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정보 취득을 유튜브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의존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사용 후기 업로드 등 상품을 비교하는 유튜브 영상이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족한 공신력과 잘못된 정보가 소비자를 울리는 사례가 빈번하다. SNS에 도배되는 후기 형태의 무분별한 상품평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유튜브나 SNS에 오르는 왜곡된 정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인플루언서가 업체 제품을 협찬받아 제작하면서도 광고·협찬과는 무관한 객관적 후기인 것처럼 제품을 소개하는 ‘뒷광고’ 영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뒷광고’로 알려진 ‘기만 광고’는 추천인이 광고주로부터 경제적 대가를 받음에도 이 사실을 명확히 표시하지 않고 광고가 아닌 척 광고하는 행위를 뜻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주요 SNS에 올라온 후기 형태 게시물을 점검한 결과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표시광고법상 기만 광고 의심 행위는 모두 2만2011건이 발견됐다. SNS별 뒷광고 적발 건수는 인스타그램이 1만19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네이버 블로그(9423건), 유튜브(1409건) 순이었다. 특히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등 급성장하는 숏폼 콘텐츠에서의 적발 건수가 3691건으로 급증했다. 적발된 뒷광고 유형으로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부적절한 위치에 표기한 경우(39.4%)가 가장 많았다. 게시물이 협찬·광고로 제작됐다는 사실은 밝혔지만 이를 설명란·더보기란·댓글 등에만 기재한 경우다. 아예 협찬·광고 등 내용을 표시하지 않은 경우도 26.5%에 달했다. 협찬·광고 사실을 흐릿한 이미지나 빠른 음성, 작은 문자 등으로 소비자가 인식하기 어렵게 표시한 경우(17.3%)도 비일비재했다. 제품별로는 화장품 등 보건·위생용품(23.6%)이 가장 많았다. 외식업 등 기타서비스(23.1%), 의류·섬유·신변용품(21.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유튜브는 일반인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뉴 미디어로 성장해왔다. 쌍방향 소통 채널이라는 장점에다가 생생한 동영상 때문에 유명 유튜버에 대한 구독자들의 신뢰성은 대단히 높다. 바로 그 신뢰성을 파고드는 상혼(商魂)이 문제다. 경기신문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한 유튜버의 ‘가성비 무선 청소기 제품 찾기’ 영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영상은 흡입력, 무게 등 유튜버가 정한 평가 기준에 맞춰 여러 제품을 직접 테스트해 보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문제는 유튜버가 비교한 상품들의 구성품 및 제품 연식에 대한 정보가 배제됐다는 대목이다. 최신형 모델과 출시된 지 5년이 넘은 구형 모델을 비교하는 등의 모순이었다. 해당 영상을 시청한 한 시청자는 영상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으면 같은 연식의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며 소비자 피해는 물론 상품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제품 비교 영상의 경우 유튜버들이 수익성 링크를 통해 이익을 얻는 구조일 텐데, 수익을 위해 정보를 편법적으로 제공하는 행태가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다. 공정거래법은 자사 제품을 홍보할 때 타사 제품과 비교하는 것을 위반 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므로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해당 영상이 수익과 연결된다면 문제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유튜브나 SNS는 극히 개인적인 소통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무제한적으로 파고드는 엄청난 파워를 지닌 매체다. 소비자들이 즉각적으로 정보를 상호 검증하기도 힘든 시스템이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순식간에 발휘하는 매개물인 만큼, 이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지불식간에 설득당해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제도적으로 통제할 묘책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클래식의 산책’이란 강의를 듣고자 길을 나섰다. Y마트라는 식료품 판매장 앞을 지나가는데 그 마트에 납품할 식재료를 싣고 온 청년기사가 손수레를 끌고 가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이 시국에 휘파람 불며 일한다!’ 갑자기 젊은이의 인상이 좋아 보였다. 계절은 봄이라지만,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휘파람 불며 봄을 맞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에게도 젊은이처럼 휘파람 불며 일할 때가 있었던가! 과거를 생각하는 길목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어금니가 시리다. 그동안 긍정의 힘으로 나를 끌고 가고자 노력했다지만 휘파람 불며 신명 나게 일을 해본 기억이 별로다. 그런데 고향에서 부모님이 농사지을 때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이 생각났다. 그때 버들피리를 꺾어 불었고 풀 뜯는 소 등을 타고 아버지를 보며 웃었던 기억이 가슴속을 환하게 했다. ‘아버지 쟁기질 하고/ 어머니는 밭둑을 오선지 삼아/ 음표 찢듯 씨앗을 묻고/ 형은 두엄 뿌리고/ 나는 고무래로 흙덮기 하던 땅‘ 이란 시도 그 시절 선물이다. 젊은이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가던 길 가는데, ‘휘파람을 불며 가자 언덕을 넘어/ 송아지가 엄마 찾는 고개를 넘어/ 아가씨 그네 뛰는 정자나무 지나서/ 휘파람을 불며가자 어서야 가자/ 아카시아 꽃잎 향기를 풍기는 언덕을 넘어서 가자. 는 박재홍 가수 “휘파람을 불며”라는 노래가 휘파람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듯 했다. 박재홍은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1947년 무렵 개최된 가수 선발대회에서 뽑혀 가수로 데뷔했다. 그리고 1940년 후반부터 1960년까지 가수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젊은이들이 배불리 먹지도 못했고 입지도 못했다. 그러나 인생의 꿈과 낭만은 있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큰 비전은 없었어도 삶의 진실과 첫사랑의 꿈과 자연 속에서의 희망이 있어 서로 손잡고 노래하며 저 산 넘어 고개를 넘어 언덕(희망) 길을 달리고자 하였다. 1950년에서 60년대 지성인들의 필독서는 사상계(思想界)였다. 사상계는 장준하(1918-/975) 선생께서 사재를 털어 1953년 4월 창간한 것. 선생은 창간호 권두언에서 ‘인간은 복잡하고도 명료한 언어를 사용하며, 개념적 추상적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적이며 적극적인 활동과 반성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적으로는 민주⭑양심세력을 대변했고, 꺾이지 않는 필봉은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5.16 쿠데타 이후엔 독재에 맞섰기에 그만큼 장준하 선생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투철했다고 사람들은 우러렀다. 근래 대한민국 백성 분들의 삶이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넘어 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일까. 가는 곳마다 임대주택과 빈 집이 늘고 있다. 청년들은 서울과 큰 도시로 일자리를 찾으러 누구에게 끌려가듯 떠나고 있다. 농어촌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어 가는데 폐가와 폐인이 없으란 법 있겠는가. 일본 식민지 통치라는 암흑 속에서 신음하던 조선민족에게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다시 빛을 발하게 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6행의 시를 1929년 4월 2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영어로 불러주었다. 동아일보는 “조선에 부탁”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 번 다시켜지는 날에/ 너의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타고르가 조선민족을 위해 써준 이 짧은 시에는 평소 그가 동방(the east)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견해가 따뜻한 등불처럼 반영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동방에서 영원한 빛이 다시 빛날 것이다. 동방은 인류 역사의 아침 태양이 태어난 곳이다. 아시아의 가장 동쪽 지평선에 이미 동이 트고 태양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예언적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피렌체 태생의 랜도어는 1895년 발표한 기행문 21장에서 ‘조선인은 감정 표현을 잘 안 하고,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민족이며 비범한 지성으로 다정다감한 마음씨를 지녔다.’고 평가하며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삶의 질과 문화와 꿈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살펴보라고 마트 앞에서 손수레를 끌고 가던 청년은 은유적으로 암시하며 휘파람을 불었던 것은 아닐까!
얼마 전 은행을 방문했다. 최근에는 창구에서 필요한 은행업무를 보더라도 해당 은행의 앱을 함께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디지털기기에 잘 적응하는 것이 시대적 숙명이다. 하지만 50대인 나도 단말기 화면을 꼼꼼히 읽어가며 업무를 처리하기가 매우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께서 참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얼마 전 한 노인이 예약 없이 미용실을 방문했다가 연이어 거절당한 사연이 전해졌다. 온라인으로 하는 예약이 어려운 탓이다. 이뿐인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기 위한 키오스크 사용법은 낯설고 어렵다. 비행기나 기차표 발권, 비대면 금융거래, 병원 예약 등 온통 온라인 세상인데 노인들의 경우 앱이나 디지털기기를 이용하기도 어렵고 혹 실수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3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노인 중 전자상거래가 가능한 비율은 12.0%, 금융거래가 가능한 비율은 20.2%, 키오스크 활용이 가능한 비율은 17.9%였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들은 키오스크 활용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지난해 서울디지털재단이 공개한 ‘2023년 서울시민 디지털역량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층의 키오스크 이용 시 불편을 경험한 이유(중복응답)로는 ‘선택사항을 적용하기 어려워서’ 52.6%, ‘사용 중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 47.6%, ‘키오스크로는 이용할 수 없는 서비스가 있어서’ 40%, ‘사용 중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어서’ 28%, ‘용어가 어려워서’ 28% 순으로 나타났다. 물론 키오스크 등 디지털시스템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에게 반드시 이와 관련된 교육이 필요하다. 많은 지역사회에서 관련 교육들이 운영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일상에서 마주하는 노인에게 키오스크 사용법을 설명할 수 있는 직원이나 매장 내 다른 손님의 도움 역시 필요하다. 그래서 크게 2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친절한 설명이다. 사람은 누구나 반복학습, 반복행동을 통해 특정지식이나 행동에 익숙해진다. 키오스크가 어려운 노인에게 직접 시연을 보이며 원하는 바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지 시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좋겠다. 말의 속도와 손가락의 움직임이 빠르면 설명의 효과가 줄어들 것이고, 명확한 이해도 어렵다. 할아버지, 할머니란 생각으로 조금 시간을 내어 하나하나 짚어가며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예의가 필요하다. 디지털사회에서 디지털약자인 노인들에게는 우울감이나 소외감, 두려움 등이 찾아올 수 있다. 이런 노인들에게 예의를 갖춘 배려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자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50대에 들어서니 나이의 무게를 조금씩 인지하게 된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더 노인에게 친절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미 대한민국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주민등록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었다. 어린 알파세대부터 노인세대까지 각 세대가 공존하며 잘 살아가는 방법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니 말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미세먼지 없는 경기도를 위해 기후테크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도는 ‘기후테크 100 추진계획’, ‘기후테크 스타트업 육성사업’, ‘경기도 기후테크 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 등 기후테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 중요한 것은 정책 동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이다. 기후테크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고, 전 세계가 경쟁하고 있는 운명적인 레이스다. 반드시 이겨야 할 속도전을 경기도가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 지사는 며칠 전 화성시 ㈜우양이엔지를 방문해 기술개발 현황과 적용 사례 등을 점검했다. 최근 미세먼지 농도 증가로 노인, 아동 등 기후 취약계층의 건강 피해 우려가 커짐에 따라 실질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이뤄졌다.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도는 선제적으로 기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RE100 선언도 했고, 기후테크가 미래먹거리이자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고 “도는 기후테크에 관심을 많이 갖고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기후테크 100 추진계획’은 내년까지 기후테크 스타트업 100개사 발굴·육성을 위해 특별보증사업과 탄소중립 펀드를 통한 금융지원 등 기업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또 ‘기후테크 스타트업 육성사업’은 기후테크 초기 성장 기반 마련을 위해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달 모집에서 1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기도 기후테크 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는 지난 12일 전국 최초로 도의회와 함께 제정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밖에도 도는 제6차 미세먼지 계절 관리제 시행과 3월 미세먼지 저감 총력 대응을 통해 평소보다 강화된 배출 저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울러 공공기관 운영 소각시설 정기보수·소각량 조절, 다중이용시설 실내 공기질 집중관리, 스캐닝라이다 등 첨단감시장비 활용 산업단지 감시 강화 등 3개 분야 10개 주요 과제를 추진 중이다. 경기도는 내달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이클레이(ICLEI·세계도시 기후환경총회)에서 기후테크 기술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후테크 전시회를 추진해 사업화 단계까지 이어지도록 할 예정이다. 한편 김동연 지사는 지난달 ‘기후산업에 최소 400조 원 투자’, ‘석탄발전소 전면 폐지’, ‘기후경제부 신설’ 등 기후경제 대전환 3대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대규모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기후변화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 중 하나로 꼽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후테크 산업은 유럽연합・미국・중국・일본 등이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분야다. 글로벌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무려 2800여 개에 이르고, VC(벤처 캐피털) 투자액은 1560억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은 기후변화대응 지수에서 고작 세계 64위에 불과한 실정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인류가 맞닥트린 심각한 현안이다. 지구촌 어느 국가, 어느 구성원도 피해 가지 못할 변수 앞에서 한국은 여전히 갖가지 사유로 인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경기도가 이 문제에 앞장서서 나서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기후테크는 환경 재앙을 막아내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을 구축하는 산업인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전도가 선명한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기후테크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정책 지원, 투자, 국제 협력, 인재 양성 등이 필수적이다. 경기도가 이를 선도하려면 이 모든 것이 넉넉히 뒷받침돼야 한다. 정치적 구호에 그치거나, 정략적인 계산이 개입해 흔들어서는 안 된다. 기후테크가 경기도의 산업경쟁력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키는 것은 물론 나아가 국제 시장에서 한국이 또 다른 기회를 창출하는 모멘텀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김동연 지사의 ‘기후테크 육성’ 약속이 지속 가능한 정책 동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동하기를 기원한다.
탄핵 선고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나 헌법재판관들 등 헌법기관을 향한 비방과 중상이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이나 헌법재판관들이 중국인이거나 중국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는 헌법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독일 형법의 입법자가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한 동기가 이해가 간다(StGB §188). 나치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공적 기관과 공적 인물들에 대한 “공격”(Der Angriff)을 서슴지 않으면서 무서운 기세로 급성장하는 것을 방치했던 역사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입법은 공적 존재자들에 대한 공격적 표현을 특별히 가중해서 제재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수정헌법 제1조에 대한 해석론은 정반대의 생각을 실현해 왔다. 워렌 코트(Warren Court)는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Newyork Times v. Sullivan) 사건 판결을 선고하면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원고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증명되어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지는 판결들은 공직자로부터 공적 인물 일반으로 법리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 왔다. 이러한 해석은 공적 인물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보다, 공적 인물에 대한 공격을 보호하는 것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법질서는 공적 존재자들을 향한 공격을 가중해서 제재해야 할까 아니면 제재를 감경하고 완화해야 할까? 공적 존재자들은 언론과 다중의 공격에 더욱 노출되어야 할까 아니면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까? 어떤 접근법에 따라 설계된 제도들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보존과 공고화에 더 잘 기여할 수 있을까? 공격 내지는 비판을 받는 상대방이 공적 존재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일률적으로 제재를 더욱 무겁게 하거나 더욱 가볍게 하기로 결정하기에 앞서, 그러한 공격 또는 비판의 목적이 "비방의 목적"인지 아니면 "공익적 목적"인지 판단하는 것이 먼저일 수 있다. 심지어 오해에 기초한 비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진정한 목적이 헌정질서의 수호였다면 자유민주주의를 돕는 비판이 될 수 있다. 그런 경우라고 한다면 헌법기관을 겨냥한 비판적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시민의 자기통치(self-government)의 일부로 보고 허용하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공격들은 헌정질서의 개선이 아니라 헌정질서의 파국을 바라는 민주주의의 적들에 의해 순전한 비방의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익적 목적을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공격까지도 단지 그것이 공적 존재자들을 타겟으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기계적으로 면책의 특권을 부여해 줄 수 없을 것이다. 헌법기관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공격이라면 일반 사인에 대한 공격적 표현보다도 더욱 가혹하게 취급해야 할 수 있다. 명예훼손 사건의 판결들에서 '공익성' 또는 '공익의 목적'이라는 요건은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하자는 취지에 따라 완화되기도 했지만, 헌법기관을 향한 원색적 공격과 건설적 비판을 분명히 구분해서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시기에는 결국 목적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동료 시민들을 상대로 헌법기관을 불신해야 한다는 엄청난 주장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똑바로 밝힐 것을 요구하는 것마저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밭에는 봄이 온다. 봄풀이 돋아난다. 이맘때쯤 농부는 한해 작부 계획을 세운다. 이 밭에는 뭘 심고, 이 밭에는 뭐와 뭐를 같이 심고. 밭에서 자라는 풀들은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서로를 이겨내려는 싸움을 하기도 한다. 풀의 다양한 성질을 잘 알면 아는 만큼 밭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아직 그 정도 수준의 농부는 아니다.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아는 수준이다. 흔히 ‘잡초’라 불리는 풀도 그 성질을 알면 ‘작물’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잡초’가 ‘작물’이 되기도 한다. 같은 풀도 내가 모르고 안 기르면 ‘잡초’고, 내가 알고 기르면 ‘작물’이 되니, 순전히 인간 중심적 작명이다. 그 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고, 약이 되어줄 풀의 입장에서 보면 ‘잡초’라고 눙 쳐버리는 인간이 가엽고 멍청하게 보일 것도 같다. 자신의 무지를 반성하지 않고 ‘너희들은 잡것이야’라고 건방 떠는 인간이 방자하게 보일 것도 같다. 이런 생각을 하기에 나는 이름 모르는 풀을 ‘잡초’라 하지 않고, ‘들풀’이라 부른다. 마치 학생 이름을 외우지 못한 교사가 그 학생을 ‘어이, 잡놈’이라 부르지 않고, ‘거기, 학생’이라 부르는 미안함, 조심스러움을 담은 표현이다. 그 존재 자체로 존중하고, 그 존재를 모르는 나의 부끄러움과 그 존재를 알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헌법이라는 밭 위에서 같이 사는 우리들은 어떤가? 마치 ‘잡초’라 부르듯 ‘빨갱이’라, ‘수구꼴통’이라 부르지는 않는가. 마을의 어르신이 어떤 때는 정 많은 어르신이 됐다가도 어떤 때는 수구꼴통이 된다. 마을의 고마운 일꾼이 어떤 때는 빨갱이로 불리기도 한다. 생활공동체에서는 정을 나누는 관계가 스마트폰 속에서는 적대적 관계가 된다. 영어 ‘스마트(smart)’란 단어에 ‘영리한’이라는 뜻 외에 ‘쑤시는 듯한 고통’, ‘감정을 해치다’, ‘뻔뻔스러운’과 같은 뜻도 있음이 기괴한 우연만은 아니리라. 스마트폰은 내게 쑤시는 듯한 고통을 주는, 나의 감정을 해치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접하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농부가 밭에 나는 풀을 내 소중한 ‘작물’에 해를 끼치는 ‘잡초’가 아니라, 내 ‘작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들풀’로 여기는 것처럼, 만약 우리가 나를 화나게 하는 스마트폰 속 국민을 제거할 ‘잡초’가 아니라 함께 할 ‘들풀’로 여긴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무지한 농부가 ‘잡초’를 잡겠다고 무작정 제초제를 뿌리면 그 밭은 죽게 된다. 무도한 대통령 윤석열이 ‘반국가세력’을 잡겠다고 무작정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헌법은 죽게 된다. 작년 12월 3일부터 헌법이라는 밭은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흔히 그런 밭을 쑥대밭이라 한다. 알다시피 쑥은 대표적 ‘잡초’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나물과 떡 등 음식 재료가 되고, 약도 된다. 일단 이 밭을 살려야 한다. 그래야 그 밭 위의 ‘들풀’ 같은, 헌법 위의 다양한 국민이 제빛을 내며 함께 살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은 그 밭을 살리는 일이다.
미국 정부가 지난 12일 오전 0시 1분(한국 시간 12일 오후 1시 1분)부터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포고문에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그동안 무관세 쿼터제를 적용받아왔던 우리나라 철강업계가 큰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이번엔 미국 축산업계가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의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조치가 불공정 무역이라며 규제를 철폐를 요구했다는 소식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3일자 5면, ‘美 축산업계 “韓, 30개월 이상 소고기도 수입해야”’) 기사에 따르면 미국 전국소고기협회가 “한국의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이 민감한 사안인 것은 이해하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미국무역대표부에 제출했다. 한마디로 한국에 30개월 이상 소고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어달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30개월령 미만 미국산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처음엔 월령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모두 중단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를 협상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미국 측과 체결한 협정의 내용은 ‘뼈와 내장을 포함한 30개월 이상, 대부분의 특정위험부위를 포함한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30개월 이상 사육된 광우병 걸린 미국산 소고기 일부 부위를 먹을 경우 인간 광우병으로 불리는 ‘변종 크로이츠벨트-야콥병(vCJD)’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유모차를 몰고나온 엄마들을 비롯,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넘게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하고,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이 사태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축산업계가 2008년 한미 합의를 통한 30개월 미만 수입 제한 규제를 철폐하라는 것이다. 중국, 일본, 대만 등도 같은 규제를 철폐했다면서 한국도 그렇게 하라는 압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전 세계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가장 많이 들여오는 나라다. 지난해 미국의 소고기 수출량은 99만7217t이다. 이 가운데 22.3%인 22만2171t이 한국으로 왔다. 미국산 소고기의 최대 수입국에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미국 행정부가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검역 규정을 개정하고 한국에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을 강요하고 나선다면 한미 간의 갈등이 거세질 수 있다. 우리나라 한우농가들의 우려도 크다. 전국한우협회는 12일 “미국 정부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허용을 요구하더라도 국회와 정부는 농민의 생존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생각해서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강행한다면 이를 막기 위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광우병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다. 협회는 성명서에서 “한우농가는 4년째 적자에 허덕이며 한계점에 내몰려 있다”면서 ‘개월령’까지 철폐되면 더 이상 한우농가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미국 축산업계는 “한국이 30개월 제한을 유지하는 것은 과거의 협상 결과일 뿐, 현재 기준으로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한우협회는 “미국에서 광우병은 모두 7건 발생했고 지난 2023년 5월에도 한 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허용된다면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히려 미국 축산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트럼프정부가 인식하면 좋겠다.
비상계엄 선포(쿠데타) 이후 102일이 지났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대한민국호가 폭풍우에 갇혔다.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탄핵찬반 군중들의 함성 속에 전국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문제는 에너지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돌아봄, 스스로 객관화하는 과정이 없다면 자칫 우리 공동체는 그릇된 확신 속에 파괴되고 말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무사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쿠데타는 이재명 과 민주당을 악마로 규정하는데서 출발했다. 그 악마가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겼으니 부정선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자칫 악마가 정권을 잡는다면 나라가 망할 것이 뻔하니 군대를 끌여들여서라도 모조리 처단해야 했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이 그대로 극우세력에게 이식되고 증폭되었다는 점이다. 편향되고 맹목적인 확신은 무섭다. 서부지법이 초토화되었다. 헌재도 바람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아니, 지금 가장 위태로운 사람은 이재명 대표가 아닐까? 벌써 한차례 칼에 테러를 당한 이재명 대표가 아닌가? 공격깊이를 감안하면 생존자체가 기적이라 할만치 심각한 테러였다. (헌정사상 처음인 야당대표 테러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대응은 더 기적적이었다. 테러사건을 ‘헬기이송 특혜문제’로 둔갑시키는 마법을 행했으니...) 지금도 아스팔트를 점령하고 있는 수만명의 극우맹동주의자들은 오매불망 “악마 이재명 처단”을 외친다. 탄핵심판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 테러에 대한 제보가 민주당에 빗발친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찰은 야당대표가 경호대상이 아니란다. 만일 또다시 테러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씻을 수 없는 비극이 될 것이다. 내전을 방불케하는 대립 속에 각본 없는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지귀연판사가 구속기간을 ‘구속일(日)’이 아닌 ‘구속시간’으로 해석하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상고없이 윤석열 을 석방했다. 정작 지귀연판사 본인은 자신이 집필한 형사소송법해설서에서 '구속기간 계산은 시간이 아닌 일(日)로 한다'고 적었으니 스스로 자기부정을 한 셈이다. 검찰은 이후 현장실무에서 논란이 되자 ‘구속시간’으로 적용하지 말 것을 지침으로 내려보냈으니 ‘웃자고 한 짓’인지 의문이다. 12.3내란이후 가장 궁금했던 점이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부대인 검찰이 왜 친위쿠데타에서 조용할까”였는데 결정적 시기에 곤경에 처한 주군을 풀어주며 내란에 전격 참전을 선언하며 물꼬를 다잡는 모양새다. 이제 이 선택의 후과는 온전히 검찰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시위현장에 ‘검찰개혁’이란 용어가 사라졌다. 누구도 이제는 검찰을 고쳐서 쓸 수 있는 집단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신 그 빈자리를 ‘검찰해체’라는 구호가 차지했다. 인생을 살다보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 다섯가지가 있다고 한다. “입밖에 낸 말, 쏘아버린 화살, 흘러간 세월, 돌아가신 부모님, 놓쳐버린 기회”가 그것이다. 검찰은 검찰공화국을 거치면서 자정의 기회를 영원히 놓친 것이다. 폭풍우에 갖힌 대한민국호는 전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무게를 덜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내란에 본색을 드러낸 내란옹호 집권당과 똥별들이 가득한 군대, 그리고 사법부와 검찰까지 사회대개혁 차원의 대수술만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다. 한걸음 더 선진사회로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덧붙여 야당대표에 대한 경호도 시급하다. 어쩌면 대한민국에 돌아오지 않을 기회이다.
우려한 사태가 발생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내란죄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52일 만에 석방되었다. 판사는 윤의 구속 시간이 초과하였다며 구속취소를 결정했고, 대한민국의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석방하였다. 검찰총장은 7일 이내에 항고해서 다시 한번 상급 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 있었음에도 적법절차와 인권보장을 들어 석방지휘를 강행했다. 도대체 지금까지 범죄자들의 구속 기한을 산정할 때 날짜 기준으로 하다가 갑자기 윤석열에게만 시간을 기준으로 적용한 것은 무슨 연고인가. 일부 언론에서는 잘못된 관행을 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왜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앞으로 기존에 잡아들였던 모든 범죄자가 날짜가 아닌 시간 기준으로 해서 구속해야 한다면서 재심 신청하면 모두 석방할 것인가. 교도소마다 대혼란을 초래될 전조를 보이자 대검은 서둘러 앞으로는 날짜를 기준으로만 삼으라고 검사들에 지시했다. 결국 한 사람만을 위한 법적용이었다. 판검사들은 도대체 왜 여론과 이렇게 동떨어진 판결을 내린 것일까. 그들 모두 배울 만큼 배웠고 아니 최고의 엘리트들인데 왜 국민의 상식과 이렇게 다른 것일까. 영화의 대사처럼 “어차피 국민은 개돼지야. 금방 잊게 되어 있어”를 실천하는 것인가. 법조계 엘리트들은 법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일컫는다. 그들이 내리는 판단과 판결은 도덕의 잣대가 되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부와 사회적 지위 그리고 명예가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슈퍼·울트라 엘리트로 불리는 한국 법조계는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특정 대학 출신이 70% 이상을 차지해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을 형성한다. 둘째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의식이 강해서 자신들이 갖는 특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셋째는 행사하는 권력에 책임은 없고 잘못된 판단에도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 물론 선진 국가도 특정 대학 출신이 상당수이지만, 카르텔도, 특권의식도 약하고 행위에 대한 책임은 매우 엄격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법조계 엘리트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깊이 있는 철학을 발견할 수 없고, 정서적으로는 나약하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비겁하기까지 하다. 그것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 12.3 내란사태에서 보인 그들의 행태다. 그날 이후 국격의 추락과 함께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마감시키고 끊어내야 할 역할은 전적으로 사법 시스템의 엘리트들에게 있다. 그러나 수사와 영장 청구, 석방 조치까지 보여준 모습은 비겁함 그 자체였다. 어떤 법조인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것은 잘못된 행위야. 엄단해서 후사의 모범이 되게 해야 해!”라는 단호함을 보인 인물이 기억나질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법 지식을 교묘하게 해석, 합리화하여 내란범들에 협조하고 있다. 이 정도면 법 수호자가 아니라 법 기술자, 법꾸라지들이다. 오늘 법조계의 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는 ‘나는 국민과 다른 세계 그리고 오류가 없다’는 선민의식은 학교 교육시스템에서 시작되었다. 오로지 성공, 경쟁만이 최고인 한국 교육이 존재하는 한 희망은 없다. 퇴계 선생이 왜 학문은 명성과 칭찬만을 구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자신을 깨닫고 닦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백골난망이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정만 남았는데 설마…
우리나라는 그동안 크고 작은 숱한 위기와 시련을 격었다. 하지만 한 번도 위기에 무너져내린 적이 없었다. 위기때마다 주저함 없이 국민이 나섰기 때문이다. IMF외환위기 때도 그러했고,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그러했다. 외부의 경제적 충격과 나쁜 정치가 불러온 사회적 충격이 사회 갈등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키기도 했으나, 주권자 국민의 마음이 모아지면서 갈등은 진화되었고, 끝 모를 것만 같았던 위기를 어느 순간 기회로 탈바꿈시켰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강한 회복력이고, 세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위기는 과거와는 다른 양태로 확대되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벌써 100일이 훌쩍 넘어버린 12.3 비상계엄 사태는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점점 극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처럼 불안이 엄습해온다. 우선 과거 대통령 탄핵 판결보다 늦어지는 헌재의 선고기일도 사회적 갈등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변론 종결 14일 만에 선고했고, 박근혜 대통령 때는 11일 만에 선고기일이 잡혔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선고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사회적 갈등과 혼란은 확대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헌재가 왜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는지 국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법률적 숙고가 아닌 정치적 숙고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두 번째로는 정부가 나서서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황당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문제다.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는 최종적 수단은 법치다. 그런데 헌법과 법률을 누구보다 수호하고 따라야 할 정부가 헌법과 헌재의 판결을 거스르는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 헌재는 2월 27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국회가 선출한 사람을 임명하지 않는 것은 헌법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부여한 헌법재판소 구성권을 형해화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 판결 직후 최상목 권한대행은 “헌재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로부터 2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헌재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 위헌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권의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길거리로 나가 연일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헌재를 압박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각하 또는 기각해야 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고, 헌재 앞에서 24시간 ‘5인조 릴레이 시위’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헌재 압박 수위를 갈수록 높이는 것인데, 당 안에서도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취소 후 민주당이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을 검토하는 것 또한 국민 시선이 곱지 않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물러나지 않는다면, 국회는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이라고 했고, 김병주 최고위원도 “자진 사퇴를 거부한다면 탄핵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강력하게 단행할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검찰총장 탄핵을 예고한 바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커지고 있다.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탄핵은 위헌적 법률 위반이어야 되는데, 이 사람은 법률을 위반한 게 아니라 잔수를 둔 것”이라며 탄핵 반대입장을 밝혔다. 그동안의 사례에서 보듯이 별 효용성도 없이 민주당의 힘자랑처럼 비춰지는 잦은 탄핵은 정국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갈등과 혼란은 하루빨리 수습해야 한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에만 의지해서 조속히 판결을 선고해야 하고, 국회와 정부, 정치권은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이 순간부터 국민의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해서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