 등의 내용이 실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주요 인사들 “박형준 물러나야”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되자 주요 인사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홍영표 의원(더민주·인천부평을)은 지난 10일 오후 9시 42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불법사찰 해놓고도 거짓말 발뺌으로 국민 기만한 박형준 후보, 부산시장 자격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홍 의원은 “조금 전 KBS는 MB정부 시절 국정원이 작성한 ‘4대강 사찰’ 원문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은 2009년 국정원이 4대강 사업 반대단체를 불법 사찰한 결과와 계획을 담은 것이다”라며 “(이 문건에는) ‘청와대 홍보 기획관 요청사항’이란 문구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이때 홍보기획관이 바로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박형준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간 박형준 후보는 국정원 불법사찰과 밀접히 연루됐다는 의혹을 부인해 왔다”며 “그러나 오늘 문건 공개로 박 후보의 말은 새빨간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고 직설했다.
이어 “박 후보는 정치입문 전 부산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였다. 그런 사람이 정보기관을 시켜 시민단체 인사들에 대한 불법사찰 한 것이다”라며 “이런 사람이 부마민주항쟁의 성지 부산을 대표하는 공직에 나선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호소했다.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도 같은 날 오후 10시 30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을 게재하며 박 후보를 비판했다.
황 씨는 “4대강사업은 이명박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며 “그런데 당시 이명박의 수족이었던 홍보기획관 박형준이 이 문건을 모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방송에서 보면 기억력이 아주 형편없는 것은 아니더라”라며 “아무리 부산시장을 하고 싶다고 해도, 정도껏 하자”고 지적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도 자신의 SNS에 ‘4대강 사찰 원문 입수..박형준 연루 확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며 “터졌다. 꼬리가 너무 길다”고 짧고도 의미심장한 글을 게시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SNS를 통해 관련 기사를 공유하긴 했지만, 별 다른 말을 적진 않았다.
◇ 박 후보 “불법사찰인 걸 알았으면 오히려 막았을 것”
이처럼 박 후보를 향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지만, 박 후보는 ‘본적 없는 문건이며, 자신은 당시 국정원 사찰과 관련해 어떤 것도 요청한 적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날 박형준 후보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알지도 못하고 관여한 바 없다. 그리고 불법사찰이라고 분명하게 제 눈에 보였으면 그걸 오히려 막았을 것”이라며 “저는 이 부분에 관해선 제 양심을 걸고 전혀 거리낌이 없다”고 밝혔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