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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소] 철거 앞둔 일제 강제 동원 흔적…인천 부평구 ‘조병창 병원’

조병창, 전쟁 군수 물자 위해 1941년 문 열어…노동자 대부분 강제 동원
부상 노동자 치료 목적 병원 설치…철거·보존 두고 여전히 갈등

 

5. 철거 앞둔 일제 강제 동원 흔적… 인천 부평구 ‘조병창 병원’

 

나무와 벤치가 있는 도심 속 넓은 공원은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인천 부평구 산곡동 캠프마켓은 일제 강점기 일본 육군에서 사용되는 각종 무기를 생산하던 일본육군조병창이 있던 곳이다.


조병창은 중일전쟁 등 아시아태평양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만들기 위해 조성됐다. 1939년 9월 공사를 시작해 1941년 5월 5일 인천육군조병창이라는 공식 명칭을 달고 문을 열었다.


일제는 인천항과 경인철도를 이용한 물자의 수송이 편리하고 서울과 가까워 인력 모집도 수월한 부평을 적합지로 판단했다. 또 계양산, 철마산, 원적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연합군의 공습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3개의 공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매달 생산한 무기는 30년식 총검 1만 개, 소총 9000정, 소형 폭탄 2800개 중형 폭탄 2000개에 달했다.

 

조병창이 조성되면서 인근에는 미쓰비시 제강, 도쿄제강 등 군수기업들이 잇따라 들어왔다. 부평은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가 됐다.

 

조병창 노동자들은 대부분 강제 동원된 조선인이었다. 인천중학교, 인천상업학교, 인천공업학교, 인천고등여학교, 인천소화고등학교, 경성공업학교 학생 360여 명이 이곳에서 일했다.


인천뿐만 아니라 서울, 김포 등에서 많은 학생과 일반인들이 동원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나, 약 1만 여명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인원은 파악되지 않는다.

 


이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 탓에 항상 사고 위험에 놓여 있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많아 사고에 노출되는 경우가 잦았다.


일제는 부상을 입은 노동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조병창 주물 공장 근처에 400병동 규모의 병원을 지었다.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등을 갖추고 있었으며 중앙의 입구로 들어가면 복도 옆으로 진료실들과 입원실들이 쭉 늘어선 구조였다.

 

조병창 병원은 당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곧 철거된다. 보존과 철거를 두고 인천시와 국방부, 시민단체는 긴 시간 동안 갈등을 빚었고 이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으로 강제 동원 피해 배상 문제 해결 방안을 발표한 상황에서 중지된 철거가 재개되자 반발은 더 거세졌다.

 

대법원은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미쓰비시가 배상 이행을 거부하자 정부는 지난 6일 일본 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기관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철거를 반대하는 단체는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다는 이유에서 지난 23일 인천지방법원에 국방부 상대로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 중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김샛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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