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정치를 배격하고 통합정치를 하겠다” 지난 17일,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한 언급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이재명 의원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기는 하다. 그는 당내 “계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가, 계파를 배격하겠다는 본인의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비주류이기 때문에 계파를 갖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인지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계파정치란 배격돼야 하는 “부정적 존재”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계파정치는 민주적 정당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같은 정당이라고 해서 반드시 똑같은 생각을 해야 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적 정당이라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맞고, 같은 입장이나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 무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상당수 국가나 일본의 정당에서도 계파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계파의 존재가 영국 민주주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영국은 내각제 국가의 대명사이지만, 양당제하에서 내각제를 한다는 것이 문제를 야기할 수…
어떻게 불쾌한 마음을 극복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겸허’한 태도로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지적한다고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는가? 지적하는 쪽이 친절하지 않다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음은 냉정한 ‘판단’으로 극복해야 한다. 누가 지적하든 안하든 역시 원래 너 그대로이며, 만약 네가 자신을 지나치게 존경하고 있다면 자기 평가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웃이 아무리 불친절해도 실제의 우리는 어디까지나 실제의 우리이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에 의한 극복이다. 우리에게 악을 행하고 우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선으로 대하고 선으로 분노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극복함으로써, 그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는 있다. (아미엘) 선량함을 띠지 않는 눈길에 무슨 가치가 있으랴? 선량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富)이다. 평범한 재산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다 가지고 있다. 참된 길에 서서 선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라. 가령 네가 모든 종교의 교리를 다 알더라도,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선량함뿐이다. 선량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결코 어두운…
원·달러 환율이 비상이다. 지난주 15일엔 1326.1을 기록하며 2009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올해 들어서만 1월1일 기준(1188.9) 11% 이상 올랐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이 우려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로 자금이 몰린데 따른 결과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으로 국내 고물가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환율까지 가세하고 있다. 지난주 한국은행이 사상 초유의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환율은 계속 천장을 두드리고 있다. 게다가 오는 27일 미국 연준(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 금리인상이 예고돼 있다. 6월 수출입물가지수’는 지난달보다 0.5% 올랐다. 지난해 6월과 비교하면 33.6% 높은 수준이다. 환율 영향을 제거한 계약통화기준 수입물가는 5월보다 0.1%, 지난해 6월보다는 무려 20%나 올랐다. 고환율이 추가 물가인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6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 달러로 한 달 사이에 94억3000만 달러 줄었다. 국제 금융위기 이후 13년 7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10% 넘게 줄어든 영국 일본이
아침에 산책하던 중에 배를 하늘로 향해 누워있는 어린 매미를 발견했다. 날개가 돋아나는 우화(羽化)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날개가 온전히 펼쳐지지 못해 그냥 나무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집으로 가져와 풀과 나뭇잎을 넣어 집을 만들어줬다. 개미의 공격도 피하고, 짧은 매미의 생애와 매미가 주는 교훈을 알기 때문이다. 매미는 땅속에서 짧게는 2~3년, 길게는 7년 정도를 애벌레인 상태로 땅속에서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라다가 땅속에서 나와 성충이 되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간다. 천적이 없는 저녁 시간에 번데기 상태에서 2~6시간의 탈피의 과정을 거쳐 2쌍의 날개를 달고 자유의 몸이 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결과라는 말처럼 그냥 되는 게 없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품고, 사연을 안고 태어난 매미지만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수컷 매미는 수명이 암컷보다 더 짧다. 한 여름에 귀를 따갑게 울리는 매미의 소리는 짝을 찾기 위한 수컷 매미의 타는 목마름이다. 그래서 더 서럽게 울 수밖에 없다. 소음이 아닌 사랑의 세레나데로 여기면 어떨까. 밤에 우는 것은 인간이 만든 불빛의 영향이 크다고 하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글처럼 그리운 게 또 있을까. 그립고 그리워서 보물 같은 게 또 있을까. 보물은 박물관에만 있지 않아서, 달력에 적힌 글 몇 줄도 보물일 수 있다. 이를테면 농촌지도소에서 농민들에게 배포한 달력도 그중 하나다. 그림은 없고 숫자만 커다랗게 인쇄된 달력에는, 음력과 절기와 국경일이 적혀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날마다 그 달력에 기록을 하였다. 날짜가 인쇄된 네모난 칸 안에 ‘찹쌀 한 말(육손네)’, ‘비료 열 포대(화원댁)’, 같은 글귀를 써넣었는데, 빌린 것과 빌려준 것의 수량과 액수를 분명하게 밝혀 적었다. 빼곡하게 적힌 글귀가, 그러니까 잡다한 기록들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음을 그녀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시골집 방에 걸린 달력이 그녀의 눈에 처음 밟혔다. 하마터면 불쏘시개로 태워지고 말았을 달력이었다. 아버지의 하루는 무엇으로 기록되었을까. 어떤 생각들이 아버지의 하루를 채웠을까. 달력을 들추다 그녀는 울고 말았다. 이빨 틈으로 흘러나오는 울음의 정체는 부끄러움과 죄송함이었다. 달력 앞장의 기록이 거래내역이라면 뒷장은 금전출납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매달 수입과 지출내역을 달력 뒷면에 적었다. 적을 때, 모아두어야
여름이 깊었다. 에어컨 환경이 좋은 도서관으로 가는데, 인도블록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지렁이 사체가 눈에 띈다. 구리철사 토막인가 싶었다. 멈춰서 보니 지렁이 사체가 분명하다. 한 생명의 계절적 희생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어느 신문에서 김형석 씨가 쓴 ‘100년 산책’을 읽게 되었다.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워싱턴 DC 부근 마운트버넌이라는 곳에 있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저택과 농장과 그의 묘를 보고 소개한 글이다. 생전의 워싱턴은 자기를 내 농장 집 내가 지정한 장소에 그를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국회의사당으로 옮기지 못하고 그의 유언대로 자기 저택 왼쪽 돌들이 쌓여 있던 경사지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주변의 간곡한 연임 권고를 거부하고 사저로 돌아와 살았을 때다. 찾아온 손님들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면 워싱턴은 ‘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지금 백악관에 계십니다. 이름만 부르기가 어색하면 ‘파머(farmer농부)’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살아 있을 때 창고 비슷하게 사용하던 건물 안에는 그의 애용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 눈에 띄
알다시피, 한겨레신문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다 군사정권에 의해 해직된 기자들이 만든 신문이다. 그 해직기자들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분이 바로 리영희 선생이다. 선생은 한겨레신문의 창간 멤버로서 재정적인 면에서의 기여는 물론이고 뼈를 깎는 실천으로 저널리스트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한겨레신문이 추구해야 할 정신과 방향을 제시해준 셈이다. 선생의 저널리즘 철학은 한 마디로 해서 진실의 추구였다. 선생이 『역설의 변증』(1987)에서, “이 글들을 쓰는 목적은 오로지 진실로 통용되고 있는 허위의 진상을 밝혀내고, 허위의 모임으로 이루어진 ‘허위구조’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회고한 글이다. “사실 말이지 나에게 있어서 글 쓰는 작업은 자료수집이 거의 90퍼센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자니 그 고생은 보통이 아니었다. 매 순간마다 국제관계 전반에 대해서 날카롭게 살펴야 하고, 하찮은 것같이 보이는 어떤 힌트가 있어도 그것이 빙산의 일각으로 돌출한 그 수평 아래 숨어 있는 거대한 진실의 덩어리를 찾아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런 일은 소위 국제정치학자들은 하지 않고 또 하지도 못하는 일이다.”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
-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연구 “계엄령으로 군대가 조선인을 죽이기 시작하지요. 동시에 경찰은 조선인 폭동을 선전합니다. 이를 본 민중은 자신들도 나라를 위한다며 재향 군인, 청년단, 소방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자경단을 조직합니다. 그들은 조선인 사냥에 나서서 조선인이 판명되면 죽였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과 관련한 재일 사학자 강덕상(姜德相)의 진술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단지 보통의 일본인들이 저지른 학살이라기보다는 이 학살에는 국가가 개입, 주도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이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계엄령은 내란 또는 전쟁 때 발령됩니다. 그런데 왜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에 대해 계엄령이 발령되었을까? 그리고 내란을 일으킨 자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실마리로 해서 강덕상은 1975년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을 펴낸다. 국가에 의한 학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진행되었는지를 사료(史料)와 증언으로 분석한 결과물이다. 그는 이후 『여운형 평전』을 2002년부터 시작해서 2019년까지 무려 17년간 네 권까지 마무리해서 출간하게 된다. ‘강덕상’이라는 이름이 국내까지 뚜렷하게 알려진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