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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박서양이 선택했던 길

 

어느 시대나 신분 상승은 어려웠다. 자신이 처한 불우한 환경을 딛고 남들보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그만큼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기에 그들이 얻은 성취는 더욱 소중하고 빛난다.

 

하지만 더 어려운 일이 있다. 자신이 얻은 성취를 타인을 위해 내놓는 일이다. 얻는 일보다 내놓는 일이 훨씬 어렵다.

 

자신의 노력으로 신분과 처지를 바꾼 사람들은 드물다. 자신이 얻은 성취를 어제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 드물고 드문 사람의 하나가 박서양이다.

 

박서양은 1885년 9월 30일,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백정과 백정의 자식은 호적조차 부여받을 수 없는 최하층 계급이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는 존재였다. 이름도 성도 없이 ‘봉주리’로 불리던 그에게 뒤늦게 ‘박서양’이란 이름과 호적이 허용된 것은 저절로 세상 좋아져서가 아니었다.

 

대대로 백정이었던 박서양의 아버지는 돈으로 자기 아들 하나의 신분을 사는 대신 갑오개혁으로 시행되던 신분차별 철폐법을 모든 백정에게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탄원운동에 앞장섰다. 백정 아버지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존재를 인정받고 이름과 호적을 얻었던 소년은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의 미국인 의사 에비슨의 조수가 되었다.

 

처음부터 에비슨의 조수는 아니었다. 병원 청소와 잡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이었다. 급여도 없는 그 일을 새벽부터 밤중까지 너무도 성실히 해냈기에 그는 모두의 인정을 받았고, 에비슨은 그에게 글을 가르치고 제중원의학교 1기생으로 입학시켰다.

 

1908년 6월, 박서양은 동기생 여섯 명과 함께 조선인 최초의 양의사가 되었다. 그들의 졸업식은 조선의 권력자들은 물론 한양 주재 외교관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백정의 아들이 거둔 대단한 성취였고 영광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대단했던 것은 박서양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그 성취와 영광을 지금의 자신이 아닌 어제의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은 신분을 바꾸고 영광을 얻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외과 의사가 된 박서양은 어제의 자신인 불우하고 가난한 동포들을 위해 자신의 의술을 사용했다. 마침내는 조선에서 누리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만주의 용정으로 가 구세의원을 개업하고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만리타국으로 떠나온 사람들을 도맡아 치료했다. 독립군과 그들의 가족들 대부분은 돈 한 푼 내지 않고 조선 최초, 최고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았다. 홍범도, 김좌진이 이끈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전투에 종군하며 부상자를 치료했던 군의관도 그였다.

 

고종의 진료를 맡아보며 세브란스의전의 교수 자리에 올랐던 그의 선택은 아름다웠다. 아버지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성공한 지금의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어제의 나로 살아가고 있는 불우한 동포와 나라를 위해 사용했던 그의 삶은 감동적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의 하청노동조합원 유최안씨가 가로세로, 높이 1m, 0.3평 철창 속에 자신을 가두고 지내는 동안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를 향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경찰특공대 투입을 검토했다’는 말을 하는 분도 있었다. 가장 밑바닥에서 절규하는 유최안과 그의 동료들을 더 아프게 한 사람들이 있었다. 178cm인 유최안이 눕지도 서지도 못하고 꼬박 31일을 지내는 동안 어제의 유최안이었던 대우조선해양노조의 정규직 노조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무엇이었나. 하퀴라니, 숨이 턱 막혔다. 오늘의 하청 노동자들이 바로 정규직 노동자의 어제였다. 오늘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리는 그만큼의 권리가 누구의 피와 눈물과 희생으로 획득한 것인지 그들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을까. 하퀴, 오늘 그들이 내뱉은 그 모욕과 혐오의 언어가 내일은 누구에게 돌아가게 될까. 남으로부터 모욕당하는 자는 반드시 남이 모욕하기 전에 스스로 모욕한다.

 

참으로 무더운 여름, 오늘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제의 자신이었던 이들과 더불어 내일을 살아가려고 했던 박서양의 삶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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