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지만 700만 재외동포 관련 과제는 123개 항목 중 맨 마지막에 배치됐다. 대선 공약인 재외국민 보호, 차세대 동포 육성, 온라인 민원 서비스, 영사·여권 행정 혁신, 참정권 확대 등이 일정 부분 반영됐지만, 국경과 국적을 넘어선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재외동포를 후순위에 둔 점은 아쉽다. 180개국 700만 재외동포는 단순한 해외 거주민이 아니다. 글로벌 정치·경제·사회·문화·학술·종교 등 전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확장 네트워크로 기능해왔다. 평상시에는 한국 이미지 제고와 교류·투자·무역·문화 확산을 주도했고, 위기시에는 국제 여론 조성, 협상력 강화, 정상회담 인맥 연결 등에서 은밀하지만 강력하게 작동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후원, 6·25전쟁 참전, 대유엔·미국 외교 로비, 한·일 국교정상화 막후 교섭, 북방외교 성사, IMF 극복, 한류(K-Culture) 확산과 글로벌 기업 진출 지원까지, 이들의 발자취는 ‘보이지 않는 손’처럼 대한민국을 떠받쳐왔다. 역대 정부도 동포사회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조치를 시행해왔다. 박정희 정부의 재일민단 지원, 김영삼 정부의 재외동포재단 설립, 김대중 정부의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 제정, 노무현 정부의 ‘세계한인의 날’ 제정, 이명박 정부의 제한적 복수국적 허용, 박근혜 정부의 재외국민 주민등록증 발급, 문재인 정부의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 제정, 윤석열 정부의 재외동포청 신설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정책 기조는 대부분 민원 처리나 선심성 지원에 머물렀다. 이제 이 거대한 힘을 단순한 행정 영역에 묶어둘지, 국가공동체의 미래를 좌우할 전략 자산으로 승화시킬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실용외교를 표방한 새 정부는 재외동포정책의 틀을 근본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재외국민 안전, 재외투표 편의, 복수국적 연령 조정 같은 단편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안보·경제·통상·산업·문화·과학기술을 포괄하는 종합적 미래 전략이 필요하며, 특히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요국 동포사회의 역량을 국익과 민족 이익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결집해야 한다. 첫째, 차세대 정체성 교육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대통령이 광복절 특별 메시지에서 이를 약속한 만큼, 재외동포청은 한국어·역사·문화 교육과 글로벌 네트워크 지원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언어·정체성 단절,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 포기 문제는 범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고, 재외동포교육문화센터 건립, 표준화된 커리큘럼과 디지털 학습 플랫폼 구축, 차세대 이중언어교사 양성, 한류(K-Culture) 자원을 활용한 세계시민성 교육 콘텐츠 제공 등 구체적 실행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한인 네트워크를 전략 자산으로 체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국 인적 자원과 현지 영향력을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기업·대학·한인회·한글학교·한상·언론 등 민관산학(民官産學) 거버넌스를 가동해야 한다. 단순 명단 확보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빅데이터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국내외 전문가와 차세대 리더를 연결하고, 내국민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한층 확장해야 한다. 셋째, 균형 감각이 필수적이다. 한·미정상회담 전 일본을 방문한 대통령이 동포들의 애국심에 보답하겠다고 했지만, 동포 문제는 대통령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현지 정부·지역사회의 시선, 과거사에서 비롯된 민감 정서, 법·제도와 문화 차이를 늘 고려해야 한다. 불투명하거나 보여주기식 지원은 수십 년 쌓아온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때로는 신중한 비공개도 필요하다. 모국과 거주국 모두를 존중하며, 겸손하면서도 꼼꼼하게 추진할 때 동포 정책은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21세기 한민족의 미래는 더 이상 한반도에만 갇혀 있지 않다. 700만 재외동포는 국익과 실용외교의 숨은 엔진으로, 모국과 거주국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실질적 잠재력을 품는다. 이들은 외교·안보·통일의 든든한 후원세력이자, 거주국이 예의주시하는 민감한 전략 자산이다. 전 세계로 뻗은 동포 역량이 결집하면, 글로벌 네트워크는 은밀하지만 강력한 실용외교 엔진으로 기능한다. 경제·과학기술·문화·인재 분야에서 동포사회의 글로벌 역량과 전문성이 한국의 국익과 맞닿을 때,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정부와 동포사회가 지혜를 모으면, 700만 재외동포는 세계를 무대로 인류와 함께하는 희망의 네트워크로 도약할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국가적 책무이자 전략적 선택이다.
가수 남진은 올해 데뷔 60년을 맞아 전국투어 기념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마음이 고와야지’, ‘그대여 변치 마오’, ‘님과 함께’, ‘둥지’ 등 그가 부른 노래는 대중의 큰 인기를 얻었다. 영화도 여러 편 출연한 그는 트로트와 로커빌리 로큰롤을 오가며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 불리기도 했다. 대중가수는 대중과 호흡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80 나이에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현역 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나훈아는 작년 1월, 58년 동안 가수로 활동했던 무대에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남진 보다 1년 늦게 데뷔한 그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 ‘울긴 왜 울어’, ‘잡초’, ‘테스형’ 등 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가왕으로 추앙받았다. 은퇴를 알리며 1년간 ‘고마웠습니다’ 라스트 콘서트 전국투어를 했는데, 마지막 곡으로 ‘사내’를 부르며, 은퇴 결심은 자기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결정이었다, 정말 고마웠다고 인사하면서 오열했다. 가요계의 레전드로 한 시대를 양분했던 두 사람은 누구 이름을 먼저 부르는 것에 민감할 정도로 라이벌이었고, 사실 그들 팬들이 더 라이벌이었다. 두 사람은 딱 한번 한 무대에 선 적이 있다. 데뷔 20년이 지난 1987년, KBS2 스타데이트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여 마지막에 듀엣으로 Let it be me를 불렀는데, 서로 다른 특성으로 노래하는 두 사람의 화음이 긴장 속에 이어졌고,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나훈아의 은퇴 소식을 들은 남진은 그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타고난 트로트 가수라고 칭찬했다. 또 두 사람은 라이벌 구도 덕분에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하면서, 라이벌 구도는 연예계 비즈니스 차원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고 언급했다. 정치사에도 라이벌로 부각되는 두 사람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들이다. 1929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김영삼은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최연소 국회의원’, ‘최다선 9선 의원’, ‘최연소 총재’라는 정치이력이 붙어다녔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좌우명으로 삼은 그는 1970년대 중반 유신 치하에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투쟁하여 민주화를 이뤄냈다. 분열된 야당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1990년에 3당 합당을 결행했고,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24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한 김대중은 3차례 대선에서 낙선한 후 김종필과 DJP연합을 이루어 1997년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92년에 라이벌 김영삼에게 패했을 때, 그는 정계를 은퇴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년 7개월 만에 돌아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로 은퇴 번복에 대한 논란을 잠재웠다. 투옥과 사형선고 등 군부의 탄압으로 생명의 위협을 당했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자신을 핍박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적을 평가하며 화해를 모색했다. 김대중은 치열한 연구와 수사로 언제나 대안을 제시하는 편이었고, 김영삼은 상황판단이 감각적으로 빠르고 어떤 위협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기백이 있었다. 민주화 투쟁의 길을 같이 걸어온 두 사람이지만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열망했던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 가슴에 두고두고 남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광폭 행보를 이어가자 민주당과 혁신당 간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후계자 한 사람이 더 늘어난 이 구도는 대통령이 다분히 의도한 것이라고 보는 논객들도 있다.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을 정신분석학으로 설명한 김용신은 그의 저서 '지도력의 허상'(2016)에서 우리들의 이상이나 희망사항에 근거한 리더십은 실질적으로 허상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리더십은 결국 국민의 판단과 선택으로 세워진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정부는 얼마 전 열린 ‘관광 활성화 미니정책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오는 9월 말부터 내년 6월말까지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을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이 지난해 11월부터 한국 국민의 무비자 입국을 일방적으로 허용한 데 대한 우리 정부의 상응조치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아울러 오는 10월 1일부터 8일까지 중국 국경절 황금연휴를 앞두고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정부도 “방한 관광시장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번 무비자 정책이 시행되면 추가 방한 수요를 유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 등 실질적인 내수 진작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오는 10월 31일부터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한 포석이란 말도 나온다. 어찌됐건 정부가 ‘중국 단체관광객 한시적 비자 면제’ 방침을 발표하자 국내 여행사, 숙박업소 등 관광업계와 면세점 등 유통업계의 ‘특수’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커지고 있다. 지방정부들도 마찬가지다. 경기도는 본격적인 프로모션에 앞서 지난해 사무소를 개설한 상하이 현지 네트워크를 가동, 수요 파악에 착수했다고 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현지에서 진행한 단독 로드쇼를 통해 1차 수요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무비자 입국 세부 지침에 맞춰 하반기 프로모션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인천시는 9월 2일 송도컨벤시아에서 외국 현지 여행사와 기업·단체 관계자가 참가하는 트래블 마트를 개최한다. 특히 올해는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 방침에 맞춰 해외 바이어 중 절반을 중국 바이어들로 채웠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제주도를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에게 30일 무비자 체류를 허용해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비자 없이도 한국 곳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 관련업계가 반색할 만 하다. 우리나라를 찾아 온 중국인 관광객은 2016년 807만 명이나 됐다. 그런데 2017년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도입에 반발한 중국이 한국 여행 금지조치를 취했다. 그해 중국방문객은 417만 명으로 급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2021년에는 17만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중국이 한국행 단체여행을 전면 허용한 2023년엔 202만 명, 2024년엔 460만 명으로 점차 회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비자 정책을 시행하면 더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매년 수조원대에 달하는 관광수지 적자도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 단체관광객 무비자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불안감도 존재한다.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반면 불법체류나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중 약 66%가 입국하는 인천의 경우 불법체류자 증가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2일자 인천판 1면, ‘中 무비자 입국 시작되는데…인천경제 반색, 치안은 긴장’) 법무부에 따르면 체류 외국인 265만 783명 중 불법체류 외국인은 39만 7522명(전체의 15.0%)이다. 이 가운데 중국인 불법체류자는 6만 1906명이다. 중국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 2002년부터 중국인 관광객이 무비자로 입국해 최대 30일간 체류할 수 있는 지역인데 중국인 관광객의 사건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제주도의 최근 6년간 외국인 범죄 검거 현황에 따르면 중국인이 전체의 67%나 됐다. 특수강도 사건 등 강력 범죄도 많다. 게다가 편의점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거나 대로변에 용변을 보는 모습 등도 비난을 받았다. 중국 단체 관광객 무비자 정책은 나쁘지 않다. 정부는 이탈자와 무질서 행위를 막기 위한 관리방안을 마련하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이는 중국 정부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속에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일행처럼 곁에 서 있거나 저만치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 나를 찍은 사진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넘기다가 마주한 장면이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무엇이 중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화면이 어지럽다. 내 모습이 그들 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진을 지우지 못한 것은 아마도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 속에 들어 있는 나를 보다가, 스마트폰 속 사진을 밀고 당기며 내 얼굴을 키웠다가 다시 원래대로 되돌린다. 어느 지점을 잘라내야 할까, 사람을 지워보고 건물의 귀퉁이를 잘라보았다. 나의 손가락에서 몇 번씩 잘려 나갔다가 되살아나는 사람들, 한 번은 오른쪽을 한 번은 왼쪽을 자른다. 그럴 때마다 풍경 속의 공기가 바뀌고 빛이 사라졌다가 나타난다. 이리저리 맞추어 봐도 마음에 드는 구도가 나오지 않는다. 사실 마음에 드는 구도라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설정한 것이다. 내 모습이 온전하게 드러나고 내가 의도한 풍경이 살아 있는 것 말이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구도는 어떻게 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와 건물만을 남기고 사람들을 다 지워봤다. 사람이 사라진 공간은 폐허 같았다. 디지털 화면은 손가락 하나로 무엇이든 지워버릴 수 있는 세계다. 풍경도, 사물도, 사람도 삭제할 수 있다. 불과 몇 초 만에 사진이 바뀌고 어떤 장면은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이런 세계는 효율성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그 속에서 가장 쉽게 지워지는 건 결국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기애’를 부추기는 콘텐츠와 ‘손절’이라는 키워드가 넘쳐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불필요하다고 여겨진 사람을 잘라내는 것은 사진 편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를 중심에 두면 버려야 할 대상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진 속의 나를 돋보이게 하려고 주변을 잘라내 보았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았다. 문득, 나도 누군가의 사진 속에서 배경으로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과 장소, 초점이 맞지 않은 얼굴, 화면 구석의 흐릿한 뒷모습이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또는 어딘가에서 행인 1이나 행인 2로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스마트폰 속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아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노인과 청년이 있다. 이 작은 화면 속에 각자의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다. 길을 건너는 사람, 함께 걷는 사람, 웃는 사람들이 있다. 정지된 화면 속에서도 사람이 가득한 거리는 온갖 생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서로의 삶 속에 흘러 들어간 우리는 누군가의 배경이 되었다. 우리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도 내가 내 삶의 중심인 것은 변함없다. 우리는 기꺼이 다른 사람의 뒤에서 그들의 삶을 빛내줄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속 사진들을 넘긴다. 많은 사람들이 담겨 있다. 그동안 수없이 잘라내고 삭제했던 사진이 있었을 텐데, 새삼스럽게 가슴이 뻐근해진다. 아무것도 잘라내지 않은 처음의 사진에서 빛과 소리, 공기와 함께 그 순간의 냄새마저 되살아나는 듯했다. 결국 중심과 배경이 함께 있어야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는 것 같다. 삶 또한 그럴 것이다.
‘딕션(Diction)’이라는 외국어를 칼럼의 표제어로 하면서 좀 망설였다. 하지만 현대인의 말하기(speech) 소양으로, 정확하면서도 유창한 발음 구사 능력을 주제로 삼자니, ‘딕션’이란 용어를 피해 가기 어렵다. 일부 사전에서는 ‘딕션’을 ‘정확성과 유창성을 두루 갖춘 발음’으로 풀이한다. 그런 점에서 ‘딕션’과 ‘발음’은 그 의미역이 다르다. 우리는 ‘발음’이란 말의 의미를 ‘딕션’의 의미처럼 넓히지 못하였다. 즉 ‘발음’을 그냥 소리 자체에만 묶어 두었을 뿐, 인간의 실제적 언어생활에서 수행하는 모든 ‘발음 현상’으로 확장하여 ‘발음의 뜻’을 적용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사용 및 기능 맥락이 풍부한 ‘딕션’이라는 말을 빌려와 쓰고 있는 셈이다. 정확한 발음만으로는 효과적인 발음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 발음은 정확성과 더불어 유창해야 한다. 발음이 유창하다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발음이 단순한 소리로 그치지 않고, 그 발음이 그가 지금 말하고 있는 어휘, 문장, 문단 등의 의미나 구조와 잘 맞물려야 함을 뜻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내용의 의미 및 주제와 호응해야 함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의 발음이 지금 내가 수행하고 있는 내 말하기의 리듬, 템포, 억양, 정서적 분위기, 논리적 흐름 등에 알게 모르게 가닿아 있어야 한다. 이를 발음의 유창성이라 한다. 딕션은 이런 개념과 작용까지를 포함하는 발음이다. 그러므로 최선의 딕션이란 만만치 않은 소리 분별력과 함께 내가 말할 텍스트에 대한 고도의 감수성을 요구한다. 어떤 특정의 연설이나 강연이나 설교나 방송 진행 등이 유독 내 귀에 잘 들린다면, 전달자의 딕션이 어떠했는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공연 콘텐츠가 들을 만했다면 무대의 인물이 어떤 딕션으로 나의 청각적 호응을 불러들였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딕션은 배우, 가수, 방송인들에게는 익숙한 용어다. 그들은 딕션과 관련하여 무수히 닦달을 받으며, 딕션 내공을 쌓은 사람들이다. 스피치 전문가들은 말하기 수행(performance)의 기본 기능으로 딕션을 강조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딕션이 좋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의 발음이 총체적으로 뛰어난 음성적 전달력을 지녔음을 평가하는 것이다. 인간의 총체적 말하기 역량은 발음 따로, 어휘 따로, 표현 따로, 내용 따로, 태도 따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딕션 능력이란 간단하지 않다. 발음이란 것이 그것 하나로 고립된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훌륭한 스피치 수행의 깊은 맛을 터득하는 것이다. 마치 골절로 아픈데도 그 영향이 몸 전체에 유기적으로 퍼져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드라마에서 배우 김혜자 씨의 극중 캐릭터에 우리가 은연중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그녀의 딕션이 주는 깊은 호소력 때문이 아닐까. 유재석의 방송 진행이 오래 호응을 얻는 것은 그의 딕션이 지닌 유창성 때문이 아닐까. 명가수 패티 김 노래의 오묘한 매력은 그녀의 가사 딕션이 명료하고 유창한 데서 생성되는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느낀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가진 한미 정상회담이 당초 우려와 달리 비교적 무난하게 마무리돼 한숨을 돌리게 됐다. 회담을 시작하기 전부터 형성된 몇몇 이상기류들 때문에 온갖 험궂은 장면들이 예측되기도 했지만 두 정상은 외견상 큰 불협화음 없이 회담을 이끌어갔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 되새겨야 한다. 한미는 ‘동맹 강화’를 통해 난제들을 풀어가야 할 큰 숙제를 떠안았다. 이제 시작이라는 자세가 중요하다. 당초 예정보다 20분 긴 140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우선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비핵화를 위한 긴밀한 협력에 합의했다. 눈에 띄는 장면은 두 정상이 북미 대화와 관련하여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피스메이커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건의하면서 자신은 “페이스 메이커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좋은 일”이라며 “북과 큰 진전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경제 분야에선 이미 알려진 대로 조선업을 중심으로 양국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정상회담에 동행한 국내 기업들은 조선과 원자력, 항공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공동 펀드 조성, 투자, 기술 협력을 내용으로 하는 총 11건의 ‘제조 파트너십’ MOU·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한미 정상회담을 선방(善防)으로 이끌어 간 배경에는 방미 직전에 거둔 성공적인 한일 정상회담이 긍정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 17년 만에 공동문서를 발표하면서 협력 강화를 천명했다. 두 정상은 공동문서에서 역사 인식의 계승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한미일 안보 공조, 셔틀 외교 재개를 명시했다. 미래 산업 협력, 사회문제 공동 대응, 워킹홀리데이 확대를 통한 청년 교류 활성화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수준에 대한 합의는 미지수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반환을 전제로 우리가 빌려준 주한미군 기지 부지에 대한 소유권 요구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은 새로운 이슈가 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농축산물 추가 시장 개방 문제도 아직 골격이 정리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농축산물 추가 시장 개방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무역 합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원래대로 하기로 했다”고 언급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3500억 달러에 달하는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의 실질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사뭇 해석이 엇갈리는 어정쩡한 상태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펼쳐진 긴장 국면을 생각하면 회담 결과는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행스러운 내용이다.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례 없이 급거 미국을 찾았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 자신이 설립한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숙청(purge) 또는 혁명(revolution)으로 보인다”라는 글을 올려,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렸었다. 어쨌든 한국의 외교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외교는 굳건한 한미 동맹을 그 기둥으로 한다. 군사동맹의 범주를 넘어서 경제 동맹으로서 이해관계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새로운 국제질서에 걸맞도록 동맹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때마침 중심 테마로 떠오른 조선·원전·반도체 등 경제 협력 관계를 보다 강화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당당히 그 중심에 서야 한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국익’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쳐 가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방향은 백번 옳다. 한미 외교, 나아가 한미일 외교 역시 철저하게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국익’을 중심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그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시작된 건 수년전이었다.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했을 때였는데 여러치료로 호전되었다가 최근 다시 재발하였다. 대장암 발병 4개월만에 세상을 떠난 동료의 장례식에 다녀오고부터 였다. 만성위축성 위염이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번에 2일 동안의 밤샘음주로 급성위염이 다시 생겼다. 자율신경검사상 자율신경에너지 저하와 교감신경항진의 긴장된 상태로 두근거림과 함께 불안도 따랐다. 평소에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었고 이번에 항우울제와 불안제가 추가되었지만 입맛이 없고 소화가 안되며 무기력해졌다. 체중이 급격이 감소하고 있는 시점에 내원했다. 한약과 약침 등으로 자율신경기능과 면역기능을 개선하는 치료를 시작하였다. 장과 자율신경 뇌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뇌화학과 에너지대사에 영향을 미친다. 치료로 5kg정도 감소하였던 체중이 서서히 회복되어 원상태로 돌아왔다. 자율신경기능이 회복되고 극도의 우울과 불안이 조금씩 호전됨에 따라 그가 불안한 대상인 죽음을 마주할 힘이 생겼다고 판단되어 지인들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 주변의 많은 죽음에 대해서 나누었다. 슬퍼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에게 물었다. 그에게 “죽은 이후에 어떻게 될 거 같으세요?” 물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 아쉽게도 시간이 다 되어 나누지 못한 연구들을 소개해본다. 죽음학의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저서 (사후생)에서 주로 어린이 환자의 임종을 지키면서 관찰한 공통된 현상과 2만여건이 넘는 근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을 연구하여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견해를 기술한다. 그는 인간의 육체는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차원의 이동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심장내과의사인 핌 반 롬멜은 2001년 의학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심장정지 후 회생한 사람에서의 근사체험)을 발표한다.-네덜란드에서의 전향적 연구)를 발표하였는데 소생한 죽었다고 말한 62명의 환자들은 죽음의 순간을 기억했다. 41명의 환자들은 근사체험의 대표적인 경험을 했다. 근사체험의 항목에는 죽었다는 주관적인 느낌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는지, 신체와 몸이 분리되는 체외이탈을 경험했는지, 터널통과 빛과 의사소통 등을 포함되었다. 그의 연구는 최초의 근사체험에 대한 과학적 연구였고 그 이후에도 많은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저서 '나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의 저자 정신과 의사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는 다른 어떤 치료로도 좋아지지 않았던 환자에게 최면치료를 시작하면서 전생의 환자와 다른 차원의 존재들과 대화한 경험을 기술한다. 그 과정에서 지구의 삶은 관계를 통해서 성장하기 위한 배움터이며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으며 우리가 원하는 배움과 성장을 할때까지 환생한다는 메시지를 듣는다.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런 내용에 대해서 버지니아 대학교 정신과 주임교수를 지낸 이안 스티븐슨은 생후에 전생을 말하는 아이들의 진술이 사실인지 직접 찾아가 검증하는 방식의 인간의 환생윤회에 대해서 40년간 2500례의 연구를 남겨 환생의 증거를 남겼다. 근사체험과 환생에 대한 연구들은 미지의 영역인 죽음이후에 대해 문틈으로 살짝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피할 수 없는 것, 죽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수용하는데 도움을 준다.
낙성대(落星臺·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강한찬(姜邯贊) 장군의 경우다. 80돌 광복절을 지내며 역사계와 언론 동네 일각(一角)에서 잘못된 이름 ‘강감찬’을 뜻(원리)에 맞는 제 이름 강한찬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왜 광복절의 시기에 역사 인물의 이름 자(字) 시시비비일까? 고려 강한찬 장군, 거란 10만 대군을 흥화진에서 깨고 이듬해 재침(再侵)한 적을 귀주대첩(1019년)으로 박살냈다. 충무공 이순신, 고구려 을지문덕과 함께 ‘구국의 세 영웅’ 중 한 분이다. 낙성대는 별(星 성)이 떨어졌다(落 낙,락)는 강한찬 장군 태생(胎生) 설화의 지명이다. 당시는 쥐새끼처럼 고려에 찍소리도 못 내던 왜(倭·일본) 역사 열등감의 극치였다. 그래서였을까? 워낙 오래 입에 붙은 이름이라 강한찬 이름이 낯선 이들도 있겠다. 저 이름 자(字)의 ‘邯’은 중국 역사도시 ‘한단’, 대학입시 국어 때문에 기억하는 한단지몽(邯鄲之夢)의 그 ‘한’이다. 어떤 이가 한단에서 어떤 도사의 베개를 빌려 잠깐 잠들었던 사이에 부귀영화의 꿈을 꾸었다는 고사, 부귀공명의 덧없음을 이른 것이라고들 푼다. 외래어처럼 한국어의 주요한 갈래인 한자어에서, 또 중국어도 邯(의 발음)은 ‘한’이다. 한자발음 표기법(발음기호)인 반절(反切)로 邯은 호안절(胡安切), ‘ㅎ’과 ‘안’을 합쳐 ‘한’으로 읽는다. 일본은 邯을 ‘간’이나 ‘칸’으로 읽는다. 한자가 전해진 경로가 달라 생긴 차이다. 강한찬이 ‘강감찬’이 됐다고 보는 까닭이다. ‘달다’ 뜻 감(甘)자가 邯에 들어있어 영향을 주기도 했겠다. 허나 邯을 ‘한’ 아닌 다른 소리로 읽을, 음운(音韻)과 의미상의 이유 없다. 언덕 阝(부)는 땅이름의 부속글자로 많이 쓰인다. 교묘한 언어의 공작(工作)이나 계략, 말장난 같은 (역사)왜곡일 것이다. ‘역사의 광복’이란 주제가 떠오른 이유다. 네이버의 한자사전은 이 邯의 풀이로 먼저 ‘땅 이름 감’이, 다음 뜻으로 ‘조나라 서울 한’이 올라있다. 한자 역사와 제자(製字·글자 지음), 작동의 원리를 아는 이들이 한숨짓는 대목이다. 제대로 된 자전에서는 邯을 ‘감’자 발음 목록에서 찾을 수 없다. ‘한’ 발음으로 찾은 邯에는 ‘조나라 서울 한’만 있다. ‘감’이란 풀이는 아예 없다. (민중서림 한한대자전) 그 사전은 한단지몽 한단침(枕·베개) 한단지보(邯鄲之步·남 따라하다 제 걸음도 망가졌다는 고사) 한단학보(學步) 등의 용례를 보여준다. ‘감’ 발음 어휘는 없다. 네이버 한자사전이 ‘감’ 발음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이리라. 그 사전이 (강한찬을 ‘강감찬’으로 잘못 쓴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을 따라) 틀렸다는 논의다. 이를 보고 어떤 이들은 “거봐, 강감찬이 맞지?” 우기기도 한다. 이견(異見) 있다면 (논리적으로) 반문해주기 바란다. ‘뜻’을 담는 이름의 다른 얼굴은, 인간의 순수한 염원(念願)이다. 스승인 문자학 바탕의 국어학자 故 진태하 선생의 가르침이다. 중국의 역사와 법(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강효백 교수의 통찰이기도 하다. 조롱기 짙은 저 장난질의 ‘강감찬’을 이제 역사에서 지운다. 낙성대의 강한찬 장군을 다시 우러른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가까이 지났다. 그러나 참변으로 아들·딸과 형제·자매 등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과 경찰 등 공직자들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태원 참사 현장 지원 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젊은 소방관이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1일자 5면, ‘이태원 참사 출동 소방관, 실종 10일 만에 숨진 채 발견’) 20일 낮 시흥시 금이동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인근 교각 아래서 숨진 30대 초반 소방관을 경찰이 발견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긴 뒤 연락이 끊어졌고, 10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며 “(저의) 부모님은 제가 그 현장을 갔던 것만으로도 힘들어하시는데 희생자들의 부모님은 어떤 마음일까. ‘이게 진짜가 아니었으면’이라고 생각했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당시에도 단순한 충격과 스트레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PTSD)라고 할 수 있는 고통, ‘감당이 안 될 정도’의 충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불안장애로 고통을 겪던 또 다른 소방관도 생을 마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고성소방서 소속 40대 소방관이 지난달 29일 도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SNS를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소중한 생명이 공공의 책임으로 희생되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유가족들 만큼이나 참사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현장에서 분투했던 이들의 상처도 국가가 돌보았어야 한다”고 지적한 뒤 “경기도 소방대원들의 마음 건강도 더 세심하게 살피고, 곁을 지키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도 성명을 발표, 참사 희생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헌신했던 모든 구조자들의 심리적·정서적 트라우마를 방치하고 치유와 회복을 도외시했던 지난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생각도 같다. “상상조차 어려운 고통과 싸우며 버텨온 젊은 청년을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진다”면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국가적, 집단적 트라우마를 온전히 마주하고 치유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과 심리 지원체계를 충분히 구축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난과 대형사고 등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와 유가족, 구조대원과 관계자들을 위해 제도적 안전망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과 김 지사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구조대원과 관계자 등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어디 사고와 재난 현장뿐이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수많은 공직자들이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업무상 우울·적응장애 등) 인정 공무원 수는 274명(2022년 기준)이었다. 이는 업무상 정신질환 전체 요양자 수의 11배였다. 같은 해 업무상 이유에 따른 공무원 자살 순직 신청은 49건이었다. 이 가운데 22건만 순직으로 인정됐다. 심각한 것은 1년 전에 비해 약 2배나 늘었다는 것이다. 2021년은 26건(승인 10건)이었다. 지난 6월 16일 국회도서관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민주당 노동존중실천단 주최로 열린 국회 긴급토론회에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공무원, 교원, 소방 등 공무원 민원 응대 대책 마련을 위한 정기적인 실태와 기초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장 공무원들이 불안장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는 일이 일어나자 정부는 이태원 참사 현장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약 3300명 정도를 대상으로 후속 심리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공직자들의 죽음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가 적극 나서기 바란다.
답은 없습니다. 옳음도 그름도 그러합니다. 생각 따라 다르고, 처지 따라 바뀝니다. 누군가에게는 절반이나 마셔버린 술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절반이나 남은 술병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술병이 ‘벌써’가 되기도 하고 ‘아직’이 되기도 합니다. 말 역시 그러합니다. 뜻을 전하기 위한 게 말이지만, 되려 뜻을 왜곡하는 게 말이기도 합니다. 말이 말을 뒤집고 말이 말을 감춥니다. 뒤집고 감춘 건 말인데, 뒤집히고 멀어지는 건 사람입니다. 말을 아끼고 가려 할 까닭이 거기 있습니다. 사랑도 이별도 출발점은 말입니다. 전쟁과 평화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선전포고든 평화협정이든 말 아닌 게 없습니다. 말이 말을 낳고, 말이 말을 버립니다. 낳은 말도 버린 말도 사람의 것인데, 낳음과 버림의 끝에는 사람은 없고 말만 살아 날뜁니다. 날뛰는 말 뒤로 사람이 숨으면, 말은 흉기가 되고 세상은 난장판이 됩니다. 한 번 뱉은 말은 끝내 담을 수 없습니다. 아낄수록 좋은 게 말입니다. 진심은 말이기보다 침묵에 가깝습니다. 감정에도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사랑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끝내 붙잡아야 할 인연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놓아야 할 짐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사랑이 ‘충만’이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행복 역시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끼 밥상에서 웃음을 찾지만, 어떤 사람은 일확천금을 쥐고도 허기를 느낍니다. 우습게도, 누군가의 ‘간절’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입니다. 그리 보면, 행복은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충분한가’의 문제일지 모릅니다. 삶의 무게를 견디는 방식 또한 제각각입니다. 어떤 이는 울음으로 버티고, 또 다른 이는 침묵으로 견딥니다. 버티고 견디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남의 답을 들먹입니다. 들먹인다고 해서 그 답이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세상살이에는 답이 없습니다. 없어서, 우리가 살아내는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르면서도, 답 없는 길을 저마다의 발걸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산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라 불리는 제도는 ‘정답 없음’을 인정한 체제입니다. 그런 이유로, 다수의 결정이 늘 옳을 수 없고, 소수의 결정이 언제나 그르지 않습니다. 서로의 답을 이해하려 애쓰는 게 미덕인 까닭도 그래서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옳음은 숫자가 아니라 방향에 있습니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살피는 마음에 있고, 혼자보다 함께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에 있습니다. 이를테면, 온갖 반칙과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원칙과 존중과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지극한 마음이랄까요. 그렇다고 틀림조차 인정하자는 건 아닙니다. 다름과 달리, 틀림은 전혀 별개의 것이어서 타협하거나 인정할 수 없습니다. 실수는 이해할 수 있어도 살인은 용서할 수 없음과 같은 이치입니다. 틀림의 뿌리는, 속이고 훔치고 때리고 빼앗는 모든 짓에 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게 도덕과 법률입니다. 도덕이 다름을 살피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법률은 틀림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다름과는 동행해도 틀림과는 함께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답 없는 길 위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건 결국 사람입니다. 그것이 길을 길답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