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신호탄을 쏘아 올린 대출 금리 인하 행렬에 주요 은행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5일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낮추고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압박도 한층 거세진 여파로 해석된다. 이번 금리 인하 조치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시 가팔라질 수 있어 은행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금리 변동은 언제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난제다. 은행권의 금리조정과 함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영리한 정책 수단이 발휘되길 기대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이번 주 가계대출 상품의 가산금리를 낮출 예정이다. 인하 폭은 최대 0.2%포인트(p) 정도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리 인하 동향은 우리은행에서 시작됐다. 우리은행은 한은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가 결정된 다음 지난달 28일부터 5년 주기형 주택담보대출 상품 신규 신청 시 가산금리를 0.25%p 인하했으며, 5일부터는 개인신용대출 상품의 금리도 0.2%p 내릴 예정이다. KB국민은행도 이날 은행채 5년물 금리를 지표로 삼는 가계대출 상품의 금리를 0.08%p 낮췄다.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시장금리 하락분을 최대한 빠르게 대출금리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은행권은 가계대출 총량 기준이 새롭게 설정된 올해 초부터 가산금리 인하, 우대금리 확대 등을 통해 대출 금리를 조금씩 낮춰왔다. 하지만 그 폭이 미미해서 차주들이 금리 인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기준금리가 지난해 10월부터 세 차례 떨어지면서 2%대에 진입했음에도 은행들의 가계대출 금리는 여전히 4%대에 머무르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지난 1월 취급한 가계대출 금리는 평균 연 4.436%다. 경기 침체로 국민은 곡소리가 나는 판에 은행은 높은 예대 금리 차로 인한 역대급 실적을 올려 임금 인상과 성과급 잔치를 이어 왔다. 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의 임금·단체협약 결과 일반직 기준으로 전년보다 0.8%포인트 높은 2.8%의 임금인상률을 결정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올해 성과급으로 기본급의 280%를 책정했다. NH농협은행은 통상임금 200%에 현금 300만 원을 주기로 했다. 은행들이 높은 예대 금리 차에 높은 수익을 올리는 데 대한 국민 여론은 악화일로인 가운데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압박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4일 “대출 금리도 가격이기 때문에 시장원리는 작동해야 한다”며 “기준금리 인하를 (대출 금리에) 반영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총장도 지난달 26일 브리핑에서 우리은행의 선제적 인하 사례를 언급하며 “시차를 갖고 우물쭈물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은행들의 금리 인하에는 심각한 걸림돌이 있다.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 가계대출 증가세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지난달 27일까지 2조 6929억 원 증가했다. 금융권의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액은 5조 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전통적으로 가계대출 비수기에 속하는 2월에 대출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이다. 은행권의 금리 변동과 가계대출 증감은 정확하게 풍선효과로 작동한다. 과도한 예대 금리 차로 인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은행권이 가계대출 증가 우려를 빌미로 금리 인하에 미적거리는 모습은 현실이긴 하지만 얄밉기 짝이 없는 장면이다. 일부에서는 은행권의 과도한 수익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투자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은행 대출 금리 인하와 함께 국가의 재정 확대 정책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최근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집행에 경제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출 금리는 인하돼야 한다. 그리고 이에 비례하여 나타나는 가계대출 증가도 통제돼야 한다. 금융당국의 용의주도한 정책 능력이 필요한 때다.
자동차가 자율 주행하고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 이는 오랫동안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어느 샌가 현실이 되어 우리 생활 속으로 훅 들어오고 있다. 얼마 전 오픈AI는 인간처럼 추론할 수 있는 인공지능 쳇GPT-5를 공개했다. 이는 기계가 더 이상 프로그래밍된 작업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AI는 우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간단히 ‘Yes’, ‘No’로 답할 수 없지만 필자는 과감히 ‘No’라고 말하고 싶다. 기술이 제 아무리 정교해진들 우리 인간 경험의 미묘한 뉘앙스를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있다. 최근 데이트 앱의 전 세계 사용인구가 16%나 감소했다. 이 현상은 스페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왜 그러할까? 이 나라에 사는 싱글들은 ‘메르카도나(Mercadona) 플러팅’을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카도나 플러팅’이란 오후 7~8시에 대형마켓 체인인 메르카도나로 쇼핑을 떠나 카트에 파인애플을 담음으로써 “나는 진지한 만남을 원해요”라는 신호를 상대방에게 보내는 전통적 관행이다. 일종의 ‘슈퍼마켓 사교’인 이 방식으로 회귀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화상이나 알고리즘 보다 실제적인 접촉을 통해 상대방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기술이 제아무리 진보해도 진정한 상호작용을 원하는 인간의 욕구를 억누를 수는 없다. AI는 탁월한 창작으로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있다. 하지만 예술가의 영혼까지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인간의 경험을 표현하는 그림, 음악, 문학에는 우리의 감정인 고통, 기쁨, 꿈 등이 투영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AI는 스타일을 모방하고 기술을 재현할 수는 있지만 느끼거나 초월할 수는 없다. 기업가적 전략에는 AI가 재현할 수 없는 일정 이상의 직관과 모험이 중요하다. 혁신은 종종 대담함, 즉 ‘클리셰(cliché: 진부함)’를 깨부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불타는 창의 정신으로 현실을 탈바꿈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시장을 흔들고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하게 된다. AI는 인간의 존재를 향상시키기 위해 고안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AI가 인간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교육은 미래 세대가 AI와 공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필수 영역이다. AI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비판적 사고, 창의성, 공감과 같은 인간 고유의 특성을 길러주는 장이 되어야 한다. 또한, AI의 개발과 사용을 관리하기 위한 윤리적, 규제적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책임, 개인정보 보호, 공정성의 문제를 쟁점화 해야 한다. 결국 AI의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AI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반복적인 작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단 AI 시대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인간만의 독특한 감성과 상호 연결 욕구, 그리고 상상력과 창조력은 여전히 우리 존재의 핵심이다. 미래 역시 우리 후세가 인간답게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AI를 우리의 적이 아닌 동맹으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가평군은 수도권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각종 중첩규제로 인해 발전이 제한돼 왔다. '수도권정비계획법', '환경정책기본법', '한강수계법', '군사기지및 군사시설보호법' 등에 따른 각종 규제가 지역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해서다. 그 결과 가평군의 재정자립도는 18.3%에 불과하며 인구소멸 위기 지역으로 분류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30%를 넘어선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제 과거의 일로 마감하려 한다. 가평군은 특히 2025년을 기점으로 희망한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월5일, 가평군은 2001년이후 24년만에 군을 상징하는 새로운 Cl(상징물)를 선포했다. 새롭게 변경된 Cl는 도시명 '가평'과 이니셜'G'를 결합해 가평이 지닌 에너지와 역동성을 표현했다. 이는 가평군의 미래 지향적이고 희망적인 이미지 강화와 차별화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올해부터 가평군은 접경지역으로 포함되면서 1가구 2주택 예외등 각종 세제 혜택이 적용되며 산림규제 완화로 수도권 인구 유입도 기대된다. 오는 4월과 5월에는 경기도장애인체육대회와 경기도체육대회가 가평군에서 열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가평군의 핵심산업인 관광문화산업도 자라섬 꽃 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와 함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생활인구가 100만명을 초과하는 등 연간 1000만 명 시대가 가사시화 되고 있다.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국비 유치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올해 '2025년 가평군 공모사업 종합계획'을 수립해 역대급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1035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국도 75호선 가평-청평 도로건설공사 기본 설계(안)'을 마련하고 이달 5일 주민설명회도 개최했다. 이 사업은 청평면 고성리 가평대교에서 가평군 달전리 상수도사업소 까지 총 연장11.9km 구간을 대상으로 선형불량 지역에 터널 2개소와 교량 7개소를 신설하는 등의 대규모 도로 정비사업이다. 이와함께 가평-현리, 상판-적목간 지방도 개설과 마장-목동간 국도 76호선 개량사업도 계속 추진중에 있다. 이들 사업은 가평군민의 숙원사업으로서 지역발전과 군민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될것으로 기대된다. 가평군은 그동안 많은 성과를 이루었으며 이는 군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력과 애정어린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은 민선 8기 동안에도 군민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수 있도록 변화를 선도하며 더욱 발전된 가평군을 만들어 가겠다. 저는 올해 초 6개 읍·면을 순회하며 진행한 '주민과의 만남'에서 그 어느 때보다 군민여러분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지역 현안과 민원을 세심하게 살폈다. 이를 토대로 830여 공직자와 함께 더욱 열심히 뛰며 가평군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그러나 가평군의 희망찬 설계는 저와 공직자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군민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력이 있을때 비로소 더 큰 성과를 이룰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도약하는 가평군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동참을 부탁드린다. 저는 올해도 군민여러분과 함께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서 가평군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 군민 한분 한분의 기대에 부응하고 가평군 성장발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군정을 펼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것을 약속드린다.
“나는 아침, 점심, 저녁 이 일상의 완고함과 씨름하고 있다. 축복받기 전에는 나날을 그대로 흘려보내진 않겠다. 천천히 말 없는 시간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다.” '오랜 슬픔의 다정한 얼굴'을 읽었다. 해야 할 일들은 머리를 짓누르고 정리되지 않는 일상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허덕이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날, 잠시 짬 내어 읽는 시집 한 줄이 마음에 위안을 줄 때가 있다. 오늘 아침은 어쩐 일인지 싯구보다 시집 뒷면에 수록된 작가의 삶이 더 눈에 들어온다. 칼 윌슨 베이커(Karle Wilson Baker, 1878-1960) 이야기다. 미국 아칸소주 리틀락에서 태어나 텍사스 남부에서 자란 문인으로, 시인이자 소설가 아동문학가이기도 했던 그는 1931년 퓰리처상 시 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그가 유년기를 보냈던 1880년대의 리틀락은 한창 철도가 놓이고 빅토리아풍 저택들이 들어서며 확장되고 있던 분주한 도시였다. 교사였던 부모는 도시로 옮긴 후 식료품점 점원으로 일하다 회사를 일구어내기에 이른다. 작가가 꿈이었던 어머니의 응원으로 칼은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푹 빠져 지낸다. 외가가 아칸소주 잭슨빌 근처 농장에 있었던 터라 기차여행을 종종 하곤 했는데 칼은 이 여행을 무척이나 즐거워했다고 한다. 시골길과 농장을 거닐며 어린 시절 자연의 아름다움과 다정함에 푹 빠져 지낸 까닭인지 그의 시 곳곳에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 나온다. 시카고대학에서 1년간 수학할 기회를 얻기도 하는데, 마침 그때는 자전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라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달리며 소설가, 극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문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여성이 글을 쓰기 쉽지 않던 시기에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부모님 병간호로 집에 머물러야 했던 시기에도 공부나 일은 잠시 접었지만 시 쓰는 일은 어떻게든 이어간다. 집이 화재로 전소해 매일 썼던 글을 모두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지만 여전히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1907년 결혼한 후로는 아이들 키우며 가족과의 일상을 소재로 한 글을 쓰고,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일할 때에는 강의와 글쓰기를 병행한다. 아동용 교재와 학습용 교재 제작에 시간을 써야 했던 시기에도 에세이와 소설 집필을 이어간다. 문자를 다루는 일이라는 측면에서 얼핏 같은 일처럼 보여도 실상 문학적 글쓰기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 그것들을 일상의 업무와 병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1960년 82세로 눈감을 때까지 집안일, 학교일, 때마다 상황에 맞추어 오가면서도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칼 윌슨 베이커는 당대 동부 남성 중심이었던 출판계 구도를, 서부 지역 그리고 여성 작가들에게까지 끌어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젊은 시절 시나 에세이 등 짧은 글에서 시작해 동화, 교재 집필 등을 거쳐 마침내 가족서사와 역사서사까지 다다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마음에 담고 있는 일이 진척이 없어 답답할 때가 있다. 상황도 여의치 않고 일상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아 어지러울 때가 많다. 그래도 시간의 힘을 믿어 보자. 사소해 보이는 일상이 쌓여가는 시간을 가벼이 여기지 말자. 꿈을 좇는 과정을 더디지만 계속해 보자. 나만의 속도에 주의를 기울이자. 산책도 하고 가끔은 한눈을 팔아도 좋지만, 오직 유념할 일은 꿈을 향해 가는 이 길을 지속하느냐 마느냐일 뿐이다. “나무와 산책한 뒤 오늘 내 키가 조금 더 자랐다.”
경기도가 중앙 지방시대위원회에 2조 6000억여 원 규모의 2025년 경기도 지방시대 시행계획을 제출했다. 시행계획에는 지역 간 불균형 해소와 지역맞춤형 발전을 도모하고 도민에게 더 고른 기회를 제공한다는 복안이 담겼다. 도는 이번 계획을 통해 제3차 지역균형발전사업,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 등 주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기회의 경기’ 실현이라는 목표가 잘 구현돼 고질적인 불균형 해소에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내길 당부한다. ‘손잡고 나아가는 기회의 경기’라는 비전 아래 마련된 ‘2025년 경기도 지방시대 시행계획’은 5대 전략, 22대 핵심과제, 136개 세부사업으로 구성됐다. 5개 전략 주요 목표는 사람과 기업이 성장하는 탄탄한 사회경제적 토대로 구축과 누구든 어디서나 편안한 일상을 누리는 질 높은 삶의 터전 창출이다. 도는 민선8기 주요 공약사업과 중앙정부의 지방 공약 등을 포함한 세부사업 추진을 위해 국비, 지방비, 민자 포함 총 2조 6136억 원의 투자 계획을 수립했다. 제3차 지역균형발전사업은 도내 저발전지역인 가평·양평·연천군, 포천·여주·동두천시의 산업경제, 관광인프라, 도로교통, 문화체육, 교육복지 등 주민 삶의 질과 지역경쟁력을 높이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사업은 포천시 태봉근린공원 조성 사업으로 도·시비 95억 원과 민간자본을 병행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구체적으로 공원 부지에는 커뮤니티 광장, 공영주차장, 생활 SOC뿐만 아니라 지방소멸대응기금과 연계한 에듀케어 플랫폼이 내년에 조성된다.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은 도내 인구감소지역인 가평·연천군, 인구감소관심지역인 포천·동두천시에 기반 시설 조성과 지역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추진한다. 특히 침체된 경기와 맞물려 인구 유출이 심화 중인 연천군에는 2곳뿐인 목욕탕 중 신서면 진주목욕탕이 폐업함에 따라 1층에 목욕탕과 북카페를, 2층에 외국인 게스트하우스를 조성해 외국인 계절 근로자, 외출 나온 군 장병,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해당 계획은 지난 25일 경기도 지방시대위원회에서 심의·의결을 마친 것으로서,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수립하는 법정계획이다. 도는 이번 계획을 통해 도민 주도 행정체계 구축, 인재가 성장하는 교육환경 조성, 첨단 산업 중심의 성장 동력 확보 등 여러 분야에서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전국 최대의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정책 콘셉트는 ‘기회’다. 김 지사는 최근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은 임계치를 넘었다”며 “권력기관, 공직사회, 정치권에 이르는 기득권 공화국을 해체하고 기회 공화국으로 나아가야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대통령실, 기획재정부, 검찰, 전관 카르텔, 거대 양당의 기득권과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제안이다. 경기도의 ‘2025년 경기도 지방시대 시행계획’은 김동연 지사의 이 같은 개념과 맞닿아 있다. 시행계획을 통해 도민 주도 행정체계 구축, 인재가 성장하는 교육환경 조성, 첨단 산업 중심의 성장 동력 확보 등 여러 분야에서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국가사회의 기득권 폐해가 임계치를 넘었다는 김동연 지사의 문제 인식은 백번 옳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계각층에 무참히 번지고 있는 무한 갈등 국면에서 복원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징후마저 뚜렷하다. 경기도가 그동안 백방으로 해법을 모색해온 균형발전 문제만 하더라도 이젠 정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2025년 경기도 지방시대 시행계획’이 지역 간 불균형 해소를 견인해가는 강력한 마중물로 작동되길 기대한다.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최후진술을 끝으로 탄핵심판 변론기일이 종료됐다. 지난 해 12월 14일 국회가 탄핵소추의결서를 헌재에 접수하면서 시작된 탄핵심판은 두 차례의 변론준비기일과 11차례의 변론기일을 거쳤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선관위 등 헌법기관에 대한 계엄군 투입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 된 탓에 헌법상 쟁점은 크게 없어 보였으나, 헌재가 11차례의 변론기일을 진행한 것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안의 중대성 측면에서 정치적 고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11차례의 변론기일 과정을 되돌아보면 탄핵심판의 본질에서 벗어난 정치적 주장이 대부분이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권한은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이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비상계엄이 수반하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엄청나고 일시적으로 헌정질서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12.3 비상계엄에서 윤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헌법기관을 침탈하고, 국회의원 등 정치인과 언론인 등에게 체포 명령을 내린 것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 되는지 판단하는 것이 탄핵심판의 본질이다.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 야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 등은 탄핵심판의 본질을 벗어난 정치적 주장일 뿐이다. 탄핵심판 과정은 윤 대통령에게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마치 본인이 왕조시대의 군주인양 망상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벌인 참담한 실수에 대해 헌법과 국민들에게 참회할 마지막 기회마저 외면했다. 탄핵심판 내내 ‘통치행위’, ‘계몽령’ 타령 등 갖가지 궤변을 쏟아내며 국민을 염장지르는 행태만 보여왔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68분 동안 A4용지 77장에 달하는 원고를 읽어내린 그의 최후진술은 최악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위헌 위법행위가 가져온 대한민국의 위기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국민에 대한 형식적 사과조차 하지 않는 모습은 경악스러웠다.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더 나간 발언도 이어갔다. 최후진술에서 그는 ‘간첩’이라는 단어를 무려 22번 언급했다. 민주당은 물론 자신을 반대했던 모든 집단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그는 “저는 잠시 멈춰 서 있지만 많은 국민들, 특히 우리 청년들이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주권을 되찾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거나 “엄동설한에 저를 지키겠다며 거리로 나선 국민들을 봤다”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일부 극우세력에 지지를 호소하며 일말의 뉘우침도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의 발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지금은 헌재의 시간이다. 모든 변론 절차는 마무리 되었고, 재판관 평의 절차를 거쳐 최종 선고만 남았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경제, 민생, 안보, 외교, 사회통합 등 대한민국 전체에 드리워진 위기의 그림자를 확실하고 명쾌하게 걷어내야 한다. 헌재는 헌법적 가치와 헌법적 근거에만 충실하기 바란다.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비상계엄 행위에 대해 위헌, 위법 여부에만 충실한 평의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고, 일부 이견이 있다면 며칠 밤을 세워서라도 만장일치 의견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12.3 내란세력이 만들어 논 사회 갈등을 말끔히 봉합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서까지 국헌문란과 헌정질서를 파괴한 행위가 면책된다면 대한민국에서 내란은 끊이지 않고 재발될 것이다. 탄핵이 기각된다면 윤 대통령은 복귀 후 바로 비상계엄을 발동할 것이 뻔하다. 국회는 봉쇄되고, 언론은 통제되며, 집회결사의 자유는 중지될 것이고, 정치인 법관을 망라하고 반대세력은 모두 체포될 것이다. 경제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이것이 이번 탄핵 평의의 본질이다. 대다수 법조계 인사들이 만장일치 탄핵을 예상하는 이유다. 대한민국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져 낼 역사적 책무가 헌법재판관들에게 지워진 것은 안타깝지만, 나라의 생명줄인 헌법을 수호한다는 일념으로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 확신한다.
저마다 우리 사회의 위기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누구나 위기가 나날이 심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각종 차별과 혐오로 인해 갈등하고 분열된 우리 사회는 마침내 모든 이슈에서 극화되는 양상마저 보인다. 토론과 이해, 의견 수렴,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상호적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 발화가 난무하고 있다. 의사소통은 이성에 기반을 둔 대화에서 가능하다. 대화는 상호 존중에 기반을 둔다. 자신과 타인을 연결해 공동체를 유지한다. 사적 영역과 공정 영역을 연결하는 여론도 대화에서 시작된다. 우리 편이 아닌 다른 편은 곧 적이 되는, 그래서 설득하지 않으려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공허하다. 흔히 언론은 제4부로 불린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각각이 독립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는 삼권분립은 현대 민주주의의 토대다. 여기에서 언론은 삼권에 대한 감시를 통해 권력 남용을 막는다. 언론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삼권 못지않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시민의 알 권리를 대리하기 때문이다. 언론 자유에 대한 근거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삼권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게 할 뿐 아니라, 여론을 삼권에 전달하기도 한다. 공론장으로서 언론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제4부로서 언론은 균형 잡힌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언론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은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현재 여러 민주주의 사회는 심각한 도전과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상당 부분 언론 현실과 관련이 있다.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주의,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여론 형성과 전달이 제대로 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많은 언론보도는 ‘열린 입과 닫은 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엇을 듣고 생각해야 하는지, 무엇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기록하는 기자는 많지만, 질문하는 기자를 찾기 어렵다. 사실을 보도하려 애쓴다고 하지만, 사실 너머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드물다. 그러다 보니 언론보도가 사회 갈등과 분열의 근거로 제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현재 사회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고 비판받는 언론의 전통적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사회 통합이다. 즉 언론은 다양한 의견과 가치를 반영해 보도한다. 또한 토론의 장을 제공해 시민들 간 의사소통을 증진시키고 상호 이해를 돕는다. 이를 통해 공동체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공동체 의식과 신뢰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사회 통합 기능은 현재와 같은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강조될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는 국내외 사례에서 민주주의 사회체제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목격해 오고 있다. 공고하다고 믿었던 민주주의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민주적 절차는 사라지고 오직 세 대결만이 부각되는 현실은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깊게 한다. 이에 우리 언론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사회 극화를 조장하는 주장이나 의견을 그대로 싣는 보도가 적지 않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도한다고 하지만, 검증 없는 단순 전달은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 무엇보다 공론장 역할을 방기하는 언론이 여럿이다. 사회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라는 오명은 우리 언론이 자초한 부분이 많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언론의 사회 통합 기능이 강조돼야 할 지금이다.
분류가 잘 된 것은 아름답지요. 이를테면, 계절을 나누고 때와 장소에 맞게 차려입을 수 있도록 정리가 된 드레스룸 말입니다. 엄마의 옷장은 그야말로 옷 무덤이었어요. 나는 엄마의 허락을 받아 옷장에서 꺼낸 옷들을 방바닥에 쌓았습니다. 옷이 든 바구니와 서랍까지 쏟자, 방 한가운데가 봉분처럼 우뚝 솟았습니다. 온갖 색이 뒤섞여 한쪽은 푸르고, 한쪽은 검고 붉어 고르게 자라지 못한 뗏장 같았어요. 헤집어 놓은 옷에서 취향 같은 것은 발견할 수가 없었어요. 엄마의 옷에는 비싼 값을 자랑하는 라벨 대신 고단했던 삶이 붙어있습니다. 쌓인 옷가지는 헌옷 수거함에서 나온 것 같아, 다 갖다 버려도 아깝지 않아 보였는데요. 신기하게도 엄마의 눈에는 버릴 것이 없는지, 자꾸만 내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며, 나는 버릴 것을 더 많이 골라냈습니다. 옷은 날개가 아니었습니다. 무릎이 나오고 보풀이 인, 수많은 계절이 한꺼번에 걸어 나왔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동전이 나오고 포장지가 붙어버린 사탕도 나왔습니다. 다른 옷에 짓눌린 스웨터의 한쪽 팔이 축 늘어져 있고, 치마는 마치 보자기 같았어요. 세탁을 잘못해서 줄어버린 니트와, 늘어진 티셔츠를 다 입을 수 있는 엄마의 몸은 놀랍기만 합니다. 엄마는 몰래 옷을 추려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어요. 내 눈빛을 못 이기고 슬그머니 다시 내려놓기는 했습니다. 입을 것과 버릴 것을 분류하며 엄마의 세월을 갈라놓았습니다. 옷 속에서 시간은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훌쩍 넘나들었어요. 좋은 옷은 아끼느라 못 입고, 낡은 옷은 익숙해서 버리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속옷을 버리지 못했고, 동생과 내가 싫증나서 입지 않은 오래된 옷도 있었어요. 엄마는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딸들, 그 사이에서 날마다 늙어갑니다. 옷을 들출 때마다 엄마 냄새가 났는데요, 그 냄새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았으면, 잠시 헛된 마음을 품었습니다. 낡고 헤진 것들을 골라내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엄마의 옷장, 아니 옷 무덤 속에서 버릴 것과 입을 것으로 분류하는 일이 쉽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습니다. 나의 기준으로는 쉬웠지만 엄마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가치를 매기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한눈에 보이도록 정리한 옷장은 보기에 좋았습니다. 한 사람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옷은, 그가 품은 욕망의 기호로 읽히기도 하지요.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기 좋은 수단이면서 몸의 결점을 숨길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숨기려는 마음은 더한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입을까? 엄마의 옷을 비우는 데는 낡고 헤진 것이 기준이 되었지만, 누군가는 더 아름다운 이유와 의미로 비워내고 정리하겠지요. 환절기의 옷장을 정리하는 일은, 다가오는 계절을 마중하는 일 같아요. 어디만큼 왔는지, 저편을 향해 미리 손을 흔드는 일. 봄을 기다리며 엄마의 옷장을 정리했습니다. 유독 길게 느껴지는 겨울이었어요. 슬픔과 혼돈의 겨울을 지나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조급함이 입니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올 새순을 기다립니다. 선명하게 드러날 색을요. 봄이 오면 비워낸 엄마의 옷장에도 화사한 봄옷 한 벌 들여야겠습니다. 옷장 속에 혹시 운 좋게 내 눈을 피한, 요란한 꽃무늬 스카프 같은 게 걸려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버리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 나의 옷장을 열어볼 차례입니다. 옷장 속에 꼭꼭 숨겨진 나의 색(色)을 보겠습니다.
나 때는 말이다,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것이 빨갱이였다. 학교 화단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는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있었다. 세종대왕, 유관순 동상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다는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더 잘 보이는 곳에 세워졌다. 1년에 한 차례씩 꼬박꼬박 반공웅변대회가 열리면 웅변학원에서 써준 북한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원고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는 했다. 북한에서 날아왔다는 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가져다주면 책받침도, 공책도 푸짐하게 주었다. 잊을만하면 간첩단 사건이 터졌다. 한 가족이 간첩이기도 했고, 심지어 어촌의 한 마을 전체가 간첩이기도 했다. 수지 김이라는 간첩은 홍콩에서 남편을 납치해 북한에 데려가려다 의문사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간첩단 사건 중 상당수는 세월이 한 참 지난 후 재심을 통해 무죄로 뒤집혔다. 수지 김은 간첩은커녕 남편에게 살해당한 억울한 피해자로 밝혀졌다. 간첩 사건은 유독 선거 때 터지고는 했다. ‘간첩’이라는 두 글자는 모든 뉴스를 집어삼켰다. 사회문제든 정치문제든 그 어떤 이슈도 간첩 사건 앞에서는 가십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간첩 사건 뒤에는 어김없이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등 이름은 바뀌었지만 같은 조직인 현 국가정보원이 있었다. 그들이 조작해 낸 간첩단 사건 중 후에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사건만 해도 수두룩 빽빽일 것이다. 나 때는 그랬다. 빨갱이가 가장 무서웠고, 반공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였다. 하지만 어느새 세상이 바뀐 듯했다. 수사기관이 총동원되어, 심지어 재판부까지 하나로 짬짜미로 묶여 무고한 대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넣은 부림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이 흥행에 대성공했다. 빨갱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천만이 넘는 시민이 관람하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그렇게 빨갱이 사냥은 우리 곁을 떠나 도시전설로 남는 듯했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이 바뀌기는 정말 바뀐 것 같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전 대변인인 김민수는 홍장원 전 국정원 제1차장을 가리켜 북한이 보낸 빨갱이라고 했다. 수없이 많은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냈던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의 후신인 국정원의 ‘넘버 투’가 빨갱이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아직은 대통령인 윤석열은 헌법재판소 최후 변론에서 정부를 비판한 모든 행위를 싸잡아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라고 지목한 그들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수십 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레드컴플렉스, 빨갱이 사냥, 반공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빨갱이를 때려잡던 정보기관 이인자가 빨갱이라 공격 받을 정도로 '빨갱이'는 희화화되었다. 대통령이 빨갱이라 지목해도 정신 나간 이의 헛소리 정도로 치부될 정도로 빨갱이의 힘은 희석되었다. 이제 정말 빨갱이는 '라떼'가 된 것 같다. 우울한 현실에서 찾은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지 않을까? 빨갱이가 “라떼는 말이다”의 소재가 되었으니.
이제 웬만한 식당은 테이블마다 키오스크가 있어서 손님이 앉은 채 주문하고 계산까지 한다. 무인커피숍에서는 로봇이 주문한 커피를 만들어 준다. 사무실에서도 많은 일들을 AI가 대신하고 있다. 번역은 말할 것도 없고 기획서 작성, 광고물 제작까지 생성형 AI에 맡겨 본다. 사람은 그저 제대로 되었나 훑어보며 감탄사만 연발하면 되게 되었다. 산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집도 로봇 공정으로 며칠 만에 뚝딱 지어낸다. 부식을 막기 위해 대형 선박의 외관을 세척하는 일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잠수부 대신 로봇이 수행하고 있다. 오픈 AI의 챗GPT를 필두로 저비용 고성능의 딥시크 R1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성형 AI 서비스들이 출시되어 경쟁하고 있다. 이를 직접 사용해보고 효과를 체감하면서 AI 파급력은 커졌고, 우려도 높아졌다.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없애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산업혁명의 전 과정에 등장하였다. 산업혁명기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은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일자리 수는 줄지 않았고 일의 형태가 바뀌어 왔다. 그러나 AI가 일으킨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은 다르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세계경제포럼의 ‘일자리의 미래 2023’ 보고서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생산현장의 일자리를 AI가 대체하게 되더라도 이를 통해 늘어난 수익이 새로운 투자를 유발하면서 새 일자리들을 창출한다고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AI로 인해 새로운 직업도 생겨나고 있다. 데이터 분석가, 머신러닝 엔지니어, 로봇 유지보수 전문가 등이 그것이다. 1970년대 미국의 로봇 공학자 한스 모라벡은 부호화되어 있는 정보는 인공지능에게는 쉽지만 인간에게는 어렵고, 반대로 부호화하기 힘든 정보는 사람에게는 쉽지만 인공지능에게는 어렵다는 ‘모라벡의 역설’을 주장했다. 모라벡 패러독스는 인간이 AI와 더불어 협업사회, 공존시대를 이끌어갈 것을 예상하게 한다. 감성이나 창조성으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사람이 하던 일이었는데 완전히 자동화되어 이제는 인공지능이 전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있다. 인공지능이 사람이 하는 일을 보조하는 일도 생겼고, 사람이 인공지능이 하는 일을 보조하는 일자리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확장하여, 그동안은 사람이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일도 등장했다. e-커머스나 메타버스가 바로 과거에는 불가능했으나 인공지능으로 가능해진 일자리들이다. AI 기술의 발전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어 AI패권을 두고 국가 간 갈등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 달 10일 프랑스에서 개최된 인공지능 정상회의에서 ‘사람과 지구를 위한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인공지능에 관한 선언문’에 미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는 성장지향적인 인공지능 정책으로 미국이 인공지능 기술의 세계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미래 사회에 관한 여러 저술로 주목을 받은 제이슨 생커는 그의 저서 '로봇시대 일자리의 미래'(2020)에서 미래 사회를 로보칼립스(Robocalypse)와 로보토피아(Robotopia) 양극으로 대별하였다. 로보칼립스는 모든 직업이 자동화로 인해 사라지고, 기계가 인류를 멸망케 하는 극단으로 조명한다. 반면 로보토피아는 로봇이 모든 일을 다 하므로 사람들은 무한히 자유를 누리게 되는 세상을 그린다. AI가 불러올 미래는 단지 기술과 일자리 문제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기술 경쟁 너머 자국을 위한 규제와 정책이 맞물리게 되는 지점은 로보칼립스와 로보토피아 사이 어디쯤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