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월을 좋아했다. 사계절이 뚜렷한(점점 흐릿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4월은 마법 같은 날씨를 가지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밤이 되어 돌아올 때까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니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마음은 괜히 들떠 콧노래가 나온다. 길거리엔 개나리와 진달래가, 고개를 들어보면 벚꽃잎이 휘날린다. 시원한 커피를 한잔 사서 목적지 없이 걷기만 해도 즐거운 시간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마냥 즐겁지가 않아졌다. 올해로 10년째다. 세상엔 늘 크고 작은 비극적인 사건이 있어왔고 계속 생겨나겠지만 아직도 괜스레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악의 없이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일상을 되찾고 되레 수많은 날들은 그 일에 대해 생각조차 안 하겠지만 내년 4월이 오면 나는 또 하루 이틀은 그 날을 생각하며 울적해 할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며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올해의 크고 작은 다양한 목표를 적고, 헬스장 1년 결제를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4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문득, 이러다 곧 더워지겠다, 여름이 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함께 있던 동료와 올해는 진짜 빨리 가는 것 같다, 앞으로는 더 빨리 가겠지? 어른들이 나이 먹으면 시간이 점점 더 빨리 간다는 말을 체감한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우스갯소리를 나누었다. 분명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고 충실하게 나의 할 일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보면 ‘올해 내가 뭐했지?’라는 생각이 든다. 괜히 불만족스러운 마음에 달력을 거꾸로 펼쳐보며 지난날을 복기한다. 그간 내가 했던 것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중얼거려본다. 시간이 뭉쳐져 하나의 덩어리로 구분되어 ‘이때는 이걸 했고, 저 때는 그거 하느라 바빴네, 적어도 놀진 않았네’ 정도로 나를 위로해 본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떠났다. 대한민국 최초로 자연 번식으로 태어난 판다 푸바오는 귀여운 외모와 행동, 사육사와의 케미 등 다양한 이유로 ‘푸바오 열풍’ 이라고 부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유튜브를 비롯한 SNS에 다양한 클립, 소위 짤을 만들어내며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떠나는 날 당일에는 많은 팬들이 직접 찾아가 작별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SNS에는 ‘푸바오 찾기 테스트’ 사진이 돌기 시작했다. 푸바오를 비롯한 여러 판다의 사진을 조합에 “여기서 푸바오 찾기 가능한가? 이거 찾으면 울어도 인정”이라는 내용과 함께. 이 글의 담긴 의도를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이후 인터넷에는 이 현상을 활용한 많은 컨텐츠가 올라왔고, 거기엔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을 옮겨 적는다. ‘어떤 사람들은 고작 글씨로 채워져 있는 종이 뭉치에 푹 빠져서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고, 어떤 사람들은 유치한 영화를 보면서 열광하고 심지어 장난감까지 수집합니다. 잔디밭에서 22명이 작은 공 하나를 차려고 발버둥치는 행위에 수십억 명이 열광하고, 매일 저녁 TV 앞에 모여 앉아 눈물을 훔치기도 하죠. 퇴근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벌써부터 시계를 보고, 나를 사랑하는지 확신조차 없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고민합니다. 이 중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어요. 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총합을 우리는 삶이라 부릅니다. 그러니 떳떳하게 원하는 곳에 애정을 쏟으세요. 그것이 삶을 합리적으로 만들어 주진 못해도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