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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잇단 軍 성범죄, ‘비상벨’ 시스템 재설계해야

지휘관 책임 과다…쉬쉬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개혁을

  • 등록 2021.06.09 06:00:00
  • 13면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가 지난달 22일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부사관 이 모 중사 사건의 여파가 일파만파다. 여야 정치권과 국방부 등이 성범죄 근절 TF, 특위, 민간자문단 구성 등 뒷북을 치느라고 호들갑 떠는 익숙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인권문제가 그렇듯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비상벨’이 오작동하거나 고장이 난 상태로 방치되는 게 문제다. 특히 군문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는 지휘관에게 책임과 불이익이 과다하게 돌아가는 문제도 개선돼야 한다. 개혁해야 할 과제가 다분히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공군 여부사관 이 모 중사 사건은 군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가 어떻게 불합리하게 다뤄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사건은 군 사법체제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군사경찰이 이 중사 사건을 4월 7일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으나 군 검찰은 계속 미적거리다가 피해자가 고통을 못 견뎌 목숨을 끊은 지 9일 뒤인 5월 31일에야 피의자를 처음 조사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명령과 복종의 계급구조가 생명인 군문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 중에서 성범죄는 단순히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다수 부하를 통솔해야 하는 개별 지휘관의 역량만으로 방지할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으로 지휘관을 문책하고 불이익을 주는 단세포적인 관리방식으로는 개선해내기 어렵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안전한 비상벨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들이 무용하다는 평가를 할 이유는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범죄 발생을 근원적으로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 났을 때 그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비상벨 시스템이 있어서 신속 정확하게 처리되도록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런 시스템이 확실하게 작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잠재하고 있는 범의(犯意)는 크게 제어될 것이다.

 

미국은 국방부에 설치된 성폭력예방대응국(SAPRO)은 신고가 들어오면 지휘관에게 알리지 않은 채 사건을 적극적으로 처리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구성된 독립적 검토위원회가 군내 성범죄 기소 권한을 지휘관에게서 분리하는 권고안을 제시했고, 최고수뇌부가 이를 받아들이기로 함으로써 결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원위회의 검토보고서에 주목한다. 법사위 보고서는 ‘지휘관은 자기 휘하 부대에서 발생한 사건이 진급 평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축소·은폐하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같은 요인이 군내 사망사고를 비롯한 중요사건의 철저한 초동수사, 군내 부조리에 대한 군 검찰의 적극적 인지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과도한 책임이 오히려 범죄 은폐의 동기를 키우는 역설적 부작용은 개혁돼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대 질서를 ‘인권 침해 허용’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뜯어고치는 일이다. 계급은 효율적인 업무를 위한 위계일 뿐 인격의 서열은 아니다. 군문에 있는 모든 구성원이 심중에 이 같은 가치관을 깊숙이 지닐 수 있도록 효과적인 교육이 일상적으로 전개돼야 할 것이다. 차제에 우리 군에도 선진적인 ‘인권 보호 시스템’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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