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4일 시작된 드라마 ‘파친코’의 흥행이 예사롭지 않다. OTT 통합검색 및 콘텐츠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했던 1화 동영상의 조회수는 1500만 뷰에 육박하고 있다.
‘파친코’는 재미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글로벌OTT사업자인 애플TV플러스에서 1000억원의 들여 8부작 드라마로 제작, 공개한 것이다. 소설 ‘파친코’는 2017년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읽어보라고 추천하기도 했던 책이다.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 살다가 일본으로 이주한 주인공 선자 가족의 4대에 걸친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 식민지배의 잔혹성과 재일 한인(자이니치)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과 탄압의 역사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국내에서의 흥행은 예상된 일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호평 일색이다. 글로벌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98%를 기록했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평점 만점을 주었으며 최근 몇 년간 나온 최고의 드라마라고 했다. 미국 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가족과 여성의 힘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지만 고통스러운 이주자의 삶의 초상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얼마 전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검정교과서에서 삭제했다. 드라마 ‘파친코’에 대해 일본의 주류미디어는 침묵하고 있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역사 왜곡 드라마라며 ‘온라인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파친코’는 드라마에서 다루는 시기의 주요 사건이나 상황을 정확하게 고증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 400여 명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보기와 달리 ‘파친코’는 ‘한류드라마’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로벌OTT사업의 후발주자 애플플러스가 ‘공룡’ 넷플릭스의 독주에 제동을 걸기 위해 준비한 야심작이다. 미국의 대표적 미디어 기업에서 재미 한인(원작자, 영화제작자, 배우 등)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만든, 일제강점기 재일 한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일 뿐이다.
우리는 잔혹한 식민통치와 범죄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일본정부에 대해 지금도 분노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전문가, 관계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 일제의 범죄행위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일본의 극우세력은 자금지원을 통해 자신들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역사 왜곡에 몰두하여 성과를 거둔 면이 있다. 그런데, 2022년 봄 갑자기 미국의 초일류기업에서 만든 휴먼드라마가 동북아의 역사를 한 방에 바로잡고 있는 셈이다.
지금 한국에도 일제의 한반도 지배로 한국이 근대화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미디어와 학자들이 상당수 있다. 결정적으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주에 대해 별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던 윤석열씨의 대통령 취임이 임박한 상황에서, 미국 주류자본이 일본제국주의의 민낯을 드러내며 일본인과 세계인을 ‘참교육’시키고 있다는 건 여러모로 역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