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사라진다. 반면에 글은 남는다. 말은 음성(소리)이어서 사라지고, 글은 문자(형태)이어서 남는다. 말이 존재하는 양식은 ‘사라짐의 양식’이고, 글이 존재하는 양식은 ‘보존됨의 양식’으로 구분되어왔다. 말은 사라지는 속성으로 인하여 그 존재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즉 말은 해버리자마자 그 자리에서 금방 소멸한다는 현실 앞에 취약하다. 이것이 우리의 통념이었다. 말은 빅 히스토리(Big History) 차원에서 살펴봐야 할 정도로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사피엔스’의 진화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인지 혁명도 사피엔스가 말을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가능했다. 두텁고 오랜 말의 역사에 비하면, 글의 역사는 보잘것없다. 그런데 말이 있어서 글이 태어났다는 점을 우리는 놓친다. 말의 역동이 최고조에 달함으로써, 글을 탄생시킨다. 문명사회에서 글은 말을 주변으로 밀쳐내고, 지식과 문화를 거머쥐는 권력의 자리에 임한다. 말은 낮은 백성들의 세상 언저리를 지킬 뿐이었다. 말이 지니는 존재성의 취약함, 즉 말은 현실에서 금방 소멸한다는 점은 생각해 보면 숨은 함의가 많다. 이는 말의 위상을 거룩하게 만들기도 하고, 속되게 만들기도 한다. 유일신 종교에서 신의 존재는 대개 목소리로 현신한다. 모세가 유대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시나이(Sinai)반도의 산에서 본 야훼는 음성으로 마주친 신이었다. 신이 문서로 말씀을 내려 주셨다는 이야기는 왠지 신성(神性)을 훼손하는 것 같다.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은 있어도, 신의 얼굴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말의 즉시 소멸성은 말의 쓰임을 속되게 만든다. 여기서 이 말을 하고, 저기 가서 저 말을 하는 것이라든지, 말로 한 약속은 쉽게 둘러 엎는다든지, 거짓말을 또 다른 거짓말로 땜질하는 것이라든지, 내가 한 막말 욕설은 돌아보지 않고 남이 한 실언은 한사코 할퀴고 든다든지 등등이 다 말의 취약성에 올라타서 사람들을 속이는 작태이다. 내가 한 말을 누가 외우겠나. 따지고 들면, 잡아떼면 그만이지. 선거판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선량(選良)’ 후보들이라는데, ‘선불랑(選不良)’ 후보란 말이 더 맞겠다. 학교가 아이들을 잘 가르쳐 놓으면 뭣 하나, 저런 말에 물들까 무섭다고도 선생님들은 말한다. 말은 바로 소멸해 버리고 만다는 통념이 사람들을 이렇듯 말로써 삿(邪)되게 한다. 그러나 문명사의 변전은 묘한 것이다. 글(문자)의 기세에 밀려났던 말은, 바로 그 문자 문화의 힘으로 취약성을 극복했다. 문자를 능가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잘 아는 대로, 인류는 문자 혁명으로 눈부시게 지식과 기술을 발전시켰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과 AI 지식 혁명에 이른 것도 인류의 문자(글)사용 기반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성과로 이제는 어떤 구어(말)도 문자 이상의 강한 보존성을 갖게 되었다. 어떤 말(口語)도 오디오 파일로 담아서 보전되고, 어떤 발화(發話) 상황도 영상 파일로 기록된다. 말은 즉시 사라진다는 통념은 수정되어야 한다. 기록성과 보존성만 확보된 것이 아니다. 강한 소통성, 빠른 전파력까지 갖추었다. 이 변화가 너무 빨라서 기성세대는 이를 이해하면서도 실재하는 현실(reality)로는 얼른 체득하지 못한다. 이전에 했던 막말로, 어디선가 분별없이 내뱉었던 욕설의 말로, 그때만 모면하기 위해서 했던 모순의 말도, 내 이익에 급급해서 했던 거짓말도 모두 불려 나온다. 내가 했던 말들, 사라진 줄 알고 있었는데, 사라지지 않았다. 영상으로 담겨 있었고, 녹취 파일로 숨어 있었다. 그래서 선거 후보자들이 사과하고 사퇴하고, 취소하고 번복하는 일들이 줄을 잇는다. 지금은 ‘사라지지 않는 말의 시대’이다.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6일 밝힌 ‘북수원 테크노밸리 개발 구상’을 환영한다. 2025년 착공을 목표로 추진되는 북수원 테크노밸리는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위치한 도유지인 경기도인재개발원 부지를 테크노밸리와 주거 등의 블록으로 나눠 고밀복합개발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제3판교테크노밸리처럼 일자리, 주거, 여가를 한 곳에서 해결하는 도내 두 번째 테크노밸리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국내 최초로 방문의료, 재활치료, 단기입원, 주야간보호 등의 시설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경기도형 돌봄의료 원스톱 서비스도 도입된다고 한다. 도의 구상은 과천·인덕원테크노밸리~북수원테크노밸리~광교테크노밸리~용인테크노밸리~판교테크노밸리를 연결해 국내 최고의 AI지식산업벨트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며칠 전, 모 문화예술단체의 기념식에 초대받아 뜻있는 시간을 보냈다. 국기(國旗)에 대한 경례로 시작된 이 날의 국민의례는 약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애국가(愛國歌) 제창과 순국선열(殉國先烈)과 호국영령(護國英靈)에 대한 묵념이 생략된 채 곧바로 정해진 자리에 앉아야 했다. COVID-19로 인해 5년 만에 재개된 기념행사라는 주최측 안내를 듣고 나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로 시작하는 애국가 1절은 불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개회선언, 내․외빈 소개, 축사, 환영사, 공로패 수여 등 족히 30분 이상 진행된 1부 행사에 경향 각지에서 온 500여 회원 청중들이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적극 호응하는 것을 볼 때 아쉬움은 더 컸다. 홀로 애국가 가사를 읇조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라는..
벌써 한의사로서 진료를 해온지가 20년이 넘어간다. 그 시간동안 의료인이라면 다 그렇겠지만 반복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상세히 대답하기는 항상 진료시간이 짧다. 어떤 질문은 급격히 서구화된 문화로 인한 당연한 결과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정말 잘못 덧씌워진 이미지로 인한 질문도 있다. 한약과 간에 관한 질문도 그렇다. 지난 주말에 지인의 강력한 소개로 내원했다는 그는 한의원에서 치료받는게 처음이다. 애주가인 그는 불과 2개월여 전까지는 매일 술을 먹었는데, 최근에 너무 피로해져서 조금 줄였다고 한다. 나는 가능하다면 음주를 줄이고 식이요법을 권하며 에너지 회복을 위해 한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지지 않나요 괜찮나요" 하고 묻는다. 나는 술이 염려되는데 이분은 아닌가보다. 눈앞에 좋은 것이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드문일은 아니다. 이런 경우 한약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먼저 묻고 아는 범위를 바탕해서 대답한다. “한약이라고 하면 어떤게 떠오르세요. 한약이라고 생각되는걸 한 번 말해보세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도라지요” 한다. “맞아요. 도라지는 길경이라는 이름의 한약재예요.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물으니 대답이 없다. 그에게 설명을 잇는다. ”수정과 속의 계피, 삼계탕 속의 인삼과 황기, 수박과 같이 먹는 화채속의 오미자, 한국인의 필수 반찬인 김치 속에 들어가는 파, 마늘, 생강도 한약재예요. 카푸치노에 뿌려먹는 시나몬이 바로 계피지요 ” 많은 다른 이들처럼 생소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말을 잇는다. “한약재 중에 한의원에서 상용하는 116가지 약재가 식약공용한약재로 분류되어 있답니다. OO님과 같이 애주가, 간이 몹시 피로해 있는 이들에게는 간을 회복을 돕는 한약을 처방해야 하거든요. 식품으로 사용해도 좋다고 정해져있는 식약공용한약재에서도 꼭 필요하고 증상에 맞고 안전한 것을 선택에서 처방해야 한답니다.” 2017년 한국한의학연구원과 대전대학교 손창규 연구팀이 전국 10개 대학 한방병원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전향적 관찰연구에서 한약 복약에 의한 간 손상 발생률은 0.6%에 불과했으며 간 손상이 발병한 경우라도 별다른 임상증상이나 비가역적 문제를 보이지 않고 정상 간수치로 회복되었다. 동의대학교 권찬영 교수가 2024년 발표한 주제범위 문헌고찰(Scoping Review) 연구에서도 15건의 전향적 코호트 연구 메타분석에서 한약 복약과 관련된 간기능 및 신기능의 유의한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2022년 발표된 심평원 빅데이터에 기반한 한약 안전성 연구는 약인성 간(肝)독성 진단 환자 66만 7024명을 대상으로자기-대조환자군(SCCS) 방법으로 의료기관 노출 및 약물의 위험도를 분석하였는데 한방의료기관의 노출은 양방의료기관의 노출에 비해서 약인성 간손상이 거의 없음을 제시한다. 치료를 위한 한약은 잔단과 함께 임상적 확인과 관찰이 중요하다 개별 반응이 다를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문가인 한의사에게 진료받고 처방 받아야 안전하다.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내 버스·전철 등에서 교통카드를 찍지 않고 지나가기만 해도 자동 결제가 되는 ‘태그리스(tagless) 결제 시스템’ 도입을 함께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오세훈표 ‘기후동행카드’ 사업 참여를 두고 서울시와 경기도가 과도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뉴스여서 부쩍 관심이 쏠린다. 이 문제는 어디가 먼저냐의 논제가 아니라, 철저히 지역민들의 편의성 제고에 관점이 집중돼야 한다. 수도권 광역 지자체들의 ‘태그리스 결제 시스템’ 도입 추진이 수도권 교통문화에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내길 기대한다. 경기도는 경기도·서울시·인천시 국장급 실무협의회를 통해 각 지자체에 태그리스(비접촉) 기술 확대 협의기구 마련을 제안해 각 지자체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태그리스 시스템은 스마트폰·교통카..
나이 들어도 젊어질 수 있는 역노화 시대가 우리 곁에 와 있다고 한다. 아주대 의대 연구팀은 최근 노인 장기조직에 ‘중간노화세포’라는 새로운 개념의 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여기에 적절한 자극을 주면 다시 젊은 세포와 비슷한 기능으로 회복할 수 있음을 규명하였다. 중간노화세포의 기능회복으로 항노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고 하며, 그 내용은 2023년 11월 국제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 판에 발표되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질병의 일종이며, 그래서 치료될 수 있다는 주장은 하버드 의대 유전학 교수이자 노화와 장수 분야 권위자인 데이비드 싱클레어 박사가 자신의 25년 연구를 집대성한 저작에서 펼친 핵심 내용이다. 그 책이 2019년에 출간되자 도처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우리나라에는 그 다음해 '노화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고, 그 책에 소개된 소식,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이 유행처럼 번졌다. 생명 연장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연구와 저작은 의사,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그런데 투자전문가가 이 분야의 책을 내어 또 다른 주목을 받았으니, 2021년에 출간된 세르게이 영의 「역노화」가 그것이다. 그는 장수 분야의 저명한 선각자 50명 이상을 만나 나눈 대담과 최첨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과 교류한 내용을 토대로, 나이 들수록 젊어지는 로드맵을 제시했는데,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150살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장수란 조기 사망을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노화를 역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 데이터나 인공지능을 이용한 헬스케어의 혁신, 표적 항암치료로 알려져 있는 CAR-T세포 치료, 줄기세포를 이용한 장기 이식 및 장기재생 등 의학과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가 가속화 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8년에 노화를 질병으로 분류하고, 노화 제어와 치료제 개발을 주요과제로 제시했는데, 이런 결정에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한 몫 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 바이오벤처기업 턴바이오가 줄기세포 기반의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이용하여 피부를 4~5년 전 상태로 되돌려주는 신약을 개발하여 임상이 임박했으며, 이 기술은 장기와 조직의 노화세포도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회춘약의 기전이라는 소식이 지난 주 전해지자, 턴바이오에 투자한 국내 제약회사의 주식이 주식 시장에서 테마주로 주목받기도 했다. 과학자와 기업가, 그리고 투자자들은 이미 장수 분야 가능성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정말 장수하기를 원하는가? 병상에서 무기력하게 보내는 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아왔기에, 대다수 사람들은 너무 오래 사는 일은 없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이렇듯 사람들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며, 장수연구의 목적도 이와 같을 것이다. 사실 장수보다 더 간절한 바람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혹은 사고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의술과 기술 혁신으로 보통사람과 같이 보고, 듣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더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머잖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촉발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국면에 대화와 해결책이 모색되고 있다. 늘어나는 정원이 공공의료 및 지역의료의 공백을 메우게 될 뿐만 아니라 첨단 바이오·헬스 분야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전라도 사투리다. ‘쌩’은 ‘생’의 된 발음으로 날것을 뜻한다. 익히지 않은 본연의 것. 가공하지 않은 본래의 것을 강조하고 싶을 때 첫머리에 붙여 썼다. 이를테면, 쌩고구마, 쌩밤, 쌩고기 하는 식이다. ‘가리’는 ‘가루’를 뜻한다. 사투리 그대로 옮겨 쓰면, 밀가리, 쌀가리, 보릿가리, 미숫가리가 된다. 한참동안 잊고 살았던 전라도 사투리를 다시 들은 건 땅끝 해남에서였다. 세 계절을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 보냈는데, 함께 살았던 작가들이 전라도 사투리의 달인이었다. 백련재에서의 하루는 “밥은 묵었소?”로 시작해서 “밸일 없지라?”로 끝났다. 소설 쓰는 이 선생은 완도가 고향이었고, 시 쓰는 박 선생은 광주가 고향이었다. 나 역시 장흥 태생이라 전라도 사투리에는 이골이 났는데, 셋이 모이면 쏟아지는 사투리로 푸지고 질펀했다. 그때, 들었던 말이 쌩가리였다. 이 선생의 입에서 나왔는지 박 선생의 말끝에 묻어나왔는지 기억은 없다. 처음 듣는 순간, ‘아, 이런 사투리가 있었지?’ 하고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랄까.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쌩가리에 얽힌 추억이 많다. 그중 하나가 전지분유다.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까, 일곱 살 쯤 먹었을 것이다. 외할머니가 드시던 전지분유를 훔쳐 먹다 엄마에게 혼이 났었다. “미친 놈, 할무니 잡술 것을!”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다. 누르스름한 우유가루. 그것이 왜 그리도 먹고 싶었던지. 한 숟가락 떠서 입에 털어 넣으면 바로 녹지 않고 입천장에 달라붙곤 했었는데. 그럴 때 누가 말이라도 시키면, 입에 머금고 있던 우유가루가 뿜어져 나올까봐 우물쭈물하곤 했었다. 이제는 전라도에서도 쌩가리라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쓰지 않으니 잊어버리는 건 당연하다. 잊힘이야말로 사멸의 첫 단추인데, 잊히고 사멸하는 게 어디 사투리뿐일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사멸의 시대를 산다. 빠름과 편리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본연의 것들을 망각한다. 생명이 생명일 수 있는 본연의 것들을. 먹고 입고 자는 데 필요한 뿌리 같은 것들을. 우리는 스스로 벼를 심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산다. 옷도 집도 마찬가지다. 만들어진 옷을 입고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 잠을 잔다. 물론, 모두가 농사를 짓고 옷을 만들고 집과 건물을 세울 필요는 없다. 다만 옷과 밥과 집의 근원이, 그러니까 삶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 필요는 있지 않을까. 잉태(孕胎)는 포유류의 전유물이 아니다. 봄은 흩날리는 꽃가루 속에서 잉태하고, 바다는 부유하는 미생물 속에서 잉태하고, 낮과 밤은 녹색별의 뱅글거림 속에서 잉태한다. 알고 보면 볼수록 잉태는 크고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사람 사는 곳도 그와 같아서 잉태하는 모든 것의 뿌리는 작고 단순하다. 거대한 강줄기의 기원이 산기슭에 있는 옹달샘인 것처럼. 전기의 뿌리 역시 석탄과 석유가 아니던가. 그 시커먼 광물이 현대사회라는 초고층시대의 기초이지 않는가. 시커멓고 냄새나는 그것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쌩가리’이지 않는가. 자꾸 눈을 들어 위를 보지 말자. 뿌리가 되고 기본이 되는 것에 눈을 맞추자. 세련되게 가공하였다고 해서 아름답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문학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세상살이도 그렇더라. 꾸미면 꾸밀수록 묘하게도 조악(粗惡)해지는 게 그것이더라.
늘어나는 거주 외국인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인구절벽에 기인하는 국가소멸 재앙에 대응할 이민청(移民廳) 신설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들의 유치전이 치열하다. 지역마다 입지의 정당성을 포장하고 있으나 외국인들이 드나드는 항만과 최대 공항이 있고, 거주 외국인도 절대적으로 많은 경기·인천지역에 이민청이 설립되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외국인 최다거주 지역인 경기도의 경우 시·군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이후 이민청 설립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좌우 정권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왔다. 지난 2월 초 정부는 완성된 정부안 형태로 ‘출입국·이민관리청(이민청)’의 골격을 완성한 다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정점식 의원이 그 내용을 담아 정부조직법 개정안으로 대표발의했다..
지난 2019년 선거법이 개정됐다. 주요 골자는 유권자 연령의 하향 조정이었다. 기존 19세에서 18세로 선거권 확대. 한국 정치인들은 “서구 선진국에서는 16, 17세부터 선거권이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며 하향조정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정치권에 묻고 싶다. 진정 무엇을 위한 하향 조정인가? 그냥 선진국 따라 하긴가? 아니면 대의제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인가? 만약 후자였다면 젊은 유권자를 위한 상품 출시에 힘써야 한다. 젊은이들을 선거판에 불러놓기만 하고 그들이 고를 상품이 없다면 이는 상도덕에 크게 어긋난다. 오는 4.10 총선의 메뉴를 보면 알 수 있다. 후보들은 도시화, 경제개발만 하겠다고 야단들이다. 너도나도 철도 지하화, 공항이전, 서울편입, GTX 연장 및 건설, 녹지대 개발, 아파트(재)건축 등을 약속한다. 70년대 개발도상국 시절의 공약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런 종류의 공약은 기성세대에게는 먹힐지 모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통하기 어렵다. 청년들에게 더 이상 투표는 의무가 아니다. 그들은 살 상품이 없으면 투표장에 나갈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이런 논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노년층은 투표장에 나가는 데 왜 젊은 층 너희는 안 나가냐며 볼멘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어디 이뿐인가? 모(某) 국가처럼 투표를 의무화 하자는 소리까지 하는 판이니 참으로 답이 없다. 물론 젊은이들의 기권은 새로운 일도 아니고,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이 현상은 선거 때마다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젊은 층은 사회생활에 덜 밀착돼 있기 때문에 투표율이 낮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세대적인 차가 크다. 기성세대에게 투표는 훌륭한 시민의 의무였다. 반면에 젊은이들은 선거에 무언가 할 말이 있을 때 투표를 한다. 프랑스의 경우 많은 청년이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이 공약을 늘어놓기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우파 후보가 내놓는 공약과 좌파 후보가 내놓는 공약이 거의 동일하다.” “정치인들은 말만 번지르르한 ‘담론’ 사업가로, 그들에게 속아 제품을 사면 그 이후엔 작동하지 않는다.” 등의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기성 정당들이 한국처럼 젊은 세대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학자 피에르 브레숑은 젊은이들이 기권하는 것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자신의 즐거움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고,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한다. 젊은 세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 게 아니라 투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기권하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경제개발 공약만 앞세우면 그들이 어찌 선거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22대 총선, 청년이 아닌 기성세대만 잔뜩 나와 투표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회는 후퇴하고 말 것이다. 이 재앙을 피하려면, 후보자들은 과거 정책만 복사해 던지기보다 진정성 있게 그리고 신선한 정책으로 유권자를 보다 폭 넓게 유인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20일 수원시 화성사업소와 경기문화재단돌봄센터가 경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행궁동 주민 마을장인 육성을 위한 업무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내용은 두 기관이 손잡고 ‘수원화성 마을장인’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수원화성 성안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훼손된 경미한 문화재를 직접 보수할 수 있도록 문화재수리기능자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수원화성이 감싸고 있는 마을 행궁동 주민을 대상으로 교육생을 모집해 이론과 실기교육을 실시한 후 문화재수리기능 자격증 취득자를 마을장인으로 선발, 직접 문화재 관리·보수를 맡긴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경미한 훼손을 직접 보수하게 된다. 이를테면 성벽의 줄눈과 지붕기와 와구토 탈락, 연못관리, 배수로 정비 등이다. 수원시에 따르면 지역주민을 문화재수리기능자로 육성해 직접 문화재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