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자 경제학자 콜망(Bruno Colmant)에 따르면, 벨기에 사회시스템은 사회보장제도의 개별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처럼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파경을 맞지 않는다면 아주 잘 작동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지 직전. 코로나 보건 위기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와 소득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인들은 기본소득 카드를 꺼낼 찰나. 그간 벨기에 정부는 경기부진 때마다 여러 지원책을 내놓곤 했지만 기본소득 개념에는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절박한 상황.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지금이야말로 기본소득 개념을 부각시킬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2월 벨기에 중도우파 정당 MR(Mouvement réformateur: 개혁운동)은 기본소득 연구를 시작했다. 근시일내에 기본소득을 실시하려는 목표다. 이들이 생각하는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태어나면서부터 매월 수당을 지급받는 것이다. 브뤼셀 자유대학(Université libre de Bruxelles) 법학과 뒤몽(Daniel Dumont) 교수는 “이 기본소득은 보편수당으로, 개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요약한다. 즉, 가족을 부양하
세계 시민단체 옥스팜(Oxfam)에 따르면, 영국인 150만 명이 작년 3월 유니버설 크레디트(Universal Credit, 공적원조)를 요청했다. 이는 한 달 전보다 6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유니버설 크레디트는 2013년 캐머런 (David Cameron) 총리가 신설한 영국의 유일한 복지수당으로, 소득에 따라 혜택이 제공된다. 따라서 이 수당을 청구할 자격이 없는 사람도 매우 많다. 사정이 이러하니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푸드 뱅크를 이용하는 영국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인버클라이드(Inverclyde)주 SNP(Scottish National Party, pro-indépendance) 의원 코완(Ronnie Cowan)은 “지금처럼 심각한 사태를 본 적이 없다며 고통스러워하는 메일을 매일 수 천 통씩 받는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지었다. 초유의 사태 앞에 영국도 결국 기본소득 시계를 빨리 돌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지난해 4월 22일 하원의원 100여명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본소득 실시를 위한 공개편지를 냈다. 그들이 추진하는 기본소득은 모든 영국인이 매월, 조건 없이 생필품비(주거비와 식비 등)를 지급받게 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정부는 영국정부보다
코로나 19의 최대 격전지는 이탈리아다. 작년 초 밀려온 코로나로 밀라노에서는 순식간에 3만 명이 사망했다. 국토는 봉쇄되고 경제활동은 전면 중단됐다. 실업자가 속출했고, 먹을 것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시민들이 즐비했다. 카리타스(Caritas) 수녀회가 운영하는 밀라노의 한 배급소에 식료품을 받으러 나온 65세의 여인 마리아(Maria)는 “참 괴롭네요”라며 수줍어했다. 마리아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는 라 스칼라(La Scala) 오페라 극장 휴대품 보관소에서 일했다. 그런데 오페라 극장이 문을 닫자 생계는 막막해졌다. 미망인 연금으로 월세를 내고 의약품비로 매월 60유로를 지출해야 한다. 로마 한복판에서 생필품 보급차(Ronda della Solidarieta: 연대 순회차)를 기다리는 50대 여인 아나(Anna) 역시 “생활이 어려울 때 가끔씩 오지요. 창피하네요”라고 말한다. 아나는 가사 도우미였지만 코로나로 직장을 잃었다. 집세를 내려면 식비를 아껴야 한다. 노동조합 콜디레티(Coldiretti)에 따르면, 이 여인들처럼 식료품을 보급 받는 사람은 약 370만 명. 전보다 100만 명 더 증가했다.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
스페인은 코로나 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나라다. 지난해 3월 코로나 환자가 무섭게 증가하더니, 순식간에 4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국토는 전면 봉쇄됐고 경제활동은 중단됐다. 한 달 동안 직업을 잃은 사람은 9십만 명에 달했다. 마드리드에서는 성당에 가 먹을 것을 찾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바르셀로나, 카탈로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30%를 넘었다. 발 빠른 대책이 없다면 이들은 심각한 상태에 빠지고 사회 갈등은 증폭될 위기였다. 스페인 정부는 최소생활소득(revenu minimum vital)을 긴급히 공부했다. 그리고 산체스(Pedro Sánchez) 수상은 곧장 기본소득 페달을 밟았다. 상상을 초월한 위기 앞에 기본소득이 아니면 답이 없다고 본 것이다. 5월 초 기본소득 초안이 일간지 엘문도(El Mundo)에 발표됐다. 스페인의 기본소득 시계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 최소생활소득은 불확실한 경제상황과 코로나 정국 앞에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자영업자,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처럼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El Pais)’에 따르면
정말 세계경제는 풍전등화인가보다. 경제대국 독일마저 비장의 카드가 필요하니 말이다. 그간 독일은 기본소득을 간만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 2월부터 기본소득 실험국으로 급회전했다. 왜 이런 반전이 있었을까. 독일 역시 기존의 만성적 복지제도로는 지금의 코로나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사실, 독일 정부는 경기회복을 위해 이미 특단의 조치를 내린 적이 있다. 2003년 ‘하르쯔(Hartz)법’을 제정해 실업자 감소와 고용촉진을 도모하고, 2005년 ‘하르쯔4법’으로 장기실업자용 수당을 삭감하고, 노동봉사나 직업훈련 등 일자리 나누기를 했다. 그러나 이 조치로는 고질적 실업문제를 풀 수 없었다. 결국 기본소득제 카드가 나오기 시작했다. 데엠(Drogerie-Markt)의 창업자 괴츠 베르너(Götz Werner)는 2004년 생활 매거진을 통해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이슈화했고, 2006년에는 구체적인 기본소득안을 발표해 각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베르너로 인해 독일 기본소득 논쟁은 불붙기 시작했고 연구로 이어졌다. 하지만 핀란드나 프랑스처럼 정부가 나서서 기본소득을 실험할 정도까지 뜨거워지진 않았다. 그러던 독일 정부가 지난 해 8월 기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성경구절로 기독교문명의 서구사회 논리다. 이 관념이 무너질 찰나에 놓여 있다. 코로나 위기 앞에 기본소득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데도 매월 꼬박꼬박 돈을 준다는 기본소득. 이런 세상이 온다면 이는 분명 혁명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싱크탱크 장-조레스 재단(Fondation Jean-Jaurès)이 “프랑스가 기본소득제를 도입한다면 이는 혁명에 가까운 조치”라고 보는 이유다. 프랑스 기본소득의 상징인 아몽 역시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계약(contra social)의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혁명을 정치인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할까. 제갈량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어림없는 소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시민이 뭉치는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해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정치인들, 경제인들, 대학교수들, 시민단체 대표들은 일반시민들과 함께 수상과 예산회계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국무장관을 소환했다. 2021년 재정 법안에 기본소득을 추가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의 이
선거가 없다면 유권자는 과연 정치인으로부터 무얼 얻어낼 수 있을까. 직접민주주의를 신봉했던 루소는 “영국시민들은 선거 때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는 순간 노예로 전락한다”며 대의제 민주주의를 꼬집었다. 이러한 풍경은 비단 영국에서만 연출된 것일까. 루소가 살았던 프랑스는 어떠한가. 2017년 대선을 한 번 보자.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각종 공약들을 내걸었다. 그 중 ‘대박’을 친 정책은 아몽 후보가 내건 기본소득제였다. 아몽은 사회당 오픈프라이머리가 열리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발스(Manuel Valls) 후보에게 크게 밀렸다. 그러나 정작 오픈프라이머리가 열리자 기본소득제를 크게 쟁점화해 발스를 무려 18% 포인트 차로 물리쳤다. 본선에 나간 아몽은 2017년 프랑스 대선을 기본소득전으로 몰아갔다. 그 덕에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졌고, 프랑스인 60%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반전이 일어났다. 만성병에 걸린 기존 복지제도로는 청년실업률과 소득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유권자들이 기본소득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몽은 완승했다고 볼 수 없다. 우선 대선에서 졌고, 또한 그의 기본소득은 엉성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
재산이나 노동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대선 길목에선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토마스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정부차원의 기본소득은 핀란드가 효시다. 코로나 시대 대안으로 도입을 추진중인 복지 선진국 프랑스를 시작으로 핀란드, 미국 알래스카, 일본, 브라질의 기본소득 실태를 전문가를 통해 점검해 보는 '기본소득 세계는 지금' 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Covid19는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마스크가 필수인 생활을 연출하고 여럿이 모여 식사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디 이뿐이랴. 기존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심한 균열로 몰아가고 있다.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Elon Musk)처럼 통 크고 미래비전을 설계하는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억만장자가 되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끼니를 걱정하는 신세가 될 지경이다. 많은 이들은 코로나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날을 학수고대하지만 이제 그 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해가는 세상에 맞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빨리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일 아니겠는가. 코로나시대 대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