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어린 것이 이 험한 곳에 겁도 없이 뾰족, 뾰족 연초록 새순을 내밀고 나오는 것 애쓴다, 참 애쓴다는 생각이 든다 저 쬐그만 것이 이빨도 나지 않은 것이 눈에 파랗게 불 한번 켜 보려고 세상 속으로 여기가 어디라고, 조금씩, 조금씩 손가락을 내밀어 보는 것 저 물푸레나무 어린 새순도 이 봄에 연애 한번 하러 나오는가 싶다 물푸레나무 바라보는 동안 온몸이 아흐 가려워지는 나도, 살맛 나는 물푸레나무 되고 싶다 저 습진 땅에서 이내 몸 구석구석까지 봄이 오는구나 시인소개: 단국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학 졸업 1981년 대구매일신문 ‘낙동강’ 등단 우석대학교 문예창작 교수 제2회 윤동주문학상 문학부문 수상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신 숨결 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시인 소개 : 1948년 전라남도 해남. 현대시학 등단.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대한민국 문학상 수상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시인 소개 :1939년 1월 17일 (일본) 1959년 현대문학 시 ‘해부학교실’ 데뷔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 졸업.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의과대학 방사선과 조교수,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방사선 동위원소 실장 제54회 현대문학상 시부문상 수상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이랑 만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숫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시인 소개 : 1903년 전남 강진 출생~1950년 1922년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영문학 1949 공보처 출판국장 1930 시문학 동인 1919 3.1운동 후 강진서 의거 시도 2008 금관문화훈장 수상
봄이 두터운 외투 속에 움츠리고만 있던 그 오월 줄 수 있었던 아름다움은 오직 그것 뿐이었을 때의, 눈감고 업은 내 아이와 오래도록 서있던 친정으로 가는 샛길 어귀 라일락 나무 구겨진 마음 풀어내 햇살 풀먹여 푸우우 품어내던 향분 옥양목 같은 생(生)의 강 가 사금처럼 반짝이는 시인 소개 : 1 930년 1월 29일 (일본) 1993년 4월 28일 학력서울대학교 수학 데뷔 1949년 문예 ‘갈매기’ 등단 수상 2003년 은관문화훈장
화창한 봄날 사랑하는 당신의 몸짓으로 들여오는 환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어둠을 몰아내고 빛으로 환하게 해주는 황홀함도 당신만이 만들어 밝게 보여 줄수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녀린 들꽃처럼 화사하게 손을 저으며 환하게 미소 지어요. 시인 소개 : 경기 용인 출생 시집 <시화호 갈대습지> 외
작년에 사다 심은 노오란 수선화! 치맛자락 펼친 듯 활짝 날개 펴고 꽃술을 내민 유리나팔 같은 하얀 꽃잎들이 손짓하며 불러들인 나비와 벌 꽃속 깊속이 머물러 꿈을 꾸며 잠이 드네 시인 소개 : 경기 용인 출생 시집 <시화호 갈대습지> 외
텃밭은 시골의 장터이다. 그 좌판에는 고추, 토마토, 수박, 참외, 가지, 오이, 옥수수, 땅콩 … 그 장터에는 장사꾼이 없다. 그 장터에는 가격이 없다. 누구나 부지런하면 공짜로 마음껏 갖다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청솔모란 놈은 새벽에 일찍 장을 본다. 잘 익은 참외를 골라 따, 머리에 이고 간다. 오늘 나도 한적한 장터에서 입맛에 맞는 것들을 골라 장을 보았다. 세상에서 맡을 수 없는 맛의 향기가 밥상에 피어오른다. 시인 소개 :경남 남해 출생 <문학21>(수필). <문예비전> (시)으로 등단
갑자기 울려온다. 우르르꽝꽝 우렛소리 일시에 쏟아진다. 장쾌한 빗줄기 보인다, 선홍빛 꽃잎 스무살의 비망록 순간순간 솟구치는 아픈 파도 소리다 울컥울컥 치미는 선지핏빛 열정이다 설산을 오르고 싶은 자존의 흰 뼈대다 고요히 저문 날 폭풍 쓸고 간 여백에 꽃은 향기 부르고 향기는 별을 당겨 어느새 해 맑은 목숨 서늘하게 눈 뜬다. 악장을 넘기면 남은 시간은 더 푸르러 아름답다, 음악으로 그린 그 실루엣 가는 길 고된 운명도 살아있어 아름답다. 시인 소개 : 경기 수원 출생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조), <문학예술> (시)로 등단 시집 <안개 빛 은유>
아비의 첩 머리통을 부수고 검붉은 피 온몸에 뒤집어 쓴 채 피눈물을 흘리며 오열한다. 철퇴를 휘두르면 어머니의 한이 풀리고 막혔던 가슴이 뚫릴까 공중을 휘감던 철퇴 날아와 박힌 가슴을 부여안고 마른번개 치는 하늘을 우러러 포효하는 연산 시인 소개 :충북 제천 출생. <문학시대>로 등단 시집 <이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