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이후 반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곤두박질했고, 국민의 자존심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내란의 특징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전두환 쿠데타 이후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유행했다. 근래의 상황이 전두환 시절을 소환할 정도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계엄선포-국회 대통령 탄핵안 부결(2024.12.7)-탄핵안 가결(2024.12.14)-헌법재판소 대통령 파면(2025.4.4)에 이르기까지 국민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탄핵 인용되고 21대 대통령 선거 일정이 확정돼 표류하던 대한민국호는 예측 가능한 항로에 진입하는 듯했다. 그러나 5월 첫날부터 대선후보 등록 마감일인 11일까지 지난 십여 일 동안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진원은 5월 1일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 대법원 상고심 선고였다. 대법원은 TV 생중계까지 허용하면서 유죄 취지로 2심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 했다. “공직 후보자의 표현의 자유는 일반인과 다르다”고 그 이유를 달았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표현의 자유를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재판과 달리 전원일치가 아니었다. 임명권자의 진영논리로 나뉘었다. 대법원에서 사건 기록을 전달받은 서울고등법원은 파기 환송심 재판을 5월 15일로 잡았다. 법원의 정치개입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이 판결 직후 사퇴하고 다음날 출마 선언을 했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다 같이 사라지게 하는 개헌을 하겠다’는 내용을 출마의 변에 담았다. 대법원 판결부터 한 총리 출마 선언까지 일련의 과정이 짜맞춘 듯 일사분란했다. 5월 3일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는 이 판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연휴 직후인 7일 서울고법은 ‘이재명 후보에게 균등한 선거운동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일관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 재판 기일을 대통령 선거 후로 변경했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다음날 “법원 스스로 ‘독립’을 거뒀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가 ’이재명 선거법-대장동 재판 대선 뒤로 연기‘라는 중립적인 제목의 기사와 대비됐다. 국민의힘은 3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대선후보로 선출했지만 이후 10일까지 일주일간은 정당사에 남을 괴행(怪行)으로 점철했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출된 김 후보는 대선후보 지위 확인을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지만 하룻만에 기각됐다. 기다렸다는 듯 국힘 지도부는 10일 새벽 2시 김문수 대선후보 자격을 취소했다. 한덕수 후보는 곧바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한덕수로의 후보 교체는 다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원들이 나서 투표로 부결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대선열차는 출발했다. 사법이 정치 위에 군림하려 했다. 일부 정치세력은 스스로 사법에 종속되려 했다. 이재명, 김문수의 환생은 주권자가 살려냈다. 일련의 과정에서 정치화된 사법부 통제 필요성이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한겨레신문 박용현 논설위원은 12일자 칼럼에서 ’프랑스, 독일, 미국, 이탈리아 사례를 들어 법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며 ’검찰은 독립성이란 미명 아래 통제할 수 없는 괴물 권력이 됐다. 법원도 검찰에 가려 희미했을 뿐이다‘라고 진단했다. 사법부가 왜 개혁돼야하는지 설파한 명칼럼이었다.
21대 대선레이스가 시작된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제21대 대통령선거 10대 정책공약’ 가운데 1호로 ‘AI 등 신산업 집중육성’을 내세웠다. AI를 비롯한 신산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기반을 구축하고 K-콘텐츠 지원을 강화해 글로벌 빅5 문화강국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경기신문 13일자 3면, ‘주요 대권주자 10대 정책공약 3파전 불꽃대결’) 이 후보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AI 3대 강국으로 도약 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미래 첨단산업 분야는 과거와 달리 엄청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한 국부 펀드 형태의 ‘케이 인비디아 펀드’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AI 예산 비중을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증액하겠다면서 “정부가 민간 투자 마중물이 되어 AI 관련 예산을 선진국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증액”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민간 투자 등을 통해 100조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고성능 GPU 5만개 이상 확보 및 국가 AI데이터 집적 클러스터 조성 ▲K-컬쳐 수출 50조원 달성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통한 ‘AI 고속도로’ 구축 ▲전 국민이 AI를 무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모두의 AI’프로젝트 ▲K-방산 국가대표산업 육성 및 방산수출기업 R&D(연구개발) 세금 감면도 발표했다.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공산당식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00조원 규모의 민관합동펀드를 조성해, 인공지능·에너지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의 ‘케이 인비디아 펀드’와 흡사한 내용이긴 하지지만 반드시 필요한 공약이다. 김 후보가 발표한 ‘21대 대통령 선거 10대 공약’ 가운데 2호 공약으로 ‘인공지능·에너지 3대 강국 도약’을 강조했다. “인공지능 분야에 청년 인재 20만 명을 양성하고,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는 100조원 규모의 민관합동펀드를 조성해 인공지능 유니콘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중요한 내용이다. 김 후보는 글로벌 기업을 참여시키는, 즉 외국 기업의 투자를 받아 ‘100조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설명했다. IMF는 우리나라를 선진 경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럼에도 AI분야는 세계 최상위 수준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져 있다. 정부는 2019년에 ‘AI 국가전략’을 시작해 2027년까지 70억 달러를 투자, 2030년 AI 초강대국으로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예산은 턱없이 적다. 중국은 2025년까지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을 AI에 투입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14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유럽연합(EU)은 2021~2027년간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을 AI에 투자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3월 브리핑을 열어 국가AI역량강화방안을 기반으로 AI 글로벌 강국 도약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핵심 전략기술 확보’, ‘디지털 서비스 안정성 확보’ 등 4대 핵심과제에 대한 실적을 공개하며 AI 강국 실현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인공지능(AI) 기본법도 지난해 12월 26일 국회를 통과하고, 1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AI 강국으로 가기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지금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국가의 경제와 안보까지 직결되는 전략자산이다. 따라서 정부와 산·학·연이 일치가 되어 기술 개발과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경제계도 일치하고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경제인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5단체가 이재명 대선 후보에 전달한 제언집에도 1순위 과제는 ‘국가 AI 역량 강화’였다. 이들은 ‘앞으로의 3~4년이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골든타임’이라며 에너지·데이터·인재 등을 3대 투입요소와 3대 밸류체인 인프라·모델·AI전환간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경제가 처한 대내외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새로운 전략’이 절실하다는 주장은 적절하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당내 경선을 거쳐 정당한 절차를 통해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정당이라는 정치 공동체 안에서 공정한 규칙을 따르고 그 규칙에 기반을 둔 지지와 책임을 감수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경선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한덕수 전 총리가 느닷없이 출마를 선언하며 경선을 통과한 김문수에게 단일화를 요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이길 수 있다.” 비슷한 상황은 역사 곳곳에 반복되어 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 대표팀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보다 감독의 판단과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대표팀을 구성했다. 수월성을 기준으로 한다는 명분 아래 팀워크와 내부 신뢰는 무너졌고 결국 선수들은 훈련을 집단 거부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결과는 국가적 망신에 가까운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축구는 단순한 기량의 경쟁이 아니라 팀 전체의 조화와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는 스포츠다. 과정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팀은 하나로 뭉칠 수 없고, 분열된 팀은 이길 수 없다. 어떤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는 절차를 무시한 정치가 얼마나 깊은 후유증을 남기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부통령이던 허버트 험프리는 단 한 번의 예비 선거(프라이머리)도 거치지 않은 채 민주당 지도부의 지지를 업고 대선 후보가 되었다. 반전 여론이 고조된 가운데 유진 매카시와 로버트 케네디 등이 프라이머리를 통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지도부는 이를 무시했다. 당원과 시민들은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졌다고 격렬히 반발했고 시카고에서는 전당대회 기간 중 유혈 시위까지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자신들의 텃밭이라 여겨졌던 남부 5개 주를 공화당에 내주며 닉슨에게 참패했다. 단순한 선거 패배가 아니라,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고 도덕적 결함이 컸던 대통령이라 평가받는 사람에게 권력을 넘긴 일이었다. 절차를 무시한 대가는 민주당의 패배로 끝나지 않고 민주주의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구조적 손실로 돌아왔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라면 과정은 타협할 수 있지 않는가?” 이 물음은 정치적 판단의 순간마다 반복되는 유혹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러한 달콤한 제안에 쉽게 응하지 말아야 한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공정한 절차는 결과의 정당성을 구성한다고 했다.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승리는 아무리 매력적이고 효과적으로 보일지라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승리는 승리를 이룬 순간부터 내파를 시작한다. 한덕수의 주장은 결과적 수월성에 기대고 있지만 그것이 절차적 정당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 정당 민주주의는 하나의 공동체가 신뢰와 책임을 나누는 과정이다. 한 사회의 리더를 뽑는 과정에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승리만 좇는 모습을 정당이 승인한다면 그것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결과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셈이다. 이기기 위해 규칙을 무시하는 정치는 언젠가 규칙 없이도 지게 된다.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는 그저 들러리가 된다. 이제 우리 사회는 그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서 이기는 방법을 고심해야 한다. 정치도 예외일 수 없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절차를 지켜야 한다. 진정한 승리는 무너뜨림 없이 이기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2023년 12월 발표된 '제1차 사회서비스 기본계획(2024~2028)'의 핵심 과제인 '스마트 사회서비스 시범사업'은 사물인터넷(IoT), 정보통신(IC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과 돌봄 로봇을 활용한 사회서비스 모델을 지역사회에 확산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024년 4월, 충남 당진시를 포함한 5개 지자체를 시범사업 수행 지역으로 선정하고, 6개 기업을 통해 스마트 기저귀(센서) 시스템, 노인건강·안전감지 스마트 조끼, 재활 로봇·자전거, 어린이 식습관 개선 푸드 스캐너, 노인·고독사 관리 AI 스피커, 치매 검진·예방 프로그램 등 여섯 개의 서비스 모델을 지역사회에 제공하여 그 효과를 검증하고 주민들의 이용과 확산을 유도하고 있다. 본 시범사업은 기술의 현장 실증 및 활용을 지원하여 복지기술이 연구 단계를 넘어 실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사회서비스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예산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추가적인 시범사업 모집 공고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다만, 1차 시범사업의 성과 평가를 바탕으로 ‘26년에는 더 많은 기업들의 참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스마트 사회서비스의 성공적인 정착과 확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 해결이 중요하다. ▲사회적경제기업의 적극적인 참여 확대: 고령 인구를 위한 양질의 돌봄 서비스와 에이지테크(Age Tech) 기술을 보유한 사회적경제기업의 참여를 장려하여 전국 어디서나 균등한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지속적인 정부 예산 지원 및 협력 네트워크 구축: 스마트 사회서비스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정부의 안정적인 예산지원이 필수적이며, 기술력을 갖춘 사회적경제기업의 자생력 확보와 함께 정부-기업-지자체 간의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돌봄 종사자의 역량 강화 및 동기 부여: 첨단 시스템과 서비스에 대한 요양보호사 등 돌봄 종사자들의 원활한 적응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훈련 체계 마련과 함께, 스마트 사회서비스 시스템 활용 시설에 대한 실질적인 인센티브(시설 급여 평가 시 가산점 부여 등) 제공을 통해 적극적인 사용을 유도해야 한다. ▲스마트사회서비스 이해관계자들의 인식 제고 및 성과 관리 체계 마련: 공공 주도 정기적인 포럼 등을 통해 스마트 사회서비스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인식을 높이고, 명확한 서비스 분류체계와 구체적인 성과 평가지표 개발을 통해 서비스 효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해야 한다. 한편, 경기도는 생애 전주기를 고려한 통합돌봄 쳬계 구축 노력과 함께 복지기술과 정책 융합을 통한 스마트 사회서비스 혁신을 추진하며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스마트 사회서비스 고도화 정책 방향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스마트 사회서비스 확산을 위한 기업의 혁신 기술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조화롭게 이루어진다면, ‘26년 3월 시행 예정인 '돌봄통합지원법'과 함께 더욱 발전된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공서·단체 관계자를 사칭해 물품 대리 구매를 부탁한 뒤 구매금액을 사취하는 범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근 수원에서도 가짜 공문서까지 동원한 유사한 사기 범죄를 시도했다가 발각돼 가까스로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 유사한 범죄는 지역을 불문하고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서 뿌리 뽑을 적절한 대책이 시급하다. 어설픈 사기행각에 놀아나는 일이 가능하도록 하는 공직문화의 허점 여부도 세세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군부대 사칭 사기와 유사한 수법의 수원시 공무원 사칭·공문서 위조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공공기관 사칭으로 신뢰를 얻고 물품을 주분한 후 가상의 납품업체에 대리 구매를 유도하는 수법이다. 수원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시에서 컴퓨터 판매업체를 운영하는 업자는 자신을 시 소속 주무관이라고 밝힌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범인은 사무용 물품 견적을 요청하며 통화를 마친 후 시 명의로 작성된 ‘물품 구매 확약서’ 형식의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은 가짜 공문이었다. 가짜 공문으로 컴퓨터 판매업자를 속이려 했던 범인은 “부서에 급한 사정이 있어 심장제세동기를 구매해야 하는데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한번 알아봐 달라”며 다른 업체의 명함을 보냈다. 그러나 공공기관과 계약한 경험이 있었던 컴퓨터 판매업자는 범인이 보낸 공문 형식과 내용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시는 해당 공문이 위조문서라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 4월 11일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한 식당은 콘서트 관계자를 자칭한 유령업체 사기꾼에게 와인 구매대금 3000만원 상당을 사취당했다. 경기 화성시 한 가구점도 구치소 공무원을 사칭한 불상의 사기범에게 방탄복 대리 구매 명목으로 비슷한 금액의 피해를 입었다. 사실상 유사한 사건은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중이다. 최근 충남 천안에서 소방관을 사칭한 사기 시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일 한 인물이 천안 소재 블라인드 업주에게 접근해 소방관 명함을 제시한 뒤 “소방서에서 사용할 방화복을 대신 구매해달라”고 요청하며 5500만원 상당의 물품 구매를 유도했다. 다행히 의심을 품은 업주가 소방서에 전화로 사실 확인을 거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지난 10일에도 동일한 위조 명함으로 소방관을 사칭한 용의자가 한 닥트 공사업체 대표에게 “소방서 2층의 공사와 관련해 방문이 필요하다”며 접근했다. 수상함을 느낀 업체 대표가 천안서북소방서를 방문해 확인하는 지혜로운 행동으로 사기를 피할 수 있었다. 광주경찰청에도 올해에만 28건의 노쇼 사기 신고가 접수됐다.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도록 하는 이 같은 범죄는 하루빨리 발본색원돼야 한다. 수원시 관계자는 시 공무원을 자처하는 사람이 공문 형태 문서로 물품 구매 요청을 하면 반드시 시 누리집에서 해당 공무원의 행정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관련 부서에서 신원을 검증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대다수 사례에서 수상한 요구를 의심한 당사자들이 확인을 거치는 과정에서 피해를 모면하지만, 수백만 원에서 억대의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혹여라도 일부 공직사회에 이 같은 편법적인 거래가 가능한 것은 아닌지 정밀하게 검증하고 단속할 필요는 있다는 지적이다. 공직문화에서의 실낱같은 허점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막심한 피해를 입히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불경기에 우는 소상공인들의 절박한 처지를 노린 지능적인 범죄가 늘고 있다. 사기꾼들은 매출 부진에 절치부심하는 상공인들의 심사를 약점으로 노려 날카롭게 파고든다. 공직자 사칭에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한번 말려들면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다. 상식을 초월한 주문이나 청탁은 일단 의심하는 것이 맞다. ‘돌다리도 반드시 두드려보고 건너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스승의 날 내력 6.25 내전이 끝난 직후, 온 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충남 강경여고에서 있었던 일이다.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의 그 짙은 슬픔을 풀어주고, 기숙사에서 앓고 있는 학생에게 손수 죽을 끓여 먹이고 약을 달여준 교사가 있었다. 훗날 그 분이 연로하여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위로와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1958년이었다. 그 3년 뒤, 윤석란양이 병석에 누워 있는 은사를 돌보다가 퇴직교사들을 모셨다. 이 뭉클한 사연은 순식간에 충남 전체에 펴졌다. 충남 RCY는 ‘은사의 날’ 행사를 벌이게 되었다. 그 물결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RCY 전국 중앙회는 1965년 겨레의 큰 스승 세종대왕의 생일(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것이 스승의 날과 관련된 감동적인 역사다. 17살 소녀는 수녀가 되어 이웃사랑과 봉사를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제 80살이다. 만인이 공교육 붕괴에 대해 절망하는 이 시대에 어느 날 모교를 방문한 수녀가 말했다. “학교는 여전히 아름답고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샘의 물이 마르지 않는다면 언젠가 마른 흙도 생명을 얻고 되살아나게 되는 이치입니다.“ 어떤 사제지간 다석-남강-함석헌 100년 전, 3.1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평양고보 학생 함석헌(1901~1989)은 학교가 형식적인 반성문을 쓰면 징계하지 않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퇴학을 당했다. “목이 타 마르도록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팔을 비트는 순사를 뿌리치고 총에 칼을 꽂아 가지고 행진해오는 일본군인과 마주 행진을 해대들다가 발길로 채여 태연히 짓밟히고 일어나고...” 그는 3.1의 감격을 이렇게 표했다. 그 백두산 호랑이의 기백을 가진 청년 앞에서 그 이북 최고의 명문학교 졸업(장)은 시시한 사안이었다. 함석헌은 2년 뒤, 평북 정주의 민족사학 오산학교로 편입했다. 교장은 다석 유영모 선생(1890~1981)이었다. 스승과 제자는 11살 차이였지만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관계였다. “내 뒤에 오는 자가 나보다 앞선 자라. 내 뒤에 오는 이가 할 것이다", “내가 오산에 온 것은 함군 자넬 만나러 온 것"이라며 운명적 인연을 고백했다. 다석은 당시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함석헌이 편입해왔을 때 오산학교 설립자 남강 이승훈 선생(1864-1930)이 감옥에 있었다. 3.1 독립선언자 33인 가운데 가장 비중 높은 인물이었다. 교장은 면회를 가서 특별한 제자에 관해서 전했다. 남강은 출옥 후 7개월 동안 그 제자를 지켜봤다. 그리고 일본 유학을 확정하고, 둘째 아들을 미리 동경에 보내어 제자가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었다. 그리고 6개월을 함께 지내며 안정되게 정착하도록 도움을 주고 돌아왔다. 조선의 민중들은 세 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다석과 남강은 훗날 세계가 인정하는 사상가, 평화와 인권운동가, 전설의 언론인으로 우뚝서고, 1979년과 1985년 노벨평화상 유력후보로 오른 제자를 우리 민족에게 선물로 주었다. 김장하-문형배 김장하 선생과 문형배 헌법재판관 사이도 참으로 특별한 사제지간이다.둘 사이에 놓인 사연과 내력들을 듣고 읽을 때마다 문판사처럼 눈물이 난다. 김장하 선생의 그 크고 깊고 올곧은, 그리고 부드러운 삶을 접하면서 남강 이승훈을 떠올리게 된다. 문형배 판사의 맑고 옳은 말과 글, 선한 표정을 만날 때마다 기질은 다르지만 본질은 차이가 없는 함석헌을 생각하게 된다. 죽을 끓여 먹이고, 약을 달여준 교사와 그 은혜를 국가가 기리도록 만든 윤석란, 다석 유영모 남강 이승훈 김장하 선생 같은 큰 스승들과 함석헌 문형배 같은 특별한 제자들이 이 망할 놈의 신자유주의 세상 어느 구석에선가 소멸하지 않고 굳세게 살아있기를 하늘에 빈다.
중학교 교육환경이 망국적 학폭 풍조에 시퍼렇게 멍들고 있다. 지난해 전국 중학교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1만 7000여 건으로 고등학교보다 두 배 이상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학폭 심의 건수가 전국 광역시·도 중 세 번째로 높았다. 국민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암울한 폭력문화의 그늘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한 특단의 종합대책이 시급하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종로학원이 지난달 30일 ‘학교알리미’에 공개된 전국 중학교 3295개와 고등학교 2380개의 학교폭력 심의 건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중학교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모두 1만 7833건으로 고등학교(7446건)보다 2.4배 높았다고 밝혔다. 2023년(1만 4004건)보다 무려 27.3% 증가한 수치다. 중학교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 건수는 3만 6069건으로 고등학교(1만 2975건)에 비해 2.8배 높았다. 중학교에서의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모두 전년보다 증가했다. 2023년 대비 지난해의 중학교 학교폭력 심의 건수 증가율은 경남이 40.0%로 가장 높았고, 대전 38.6%, 경기도 35.9%, 충남 35.0%, 경북 33.5%, 인천 30.4% 순이었다. 중학교 학교폭력의 심의 유형별로는 신체폭력이 30.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언어폭력 29.3%, 사이버폭력 11.6%, 성폭력 9.2%, 금품갈취 5.9%, 강요 5.1%, 따돌림 3.9% 등으로 집계됐다. 가해 학생에 대한 실제 처분 결과는 ‘1호 서면사과’가 20.1%로 가장 많았다. 중징계에 해당하는 ‘7호 학급교체’와 ‘8호 전학’은 각각 1.5%, 2.5%였다. 2023년보다 각각 88.0%, 37.8% 증가했다. 고등학교의 학교폭력 처분 결과는 주요 대학에서 내년 수시와 정시에 엄격히 반영돼 대입에서 상당한 불이익이 발생한다. 그러나 중학교 학교폭력에 따른 처분 결과는 영재학교인 서울과학고, 경기과학고,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등에서만 입학 시 불이익으로 작용한다. 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 자율형사립고 등 특목·자사고의 경우 중학교 학교폭력 처분 결과를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기준이 없다. 얼마 전 SNS에 올라와 전국을 경악에 빠트렸던 ‘인천 송도 11년생 학폭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우리 교육환경이 얼마나 속속들이 폭력문화에 물들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약 1분 39초 분량의 이 영상에는 가해 여중생이 아파트 외부 주차장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또래 여학생의 뺨을 7차례 손바닥으로 때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가해 여중생은 폭행 도중 피해 여중생에게 “숫자를 세라”고 지시하는 장면은 소름이 끼친다. 피해자가 고통을 견디지 못한 듯 “이제 반대쪽 뺨을 때려달라”며 가해자에게 애원하는 장면까지 포착돼 충격을 더했다. 정작 기막힌 장면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다른 학생 중 누구도 폭행을 말리지 않았고, 오히려 웃거나 해당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이었다. 끔찍한 폭력을 목격하면서도 당연한 듯이 희희낙락 구경하는 영상은 우리 중학생 또래문화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역력히 증명한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조치는 ‘채찍 요법’ 강화다. 학폭 행위 한 번만으로도 가해자가 회복하기 힘든 손해를 보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피해 학생들이 그 참혹한 경험 한 번으로 일생이 망가지는 회복 불능의 피해를 생각하면 재고의 여지가 없다. 가해 사실을 감싸고 넘어가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식을 그릇된 가치관과 회복 불가의 폭력성으로 일생을 망치도록 만드는 어리석은 짓이다. 단 한 번의 잘못된 행동이 피아의 일생 모두를 그르칠 수 있음을 엄중히 깨닫게 해야 한다. 중학교에서의 학폭 만연 현상은 반드시, 그리고 하루빨리 근절돼야 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안일함은 절대 금물이다.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셨다. 그는 인간이 공수래공수거임을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신던 낡은 구두에 철제 십자가, 소박한 흰옷을 입고 장식이 없는 관에 누워 계셨다. 가슴이 찡한 이 영적 지도자의 장례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정치적 암투가 또 벌어졌다. 한덕수와 김문수 단일화 방식을 놓고 국힘의 한 의원이 새 교황 선출방식인 ‘콘클라베’를 거론했다. 이에 한 정치 평론가는 콘클라베가 무엇인줄 아느냐? ‘걸어 잠그다’라는 뜻이라며 말미를 흐렸다. 이 불편한 장면들을 목격한 필자는 콘클라베의 진정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클라베는 어원적으로 라틴어 ‘cum clave’에서 유래한 ‘밀폐된 방’을 의미한다. 가톨릭교회에서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모인 추기경들은 투표 기간 격리된 방에서 지내야 한다. 전통적으로 추기경들은 투표 과정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된다. 이러한 고립은 교황청회의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통해 교황청회의 신성하고 심의적인 성격이 강조된다. 스페인 왕립 아카데미에 따르면, ‘콘클라베’는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열리는 추기경 회의로 정의된다. 이는 고립의 물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그 과정의 영적, 의례적 의미도 포함된다. 이 의식의 역사는 유구하다. 12세기 중반에 시작되었지만 1274년 교황 그레고리 10세에 이르러서 헌법 ‘우비 페리쿨룸’에서 정식 규칙에 포함되었다. 이 방식은 교황 선출에 대한 국가의 간섭에 맞서 교회의 자유를 보존할 수 있게 하였다. 비록 심의가 지나치게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말이다. 한 예로 1241년 추기경들은 선거가 길어짐으로써 한여름 70일 동안 셉티조니움에 갇혔고, 이로 인해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인 로베르토 디 소메르코테스 추기경이 죽었다. 그럼에도 이를 고집한 이유는 어떤 외부 압력도 투표에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콘클라베는 교황이 사망하거나 사임한 후에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추기경단은 회의를 열어 추기경 회의의 날짜와 규칙을 정한다. 선거는 공식적으로 개회 미사로 시작되며, 그 과정에서 신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이 의식은 조직적인 차원을 초월하여 신성함을 탐구하는 행사의 영적인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번 콘클라베 동안 바티칸 궁전의 모든 창문은 어둡게 커튼이 드리워졌고 최근 몇 년 동안 설치된 모든 기술 장치와 센서가 비활성화 되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준비된 200개의 객실 중 일부 창문은 대면 접촉을 없애기 위해 일시적으로 닫혔다. 이렇게 폐쇄된 추기경들은 신문을 읽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심지어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콘클라베의 의미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해 왔다. 하지만 그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 가톨릭교회 내에서의 단결과 집단적 결의의 상징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콘클라베는 우리 선거판에서 벌어지는 분열과 야합이 아닌 결속과 신성함을 의미한다.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콘클라베를 두고 이렇게 아전인수격 해석을 해댄 국힘의 대선판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탄핵으로 이루어진 대선정국이건만 그들은 일말의 각성도 없다. 구태의 옷을 언제나 벗으려는지? 심장이 천근만근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자녀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기념과 축하의 의미로 손목시계를 선물해주었다. 시계는 시간을 본다는 본질적인 의미 외에도 사회적 레벨을 암시하는 척도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그것은 현재에도 그런 것 같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요즘은 시계의 본질적인 용도는 거의 폐기된 것 같다. 스마트폰과 연결하여 사용하는 스마트워치는 시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기록하고 조정하는 역할까지도 한다. 디지털 시계는 현재라는 한 점을 정확하게 표시해주고 숫자를 그냥 읽으면 되기 때문에 시계 읽는 법을 배우는 어린이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 시계는 60초가 1분, 60분이 1시간, 12시간이 반나절, 시침의 두 바퀴가 하루라는 복잡한 진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 시계 읽기를 배울 때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3개의 바늘을 가지고 있는 아날로그 시계 속에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의 유기적인 관계가 잘 나타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먼저 시계의 3가지 바늘 중에서 가장 쉬임없이 움직이며 일하는 것은 바로 초침이다. 그들은 한시도 쉴 수가 없다. 비록 연약하지만 초침의 부지런한 족적들이 모여서 분침을 조금씩 움직이게 한다. 몇 초는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1분의 시간을 위하여 초침은 60보의 걸음을 쉬임없이 걷는 것이다. 마치 사회의 가장 아랫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우리 서민들처럼 말이다. 1분, 2분, 3분….. 분침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가장 긴 바늘로 시간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지금 몇 시냐고 물어보면, 몇 시 몇 분이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우리는 몇 시 몇 분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분침의 숫자는 가장 구체적인 현재를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왜 시침보다 분침이 긴 걸까? 그 이유가 바로 시간을 알고자 할 때 시침은 12곳 중 어느 곳을 가리키므로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시간을 알기 위해서는 시계의 60개의 눈금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야 하는 분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어떤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어 내는 중간층이 바로 이 분침과 같다. 시침은 굵고 짧게 천천히 움직이지만 큰 단위인 시간을 가리킨다. 1과 2 사이에 시침이 있으면 우리는 1시 대라는 것을 안다. 이는 모든 조직, 나라와 인류의 운명을 책임지는 최고결정권자의 역할과 같다. 시간의 단위를 넘긴다는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같다. 시침은 사실 시계 속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갖는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시간은 저 스스로 혼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가 모여 분이 되고,, 분이 모여 시가 되는 것은 모든 사회의 조직 속에서 수장 혼자서가 아니라 가장 아래에서부터 쉬임없이 자신의 본분을 다한 이들의 노력이 모인 결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망가진 시계는 초침이 움직이지 않거나 초침과 분침이 아무리 움직여도 시침이 까딱거리기만 하고 제 시간을 나타내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어떤 시계일까? 잘 작동하고 있는 시계일까? 초침에 의해, 분침에 의해 정확하게 그 뜻을 받아들여 움직이며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일까? 시계를 바라보자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특히 아날로그 시계에서 3개의 침이 공간감을 가지고 움직이면서 현재의 시간만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의 맥락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전자시계보다 아날로그 시계에 더 애착이 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호숫가 정자에 앉아 있는데 호수를 건너온 아침햇살이 다가와 나를 꼭 껴안는다. ‘이게 자연의 품이겠지! 아니 생전의 어머니 품인가, 떠나간 아내의 체온인가?’ 5월의 아침햇살과 오후의 햇볕의 질감을 생각하게 된다. 참으로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자연의 품에서 아침햇살의 부드러운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정자에서 일어나 걸었다. 호수를 뒤로 하고 한동안 걸으면 복숭아 과수원으로 이름난 ‘대지’ 마을이다. 그곳 풋마늘의 생명력에도 눈 주고, 마을회관 옆집 꽃밭에서 꽃들에게 눈을 주고 있었다. 그때 꽃집에서 나온 아주머니는 떡국이 든 큼직한 통을 들고 가더니 골목 입구 첫 집 낮은 담의 창문을 밀치고 할머니에게 음식 통을 건네고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 간다. 그래 저 모습이야! 사람 사는 맛이란 담장 위로 음식을 주고받는 정으로 소중한 이웃이 되고 고을 인심이 넉넉해지는 것이지- 생각은 고향에서 살던 우리 집과 이웃 사람들의 얼굴과 인정으로 가슴이 훈훈해졌다.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서의 생각이었다. ‘인생은 부싯돌의 불빛처럼 짧다.’고 했다. 그렇듯 짧은 인생이 왜인지 지루하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오후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외로움과 다르고 쓸쓸함과도 다른 ‘홀로움’ 속에서_ ‘그래 나는 남다른 매력도 능력도 없다. 밥 먹고 살려면 최소한 남들이 하는 것만큼은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들려오는 소리 없는 언어가 가슴속에서 외쳤다. ‘몸 바쳐할 일이 있었고, 할 만큼 했어!’ 순간 움츠러든 가슴이 펴지고 손가락이 말아지면서 주먹이 쥐어졌다. 노년기의 삶은 인품 완성의 길이다. 괴테는 일생 동안 행복했던 시간이 17시간이라고 했다. 외로운 울분을 혼자 다스리고 그런 환경에서 생존을 지키고자 최선책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길, 그것이 문학이요. 한마디로 운명이었다. 사람은 지나간 과거를 고칠 수 없다. 오직 앞으로 걸을 뿐이지. 황석영은 80 넘은 나이에도 매일 대여섯 시간씩 글을 쓴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글을 어떻게 쓰느냐?’라는 질문을 하면, 그럴 때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고 했다고 한다. 밭농사나 다른 일들과 똑같다. 는 것이다. 그저 꾸준히 열심히 쓴다는 거다, 그는 밤 10시쯤 책상 앞에 앉아 새벽까지 쓴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는 ‘노장 투혼’ ‘만년 문학’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게 하고 싶은 게 많은 ‘청년’이라고 누군가는 평했다. 유성룡이 기록한 퇴계의 연보에 따르면 퇴계는 관직에 있는 동안 정치의 잘잘못을 거리낌 없이 말했다. 하지만 관직에서 물러난 뒤로는 달랐다. 그의 제자들도 퇴계를 닮아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정치 얘기는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한다. 율곡 이이도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말했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세속의 더러운 얘기, 정치의 시비, 등 타인의 잘못을 입에 담지 마라’고 했다. 후계자를 자칭한 송시열도 마찬가지였다. 농부가 모이면 농사 얘기를 해야 한다. 함부로 정치의 잘잘못을 따지고 남의 장단점을 말한다면 큰 잘못이다. 고 정치 얘기를 입에 담지 않는 것이 정치의 매너라고 강조한 것이다. 정치의 과잉시대, 양당시대의 양극화 사회를 보면서 이 시대의 처세술과 에티켓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길이 아닌 것에는 조금은 무심하고 외면해도 되는 것을 괜히 흥분하여 혈압에 영향 끼칠 것 없다는 것도 나이 값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말하기 좋다고 남의 말 하고 난 뒤의 입맛은 개운치 못하다. 생명에 대한 깨달음과 예의가 떠오른다. 기린은 하루에 3시간밖에 못 잔다고 한다. 개미는 아예 잠을 안 잔다고 한다. 하마는 오줌을 누워 지린내로 구애를 하는데 내년에는 제발 잘 생긴 미모로 짝짖길 희망하고, 타조는 년 중 6개월 이상은 혼자 생활한다고 한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는 생명의 자유! 방안퉁수 같이 있다가도 바람 냄새가 그리우면 공원길을 제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해야 할 일이다. 이른 아침 햇살의 미소를 생각하며 걷는다. 오후의 인생! 마음 같아서는 미소를 머금으며 ‘오늘도 걷는다마는…’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갈수록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도 절실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아참햇살의 품 같은 죽음의 품에 안기고 싶다. ‘지금 불행한가? 아니 외로운가. 그러면 책을 들어라.’라는 생각과 함께 인생의 행복한 오후의 길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