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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의 다정한 편지] 깊은 밤의 참치캔

 

방 안의 공기가 답답해 밖으로 나갔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길고양이 한 마리가 마루 끝에 앉아 울고 있었다. 인기척 소리가 나면 도망가 버리던 녀석인지라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과 배는 하얗고 등은 까만 고양이었다.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내 방을 향해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배고파? 아무것도 못 먹었어? 라는 내 물음에 말귀를 알아듣는 듯, 녀석은 더 큰 소리로 야옹, 야옹, 쉴 새 없이 대꾸했다. 그 모습이 꼭 배고파 보채는 아이 같았다. 사람 먹는 것밖에 줄 것이 없어 한참을 우왕좌왕하다 주방을 뒤져 참치캔 한 개를 들고나왔다.

 

참치캔을 따는 동안, 기다리는 녀석의 눈빛은 집요하고 진지했다. 어찌나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덩달아 내 마음도 조급해졌다. 드디어 빼곡히 들어 찬 참치 살이 드러났다. 녀석에게 내밀자, 고개를 박고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굶었던 걸까? 참치캔 한가운데를 핥는 소리가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 같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캄캄한 마당은 더 스산하고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사방이 고요한 밤이면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빈 마당으로 다 모여드는 것 같았다. 집을 떠나 잠시 머무는 이곳은 시골이라서 그런지 계절의 변화가 눈에 더 잘 보였다.

 

도시의 아파트였다면, 배고픈 짐승의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땅에서 멀어진 높은 곳에서 사는 우리에게 저 소리가 닿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물론 시골집이라고 해도 밖으로 나가보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가끔 고라니 소리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고라니가 사는구나! 라고, 무심히 흘려듣고는 했다. 그런데 저 녀석을 보니, 다가올 추위가 걱정되었다. 산속이든 길 위든 먹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춥고 배고픈 생명들이 견뎌야 하는 겨울은 가혹한 계절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며 저 고양이는 방문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을까.

 

겨울을 견뎌야 하는 건 고양이만의 일이 아니다. 산속의 고라니는 얼어붙은 땅을 긁어 묵은 풀뿌리를 찾아낸다. 전깃줄 위에 잔뜩 몸을 부풀린 참새들은 체온을 잃지 않으려고 서로 가까이 붙어 밤을 버틴다. 바닷가 갈매기는 파도에 떠밀려온 작은 먹잇감을 찾아 해안을 맴돌며 겨울을 난다. 멀리서 보면 고요한 풍경 같지만, 사실 그 모든 움직임은 살아남기 위해 치러내는 치열한 일상의 전투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고요한 풍경 속에서도, 모든 생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겨울을 견디게 될 것이다. 추위를 막기 위해,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살아내는 일이 유독 애달프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나는 사료 한 포대를 주문했다. 깊은 밤, 한 생명이 굶주림에 지쳐, 내 곁에 와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살고 싶다는 간절한 구조요청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다큐에서 본, 남극의 황제펭귄이 생각났다. 서로의 몸을 밀착하고 자리를 바꿔가며 추위를 이겨내는 ‘허들링’을 하는 장면이었다. 겨울은 혼자 건너기엔 너무 긴 계절이다. 동물도 사람도 이 겨울을 무사히 건널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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