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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금의 시선] 오월(2)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꽃들이 일시에 피어 무작위로 향기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오월이요. 하얀 밥을 머리에 이고서 하늘을 우러르는 나무의 경건함을 볼 수 있는 것도 오월이다. 꽃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는 것도, 꽃이 떨어진 자리에 작은 열매가 도톰히 자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오월이다. 오월을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 하는 것은 여름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고, 울바자 사이로 삐어져 나온 꽃이 더욱 붉고 아름다운 것은 경계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동네에는 아카시아 꽃 향기가 그득하다. 바람이 불어오면 양태머리를 땋아올린 꽃송이가 꿈결같이 밀려온다. 콧구멍으로 후~ 들어오고 후~ 나가고 잡힐 듯 말 듯, 그리고 수수꽃다리 향기는 얼마나 진했던가. 한 송이라도 가져오면 집안이 향기로 가득하다. 향기라도 마음껏 취할 수 있었으니 스물한 살 청춘은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맨발의 청춘이라 하지 않는가. 너무나 초라하고 가난해서 추억조차 힘겹지만 그래도 20대만큼은 빛나게 반짝인 때이다. 아무도 아니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스스로는 알고 있으니 그것은 후각 이 지각을 깨운 덕분이다. 아카시아 꽃, 수수꽃다리 향기너머 북녘의 고향사람, 아니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지금은 모내기가 한창일 것이다. 먹는 것이 입는 것보다 중요해 식의주라 하고 쌀과 강냉이를 얻으려고 온 나라가 동원된다. 이론을 실천하라고 학생도 쌀을 만드는데 참가해야 한다지만 실제로는 기한이 정해져 있는 바쁜 농사철에 노동력을 값싸게 얻으려는 것이다. 덕분에 학생인지 농사꾼인지 모를 정도로 모내기와 강냉이(옥수수) 심는 법을 배웠으니, 올해는 여럿이 심은 텃밭에서 내가 심은 채소가 그중 튼실하게 잘 살았다. 오월말 또는 6월 초까지 모내기가 끝나는데, 종아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거머리 생각을 하면 인생에 다시는 논에 들어갈 일은 없겠다. 가족의 달로 분주한 남쪽에 비해 법정기념일(빨간날)이 없는 것은 사람들을 농촌에 총동원시키느라 그런지도 모른다. 도시나 농촌이나 농사일을 모르고서는 밥 먹기 힘든 곳이다. 밥을 무서워하는 비만의 시대 적게 먹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다.

 

지금쯤 아카시아, 수수꽃다리에도 꽃이 피었을 까. 남쪽에는 꽃이 지고 있는데 북쪽에는 6월에 한창이었던 것 같다. 보리고개라 햇곡식이 나기까지 서글픈 가난에 부엌에서 맴돌 언니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아마도 잘 살고 있을 것이라 애써 긍정해본다. 부지깽이도 뛴다는 바쁜 농사철에 고향에서 지금까지 잠잠하던 코로나19가 확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남쪽에는 백신도 몇 차례 맞고 잘 견디었는데, 북쪽의 고향은 가난하고 부족하니 그래도 살아만 있어주었으면.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별일 없었으면, 그래서 오월에 청신한 얼굴의 신부로 다시 만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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