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외국인 최초로 무형문화재인 가야금 산조(散調) 전수자다. 미국 알래스카 출신, 본명은 Jocelyn Clark. 이 이름에서 한국이름 '조세린'이 나왔다. 그 이름을 "고향 떠나(趙) 이역만리 타향살이(世)에서 중국 황제시대에 신수(神獸)로 여겨졌던 상서로운 동물(麟)이 될 팔자"라고 풀어줬다. 자칭 '알래스카 조씨'라 한다. '얼음 氷, 북쪽 北, 새鳥'를 합하여 옥편에 없는 글자를 만들기도 했다. 확고한 정체성을 자기존엄성의 전제조건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1970년생 개띠. 현재 대전 배재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다. 그를 만난 건 최근 모 일간지에 실린 그의 칼럼을 감동적으로 읽은 것이 계기였다. 내용도, 문장도 특출하였다. 뿐만 아니다. 그는 음악을 우주 운행질서의 일부로 이해하고 연주하는 큰 예술가다. 그도 가야금 뜯으며 손가락이 멍들고 피흘리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고행은 멈춤이 없다. '천류불식'(川流不息)의 운명이다. 개천이 쉬지 않고 흘러가야만 강에 이르고, 마침내 대해(大海)에 도달하는 것처럼... 다행스럽게도 그는 천재였다. 서너 살에 이미 바이올린, 클라리넷을, 열살 전에 오보에와 피아노를 연주했다. 일본에 가면 일본어, 중국 가
개천절 황금연휴,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무위당 잠언집' 등 선생의 보석 같은 유물들을 탐독했다. 과장 없이 몸과 마음이 함께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무위당 읽기'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하늘이다')사상과 '노자삼보'(老子三寶. 자애 검소 겸손)를 일상화하여 살았던 이 특별한 선지자를 감동적으로 알려준다. 하늘, 땅, 사람이 협력하여 지은 농사에서 거둔 나락 한톨 안에 우주만물의 기운이 빠짐없이 들어 차 있으니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는 조금의 과장도 아니다. 넓은 바다에 빠뜨린 그 좁쌀 한 알(滄海一粟)이 광대무변의 우주이기도 하다는 가르침은 실로 놀라웠다. 키가 한뼘이나 자랐다. 자연과 인간, 또 인간과 인간 모두가 우주 안에서 그 일체의 조건이 작용하여 '나'를 있게 해준 거다. '나'는 나락이 그러하듯 그렇게 수혜자로서의 우주다. 그 말씀은 어렵기만 한 존재론과 우주론을 자상하고 다정한 선생님처럼 깨우쳐 준다. 선생의 벗들은 말한다.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 이현주(목사. 작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대담자) "내게는 아버지 같았던 분"ㅡ김민기(뮤지컬 '지하철 1
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멋진 표현이 있다. 당·송(唐·宋) 600년 역사에서 최고의 시인 소동파의 절창 '적벽부'에 나온다. "우리 인생이 천지간 부질 없이 날아다니는 하루살이와 뭐가 다른가. 이 몸뚱아리는 저 넓고 넓은 바다에 던져진 좁쌀 하나와 또 뭐가 다른가." 영어로는 'a drop in the ocean'(대양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이라고 한다. 이 근사한 시어(詩語)는 나에게 광대무변의 세계인 우주에 관한 호기심과 상상력,이해를 도와준다. 빅뱅으로 시작된 '우리 우주'의 나이는 138억년이다. 지구는 46억년. 아, 30여년 전 읽었던 마쓰이 다까후미 동경대 교수의 '지구, 46억년의 고독'이라는 시적인 제목의 책이 생각난다. 다시 보고 싶다. 생명은 38억년, 인간은 4만년, 인류문명은 4000년의 퇴적층이다. '우리 은하'의 크기는 대략 13만 광년(光年)으로 추정된다. 빛은 진공 속에서 1초에 30만km를 진행한다. 그렇게 1년 동안 달려간 거리가 1광년이다. 상상해보라. 그 속도로 13만년을 가야하는 길이와 두께를... 인류는 예수탄생 기준으로 겨우 2000년을 살아왔다. 우주학(cosmology)에서 쓰이는 숫자들은 너무나 커서 초현실적이
남미 우루과이의 전직(2010~2014) 대통령이다. 1935년 몬테비데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곱살때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가축을 키우고, 꽃을 팔아 먹고 살았다. 고교 졸업장도 없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 쌀을 벌면서 식물학, 원예, 문학, 역사책을 두루 탐독하였다. 훗날 이 분야의 전문가들도 놀라는 큰 지성을 독학으로 이루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호세 무히카-조용한 혁명가'. 이 책들은 보통 사람들이 믿기 어려울만큼 검소하게 사는 한 대통령에 관한 감동의 기록이다. 현실정치의 바이블이다.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이 필독해야 한다. 실은 이로써 정치학 교과서는 폐기하고 다시 쓰여져야 마땅하다. 정치학자들과 정치인들은 그의 제자가 되어 '구세(救世)로서 정치(政治)'를 역설해야 한다. 무히카는 20대 때 군사독재와 싸우는 도시 게릴라의 리더였다. 장장 14년을 옥살이 했다. 그와 동지들이 겪은 수감생활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야만적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이 땅에서 이뤄졌던 수많은 '지옥'의 사례들을 떠올리며 두 시간 내내 몰입하게 되는 탁월한 정치영화 '12년의 밤'이 바로 이 특별한 사상가 정치인을 다룬 걸
김 훈의 '하얼빈'을 단숨에 읽었다. 먼저 우리 애들과 그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요즈음 기쁜 일이라고는 없는 또래들에게 한 나절을 투자하여 이보다 더 짭짤한 소득은 없을 거라면서 권하고 싶다. 남녀노소 두루 읽으면 좋겠다. 자신있게 권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잘 모르던 안중근이 지금 하얼빈에서 이토를 정조준하고 있다. 요즈음 부쩍 안중근 의사를 많이 생각했다. 일본이 최근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등 한일관계의 오랜 쟁점사안들을 놓고 마치 조폭행태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누가 보더라도 일본의 그 더러운 전략에 말려들고 있다. 걱정이 태산이다. 이 나라가 석 달만에 풍전등화 신세가 된 거다.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누리고 싶으면 길은 순순히 제국의 틀 안으로 들어와 그저 따르면 된다. 그러면 '열복'(기쁠 悅, 복福)을 받는다." 이토 히로부미의 신념이었다. 그는 그 잘못된 믿음으로 그렇게 간거다. 이토는 동아시아전역에 '열복'을 파는 장사치였고, 사기꾼이었으며, 제거해야 마땅한 악마의 수괴였다. 정치는 시공을 초월하여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임계치를 넘으면 솥뚜껑이 비행한다. '열복'! 육십 평생 첨
서양 어느 나라의 한 도시에서 퇴근 길 러시 아워에 신호대기 중인 한 젊은 사내의 눈이 갑자기 멀어버린다. 그 상태는 흑암이 아니라, 우윳빛 바다와 같았다. 그를 도와 또 다른 사내가 그의 차를 대신 몰아 귀가시킨 뒤 그 차를 훔쳐 달아난다. 아내의 도움으로 안과의사를 찾는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진단을 내린 의사부터 모두 전염으로 눈이 먼다. 그들은 오래된 폐쇄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거기서 유일하게 정상인 안과의사의 아내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탓에 멀쩡했던 선남선녀들이 참혹하게 망가지는 현상을 단계적으로 체험하고 목격한다. 최근 故 호세 사라마구(Jose Saramago.1922~2010. 포르투갈 출신)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다시 읽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온세상이 아직도 코로나-19 팬데믹을 앓고 있는 판국이라서 그 감회와 감정이입이 판이했다. 천재 예술가들은 '특급무당'의 팔자를 함께 타고나는가. 선생은 밑바닥 노동자 출신으로,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 인연으로 작은 신문에 긴 세월 칼럼을 썼다. '수도원의 비망록'이 1998년 노벨상을 안겨주었다. 영화는 2008년에 개봉되었다. 유투브에서 500원이다. '제2의 예수복음' 출간(1991)
최근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시급 440원 인상,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학교측을 상대로 4개월째 시위 중이다. 학교당국은 침묵한다. 몇몇 학생들이 수업권 침해를 주장하며 노조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뉴스를 접하고 스무 살 청년들이 옳다고 편드는 어른들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물론 그 애들 편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선 그 부모들 대부분이 그쪽일 거다. 밭이 산물의 등급을 정하잖나. 그 '학구파'들이 교수나 국회의원이 된다면 실로 끔찍한 일이다. 민주당 의원들 몇이 중재를 하는 모양이다. 무명의 뜻있는 다수도 연대하여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화해와 합의로 결론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유사상황으로 갈등하고 있는 다른 대학들, 공공기관들, 기업들의 청소/경비노동자들에게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1898년 9월 10일은 고종황제의 생일날이었다. 그날 독립협회는 평양 대동강 모란봉 광장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지식인, 학생, 부인, 상인, 백정 등 1만명이 신분을 초월하여 모여들었다. 이 애국토론회에 스무 살 청년 하나가 연사로 등단, 귀빈으로 참여한 지역유지들을
"고난의 역사! 한국역사 밑에 숨어흐르는 바닥 가락은 고난이다. 이 땅도 이 사람도, 큰 일도 작은 일도, 정치도 종교도 예술도 사랑도, 그 무엇도 다 고난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말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끄럽고 쓰라린 사실임은 어찌할 수 없다."ㅡ함석헌(1901~1989)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중에서. 8.15 광복과 다름 없던 '80년 서울의 봄'은 그 해 5월, 전두환 일당이 광주를 피로 물들이면서 겨울공화국으로 되돌아갔다. 신군부의 12년 만행은 짙은 살의의 시간이었다. 그후 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문민정치의 싸구려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까지 거창하고 유혹적인 구호로 시작했지만, 아는 바대로 예외없이 끝은 좋지 않았다. 씨알들이 끝도 없는 고난의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요즘은 윤석열 정치에 대한 불편함과 우려가 뒤섞인채 연관된 기억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나날이다. 내 주변의 착한 시민들 다수가 비슷한 입장이다. 신명을 잃은채 집단적으로 무기력 증세를 보인다. 그 그룹의 폭주 때문만도 아니다. 내 경우는 문재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반이다. 참 힘들다.
시절 참 수상하다. 국내외 험한 정세는 끝내 죄없는 민초들을 희생시키고 미봉될 것이다. 나는 지금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 나라와 함께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저 악몽이었으면 좋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를 어째야 하나. 이렇게 걱정이 태산일 때, 나는 종종 안전하고 편안한 은신처를 찾아 찐하게 의존한다. 오늘은 그곳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서 벗들과 측은지심으로 동병상련한다. 한 친구가 불안한 미래를 높은 통찰력으로 예언하면 착하게 받아들인다. 이 진지한 실용주의의 시간은 한 사내가 두부김치에 막걸리 서너 병을 시키면서 이내 막을 내린다. 침울의 그늘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활기를 띤다. 술은 다정하고 똑똑한 친구들 보다 늘 곱절로 유력하고 우호적인 물질인 것이다. 오죽하면 서양의 멋쟁이들이 술을 '스피릿'이라 했겠는가. 번역하면 '술은 올바른 정신(spirit)을 일깨워주는 실로 큰 친구, 대붕(大朋)'쯤일 거다. 실은, 이 정도는 세상의 모든 술집에서 가능한 체험이다. 인사동 주점에서 그 기본 미덕에 더하여 매번 특별한 감동과 기쁨을 주는 까페가 하나 있다. 후배들이 '서정춘이라는 시인'이라는 시집을 헌정한 그 시인이 홍보부장이다. 문화공간 '시/가/연(
손흥민의 아버지다. 1962년생. 예순한 살. 환갑이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할 때까지는 매우 유능한 축구선수였다. 그 아들이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먹었다. 나는 그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그의 자서전을 찾았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책을 펼쳤다.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 이 문장은 실은 성공한 아들들의 흔한 효도발언을 출판사가 광고카피로 뽑아 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초장부터 손웅정에게 빨려들어가는 것이었다. 자칭 '마발이 3류 축구선수'가 쓴 이 책이 오늘 나처럼 부실한 가장들은 물론 이 해괴망측한 시대를 내리치는 죽비였기 때문이다. 한 마라토너가 2012년 12월, 스페인에서 열린 크로스컨츄리 경기에 출전하여 2위로 달리고 있었다. 선두는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케냐의 아벨 무타이 선수. 그런데 그가 종점을 착각하여 멈추려 했다. 뒤따르던 스페인의 이반 페르난데스 아니야는 무타이를 추월하지 않고 손짓으로 결승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가 금메달을 따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에 대하여 1등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 고 묻는 기자에게 아니야가 답했다. "그가 이기고 있었을 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