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의병장이었다. 1567년 태어나서 1596년에 옥사했다. 스물아홉. 빛고을 광주 충장로는 충장공 김덕령의 거리다. 이 특별한 젊은이의 죽음은 400년이 훌쩍 넘은 오늘에도 너무나 아깝다. 화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 그 더러운 정치에 들쥐 잡는 들불을 놓고 싶다. 전주이씨들 보다 자부심이 강한 광산김씨다. 율곡과 함께 서인의 원류 유학자 성혼(成渾)의 제자로서 또래들에게 뒤지지 않는 학식을 갖췄다. 열너댓 살 소년이 이미 전국 제일의 씨름꾼으로 이름을 얻었다. 궁술과 기마 등 무사로서의 역량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문무를 겸비한 국보였다. 어린 나이에 벌써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았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괴력의 소유자였다. 자당께서 호랑이를 품에 안는 태몽으로 얻은 아들이었다. 태생적으로 특별한 운명이었다. 중국에 이른바 '4대 기서'(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가 있다. 내게는 수호지가 1번이다. 나는 '위대한 왕초' 송강(宋江)의 혈맹 공동체인 충의 두령 108명을 모두 좋아한다. 존경한다. 내가 그 시대 山東의 청년이었다면, 해방구 '양산박'(梁山泊)에 들어가서 무송, 노지심, 임충, 흑선풍 등과 우애하며 살았을 거다. '역발산
그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었으며, 중국으로 망명하여 25년 동안 시아버지, 남편, 세 아들과 함께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다. 같은 시기에 3대가 일심동체로 국권회복에 헌신한 집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위대함, 또는 특별함에 비추어 기록도 빈약하고 훗날 우리 정부가 그에게 내린 훈장은 너무나 초라했다. 모욕적이다. 희순은 1860년(철종 11년) 꼿꼿한 선비 윤익상의 장녀로 지금의 남산 밑 회현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생모와 다정한 계모를 연이어 잃는 아픔을 겪는다. 열 여섯 살에 아버지의 친구인 유홍석의 아들 제원과 결혼했다. 시댁은 강원도 춘천을 대표하는 선비집안이었다. 한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한 친구들이 사돈이 된거다. 스승은 위정척사(衛正斥邪) 그룹의 우두머리였던 화서 이항로였으며, 그 제자들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위쪽에서 일어났던 거의 모든 의병을 거병했다. 제천에서 일어난 의암 유인석과 춘천의 유홍석은 6촌간이다. 1895년. 왜놈들이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 을미사변에 이어서 단발령이 포고되었다. 전국에서 의병이 우후죽순으로 일어났다. 희순은 춘천지역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이 주축이 된 의병대를 뒤에서 도왔다. 세탁, 취사, 모금, 화약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1552~1617). 의령 출신. 현풍이 본관이다. 3대가 높은 벼슬을 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바다의 이순신과 함께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구국의 영웅이지만, 곽재우의 전공(戰功)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최근 선생을 읽으며 나는 십대 소년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대가 부산항에 쳐들어온 날은 1592년 4월 14일이다. 곽재우가 가족을 깊은 산속에 피신시키고, 선영의 봉분을 깎아서 평평하게 해놓은 다음, 거병한 날은 열흘 뒤인 4월 22일이었다.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은 곽씨 집안 머슴들 열 명이 전부였다. 짧은 기간 안에 2000명의 전투병력으로 증원된다. 천석꾼이었던 곽재우는 우선 곡식창고를 연다. 군량미와 의병 가족들의 쌀독을 채워준 거다. 그리고, 계급차별 없이 가족, 형제, 친구, 사제 사이처럼 인격적으로 대하는 장군의 높은 인품과 구국충정의 진정성, 왜장들조차 감탄하면서 두려워하는 천재적 병법, 헌신적 태도 등이 그 놀라운 리더십의 요소들이었다. 부대가 커지고 싸움이 장기화될 경우, 당연히 군량미의 문제가 1순위 과제다. 식량이 떨어지면 관군이건 의
제봉 고경명( 霽峰 高敬命. 1533~1592). 큰 시인이요, 의병장이었다. 장흥이 본관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조선의 고위관료를 지냈다. 약관 스물에 진사시험 장원, 스물 여섯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영광은 예외 없이 고난을 수반한다. 사시사철 온몸에 질투와 시기의 화살을 맞기 때문이다.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제봉은 승승장구하다가 임관 5년만에 정치사건에 휘말렸다. 파직되어 낙향한다. 31세였다. 이후 약 20년 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창공의 별과 같은 호남 최고의 문인들과 교류하며 1300수에 달하는 시를 지었다. 제봉집에 담겨있다. 고봉 기대승, 송강 정철, 백호 임제, 손곡 이달,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등과 교류했다. 고경명은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 당연히 요직에 봉해졌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가슴 뜨거운 충절지사에게 불패의 탄탄대로는 없다. 두 차례의 파직을 겪었다. 우국애민(憂國愛民)정신과 자부심만큼 좌절과 회한도 깊고 컸다. 홍안의 청년이 백발이 서리로 내린 초로(初老)가 되었다. 바로 이 때, 조총을 든 20만 명의 왜군이 부산에 상륙했다. 1592년 4월. '朝日 7년 전쟁'(
그는 외국인 최초로 무형문화재인 가야금 산조(散調) 전수자다. 미국 알래스카 출신, 본명은 Jocelyn Clark. 이 이름에서 한국이름 '조세린'이 나왔다. 그 이름을 "고향 떠나(趙) 이역만리 타향살이(世)에서 중국 황제시대에 신수(神獸)로 여겨졌던 상서로운 동물(麟)이 될 팔자"라고 풀어줬다. 자칭 '알래스카 조씨'라 한다. '얼음 氷, 북쪽 北, 새鳥'를 합하여 옥편에 없는 글자를 만들기도 했다. 확고한 정체성을 자기존엄성의 전제조건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1970년생 개띠. 현재 대전 배재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다. 그를 만난 건 최근 모 일간지에 실린 그의 칼럼을 감동적으로 읽은 것이 계기였다. 내용도, 문장도 특출하였다. 뿐만 아니다. 그는 음악을 우주 운행질서의 일부로 이해하고 연주하는 큰 예술가다. 그도 가야금 뜯으며 손가락이 멍들고 피흘리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고행은 멈춤이 없다. '천류불식'(川流不息)의 운명이다. 개천이 쉬지 않고 흘러가야만 강에 이르고, 마침내 대해(大海)에 도달하는 것처럼... 다행스럽게도 그는 천재였다. 서너 살에 이미 바이올린, 클라리넷을, 열살 전에 오보에와 피아노를 연주했다. 일본에 가면 일본어, 중국 가
개천절 황금연휴,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무위당 잠언집' 등 선생의 보석 같은 유물들을 탐독했다. 과장 없이 몸과 마음이 함께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무위당 읽기'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하늘이다')사상과 '노자삼보'(老子三寶. 자애 검소 겸손)를 일상화하여 살았던 이 특별한 선지자를 감동적으로 알려준다. 하늘, 땅, 사람이 협력하여 지은 농사에서 거둔 나락 한톨 안에 우주만물의 기운이 빠짐없이 들어 차 있으니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는 조금의 과장도 아니다. 넓은 바다에 빠뜨린 그 좁쌀 한 알(滄海一粟)이 광대무변의 우주이기도 하다는 가르침은 실로 놀라웠다. 키가 한뼘이나 자랐다. 자연과 인간, 또 인간과 인간 모두가 우주 안에서 그 일체의 조건이 작용하여 '나'를 있게 해준 거다. '나'는 나락이 그러하듯 그렇게 수혜자로서의 우주다. 그 말씀은 어렵기만 한 존재론과 우주론을 자상하고 다정한 선생님처럼 깨우쳐 준다. 선생의 벗들은 말한다.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 이현주(목사. 작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대담자) "내게는 아버지 같았던 분"ㅡ김민기(뮤지컬 '지하철 1
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멋진 표현이 있다. 당·송(唐·宋) 600년 역사에서 최고의 시인 소동파의 절창 '적벽부'에 나온다. "우리 인생이 천지간 부질 없이 날아다니는 하루살이와 뭐가 다른가. 이 몸뚱아리는 저 넓고 넓은 바다에 던져진 좁쌀 하나와 또 뭐가 다른가." 영어로는 'a drop in the ocean'(대양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이라고 한다. 이 근사한 시어(詩語)는 나에게 광대무변의 세계인 우주에 관한 호기심과 상상력,이해를 도와준다. 빅뱅으로 시작된 '우리 우주'의 나이는 138억년이다. 지구는 46억년. 아, 30여년 전 읽었던 마쓰이 다까후미 동경대 교수의 '지구, 46억년의 고독'이라는 시적인 제목의 책이 생각난다. 다시 보고 싶다. 생명은 38억년, 인간은 4만년, 인류문명은 4000년의 퇴적층이다. '우리 은하'의 크기는 대략 13만 광년(光年)으로 추정된다. 빛은 진공 속에서 1초에 30만km를 진행한다. 그렇게 1년 동안 달려간 거리가 1광년이다. 상상해보라. 그 속도로 13만년을 가야하는 길이와 두께를... 인류는 예수탄생 기준으로 겨우 2000년을 살아왔다. 우주학(cosmology)에서 쓰이는 숫자들은 너무나 커서 초현실적이
남미 우루과이의 전직(2010~2014) 대통령이다. 1935년 몬테비데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곱살때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가축을 키우고, 꽃을 팔아 먹고 살았다. 고교 졸업장도 없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 쌀을 벌면서 식물학, 원예, 문학, 역사책을 두루 탐독하였다. 훗날 이 분야의 전문가들도 놀라는 큰 지성을 독학으로 이루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호세 무히카-조용한 혁명가'. 이 책들은 보통 사람들이 믿기 어려울만큼 검소하게 사는 한 대통령에 관한 감동의 기록이다. 현실정치의 바이블이다.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이 필독해야 한다. 실은 이로써 정치학 교과서는 폐기하고 다시 쓰여져야 마땅하다. 정치학자들과 정치인들은 그의 제자가 되어 '구세(救世)로서 정치(政治)'를 역설해야 한다. 무히카는 20대 때 군사독재와 싸우는 도시 게릴라의 리더였다. 장장 14년을 옥살이 했다. 그와 동지들이 겪은 수감생활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야만적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이 땅에서 이뤄졌던 수많은 '지옥'의 사례들을 떠올리며 두 시간 내내 몰입하게 되는 탁월한 정치영화 '12년의 밤'이 바로 이 특별한 사상가 정치인을 다룬 걸
김 훈의 '하얼빈'을 단숨에 읽었다. 먼저 우리 애들과 그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요즈음 기쁜 일이라고는 없는 또래들에게 한 나절을 투자하여 이보다 더 짭짤한 소득은 없을 거라면서 권하고 싶다. 남녀노소 두루 읽으면 좋겠다. 자신있게 권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잘 모르던 안중근이 지금 하얼빈에서 이토를 정조준하고 있다. 요즈음 부쩍 안중근 의사를 많이 생각했다. 일본이 최근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등 한일관계의 오랜 쟁점사안들을 놓고 마치 조폭행태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누가 보더라도 일본의 그 더러운 전략에 말려들고 있다. 걱정이 태산이다. 이 나라가 석 달만에 풍전등화 신세가 된 거다.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누리고 싶으면 길은 순순히 제국의 틀 안으로 들어와 그저 따르면 된다. 그러면 '열복'(기쁠 悅, 복福)을 받는다." 이토 히로부미의 신념이었다. 그는 그 잘못된 믿음으로 그렇게 간거다. 이토는 동아시아전역에 '열복'을 파는 장사치였고, 사기꾼이었으며, 제거해야 마땅한 악마의 수괴였다. 정치는 시공을 초월하여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임계치를 넘으면 솥뚜껑이 비행한다. '열복'! 육십 평생 첨
서양 어느 나라의 한 도시에서 퇴근 길 러시 아워에 신호대기 중인 한 젊은 사내의 눈이 갑자기 멀어버린다. 그 상태는 흑암이 아니라, 우윳빛 바다와 같았다. 그를 도와 또 다른 사내가 그의 차를 대신 몰아 귀가시킨 뒤 그 차를 훔쳐 달아난다. 아내의 도움으로 안과의사를 찾는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진단을 내린 의사부터 모두 전염으로 눈이 먼다. 그들은 오래된 폐쇄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거기서 유일하게 정상인 안과의사의 아내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탓에 멀쩡했던 선남선녀들이 참혹하게 망가지는 현상을 단계적으로 체험하고 목격한다. 최근 故 호세 사라마구(Jose Saramago.1922~2010. 포르투갈 출신)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다시 읽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온세상이 아직도 코로나-19 팬데믹을 앓고 있는 판국이라서 그 감회와 감정이입이 판이했다. 천재 예술가들은 '특급무당'의 팔자를 함께 타고나는가. 선생은 밑바닥 노동자 출신으로,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 인연으로 작은 신문에 긴 세월 칼럼을 썼다. '수도원의 비망록'이 1998년 노벨상을 안겨주었다. 영화는 2008년에 개봉되었다. 유투브에서 500원이다. '제2의 예수복음' 출간(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