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사실 책 읽기 좋은 때가 가을만은 아닐 것이다. 여름밤의 땀 냄새 속에서도, 겨울의 긴 어둠 속에서도, 책은 늘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가을에 독서를 연결 짓는 까닭은 계절이 주는 상징과 생활의 리듬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뜨겁고 분주한 여름이 지나고 땅이 결실을 내어놓은 시기.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높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면을 향해 시선을 자연스레 돌리게 된다. 일 년 동안 정성스레 기른 작물을 수확하듯이 우리는 책 읽기를 가을과 연결해 온 것이다. 가을에 읽어야 할 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전이라는 대답이 떠오른다. 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라 시간의 검증을 거쳐 여전히 살아남은 목소리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문제의식이 지금의 독자에게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인간의 근원적 질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죽음, 자유와 억압, 욕망과 절망, 정의와 불의 같은 주제들은 시대를 초월한다. 현대의 고민이 전혀 새롭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고전은 낡은 기록이 아니라 동시대의 대화 상대가 된다. 또한 번역된 외국 고전을 읽는 일은 우리를 넓은 세계와 연결한다. 우리는 모국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고하지만, 고전은 타문화의 사유 체계를 불러온다. 번역은 완벽할 수 없고 그 자체로 하나의 창작이 된다. 그렇기에 번역본을 읽는다는 건 원작의 정신뿐 아니라 번역자가 덧씌운 시대적 감각과 언어의 결까지 함께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다층적인 독서는 단순히 다른 나라 이야기를 아는 것을 넘어, 세계가 어떻게 서로 얽히고 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 글로벌 사회에서 필수적인 감각이다. 고전을 읽는 일은 지적 자율성 회복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오늘날 출판 시장에는 자기계발서나 당대의 담론을 빠르게 요약한 책들이 넘쳐나고 유행한다. 이 책들은 즉각적인 효용을 약속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낡는다. 반면 고전은 독자 스스로 씨름해야 하는 텍스트다. 문장이 낯설고 서사가 길어 독해가 어렵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사유의 근육을 단련한다. 쉽게 삼켜지는 정보가 아니라 꼭꼭 씹어 소화해야만 내 것이 되는 사유가 되는 것이다. 고전은 우리를 낯섦에 노출한다. 현대의 문장은 짧고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전은 때로 장황하고, 표현은 과장되어 있으며, 문체는 굴곡이 심하다. 이 낯섦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 사고를 흔든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언어의 습관과 가치가 흔들릴 때 새로운 시선이 열린다. 가을의 공기가 차갑게 피부를 스칠 때 느끼는 또렷한 각성처럼 고전은 언어의 불편함을 통해 우리를 깨운다. 그러므로 가을에 고전을 읽는 것은 계절적 풍습을 넘어선다. 그것은 결실의 계절에 맞게 인간 정신의 결실을 수확하는 행위다. 외국 고전을 읽는 행위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나드는 다리이며 우리를 보다 넓은 세계와 연결해 준다. 고전을 읽으며 우리는 타인의 시대와 언어를 빌려 자기 시대와 삶을 비춰 본다. 그 과정에서 더 깊고 넓은 인간이 된다. 가을 하늘이 점점 깊어지는 지금, 서가 깊숙이 잠든 고전을 꺼내 책장을 넘겨보는 것은 어떨까. 고전은 여전히 살아 있는 대화 상대이며 우리는 그 대화 속에서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수확을 끝낸 들판이 그러하듯 고전은 삶에 또 다른 결실을 가져올 것이다.
중국 은(殷)나라 주왕의 애첩 달기(妲己)는 고대 중국의 절세요부(絶世妖婦)다. 미색과 방중술을 무기 삼아 권력을 잡았다. 3000여년 전,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은 이 젊은 후궁과 죽이 제대로 맞았다. 그들은 '인류사에 정치의 악마성은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사실대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을 타고난 것처럼 잔혹한 폭정의 메뉴들을 창안하고 실행하였다. 중구난방의 세상을 단숨에 침묵시켰다. 바른 말 하는 충신들은 벌겋게 달궈진 구리판 위에 살갗을 벗긴 채 눕혀 태워죽였다. 숨이 끊어 지기 전에 기름을 부어 고통지수를 100배 높여놓고 그 광경을 보면서 박장대소했다. 소위 포락지형(炮烙之刑)이다.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이 여자를 씹은 게 들통나면 혀를 잘랐다. 배부른 여인의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맞추는 놀이도 즐겼다. 당연히 잉부(孕婦)의 배를 갈랐다. 요즘의 식자들도 종종 쓰는 주지육림(酒池肉林)도 달기의 창작이었다.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그 안에 곡주를 가득 채운 다음, 남녀 구분 없이 밀어 넣었다. 못 옆 숲의 나무에 고기들을 매달아 놓고, 입으로 따먹는 게 규칙이었다. 어기면 손목을 잘랐다. 저항하면 목을 베어 술통에 넣었다. 국운이 다할 때, 그 왕조의 권력은 이처럼 악동들의 장난감이 되어 그 나라에 속한 백성의 인생과 그들이 함께 꾸려가는 세상이 지옥 그 자체임을 가르쳐준다. 달기는 장장 30년을 그렇게 미쳐 날뛰었다. 끝내 온몸이 찢겼다. 한 떼의 까마귀들이 포식했다. 은나라를 붕괴시킨 주(周)왕조가 직전 권력을 악마화하여 자신의 정통성을 높이려고 달기를 악마화했다는 비평도 있다. 문학과 예술의 전성기였던 당나라 때는 문인들이 달기의 역사를 창작활동의 재료로 활용했다. 그로써 그 포악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자는 주왕의 정치를 비판했고, 사마천의 ‘사기’는 악녀 달기가 은나라 멸망의 원인이라고 기록했다. 21세기 오늘, 우리는 달기의 대한민국 버전을 매일 매시 목도하고 있다. 김건희의 비리와 악행의 목록은 기나길다. 사악하고 잔학하다. 진실은 1도 없다. 만 가지 거짓의 집적체다. 비열하다. 낮은 자존감을 명품으로 가린다. 그저 천박하다. 고개 숙일 때마다 취하는 표정과 목청과 자세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총체적으로 5류 연기자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욕감을 느낀다. 그 때마다 참담하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권위지를 꼽으라면, 교양인들은 발행부수가 겨우 50만부 정도인 프랑스의 ‘르 몽드'라고 답한다. 이 신문은 지난 2022년 3월 10일,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배우자 김건희가 각종 추문들, 특히 뇌물수수, 주가조작, 무속의존과 학생 때 ‘창녀’(call girl)로 일했다는 소문에 계속해서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국내언론이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3000년이 지나도 정치의 악마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건희가 그 증거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주권자를 배신하는 산업이다. 나쁜 정치와 사악한 정상배들은 국회나 감사원, 사법기관 따위들이 고르거나 손보거나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다. 지난 해 12.3 내란 전후, 이 나라 씨알들이 온 세상에 보여준 '빛의 혁명', 바로 그 평화와 정의의 애국세력의 몫이다. 이재명 정부는 바로 그 시민들이 세운 종복(從僕), 즉 머슴들일 뿐이다. 취임 100일이다. 기대 크다. 우려도 크다.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정치로부터 독립되고 일관된 교육정책 수립·추진을 목표로 2022년 9월 27일 공식출범했다. 정권 교체 때마다 뒤집히는 교육정책의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국교위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교육비전, 중장기 정책 방향 및 교육제도 개선 등에 관한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며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조정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한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로써 위원장 1명, 상임위원 2명 포함, 총 21명으로 구성되는데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그런데 국교위가 국민들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다. 특히 이배용 위원장이 김건희 씨에게 10돈짜리 금거북이를 건네며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비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논란이 일자 위원장직에서 사퇴했지만 정치로부터 독립된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겠다는 국교위 출범 당시의 취지는 헛구호가 되고 말았다. 이배용 씨는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될 당시에도 ‘편향 인사’ 논란이 있었던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참여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국교위가 처음부터 특정 정치적 성향의 영향아래에 있었다는 의심을 받을 만 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3일자 7면, ‘정치 중립 무너진 국교위…실효성 논란 재점화’) 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1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 위원장의 뇌물 상납과 매관매직 의혹은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다”라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교육농단 청산’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2기 국교위는 정치로부터 독립된 숙의형 기구, 투명하고 책임 있는 국민참여 기반 정책 심의기구로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교사·교수·학부모·학생·시민 등 교육 주체가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교위는 여기에 더해 ‘내부 갈등’, ‘성과 부재’라는 비판까지 받으며 위기에 처해 있다. 일부에서는 ‘국교위 무용론’까지 제기 되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내부의 정치적 대립도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수능 이원화 안건’이었다. 보수 성향 위원들이 이 안건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그러자 진보 성향 위원들은 회의를 보이콧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현장의 평가가 좋게 나올 리 없다. “그동안 국교위에서 교육 개혁이나 현장 정책 논의가 사실상 없었다” “공론의 장도, 연구 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다”는 도승숙 참교육학부모회 수석부회장의 지적이 수긍된다. 이런 비판은 국교위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정대화 국교위 상임위원은 2일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국교위 3년 성과와 향후 과제 개선을 중심으로 교육자치와 분권강화를 위한 정책포럼에서 “3년간 교육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이자 들러리”였다고 자탄(自歎)했다. 교육부의 지시를 따르고 교육부의 업무를 수행하는 들러리이자 하청기구였다는 뜻이다. 그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의 난맥상과 2022 개정 교육과정 의결 과정에서 문제점과 한계점도 지적했다. ▲전문위원의 자격요건 ▲전문위 파행성 ▲극단적 정파적 구성의 한계 ▲사회적 합의 실종 ▲의견 수렴의 부재 등 국교위의 장애물을 조목조목 거론하기도 했다. 강민정 전 의원은 애초 국교위 근거법을 만들면서 기구설립 취지인 ‘자주성, 전문성, 정치중립성 보장을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이라는 문제에 대해 입법적 고민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교육정책추진체계는 분업과 협업 원리에 입각해 개편돼야 한다”고 주장, 공감을 얻었다. 국교위를 염려하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은 제도를 개선해 국교위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능했던 운영 방식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국교위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되짚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정부가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바람이 공기의 이동이듯 인연은 삶 속의 동행 같은 것 아닐까. 잘 살아가는 방법은, 선한 삶을 꿈꾸며 때로는 살아온 과거를 즐기는 데 있다. 영국의 새무얼 존슨은 ‘글쓰기의 유일한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삶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또 삶을 더 잘 견디어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책 속에서의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것 또한 인연이겠지 싶어 하는 말이다. 나이 숫자가 높아 가면 병원에 가는 날도 기다려진다. 생사가 걸린 중병이 아니고 나이 따라 가볍게 겪는 질환으로서 진찰받고 약 지어오는 날의 병원 길은 자기 관리에 충실한 양 병원으로 향한다. 내가 다니고 있는 서신 내과 J 의사와 만나게 됨은, 내 어머니와 의사 아버지와의 인연에 따름이다. 일찍이 의사 아버지 J 선생님은 교육대학을 졸업하시고 회문산 근처 초등학교로 초임 발령을 받았다. 어렵게 부임지에 도착해 보니 식당도 하숙집도 전무했다.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머물 곳을 물어보니 나의 아버지 존함을 알려주며 옆 동네 그 집으로 가서 사정해 보면 식구처럼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 말씀이 인연의 씨앗이 되었다. J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의 선한 결심으로 따지지 않고 식사하며 함께 지내시게 되었다.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세월이 물레방아 돌 듯 돌아서 선생님이 사시는 도시로 나와 서해방송에 근무하게 되었다, 따라서 선생님은 나를 귀하게 대해주시며 반세기 동안 사랑을 베풀어주시었다. 덕분에 나는 선생님 큰 따님인 서신내과 원장에게 건강 문제를 맡기고, 내과가 아닌 병은 증세에 따라 원장이 소개해준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아 몸을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다. J 선생님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깊고도 먼 앞날의 사랑 앞에 가슴을 조아리게 된다. 종교 이상의 어떤 힘을 느끼면서 가끔은 어머니의 희생 앞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 장래를 내다보시고, 산중에 오시어 고생하는 선생님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하다 보면 ‘내 아들이 커서 저 선생님의 도움과 사랑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저녁 가리지 않고 성심을 다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나는 이제와 헤아리면서 눈물 속에 ‘인연의 끈’을 생각하고 있다. 이어서 어머님께서 독백처럼 들려주시던 그 말씀, ‘어느 구름에서 비 올지 모른다. 사람 박대하지 말고 척(隻) 짖지 말거라.’라는 이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어머니는 어떤 학교의 졸업장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 평생 희생하셨다. 때문에 내가 죽는다 해도 오로지 자랑스러운 내 어머니일 뿐이다. 얼마 전 일이다.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며 가까이 지냈던 내 친구 제자라는 H 군이 수필집을 보내왔다. 그의 고등학교 선생님이 소개해서 책을 드린다는 메시지와 함께. 프로필을 보니 서울 일류대학을 나와 이름 높은 기업에서 정년을 하고 지금은 경기도에서 작가 생활을 하면서 『향기로운 삶』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런 사연을 염두에 두고 몇 편의 수필을 읽어보았다. 수필집은 『계절을 건너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는 ‘마음의 계절’을 말하는 것 같았다. 참새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도 있었다. ‘중국의 마오쩌둥(모택동)은 참새가 곡식을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말한 이후,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곡식을 먹어치우는 참새가 없어졌으니, 곡식 수확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결과는 정반대였다. 참새가 사라지자 그들의 먹이였던 메뚜기를 비롯한 해충이 창궐하면서 농사를 초토화시켰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 후 한 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 날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볼일이 있어 온다면서 꼭 만나고 싶으니 마음에 드시는 점심 장소를 생각해 두라는 것이었다. 그날 한 군 부부와 내 제자 한 명으로서 네 명이 만났다. 시원한 장소에서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이 나는 유머도 하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한 군의 스승인 내 친구의 제자인 만큼 친구의 덕담도 나누고 ‘인연 ⍆ 인연’의 관계 속에 나는 그에게 나의 수필집을 선물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이테에 새로운 인생을 더해간다는 것, 문학의 길을 가는 선배로서 ‘적당히 겸손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 있어 선한 인연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바람일까, 사랑(희생)일까, 지혜의 눈일까?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괴력을 발휘할 것만 같았던 폭염의 여름을 한발 물러나게 하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필자에게 있어서 가을하면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는 꽃보다 눈부신 황금물결의 억새밭이다. 억새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그 삶의 모습이 역경을 헤치고 살아낸 우리나라 민중과 많이 닮아있다. 억새는 위태로운 대롱 끝에 매달려 바람따라 나부끼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로 보이지만 이는 힘과 크기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강함의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억새의 강인함은 오히려 바람부는 대로 휘날리며 꺾이는 척하다가 휘어지고, 휘어지는 척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 유연함에 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생존기술이다. 억새는 어쩌다 바람에 못이겨 허리가 꺾인다해도 금방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곁에 있는 다른 억새들에 기대어 마지막까지 공존한다. 이렇듯 억새는, 개별의 힘은 약하지만 서로 협력하여 삶을 이어가는 상호의존성이 바로 진정한 강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억새는 결국 강함이란 고립된 개체의 속성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존재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역설해준다. 억새의 생애주기 전체를 보면 진정한 강인함이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을 관통하는 종단적인 특성임을 보여준다. 한때 억새도 찬란한 황금빛나는 시절이 있다. 바로 억새의 전성기이다. 그러나 억새가 쇠락하는 모습을 보면 비장미가 넘쳐흐른다. 반짝이던 털끝 하나 남김없이 뽑히면 억새의 외양적 아름다움과 생명의 징후는 사라진 완전한 상실의 상태가 된다. 더구나 날씨가 추워지면서 더이상 끌어올릴 물 한방울 남지 않는 척박한 겨울이 되면 생존에 극도로 적대적이고 어떠한 자양분도 없는 환경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모든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빈 대롱으로 꼿꼿이 서있는 억새, 다음 봄을 기다리고, 빛나는 가을을 준비하는 억새야 말로 정말 억세다. 이 강인함은 억새가 무엇을 가졌는지(물, 씨앗, 색깔 등)가 아니라 무언인가(자세, 형태, 굽히지 않는 존재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억셈은 전성기가 아니라 쇠락 이후의 끈질김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노화, 상실, 소멸에 직면한 존재로서의 억새는 존엄하다. 왜냐하면 결국 살아내어 전성기의 황금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모든 것을 빼앗긴 절대적 고독 속에서도 ‘꼿꼿이’ 서있는 빈 대롱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저항적인 선언이다. 이는 존재의 힘이 기능적 유용성을 넘어선다는 실존적 철학으로 이어진다. 가을이 오는 이 시점에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인생여정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필요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지금 황금지절에 있을까, 아니면 빈대롱으로 버티는 시간 속에 있을까? 황금지절이라고 자만하지 말고, 상실의 시대라고 포기하지 말라는 억새의 억센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번 가을에는 아아~ 으악새 슬피우는~ 노래라도 부르면서 억새밭에 가서 그들의 삶에서 한수 배워봄이 어떤가?
경기도에서 근무하는 공무직(무기계약직)들이 같은 직원이면서도 공무원들과 달리 특별휴가 혜택에서 큰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공무원은 각종 특별휴가를 보장하고 있는 데 반해 공무직에게는 ‘장기재직 휴가’ 한 가지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동일근무자들에게는 동일한 처우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 ‘노동 정의’에 속한다. 일반 산업현장의 모범이 돼야 할 공직사회에서 상존하는 이 같은 ‘차별’은 하루빨리 시정·보완되는 게 옳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기준 도청과 도 소속기관, 도의회 직원은 총 1만 7625명(공무원·공무직)이며, 이중 약 8%인 1373명이 공무직이다. 도 공무직은 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으로서 통상 행정 지원, 현장 업무 등을 맡고 있다. 경기도 공무원들은 신설된 여러 명목의 특별휴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공무직은 새로운 휴가 제도 혜택에서 일체 제외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도 공무원에게는 ‘장기재직 휴가’, ‘새내기 도약 휴가’, ‘생일 특별휴가’ 등다양한 휴가를 보장하고 있는데 반해 공무직에게는 오직 ‘장기재직 휴가’만 주어진다. 지난해 시행된 ‘새내기 도약 휴가’는 연차가 1년에서 5년까지인 공무원에게 3일의 특별휴가를 주는 제도다. 올해는 또 ‘생일 특별휴가’가 마련돼 생일자에게 생일이 있는 달에 1일의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기재직 휴가’마저도 공무원의 휴가 일수가 공무직보다 많다는 야릇한 사실이 확인된다. 연차별로 보장되는 공무원의 ‘장기재직 휴가’ 일수는 연차가 5년 이상 10년 미만인 공무원은 5일, 연차가 10년 이상 20년 미만이면 15일, 20년 이상 30년 미만은 25일, 30년 이상은 25일이다. 반면 공무직은 연차가 10년 이상부터 20년 미만까지는 10일, 20년 이상은 15일의 장기재직 특별휴가가 각각 주어진다. 세 가지 특별휴가 제도를 단순히 비교해도 공무원의 특별휴가 일수가 공무직보다 최대 14일이나 많은 것으로 집계된다. 이 때문에 공무직에 대한 특별휴가 지침 등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현 경기도청실무관노동조합 위원장은 “공무직은 별도의 규정 개정, 노사협의회, 단체교섭에 의해서만 휴가 제도가 마련되기 때문에 현재 특별휴가가 상당히 부족하다”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조례 또는 관련 지침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미영 경기도청공무직노동조합 위원장은 “공무직도 공무원과 같은 일수의 특별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요청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그간의 정황을 전했다. 지난해 4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발표한 ‘정부기관 공무직 노동자 설문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차별 현상은 심각했다. 응답자의 91.3%는 ‘나는 공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라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기관이 나를 동등한 조직구성원으로 대우한다’는 답변은 24.2%에 불과했다. 특히 응답자의 73.2%는 ‘임금·복리후생 차별로 노동의욕이 저하된다’고 호소했고, 승진이나 승급, 포상기회가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3.3%에 불과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를 요구하며 지난달 17일간 대통령실 앞 농성을 벌인 공공연대노동조합이 기자회견문을 통해 밝힌 첫 번째 요구사항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차별해소 및 처우와 제도개선 책임’이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최저임금 채용 관행 개선 약속을 준수하라’는 요구가 그다음을 이었다. 경기도 담당자가 올해 공무직 단체교섭을 앞두고 “향후 공무직 노동조합과도 (특별휴가) 관련 논의를 이어가면서 여러 직원에게 혜택이 부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처우를 보장함으로써 노동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사명에 경기도가 앞장서서 모범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지난 칼럼에서 통상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고 2년 정도가 지난 경우 채권양도 절차를 통해서 처음 하자소송을 시작하게 된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행사나 시공사에 대하여 오랜 기간 동안 하자 처리에 대한 요구만을 하거나 협상을 하다가 결렬이 되어 뒤늦게 소송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하자소송의 궁극적인 목적은 손해배상금을 수령하여서 이를 통해 공용부분이나 전유분에 존재하는 하자를 치유하는 공사를 하여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법원의 감정을 통해서 적정한 보수비를 산정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법원의 감정을 통해서 보수비가 산정이 되더라도 실제 판결을 통해서 해당 금원이 모두 인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대부분의 사건에서 법원은 준공시로부터 감정을 위한 현장조사까지 또는 소제기까지의 기간 경과에 따라 대략 1년 5%의 비율로 책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법원에서 이러한 책임의 제한의 근거로 드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파트의 자연적인 노후화가 진행되어 그것이 하자의 발생에 기여하고 이를 시공상 잘못과 구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자가 있더라도 입주자들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 부주의로 인하여 파손되는 경우가 있고 이로 인하여 하자가 확대되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의 태도는 일응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하자 소송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시공 이나 오시공 하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소위 이러한‘사용검사 전 하자’의 경우에는, 설계도면과 달리 '미시공' 또는 '변경시공' 한 부실시공으로 인한 하자이므로, 기간의 경과로 인해 노화현상이 발생하거나, 입주민들의 관리상 잘못이 발생할 여지가 없는 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용검사 전 하자’의 하자보수비까지 책임제한을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부 판결들에서는 ‘사용검사 전 하자’들은 그 구체적 하자 내역에 비추어 볼 때 자연적인 노화 또는 입주자의 관리상 잘못으로 인하여 발생하거나 확대될 하자가 아니고, 자연적 노화 역시 개입될 여지가 없는 하자라고 할 것이어서 책임제한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판단하기도 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12. 15. 선고 2015가합27045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4. 12. 22. 선고 2012나85726 판결) 더욱이 5년 정도 경과한 시점에서 소제기가 이루어지고 감정인이 책정한 보수비에서 25% 정도의 책임제한이 이루어진후, 여기에 각종 소송비용들을 모두 공제하면 실질적으로 손해배상금만으로 필요한 공사나 수선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여 입주민들이 추가적으로 수선비용을 부담하여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사용검사 전 하자’들에 대하여는 기존의 법원이 하고 있는 일률적 책임제한이 합당한지에 대한 많은 고려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하자소송을 고려하고 있다면 적시에 소를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차를 이용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이번 전승절 행사는 '반서방 세력의 집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서방 진영은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맞서 '다자주의'를 강력히 주장해왔는데, 이번 행사에서도 그러한 기조가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국가원수는 물론 주요 인사들을 전승절 행사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아직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미국과 일본은 이번 행사에 주중 대사조차 참석시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서방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의전 서열 2위 우원식 국회의장을 참석시켰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권력 서열 2위인 리창(李强) 총리와의 단독 회담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에서 '안미 경중(安美經中)은 불가능하다'고 발언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 우리 언론은 우 의장과 김정은의 조우 여부에 주목하고 있지만, 양측 만남의 가능성 역시 극히 낮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북한은 우리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큰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를 분석해 보면, 북한이 우리와의 대화를 시도한 것은 대부분 자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를 워싱턴을 향한 일종의 '경유지'로 활용했던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파병 대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우리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별다른 동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종료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전쟁 중 러시아는, 북한의 병력이 절실했기 때문에 상당한 대가를 제공했지만, 전쟁 종료 후에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현저히 축소돼 북한에 대한 전폭 지원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변화에 대비해 북한은 다시 중국 및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김정은의 방중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즉,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을 자극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대화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종전 이후 중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김정은이 직접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을 수도 있다. 중국은 반서방 전선을 지나치게 강조해 미국을 자극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북·중·러 3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 북·러, 북·중, 중·러 양자 정상회담은 각각 개최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이재명 정부의 노력은 국민들에게 널리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점은, 오늘날의 국제 질서가 '친중이냐, 반중이냐'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양분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박근혜 정부 시절 박 전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던 당시와는 국제 정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이번 참석이 이런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서 갖는 외교적 함의에 대해 보다 신중히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2007년 최초 추진된 이래 우여곡절을 겪으며 좌절과 재추진을 거듭해 온 화성 국제테마파크 사업이 비로소 본 궤도에 올라선 것 같다. 긴 세월 공전해 오다가 지난달 28일 사업자인 ㈜신세계화성으로부터 ‘화성 스타베이 시티’ 조성계획 제안서를 접수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19년 2월 경기도는 화성 국제테마파크 사업자 공모에 단독 참여한 신세계프라퍼티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2024년 10월엔 화성시청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 정명근 화성시장,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사장, 마리 막스 파라마운트 엔터테인먼트 부문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화성국제테마파크 글로벌 브랜드 유치 선포식을 열었다. 화성시는 이어 경기도에 화성 국제테마파크를 관광단지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고 도는 지난해 연말 ‘화성 국제테마파크’를 관광단지로 공식 고시했다. 이로써 화성국제테마파크 조성 사업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관광단지가 되면 조성계획 승인과 인·허가를 함께 처리할 수 있어서 기간이 단축되고 취득세 50% 감면 등 혜택도 제공되기 때문이다. ‘화성 국제테마파크 관광단지’는 화성시 남양읍 신외리와 문호리 일원(송산그린시티 특별계획구역 8) 285만4708㎡(약 86만 평)에 조성되는 복합관광단지다. 하지만 앞에서 밝힌 것처럼 사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2007년 세계적 테마파크인 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USK)가 화성국제테마파크에 들어온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러나 이 사업은 두 차례나 무산됐다. USK컨소시엄과 수자원공사가 MOU를 체결했으며 포스코, 쌍용건설, KCC건설, STX건설, USKPH, 신한은행, 산업은행 등도 참여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유니버설 스튜디오 코리아 리조트를 2010년 착공해 2013년 개장한다는 것이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무산됐다. 그럼에도 경기도와 화성시, 한국수자원공사가 머리를 맞대 노력을 지속한 끝에 파라마운트사가 글로벌 브랜드 파트너로 선정됐다. 파라마운트사는 파라마운트픽처스, 방송사 CBS, 어린이 전문 케이블 방송 니켈로디언,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 MTV 등 다수의 채널을 지닌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이자 콘텐츠 지식재산 보유·배급사다. 따라서 경기도와 화성시의 기대감이 매우 높다. 김동연 지사는 지난 해 화성국제테마파크 글로벌 브랜드 유치 선포식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서해안과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 개발이 되면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테마파크가 조성되면 도로, 철도 등 인프라를 포함한 서부 개발 비전을 담은 경기서부 SOC 대개발을 성공적으로 견인할 수 있게 된다. 정명근 화성시장도 “오늘 선포식을 시작으로 화성시는 혁신적인 미래형 관광단지 산업에 박차를 가해 대한민국 대표 문화중심지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지사와 정 시장의 기대감은 근거가 있다. 사업자인 ㈜신세계화성이 제출한 ‘화성 스타베이 시티’ 조성계획 제안서에 따르면 약 86만평 규모의 관광단지 내에 파라마운트 테마파크, 워터파크, 상업시설(스타필드), 숙박시설, 골프장 등 다양한 시설을 복합적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예정된 1단계 개발사업을 추진, 2029년 1차 준공을 목표로 파라마운트 지적재산권(IP)을 적용한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이후 워터파크, 쇼핑몰, 호텔 등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시설도 본격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2050년까지는 1단계 사업을 확장해 호텔과 리조트 등 추가 시설을 조성한다. 화성 스타베이 시티는 국내외 연간 3000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할 것으로 기대되며, 총 11만 개 일자리 창출과 70조 6000억 원 규모의 생산 및 부가가치 효과를 창출한다고 밝혔다. 이 계확이 현실화 된다면 화성시가 추구하는 동서 지역 균형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겠다. 앞으로 화성시는 관계 기관·사업자와 긴밀히 협력해 조성계획대로 추진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8월 13일 대국민보고대회를 열고 123개 국정개혁과제를 발표하면서,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여성의 권익 신장과 양성평등을 중심에 두어 온 여성가족부가 이제 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부처로 바뀌는 것이다. 이 변화가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과 영향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는 왜 굳이 여성가족부의 이름을 바꾸려 하는 것일까? 여성가족부는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로 출발했다. 여성 차별을 해소하고 지위를 높이며,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설립 취지였다. 이후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가족부’로 확대되었고,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두 차례 명칭이 오가다가 다시 여성가족부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여러 정권을 거치며 여성정책의 방향이 조정되어 왔다. 법적 기반을 보더라도,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여성발전기본법'을 제정했고,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이를 전부 개정해 '양성평등기본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보장하는 동시에,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주목할 점은 여기서 성평등의 개념도 함께 언급되었다는 사실이다. ‘양성평등’을 사회의 기본 원리로, ‘성평등’을 보완적 개념으로 두었다. 헌법 역시 분명하다.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이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우리 사회의 가족제도는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을 기반으로 한 ‘양성평등’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지금까지 이러한 법적 기반 위에서 역할을 해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성소수자의 권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누구도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소수자를 보호하는 문제는 별도의 법률과 제도를 통해 충분히 다룰 수 있다. 이를 위해 ‘성소수자 인권보호법’이나 ‘복지지원법’을 제정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바꾸는 방식은 헌법이 규정한 양성평등의 원리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지금 “인구위기를 극복하는 대전환”을 국정개혁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출산과 가족정책을 다루는 부처인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바꾸는 것은 방향에 혼선을 줄 수 있다. 성평등이 곧 인구감소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젠더 기반의 성평등이 생물학적 출산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구위기를 걱정하는 시점에 성평등을 부처 명칭에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성평등 정책을 적극 추진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다시 양성평등으로 회귀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성평등을 확장했지만, 재집권한 트럼프 정부는 다시 양성평등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이처럼 정책이 널뛰듯 변화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하여 여성가족부의 개편은 헌법적 원리, 가족제도의 기초, 인구정책의 방향, 성소수자 보호 등을 감안하여 모든 국민이 동의하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를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