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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사일로에서 1Q84까지, 이민정책에서 공중파 수신료까지

 

미디어의 확장성이 다소 떨어져서 그렇긴 하지만 글로벌 OTT 중 하나인 애플TV +는 종종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는다. ‘파친코’가 대표적인데 요즘은 ‘사일로(SILO)’란 작품이 그렇다. 한국어 제목은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이다. 제목을 이렇게 붙인 데는 사일로란 단어가 미국의 대평야 지대를 지나다 중간중간에 볼 수 있는 곡물형 창고의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곡식과 목초를 쌓아 두는 굴뚝 모양의 창고를 뜻한다.

 

10부작 드라마인 이 작품에서 사일로는 144층의 수직형 지하 건물로 나온다. 바깥 세상은 차단됐으며 140년간 사람들은 외부로 나간 적이 없다. 외부세계는 극도의 대기오염으로 나가자마자 사망하게 된다는 것이고 사람들은 실제로 그런 사례를 목격한다. 사일로 안 시민들은 역사 이전과 역사 이후 혹은 반란 이전과 반란 이후로 구분하고 살도록 주입됐다. 사람들은 반란 세력이 책과 정보를 모두 불태워 사일로의 역사는 남아 있지 않다고 배우며 살아 간다. 모든 것에 통제 아닌 통제가 이루어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임신 허가제라는 것이다. 사일로 안의 모든 여성은 피임기구를 시술받고 임신 허가가 나오면 이 기구를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임신도 허가제이지만 연애도 허가제이다. 게다가 144층의 지하 건물은 층층이 다른 계급과 계층으로 구분되며 맨 지하층은 기계부로 하층 노동자들이 살고 중간 층에는 의사와 같은 중산계층이, 위로 올라갈수록 법무부 같은 상층부가 살아 간다. 사람들은 별 불만없이 나름 행복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데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정말 바깥으로 나가면 사람들은 죽게 되는 가. 사람들을 전부 사일로 안에 가둬 두는 특별한 목적과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드라마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은 명백히 봉준호가 2013년에 만든 ‘설국열차’에 네덜란드 감독 폴 버호벤이 1989년에 내놓은 ‘토탈 리콜’의 설정을 뒤섞은 것이다. 통제사회의 극단적 미래형이 어떠한 계급사회를 만들어 내고 또 어떻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이어가게 하는 가를 보여 준다. 과거의 두 작품이 역작이었듯이 이번 ‘사일로’도 업데이트된 수작이다. 지배층의 강고한 억압과 (자본 및 노동의) 수탈이 사실 얼마 만큼 층층히 수직계열화 되어 있으며 그게 너무 세분화돼 있는 탓에 차라리 그 착취의 구조를 깨닫지 못할 정도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계급사회를 만족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최면화, 가스 라이팅의 시스템이 너무 정교하다는 것이고 조금이라도 불순한(우리로 말하면 반국가적인) 사고를 지닌 인간들은 연애나 임신조차 금지시켜 싹을 잘라 내려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발본색원이다. 어디서 많이 본 얘기이고 앞으로도 어디서 많이 듣게 될 애기가 아니겠는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주도에서 주최한 한 포럼 기조연설에서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철저히 국익을 위해 미리 계획을 세우고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외국인은 받아들이고, 불법을 저지르는 외국인은 내쫓는 이민정책을 펴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서 코웃음을 친 기억이 난다. 코웃음. 맞다 비웃음이다. 이민자를 받아 들이겠다는 나라가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두고 논쟁을 하고 있고 차별금지법을 금지하자는 쪽에 법무장관의 무게중심이 실려 있지는 않던가. 그런데 이민자를 늘린다고?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면 받아 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추방하겠다는 다소 무차별적, 선택적 사고에도 오싹한 느낌을 받는다. 아 사일로를 만들겠다는 뜻이구나, 꼬리칸과 황금칸이 있는 열차나 144층짜리 계급의 건물을 짓겠다는 얘기이구나 싶었다.

 

영화는 반란군이나 저항세력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어김없이 핍박받는다. 결국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들의 뜻이 어느 정도 관철된다. 근데 그 과정이 참으로 피곤하고 참혹하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일부 사람들이 상황을 꼭 그렇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배우면 시행착오가 좀 줄지 않을까. 그냥 너무 한가한 얘기가 되는 것일까.

 

KBS 수신료 분리 징수안이 통과되는 것을 보면서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떠올려졌다. 그 작품에서 주인공 덴고의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이다. 그는 NHK 수신료 징수원인데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들은 그로 인해 괴롭힘을 당한다. 사회의 스트레스 수치가 엄청나게 올라간다. 이 시행령 안을 통과시킨 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은 『1Q84』를 읽기나 했을까. 무식하고 한심한지고. 그리도 영화와 책에서 좀 배우라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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