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산하 공공기관이 통·폐합되어 조직운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도 산하 24개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평가와 운영 실태를 비롯한 도와 산하기관 간 업무 중복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기관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처리할 때이다. 아직도 기관 간에 중복업무가 많으며 행정 서비스수준이 열악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도정을 위해서 불필요한 산하공공기관은 당연히 통·폐합되어야한다. 공직 퇴직자를 비롯한 정치요인에 의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이상으로 조직이 확대된 경향이 있다. 주민을 위한 지자체로 거듭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불필요한 산하 공공조직부터 통·폐합되어야한다. 합리적인 통·폐합을 위해서는 사전에 전문가의 연구용역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의회에서 연구사업 예산을 삭감한 것은 문제가 있다. 지방행정의 예산절감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전문가집단의 연구필요성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현실적인 문제를 분석하고 격변하는 미래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대안모색은 도정운영에도 도움이 된다. 연구 사업을 통해서 도 산하 24개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평가, 운영 실태, 업무 중복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기관 구조조정에 필요한 가이드 라인 구축이 가능하기 때
지난해 11월 7일 이상일 국회의원(새누리당 용인을)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용인종합운동장과 용인실내체육관 시설보수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용인시에 우선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문체부는 용인종합운동장과 실내체육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체육진흥투표권 수익금 11억5천만원이 확보됐다. 그런데 용인시는 지난 2011년부터 3만7천155석을 갖춘 국제규격의 주경기장을 포함한 종합운동장을 처인구 삼가동 시청 인근 22만7천㎡ 부지에 짓고 있다. 원래 총 5천85억원을 투입해 주경기장 등 1단계 종합운동장 건립(3천220억원), 체육·레저시설을 갖춘 2단계 공사(1천865억원)를 지난 연말까지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2단계 공사는 무기 연기됐다. 재정난으로 1단계 종합운동장 건립예산도 3천220억원에서 2천800억원으로 줄이고 주경기장만 2017년 말까지 완공키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보조경기장과 옥외주차장을 짓지 않고 주경기장만 덜렁 세워놓을 경우 동네 운동장 역할 밖에 못해 국제경기를 치르기가 힘들어진다. 국제경기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보조경기장이나 옥외주차장 등 부대시설이 필수 요소인 것이다. 참 어이가 없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마을은 그 자체로 영원한 학교이자 영원한 스승이다. 그런 소중한 ‘마을’을 우린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깨알 같은 성냥갑 속에 나뉘어져 각자 잊혀진 삶을 살아오면서 마을을, 이웃을, 소중한 사람들을 망각하고 살아 왔다. 요즘 불현듯 그런 잊혀졌던 마을들이 우리 곁에 돌아오고 있다. 마을이 뭉치기 시작했다. 마을학교와 마을선생들이 곳곳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고 마을을 살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생각을 모으고 힘을 합하고 어깨를 기대며 지혜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양한 ‘마을실천학습공동체’들이 출현하고 있다. 얼마 전 ‘서로 서로 가르치고 배우려는’ 마을학습관계자들의 ‘옹기종기 포럼’ 모임이 있었고 그 곳에서 필자는 좌장의 역할을 맡아 전국적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수 많은 놀라운 마을 만들기 사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마을을 일궈 낸 코디네이터와 마을리더들은 교육전문가나 시민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일상 속 마을사람들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점점 커갈수록 자신감을 잃어가기도 하고 꿈은 커녕 현실에 충실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아진다. 이처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은 점차 길거리로 내몰리는 경향이다. 지구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담배를 피우다 중학생들이 지구대로 붙잡혀 왔다. 학생들의 표정에서는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었고 “재수 없게 걸렸네, 반성문 쓰는 거 짜증나는데….”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 밖에서는 그들의 친구로 보이는 두 명의 학생이 서성이고 있었다. “얘들아, 안에서 반성문 쓰고 있던 애들 기다리고 있는 거니?” “네, 친구들이에요” “담배는 언제부터 피운 거야? 초등학교 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 때 호기심에 피웠다가 지금까지 피우게 됐어요” “너는 뭐 하면서 살고 싶어?” “저 공부 못해요. 머리가 꼴통이거든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요” 호기심 많은 나이인데 왜 꿈에 대한 호기심은 없고 담배에 대한 호기심만 있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최근 인구 고령화 및 노인의 활발한 사회적 활동이 늘어남에 따라 노인 운전자와 노인 교통사고도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3년 기준 OECD국 노인 10만명당 보행 중 사망자수는 평균 1.4명이나 대한민국은 4.1명으로 평균보다 3배나 높은 수준이다. 65세 이상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의 52%가 무단횡단 등 보행 중 사고로 노인 보행자 보호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노인 교통사고는 경로당, 마을주변 도로에서 길을 거닐다 일어난 사고들이 많다. 하지만 이곳에 노인보호구역 ‘실버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운전자나 보행자는 드물다. ‘실버존’이란, 노인들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기 위해 경로당, 양로원, 복지시설 등 노인들의 왕래가 잦은 도로에 어린이 보호구역인 ‘스쿨존’처럼 시속 30km제한 및 서행운전으로 교통사고의 위험으로부터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 2008년부터 도입된 교통안전구역이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31일자로 도로교통법 시행령·규칙이 개정되어 어린이 보호구역과 동일하게 노인·장애인 보호구역 내 교통법규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
옛날 우리나라 여성의 생활사의 한 단면인 ‘三從之道(삼종지도)’는 小學明倫篇(소학명륜편)에 나오는 말로, 여자의 一生(일생)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在家從父(재가종부)하고 適人從夫(적인종부)하고 夫死從子(부사종자)하여 無所敢自遂也(무소감자수야)니라”고 하였다. 즉, “시집가기 전 집에 있을 때에는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에게 순종하여 감히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라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신삼종지도’란 말이 있다. “어려서는 어머니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아내를 따르며 늙어서는(아내가 죽은 후에는) 딸을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여성의 지위 변화를 반영한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세칭 ‘갑질 논란’의 중심에 여성이 등장한다. ‘갑’의 지위를 가진 사람이 지나친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을’의 입장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하대(下待)하는 경향이 있다. 합리적 사고의 결핍이다. 온정주의가 비뚤어진 권위주의로 변개된 것이다. 세상이 변
빙어(氷魚) 이름은 다양하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민물멸치, 멸치, 충청도는 공어, 경기와 강원은 메르치, 뱅어, 백어등으로 불린다. 옛 문헌에는 빙어가 아니라 동어(凍魚)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 빙어와 공어(公魚)란 이름이 가장 많이 쓰인다, 빙어라는 이름은 조선말의 실학자인 서유구가 ‘전어지’에 ‘동지가 지난 뒤 얼음에 구멍을 내어 그물이나 낚시로 잡고, 입추가 지나면 푸른색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얼음이 녹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여 얼음 ‘빙’(氷)에 물고기 ‘어’(魚)자를 따서 ‘빙어’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엔 과어(瓜魚)라는 것이 실려 있고 그 뒤에 편찬된 여러 문헌에도 과어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 물고기가 바로 빙어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동해안 북부에 분포하는 바다빙어는 몸에서 오이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오이과(瓜)자를 붙여 과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과어는 그 맛이 오이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빙어는 원래 산란과 성장을 위해 바다와 민물을 오가던 물고기다. 하지만 바다에 나가지 못하고 민물에 갇혀 살게 되면서 지금의 생태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한 잔의 커피 /조우성 커피는 과거보다 새까맣다 새까맣다 못해 흑갈색이다 그러나 설탕은 미래보다 하얗다 하얗다 못해 서푸르다 나는 한잔의 커피에 두 숟갈의 설탕을 넣는다 이러지 않고는 모든 게 흐트러진다 그러므로 블랙 커피를 마시려면 혀의 위선이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 또 블랙 커피도 필요하다 이제 나는 그것을 안다 알고 있지만, 나는 한 잔의 커피에는 어쩔 수 없이 두 숟갈의 설탕을 넣는다 사람은 그렇게 산다고 믿고 산다. 詩는 사랑의 산물, 평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詩가 무엇을 노래한들 상관 있겠냐만 詩가 무엇의 도구나 사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커피의 종류에 호불을 갖지 않듯, 詩역시 호불이 있을 수 없다. 시가 언어예술로서 존재할 때, 詩는 詩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詩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실 때 찾을 수 있는 안온함 같은 것을 잔잔히 던져 주리란 생각이다. /박병두 (시인·수원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