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에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아직 젊다’는 위로를 들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다. 정년 연장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법정정년을 만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늘리는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내놓았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 과정에서부터 강조되어 온 공약이자, 초고령 사회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핵심 대책이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33년까지 65세로 늦춰지는 상황에서, 정년 60세는 곧 5년의 소득 절벽을 의미한다. 평균 수명이 100세를 넘어서는 시대, 60세는 은퇴하기엔 이르고, 노후를 즐기기엔 경제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나이다. 결국 ‘빈곤’이 노년의 가장 큰 두려움으로 자리 잡았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이 내놓는 재취업·전직 프로그램도 몇년새 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제한된 직종은 다양한 경력과 전문성을 가진 중장년을 담아내지 못한다. ‘내려놓기엔 너무 젊고,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현실은 여전히 많은 사람을 좌절하게 한다. 단지 나이 때문에 배제되는 고용시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제도적 지원은 반쪽에 그칠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정년 연장을 환영하지만, 기업의 시선은 다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61%가 60세 이상 인력을 정규직으로 두기보다 ‘퇴직 후 재고용’을 선호한다. 임금은 퇴직 전의 70~80% 수준으로 낮추는 조건이다.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현실적 선택이겠지만, 이는 고령 근로자를 값싼 노동력으로만 보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작은 변화가 감지된다. 최근 디지털 자산거래소 포블게이트가 정년을 만 80세로 연장한 사례가 그렇다.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경험과 직업윤리를 디지털 산업에 접목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상징적이다. 단순한 인사 정책을 넘어, 세대 공존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청년 세대에게는 때때로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청년층 일부는 “정년이 늘어나면 우리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토로한다. 실제로 고용시장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뿌리 깊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다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청년만으로는 산업 현장을 지탱할 수 없다. 경험 많은 중장년이 빈 자리를 메우지 못한다면 기업 역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청년과 중장년은 경쟁자가 아니라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단순히 정년을 연장하느냐 마느냐를 넘어, 세대 간 공존 구조를 만드는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기업은 시니어 인력을 단순 노동력으로만 보지 말고, 후배 세대와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멘토 역할로 활용할 수 있다. 청년은 디지털 역량으로 세대의 약점을 보완하며 함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년 연장은 청년과 중장년 간의 제로섬이 아니다.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세대와 도전과 창의성을 가진 세대가 함께할 때, 한국 사회는 더 단단해진다. 고용시장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해법은 경쟁이 아니라 공존이다. 세대 간 신뢰와 협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일자리 구조가, 초고령화 사회 한국의 미래를 떠받칠 것이다.
지역의 최대 숙원인 경기북부 지역 개발의 기폭제가 될 미군 반환공여지 개발 관련 경기도의 청사진 얼개가 나온 이래로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도가 3천억 원의 개발기금 조성 등 방향을 제시하고 해당 지역 자치단체들도 견해를 적극적으로 개진하기 시작했다. 미군 반환공여지 개발은 경기도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성장동력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난개발을 철저하게 막는 동시에 용의주도한 미래형 개발이 되도록 설계돼야 할 것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경기도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공동주최한 ‘미군 반환공여구역 개발 활성화 방안 국회 토론회’에서 정책의 틀을 제시하며 “경기북부와 대한민국 지도를 새로 그리는 마중물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중앙정부에 떠넘기지 않고 도가 주도적으로 전향성을 갖고 지역 중심으로 반환공여지를 개발하겠다”며 ‘3000억 원 규모 개발기금 조성’, ‘지방도 9개 노선 신설 등 교통인프라 개선’, ‘선제적 규제 완화’, ‘국회·중앙정부와 협력한 법·제도 개선’ 등 4가지 정책 방향을 내놨다. 경기도는 구체적으로 반환공여구역 개발기금으로 10년간 3000억 원을 조성해 토지 매입, 도로·공원 등 기반 시설 조성에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2040년까지 경기북부에 2조 3000억 원을 투입해 지방도 9개 노선 신설, 제5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KTX 파주 문산 연장과 GTX-C 동두천 연장사업 등 기반 시설 확충을 시행한다. 김 지사는 이와 관련 “도 지침과 조례를 개정해 개발제한구역 내 도시개발사업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50%에서 35%로 축소하고, 반환공여구역 내 부동산 취득세 면제 대상을 창업·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 대기업, 공공기관까지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동두천, 의정부와 같은 장기 미반환 공여구역은 국가가 책임지고 특별한 보상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법령 제·개정을 추진하겠다”며 “‘미군공여구역법’도 필요에 맞게 개정할 수 있도록 국회, 중앙정부와 추진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현장에 참석한 의정부·파주·동두천·하남시 등 해당 지역 단체장들은 환영의 뜻과 함께 각 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공유하는 등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김동근 의정부시장은 “의정부는 반환공여지 땅을 기업 유치를 위해 쓸 것”이라며 미군반환공여지법과 수도권과밀억제권 등 중복규제로 인한 개발제한을 지적했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국방부가 과감히 지방정부 토지를 무상 양여해야 한다”며 파주시민만이 아닌 국민의 휴양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형덕 동두천시장은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을 해야 한다. 해당 지역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평택과 같은 장기 미반환공여지 특별법 제정 등 예산반영 요청했다. 이현재 하남시장은 “캠프콜번과 성남골프장 용도가 전부 그린벨트이자 과밀제한 권역이라 아무것도 못 한다. 좋은 정책을 발표해도 실용성이 없다”며 자유경제구역처럼 ‘프리존 규제개혁’을 요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초 국무회의에서 국방부에 미군 반환 공여지 처리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한 이래로 이 문제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군사분계선과 인접해 안보적 이유로 각종 중첩 규제를 받아온 경기북부 지역 주민들의 애환에 비하면 그야말로 만시지탄이다. 늦은 만큼 잘해야 한다. 도내 전체 공여 구역 51곳 중 34곳에 이르는 29곳이 북부에 몰려 있다. 주한미군 공여 구역 개발은 유휴지 재활용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지역 균형발전, 국가 안보를 위한 희생에 대한 보상, 지방 소멸 방지라는 3가지 전략적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종합정책으로서 접근돼야 한다. 경기 지역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소중한 기회가 되는 새로운 미래 청사진이 만들어지고 집행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경기도가 불투명한 승진 심사제도를 보완하지 않고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면서 공무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는 국가와 지역사회의 질서를 결정하는 최고의 기준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합리한 인사 시스템은 영락없이 실패 요인으로 작동한다. 경기도 공무원의 승진 심사제도는 그 기준과 원칙을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하고 공개해 누구나 인정하고 승복할 만한 수준으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도는 ‘지방공무원 임용령’ 제31조의2(근무성적평정)와 ‘지방공무원 평정 규칙’에 근거해 공무원 승진 심사를 하고 있다. 도 인사 부서는 승진 심사에 있어 각각의 공무원 급수에 따른 근무성적·경력 평정을 반영해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평가를 진행한다. 도는 평가에서 상위권의 점수를 받은 공무원을 우선적으로 승진하는 등 표준화된 인사 기준을 운영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각 평가의 배점 비율 등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에게 ‘승진’은 ‘임용’ 못지않게 중요한 인사행정이다. 경기도가 승진자가 어떤 평가 항목에서 어떤 이유로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를 공개하지 않기도 하는 것에 대해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하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인사 부서와 승진 대상자의 부서장 등이 인사권을 일부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자칫 도청 내부에 ‘줄서기 문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승진 심사가 어떤 기준으로 진행되는지 구체적으로 모르다 보니 인사 결정이 발표될 때마다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게 지적의 핵심이다. 인사 기준이 불투명한데다가 부서장의 역량에 따라 승진이 좌지우지된다는 불만도 없지 않다. 도가 구체적인 승진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직원들의 불만도 해소될 것이라는 얘기다. 부서장에게 인사권을 일부 부여하는 것은 부서장들이 직원을 관리하기에 더 수월해지는 효과는 있지만, 도 인사 부서장이 변경될 때마다 그 기준도 매번 달라진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도청 간부들도 있다. 이와 관련, 도 인사 부서 관계자는 단순히 경력에 따라서만 판단하지 않고 근무 태도, 성적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가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승진 배점이 (어떤 기준에 따라) 정량적으로 부여되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불합리한 지방공무원 인사 제도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상황과 구성원들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현상은 공무원들의 업무효율성과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인사 관련 정보 공개의 범위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해 왔다. 이와 함께 인사위원회 구성 방식 개선과 함께 다면평가 도입 또는 개선, 지방공무원 인사 실무의 내용 보완, 평가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확대 등을 대안으로 내놓는다. 공무원들에게 ‘승진’이란 희로애락을 결정하는 최고의 변수다. 인사권이 최고위층의 전유물이던 과거에는 인사 결정에 대해서 이의를 품는 것마저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였다. 그러나 민주화가 크게 진전되면서 아무리 공무원들이라도 두루 공감을 얻지 못하는 승진 인사는 조직 내 불협화음의 불씨로 작동한다. 특히나 지방자치의 역사가 이어지면서 새롭게 들어서는 자치단체의 인사에 구설수는 비일비재하게 등장한다. 불합리한 승진 인사는 첫째, 행정의 역량을 떨어뜨리는 변수가 될 개연성이 높다. 둘째, 근무자들의 불만을 야기해 조직의 기능을 저하시킬 위험성을 가중시킨다. 그 사람의 능력과 자격을 판단하는 일은 가까이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정확하게 안다. ‘승진’은 경쟁이다. 경쟁의 원칙과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인사 시스템은, 마치 룰(Rule)을 공개하지 않고 무작정 경기만 진행시키는 불공정한 스포츠와 다르지 않다. 경기도는 승진 인사 시스템을 더욱 선진적으로 혁신해 그 기준과 규칙을 투명하게 공개해 설득력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
겉보기에는 평화롭고 문제없는 듯한 교실도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끼리 조를 짤 때 특정 학생만 조에 끼지 못하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그 아이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름 대신 친구의 별명이나 비하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행동이 농담처럼, 웃음 속에 섞여 진행되는데, 그 중심에는 분명히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기가 흐른다. 예전의 따돌림은 비교적 노골적이었다. 쉬는 시간에 놀리거나, 일부러 어깨를 밀치고 지나가거나,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행동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의 따돌림은 훨씬 은밀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갈등조차 없어 보인다. 단체 채팅방에서 특정인을 제외하거나, SNS에서만 이어지는 대화를 현실에서 일부러 공유하지 않는 식이다. 문제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에 교사나 부모가 쉽게 눈치채기 어렵지만, 당사자는 매일 같이 외로움과 소외감을 견뎌야 한다. 이러한 침묵의 따돌림이 위험한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매일 상황을 지켜보는 교사조차 친구들끼리 안 친해서 거리감이 있는 거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당한 경험은 아이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단순한 농담처럼 던져진 말 한마디, 무심한 눈길 하나가 모래알처럼 쌓여 무거운 돌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자기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잘못된 믿음을 품게 되고, 이는 성인이 된 후의 인간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단순히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교실에서 모든 학생이 최소한의 관계망을 가질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모둠 활동을 할 때 매번 같은 사람끼리만 묶이지 않도록 조를 구성하거나, 학급 행사를 통해 다양한 친구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관계가 억지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 속에서 조금씩 연결되는 경험을 주어야 한다. 물론 교사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가정과 학교가 함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를 심어줄 수 있다. 친구의 실수를 비웃는 대신 도와주는 행동, 다소 어색한 친구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는 습관은 집에서부터 형성된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아이의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모델이 된다. 교실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사회성을 처음 배우고 실습하는 공동체다. 그 안에서 조용한 배제와 무심한 침묵이 당연시된다면, 성인이 된 후 사회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교실에서부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침묵을 깨는 것이다. 교사, 부모, 또래 친구 모두가 괜찮아 보이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은 작은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말없이 혼자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무심한 듯 스쳐 지나가는 장면 속에서도 배제를 감지할 수 있는 민감성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모두가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갈 때, 교실은 모든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 될 것이다.
대통령 관저는 단순한 집이 아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거주하는 공간이자, 국가 운영과 위기 대응의 최전선이다. 외국의 정상들이 방문하는 외교 무대이기도 하며, 국민의 신뢰와 자존심이 투영되는 국격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대통령 관저의 위치와 조건은 단순한 ‘주거 편의성’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국가 경영의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 대통령 관저는 여러모로 대통령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1990년 현대건설이 공사를 맡아 지을 당시, 자연 지형을 거칠게 훼손한 사실부터가 문제였다. 암반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고, 본래 맑은 물이 흐르던 계곡을 매립해 관저 부지를 조성했다. 그 위에 15미터가 넘는 인공 축대를 쌓아 올린 후,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대통령 부부가 머무는 안방마저 이 축대 위에 놓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웅장할지 모르나, 터 자체가 불안정하고, 자연을 거스른 인공적 구조물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 또한 관저는 청와대 구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있다. 이는 외견상 위엄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고립감을 주고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지 않는 터다. 전통 풍수에서는 이를 ‘고한(孤寒)’이라 불렀다. 나아가 관저와 대통령 집무실은 도보로 20분 이상 떨어져 있다. 긴급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필수적인 국가 지도자에게 이는 심각한 약점이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곧 위기 대응의 생명줄과도 같다.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관저에서 거주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한 말년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구속되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IMF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았으며 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후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구속과 탄핵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물론 정치 지도자의 운명을 단순히 거주 공간의 문제로 환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일관된 불운의 연속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터가 지닌 부정적 기운, 인위적 조성 과정의 문제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그럼에도 지난 30여 년간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없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언론은 관저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내지 않았고, 건축·지리·행정 분야 전문가들도 이를 지적하거나 공론화하지 않았다. 이는 무지에서 비롯된 침묵이었을까, 아니면 불편한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국가 운영의 기반이 되는 대통령 관저 문제를 소홀히 다룬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대통령 관저는 국민과의 신뢰를 담보하는 공간이자, 국가의 품격을 드러내는 무대다. 따라서 새로운 관저는 무엇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단순히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안정과 품격을 갖춘 공간이어야 한다. 동양 고전에서 말하는 ‘화이불루(華而不陋)’―곧 화려하되 누추하지 않은 경지를 실현하는 관저가 되어야 한다. 자연을 파괴하고 무리하게 터를 닦아 올리는 방식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가 청와대로 복귀한다면, 단순히 기존 관저를 리모델링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백 년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건축학·지리학·사회학·행정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관저를 세워야 한다. 대통령 관저는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신과 국운을 담는 집이다.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 청와대 내부의 더 합당한 터에, 새로운 대통령 관저를 짓는 일 말이다.
지난 6월 4일 열린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즉시 가동하고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며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를 강조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외교·안보, 대북관계,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중심사회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은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바라마지 않던 약속이었다.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따라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 조속히 전환하고, 에너지 수입 대체, RE100 대비 등 기업 경쟁력 강화에 더해, 촘촘한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로 전국 어디서나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해 소멸 위기 지방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는 선거과정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기후위기 대응’ 공약으로 내 건바 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을 위해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 추진과 과학적 근거에 따른 2035년 이후 감축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하고,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며 농가 태양광 설치, 재생에너지 직접 구매 개선을 약속 했다. 태양광·풍력 등 탄소중립산업의 경쟁력 제고, RE100 산업단지 조성도 강조했다.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이 대통령의 의지는 인천시의 기후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인천시의 기후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는 공공주도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9월 중으로 2GW 규모의 공공주도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에 대한 집적화단지 사업계획서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6일자 10면 창간기획 특집, ‘인천 앞바다서 부는 신재생에너지 새 바람’) 집적화단지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다. 인센티브 이익은 사업지역 주민과 공유하게 된다. 수산업 공존 등 상생방안 마련 및 사회기반시설, 복지 개선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지방정부 주도로 해상풍력 발전에 적합한 입지를 발굴하고, 주민 수용성과 환경성 등을 사전에 확보한 뒤 지정을 신청해야 한다. 지방정부 주도의 집적화단지는 2026년 3월 이전에 지정받은 경우에만 유효하다. 2026년 3월 26일 이후엔 ‘해상풍력 보급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기 때문에 해상풍력 발전사업이 정부 주도의 계획입지 체제로 전환된다. 시가 집적화단지 지정 신청을 서두르는 이유다. 집적화단지로 지정되면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력 1MWh(메가와트시)당 최대 0.1REC의 인센티브가 부여된다. 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s)는 재생에너지증명이다.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공급된 전력량(소내소비전력 제외)에 가중치를 곱한 양을 기준으로 발급된다. 인천시의 2GW 규모 공공주도 해상풍력 집적화단지 사업이 현실화되면 연간 약 400억 원 규모의 인센티브를 20년간 지원받을 수 있다. 이를 합하면 무려 8000억 원이나 된다. 따라서 인센티브를 통해 사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역 내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다. 아울러 새로운 일자리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시는 공공성과 수용성을 기반으로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해상풍력 모델을 구축하면서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022년 민간 사업자가 주민 동의도 없이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무분별한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에 따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공공주도 적합입지 발굴사업’에 참여, 주민과 어업인이 참여한 민관협의회를 통해 지난해 7월 3개 해역이 적합입지로 선정됐다. 이 사업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꼼꼼하게 추진하길 당부한다.
여행이란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훌쩍 떠났다가는 자신이 살던 곳이 그리워질 때 다시 찾아드는 과정의 모든 연속이다. 여행은 피곤하면서도 즐겁다. 또 많은 것을 실제의 경험을 통해 보고 듣고 먹으면서 즐기게 된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만들어진 경험은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진 간접경험에 비해 훨씬 더 오랫동안 뇌리에 남게 된다. 세월이 지난 뒤에는 그때의 모든 과정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거나 또 진한 향수를 자아내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 모험심과 개척정신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여행을 통해 얻는 새로운 에너지는 우리 삶의 활력소가 된다. 그동안 일상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힐링이 가능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낭비가 아닌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튀르키예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Nâzım Hikmet)는 「진정한 여행」이라는 시에서 여행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한편,여행의 목적과 유형은 다양하다. 통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색다른 문물을 접하고 경험하거나 혹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구경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이 경우에도 여행객들은 처음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몰려다니다가 점차 중소도시로 발길을 돌려 세상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 중소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덜 붐비기에 그만큼 더 많은 자유와 여유를 즐길 수가 있다. 그리고 한곳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 나서거나 여러 가지 공연이나 이벤트를 즐기는 등 현지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느낄 수가 있다. 또 그 고장만의 특산물 요리를 맛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오감으로 즐기는 여행이 가능하게 된다. 다른 하나의 유형은 어느 한 곳에 머무르면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여행, 즉 힐링을 위한 여행이다. 날이 갈수록 이 목적의 여행이 더 중시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특히 명상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여행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천년의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온 길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다. 최종 목적지는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다. 그 길에는 진한 역사의 향기가 배어있으며, 중세에 지어진 오래된 교회와 고색창연한 건물들, 그리고 로마 시대의 돌길까지 아름다운 풍광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옛 자취로 가득하다.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느리게 숨 쉬고 싶을 때, 길 위의 자유가 그리워질 때, 평범한 삶에서의 작은 일탈을 원할 때,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을 때 사람들이 찾는 이 길은 명상과 구도의 길이 되어있다. 지금도 800km 여정의 길을 매년 약 6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미리 사전준비를 충실히 해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안전한 여행이 가능하며 여행의 깊고 오묘한 맛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어디로 가야 그 지방의 특산물과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고유의 풍물과 전통행사를 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두면 여행이 한층 더 풍성해질 것이다. 이제 장거리 여행을 떠날 준비가 다 완료되었나요? 그러면 떠나보시죠! 당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또 새로운 창조적 에너지원이 기다리고 있을 미래의 세계를 향하여...
원행을묘 출발 10여 일 전인 1795년 2월 25일, 정조 임금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창덕궁의 후원에서 가마를 타고 가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윤2월 9일 아침 다섯 시, 정조가 평소 도서관으로 쓰던 창경궁의 영춘헌(迎春軒)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거둥했다. 곧 수정전(壽靜殿)에 들러 자신보다 일곱 살 많은 할머니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께 인사드린 후 돌아왔고, 6시 45분에 행군을 알리는 구령이 세 번 울렸다. 드디어 영춘문을 나서면서 7박 8일의 원행을묘가 시작됐다. 창경궁의 천오문-만팔문-보정문-숭지문-집례문-경화문-동룡문 등 작은 문을 지나 건양문(建陽門)을 통과했다. 이어 창덕궁의 외전(外殿)과 내전(內殿) 경계의 숙장문(肅章門)을 지나고 진선문(進善門)-금천교(禁川橋)를 통과하여 정문 돈화문을 나섰다. 궁궐 밖 참배 길의 시작이다. 필자는 2024년 9월 14일 토요일 9시 돈화문에서 원행을묘 백리길을 출발했다. 정조의 행렬은 필자보다 두 시간쯤 일찍 출발한 것인데, 부지런하거나 환갑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가는 엄청난 규모라서 이렇게 일찍 출발한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먼 길을 갈 때 최대한 일찍 출발하여 최대한 늦게까지 걸었다. 현대인보다 빨리 걸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대한 오래 걸었기 때문에 현대인이 상상하기 힘든 하루 평균 40km를 걸어갈 수 있었다. 역사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길 위에 켜켜이 쌓여온 다양한 역사의 흔적과 이야기를 찾아내어 보고 느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또다시 살아갈 내일의 일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만드는 것이 최상이다. 정조의 원행을묘 백리길에는 정조 원행의 흔적과 이야기 외에도 우리의 선조들이 수백 수천 년 동안 만들어 온 역사가 많다. 그 첫 흔적을 돈화문의 문틀 속에서 만난다. 9시 정각이 되면 육중한 돈화문이 열리고, 문틀 안에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창덕궁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지고 놀라운 풍경이 액자 속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이 풍경은 아무 데서나 보이지 않아서 창덕궁을 방문한 수십, 수백 만 명의 관람객 중 이 풍경을 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 같다. 일반적인 관람 동선에서는 안 보이기 때문이다. 창덕궁 관람 매표소는 돈화문 서쪽에 있다. 여기서 표를 산 사람들은 곧바로 돈화문 아래로 직진하여 창덕궁으로 들어가 관람을 시작한다. 이런 관람 동선이라면 그 풍경은 관람객의 시야에서 완전히 숨어 버린다. 그러니 표를 산 다음에 바로 돈화문으로 직진하지 말고 돈화문 앞쪽 진입로 끝의 계단 아래로 가라. 그러면 놀랍고 멋진 풍경이 돈화문의 문틀 속에 귀신처럼 나타난다. 북한산 보현봉(714m)의 웅장하고 거대한 화강암 정상이 문틀 속에 쏙 들어가 있다. 이런 풍경이 세계 어디에 있을까? 아마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서울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역사 풍경이 정말 많다. 그중에서도 최고를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돈화문 문틀 속의 보현봉 그림을 뽑겠다. 필자의 절친 명지대 미술사학과의 이태호 석좌교수에게 이 풍경을 보여드리니 감탄하며 그 풍경을 만든 이에게 큰절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전문가의 진심이라서 좋았다.
낮은 저널리즘 품질, 지나친 상업화, 정파성이 강한 보도 등 현재 언론매체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존재한다. 이러한 평가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언론매체 자신에게 있다. 언론산업의 어려움이 나태한 저널리즘의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 생존을 위한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일부 현상이라는 핑계도 가능하겠으나, 언론매체의 핵심 가치와 존재 이유를 생각한다면 궁색한 변명이다. 언론매체의 생존과 언론산업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자기반성이 먼저다. 사회의 공기 혹은 제4부로서 언론의 존재 이유는 두 말이 필요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언론산업의 경제적 위기 구조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에 민주주의 근간이 위협받고 있어, 늦지 않게 언론산업 붕괴를 막을 사회적 조치가 필요하다. 공익을 실현하고 수준 높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언론매체에 직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현실에 맞는 새로운 언론정책이 개발돼야 한다. 이에 조금이나마 언론산업의 경제적 위기를 감소시키고 언론매체의 신뢰를 제고할 수 있는 미디어 바우처(media voucher)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바우처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 조성된 재원을 가지고 뉴스 이용자에게 일정 액수 상당의 바우처를 지급하면, 뉴스 이용자는 자신이 판단하기에 좋은 언론사나 좋은 뉴스 기사에 이를 후원하는 제도다. 이는 산업 조직으로서 언론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디지털 환경에서 저널리즘의 시장 실패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으로서 제안됐다. 뉴스 이용자의 후원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자발적 후원과 달리 다수 뉴스 이용자가 참여하고 재원도 일정 규모로 안정된 것이 특징이다. 미디어 바우처 제도를 통한 언론 후원의 근본 목적은 언론사 재정난 해소가 아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건강하고 신뢰받는 저널리즘 생태계 구축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지급 받은 미디어 바우처로 후원할 만한 언론사나 뉴스 기사를 비교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뉴스 이용자는 저널리즘 품질이나 그 기준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이용자가 어떤 뉴스 기사나 언론사를 신뢰하고 높게 평가하는지 알려지면, 언론사나 언론인은 그러한 보도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기울이게 된다. 이로써 언론사나 언론인은 고품질 저널리즘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제도 제안의 취지 중 하나로 디지털 환경에서 언론사의 광고 수익 모델 붕괴를 들 수 있다. 이는 미디어 바우처가 부분적으로나마 언론사의 광고 수익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언론사의 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재원 충당이 가능한지 등은 미지수다. 또한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국민의 이해와 동의가 우선이다. 미디어 바우처 제도는 고품질 저널리즘을 위한 기존에 없었던 창의적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시행된 사례가 전무하고 여전히 제안 수준에 머물러 있어 더욱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이는 바우처 개념 적용의 타당성 여부, 미디어 바우처 제도의 취지 문제, 플랫폼 환경에 대한 고려 문제 등과 관련된 문제를 포함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실험으로서 논의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고품질 저널리즘을 위해 작은 아이디어라도 도입이 시급하다.
지난 7월 30일,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보낸 편지에는 “개인 초지능(Personal Superintelligence)”의 비전이 담겼다. 편지에서 저커버그는 초지능 시대가 멀지 않았으며, 그것이 인류 발전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는 초지능이 개개인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학, 건강, 문화의 진보는 개인의 열망이 모였을 때 가능하며, 이 때에 초지능은 그 열망이 창작·경험·소통으로 발현되는 ‘더 큰 주체성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하다. 소수가 진보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하이에크가 이야기한 ‘치명적인 자만’에 불과하다. 개인이 자유롭고 호혜적인 교환을 통해 자생적으로 드러내는 창발성 속에서 비로소 진보의 문은 활짝 열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저커버그는 자신이 주장한 ‘활짝 열린’ 주체성의 문을 곧바로 닫아버린다. 그는 초지능이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무엇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무엇을 공개하지 않을지” 메타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의 기준과 공개 범위는 “모두의 힘을 북돋우는 초지능을 믿고, 거대한 인프라와 자원, 전문성을 갖추었으며, 수십억 명에게 새로운 기술을 전할 능력이 있”는 메타가 정할 몫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그간 Llama 모델을 오픈소스로 배포해 왔던 메타는 변화를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메타의 AI 모델 폐쇄가 수익화 가속을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체 모델 Llama4의 미진한 성과와 딥시크 쇼크로 초조해진 메타는 초지능 연구소를 꾸리고 업계 최고의 인재를 모아 초지능 연구소를 꾸리는 등 공공연히 오픈AI를 앞지르겠다는 집착을 드러내고 있다. 오픈소스로 공개했던 Llama 모델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정책 변화 암시는 이러한 메타의 집착을 배경으로 한다. AI 경쟁은 정보 공유지를 점차 축소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스타트업과 연구기관, 독립 개발자들은 대기업이 공개한 오픈소스 모델을 바탕으로 실험과 응용 서비스를 만들어 왔다. 오픈소스 모델이 폐쇄되면 소규모 주체들은 연산 자원과 데이터, 고급 인력을 직접 확보하거나, 유료 모델을 활용해야 한다. 자원이 부족한 국가의 AI 역량은 더욱 제한된다. 이는 기술 혁신의 다양성과 속도를 떨어뜨리고, 초대형 플레이어 중심으로 권력과 자원을 집중시킬 위험이 있다. 폐쇄형 AI 모델이 제시하는 불길한 미래는 불행히도 “자국 AI 모델이 있어야 국내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지식과 정보의 공유가 멈춘 폐쇄된 경쟁은 세계 각국과 기업들로 하여금 자체 AI 모델 개발에 나서도록 자극한다. 세계 각국이 전기, 물, 연산 자원, 인력 등 필수 자원을 AI 개발에 쏟는 ‘AI 주권’의 시대가 도래한다. 전지구적 관점에서 이는 거대한 비효율이다. 지구상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AI 말고도 산적해 있다. 개인의 것이라는 초지능의 미래는 어째서인지 소수의 기업과 국가의 손에 달린 듯하다. ‘개인 초지능’의 약속은 유효할까. 혹은 ‘선택적 개방’의 장벽 안에 갇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