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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의 예술맛보기] 아이의 그림같이 순수한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

 

호안 미로는 초현실주의 작가 중에서도 표현에 있어 과감한 함축과 보이지 않는 잠재된 것들에 대한 상징화, 화려하고 율동적인 색채와 어린아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쉬운 터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호안 미로의 작품은 유화, 꼴라주, 도예, 조각에서 판화까지 표현기법이나 내용까지 20세기의 미술사라고 불리울만큼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화가이다. 오늘은 그의 작품 중에서 말년에 심취했던 판화를 감상해 보자.

 

[앨범 연작]

 

그의 흑백판화 앨범 시리즈들이다. 이 판화들은 석판화로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상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오묘하다. 외계인을 보는 듯도 하고, 동그라미, 세모, 선과 별 등의 오브젝트들이 교묘히 겹치며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특히 미로의 작품 대상으로 많이 사용된 것은 여자인데, 앨범13과 같은 형상은 여자의 형상을 간결히 표현한 것이다. 미로가 독자적으로 창안해낸 상형문자와 상징들이 화폭에 옮겨짐으로써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의 미술이 열렸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같은 판을 이용하여 만든 다른 작품들]

 

이 작품은 앨범 시리즈 중에서 같은 판을 이용해 다른 작품을 만든 예이다. 미로는 여러 개의 판을 섞어 찍음으로써 색상과 형태의 변화가 주는 미묘함을 표현하였는데 아래의 작품들을 보면 일부 같은 판을 사용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미로는 작품에 별을 많이 그려 넣었는데 별은 그가 표현하고 싶은 희망, 바람이었다. 특히 이 작품들에 있어서는 표면을 일부러 얼룩지게 하거나 문질러서 시각적 현존성을 부여하고 그 위에 다양한 기호들을 병치시킴으로써 즉흥적이고도 행위적인 기법을 자유롭게 표현한 그의 작품세계가 잘 보인다.

 

 

[대형 판화 작품들]

 

그의 대형 판화 작품들을 자세히 보면 무심한 듯 죽죽 그어댄 선, 강렬한 색과 형태 속에 그가 말하려는 모든 것이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작품들은 작가가 어떤 생각에서 이것을 그렸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을 감상자 나름대로 재해석하고 이해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붓으로 흩뿌려 놓은 듯한 기법은 세밀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나 현대 추상주의의 대가인 잭슨 폴록을 떠올리게 한다. 왜냐하면 잭슨 폴록이 미로의 영향을 받아 추상미술을 일으키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상이 여자인 경우에는 여자와 절친한 부속물, 예를 들면 새와 같은 존재가 화폭에 같이 표현된 경우가 많다.

 

 

아래의 작품은 정말 재미있다. 갈라테아는 바다의 요정, 그리고 피그말리온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피그말리온이란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로 자신이 조각한 여인 조각상을 사랑 신에게 그 조각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여 그 소망을 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로 전해진다.

 

 

이 작품에도 미로가 상징하는 것들이 많이 담겨 있다. 파란 별, 희망과 꿈을 그리는 작가의 마음.

많은 손바닥, 이 손바닥은 미로의 손바닥으로 추정된다. 굴따는 여인들의 수많은 손길을 표현한 것. 그리고 때때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화살표들은 대상의 움직임이나 방향을 표시하는 기호로 사용된다.

 

 

몇몇 작품은 아래와 같이 정말 간결하고 깨끗하다. 흩뿌린 흔적도 없고 단정하게 선들이 처리되어 있다. 대부분의 판화 작품은 가장자리에 사각형의 프레스 자국이 남아 있는데 이 작품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은 그림의 까만 테두리 주변에 프레스 자국이 있다. 판을 그림의 모양대로 따냈던 것, 특히 이 그림의 중앙에 나타나 있는 가늘고 길게 구부러져 있는 흰색 선은 검은색 부분을 일일이 세밀하게 벗겨내어 만든 선이다.

 

 

‘사하라사막에서의 근친상간’이라는 제목을 모르고 봤을 때 나는 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림의 중앙에 보이는 노란색을 중심으로 한 13자 비슷한 모양이 여자를 상징하고 그 위에 동물 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남자를 상징한다. 그리고 뒤의 사각형으로 된 갈색 박스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나타낸다.

 

 

이 작품의 제목이 ‘역도 선수’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일한 판을 사용한 다른 작이 있는데 제목이 ‘한 세기의 전사’이다. 동일한 판이라도 어떤 판과 교차하여 찍어냈는지, 어떤 색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작가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개념이 된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일리가 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똑같은 어느 것이라도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이느냐, 무엇과 조합되느냐에 따라 때론 악이 되고 때론 선이 되지 않는가? 미술에서도 동일한 오브제가 동일한 색상이, 동일한 형태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표현이 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미로의 장난스러운 아이 같은 마음이 나타나 있다. 그의 판화 작품은 얼핏 보면 판화가 아니라 큰 붓으로 직접 그려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색 번짐 효과를 사용한 부분에서는 동양화 기법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미로의 작품은 처음부터 어떤 의도나 계획을 가지고 그렸다기보다는 그리는 대로 가다 보니 그때 하늘에서 별이 반짝이면 별도 그려 넣고, 그때 새가 한 마리 날아가면 새도 그 속에 담아 놓는 등 즉흥적이고 찰나적인 어떤 현상을 그림 속에 다양한 관계로 형성해 놓음으로써 현존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을 흔히 초현실주의 미술에서는 자동기술법(automatism)이라고 하는데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이 오토마티즘이란 기법으로 무의식이나 꿈의 내용을 표현했다고 한다면 미로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고전적인 재현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길을 열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말하자면 미로의 초현실주의는 상상력, 무의식, 자동기술법을 병합한 형태로 표현하여 유기적인 생명감을 강조한다.

 

 

아래의 두 작품은 동굴을 나타내고 있는데, 스페인의 문화유산인 얄타미라 동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얄타미라 동굴벽화의 짐승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역동적인 선을 느낄 수 있다.

 

 

[고향에서의 하루 연작]

 

고향에서의 하루 연작은 비슷한 표현기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느긋하고 느슨하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의 하루, 푸른 바닷가에 하루를 표현하고 있다.

 

 

[미로와 자끄]

 

자끄 푸레베와 미로의 연작들은 미로가 그림으로 시를 쓴다면 자끄 푸레베는 알파벳으로 그림을 그려서 그림이 글을, 글이 그림을 서로 살려주는 독특한 작품이다.

 

 

[지옥의 형벌 연작 중]

 

지옥 시리즈는 다른 작품들과는 또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고 약화된 상징을 그림으로써 다른 그림보다 더 추상적이다.

 

마치 뭉글뭉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세포나 미생물 같기도 하고, 과감하게 형태성을 생략하여 형태 자체보다는 형태 상호 관계의 연상 작용에 더 무게를 둔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모든 사물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미로의 생각이 초현실주의와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추상작품을 대하는 태도]

 

어떤가, 현대 추상주의 작품들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다. 미로의 작품은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같기도 하여 아이들이 좋아한다. 그뿐만 아니라 색깔이나 장난스러운 형태는 더 생각하고 더 상징하고, 더 다른 표현을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고 싶어 하는 사유적인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제 작품의 감상은 우리에게 남겨졌다. 그것이 설령 다른 감상자와 다른 의견이라도 상관없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냥 받아들여도 되는 호안 미로의 작품이 나는 좋다. 미로뿐 아니라 현대미술 작가들, 미로, 클레, 칸딘스키, 폴록, 바스키아, 마그리트, 워홀........등의 현대 회화나 추상작품들이 그래서 어렵지 않다.

 

[ 글=권은경. SG디자인그룹대표.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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