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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소] 조선시대 대동법 기초 만든 문신 ‘권반’ 여기 잠들다…인천 연수구 ‘권반 묘’

충청도 관찰사 시절 대동법 시행 불발…법 정해 책자 남겨
길마산 중턱 부인 파평 윤씨, 장남 권경 묘 함께 남아있어
묘역 토지 경매 중…멸실 가능성 있지만 관리 대신 방치만

 

7. 조선시대 대동법 기초 만든 문신 ‘권반’ 여기 잠들다…인천 연수구 ‘권반 묘’

 

“백성들을 넉넉하게 하는 법이 여기 있다.”

 

조선 인조 6년 문신 김육은 우연히 오래 전 만들어진 책자 한 권을 발견한다. 이 책자를 보고 감탄한 김육은 이를 참고해 조선시대 최대 개혁이라 불리는 ‘대동법’을 시행한다.

 

김육이 발견한 이 책자의 주인은 문신 권반. 12년 전 충청도 관찰사였던 그가 대동법을 시행하려다 좌절을 겪은 뒤 이를 법으로 정해 책자로 남겨놨던 것이었다.

 

대동법은 세금을 특산물 대신 쌀로 낼 수 있게 만든 제도로, 과도한 세금에 고통 받는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줘 민생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천 연수구 선학동 문학산 동쪽 끝에 붙어있는 길마산 중턱에는 권반과 부인 파평 윤씨 그리고 그의 장남 권경의 묘가 남아있다.

 

권반은 관찰사‧이조참판‧도승지‧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그는 선조 27년 군수품을 관리하는 군자감의 참봉이 된다.

 

빈틈없이 일을 잘할 뿐 아니라 공평하고 합리적인 성격에 인품까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중요한 직책을 두루 역임하며 승진을 거듭한다.

 

선조실록에는 그가 명나라 황제‧황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기록관으로 파견돼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광해군 6년에는 부산 동래에 순검사로 파견돼 누각인 영가대를 세웠다. 조선통신사부터 신사유람단까지 257년간 일본에 파견된 외교사절단은 이곳에서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해신제를 지낸 뒤 배에 올랐다.

 

 

그는 1631년 67세 나이로 사망했는데, 장남 권경과 차남 권척은 젊은 나이에 요절해 손자들이 장례를 치렀다.

 

부인 파평 윤씨는 8년 뒤 사망해 권반 옆에 묻혔고, 이후 경기도 광주 광명리에 있던 장남 권경의 묘가 부모 곁으로 이장됐다. 차남 권척의 묘도 이곳에 있다고 전해지지만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이들의 묘와 그 곁에 세워진 묘갈‧망주석‧문인석은 400여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이곳에 남아있다. 하지만 이곳이 묘인지조차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방치돼있다.

 

덩굴과 풀들로 입구마저 막혀있어 접근도 쉽지 않다. 묘역 옆으로 문학산 등산로 입구가 있어 늘 등산객들로 붐비지만 가까이 오지 않는 한 알아볼 수 없다.

 

권반의 본관은 안동이지만 후손들의 관리 흔적도 없고,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에 시나 구의 관리도 받지 못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재 묘역이 있는 토지는 경매 중이다. 이로 인해 묘역이 멸실될 가능성도 있다.

 

 

[ 경기신문 / 인천 = 박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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