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새정부가 오늘 출범했다. 국민들은 희망의 새출발을 염원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앞에 놓여 있는 국내외 환경이 너무 엄혹하다. 국내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에 저성장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에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급격히 불어난 국가‧가계 부채와 폭등한 부동산 문제 등은 뇌관으로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 환경이 외통수처럼 탈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소대야의 충돌 구도다. 윤석열 정부 첫 인선과 인사청문회를 둘러싸고 여야가 극단의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장관의 인사 제청권을 행사해야 할 새 국무총리 인준이 막혀있다. 국회동의를 받아야 하는 한덕수 총리 후보자의 경우 민주당이 한동훈 법무,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문제 등과 연계해 임명 동의안 표결을 늦추고 있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총리와 주요 장관없이 ‘반쪽 정부’로 출범하게 됐다. 글로벌 위기의 쓰나미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도 정치권은 나몰라라 하고 있다. 특히 실망스러운 것은 여야의 정치력 부재다. ‘청문회 대치·반쪽 정부’ 가능성은 3·9 대선 직후부터 어느정도 예견된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것도 역대 정부의 오랜 교훈이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교육의 기초는 삶의 의의와 그 사명을 명백히 하는 일이 아니면 안 된다. 사람들은 법정에서의 거짓말을 범죄로 생각하고, 같은 성인들끼리 잘못된 말을 하는 것을 한심한 일로 생각하지만,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허황된 말을 지껄이고 아무리 거짓말을 하여도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필요한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인생의 의의와 사명에 대해 설명하는 종교상의 가르침은, 천년 전의 사람들에게는 만족을 주었지만 현대인들은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들에게 천년 전의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이것은 무서운 잘못이다. “어린이를 교육할 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 것은, 어린이들에게도 모르는 것으로 가르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리히텐베르크) 이 말은 흔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듯, 어린이들에게 의심스러운 미신을 제법 근거가 있는 것처럼 믿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들은 애매하고 어중간한 논거에 만족하는 버릇이 생겨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교육할 때 그들을 지나치게 힘들게 하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직 인간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업시간에 책 한 권을 느리게 읽는 슬로리딩, 혹은 온 책 읽기라는 교육 방식이 꽤 혁신적이었다. 정해진 교과 시간에 교과서 없이 수업을 진행하는 일은 교사와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도전적인 수업 방식이었다. 처음 우리 반에서 온 책 읽기를 진행할 때 학년 부장 선생님이 “그런 식으로 수업하면 학습 결손 생긴다.”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온 책 읽기의 정확한 기원이 어디인지, 누가 가장 먼저 시작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설이 있고, 한국의 몇몇 선생님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초기에 드문드문 퍼지던 온 책 읽기는 교육과정 재구성과 결합해서 몇 년 동안 각종 교사 연수에 필수코스처럼 등장했다. 그러다 국어 교과 단원에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1년에 정해진 시간 이상은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국가 공인 교육과정이 되었다. 책을 함께 읽는 활동이 국어 교과의 필수 과정이 되면서 교사의 집단 지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온 책 읽기를 위한 책 선정에서부터, 교육과정에 맞게 재구성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드는데 앞서 수업을 진행한 분들이 수업 자료나 피드백을 남겨
얼굴은 ‘얼의 꼴’이다. 법정 스님이 한 말이다. 얼은 넋이고 꼴은 겉모양이니, 얼굴은 넋의 겉모습인 셈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신의 줏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고들 한다. 법정 스님의 말대로라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넋에 따라 삶의 궤적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현재의 삶이 곧바로 얼굴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얼굴에는 삶은 없고 정신의 줏대만 있다. 졸업논문과 연봉계약서와 등기부등본은 없고 뼈와 살과 주름만 있다. 뼈와 살과 주름을 따라서, 부딪고 보듬고 벼르는 생각의 흔적만 있다. 얼굴에는 거짓이 없다. 화장이나 성형으로도 감춰지지 않는다. 뼈를 깎고 주름을 덮어도 정신의 줏대는 바뀌지 않는다. 얼굴은 저마다 지닌 정신세계의 조감도(鳥瞰圖) 같아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묻어난다. 인물 사진을 즐겨 보는 까닭도 그래서다. 그렇다고 내게 작품을 보는 안목이 있다는 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앎이 얕아서 깊게 보지 못하는 나의 눈은 작가의 의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대신 내 눈이 쫓는 건 사진에 담긴 얼굴의 흔적이다. 눈빛과 표정과 주름에 드리워진 생각의 발자취이다. 얼굴에는
신정부의 외교안보분야 공약의 캐치프레이즈인 ‘당당한 외교, 튼튼한 안보’는 표면상 보기에는 괜찮다.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성을 당당하게 내세우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결의라면 높은 점수를 주어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그 내용에 있어 진정 실질을 추구하고 바른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재고해 봐야 할 것 같다. 과거 2008년 MB정부가 들어서던 상황이 재현될까 두려움이 앞선다. 선 비핵화 후 관계회복, 한미동맹과 확장억제 강화, 선제타격 등 주장 내용이 거의 MB정부의 주장 내용과 일치하고 더욱이 이 일의 담당 주역도 과거 MB정부의 인사들이다 보니, 금강산관광 폐쇄,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이 떠 오른다. 당시 상황과는 크게 변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감안할 때 더욱 신경이 쓰임은 나만의 걱정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금년 들어 지속적인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준비하고 있는 제7차 핵실험, 그리고 그들의 언동 내용의 진의를 바로 해석하면 길이 보일 것이다. 2018년의 꿈같은 시절, 북한으로서는 숙원이었던 안보 불안에서 해방되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통령에게 자신들 주민…
-통혁당 사건 이후의 기세춘 지난 5월 6일 88세로 세상을 떠난 묵점(墨店) 기세춘(奇世春)에게 1968년 ‘통혁당 사건’은 그 인생에 한 획을 긋는다.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박성준은 15년형 그리고 기세춘은 기소유예가 되었다. 하지만 수사명단에 올라 빨간 딱지가 붙은지라 구직(求職)은 막혔고 대전에서 기계 설계로 생활을 해결하면서 동양철학 연구에 생애를 바친다. 훗날 묵자(墨子) 연구는 기세춘의 명성을 만들어 냈다. 그는 퇴계 이황과 조선 성리학의 최고 논쟁인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벌였던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의 15대손으로 잘 알려졌고 아마도 그 내력은 기세춘의 평생 자부심이 되었으리라 짐작해보게 된다. 그가 한학과 동양사상에 몰두하게 된 까닭도 이런 연유가 강하게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큰할아버지 기삼연은 구한말 의병대장이었으니 이런 가족사의 흐름 속에서 기세춘이 무얼 생각하며 살았는지 알 만하다. 기세춘이 통혁당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것은 1963년 그가 『동학혁명연구회』를 만들어 이끌고 있을 때였다. 당시 이 연구회의 학술위원장을 맡은 이가 신영복이었으니 수사당국이 그대로 지나칠 리 만무했다. 둘의 인연은 신영복의
경기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직접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주민총회!’ 보고서를 보면 지방자치시대의 현주소와 직접 민주주의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읍·면 단위로 주민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주민총회’를 설치하고 재정 자율성·책임성을 부여하는 등 기초자치정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감을 얻고 있다. ‘물리적 한계로 구현되지 못했던 주민 의견이 지식정보화사회 진입으로 표출되면서 직접민주주의가 더 확산할 것’이란 진단은 옳다. 연구원이 사례로 제시한 미국의 ‘타운미팅’과 스위스의 ‘게마인데총회’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타운미팅은 주민총회와 선출직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가 입법·예산권 쥐고 있다. 게마인데총회는 주민발안으로 입법, 주민투표를 통한 예산 운영방향을 심의한다. 진정한 지방자치, 직접민주주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민총회는 자치단체 지역 모든 유권자들로 구성돼 주요 공직자를 선출하고 자치단체의 중요정책·예산·인사 문제 등을 주민이 직접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12월 주민조례 발안권을 강화하는 지방자치법을 개정한 바 있다. 김두관 의원과 김영배・이명수 의원도 이와 관련한 주민자치회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주민자
동물에 대한 연민은 우리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세상의 온갖 관습과 암시의 힘에 의해 우리는 동물의 고통과 죽음에 대해 냉혹하고 무자비해지고 있다. 동물에 대한 연민은 선량한 인격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서, 동물에게 잔인한 자는 결코 선량한 인간이 아니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 신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동물을 학대하지 말라. 기꺼이 일해 주는 동안에는 그들을 부리고, 지치면 쉬게 해 주며, 말 못하는 그들에게 충분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라. (마호메트) 육식은 동물을 죽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동물을 죽이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인간들이여, 육식을 삼가라. (바라문 법전) 인간이 동물들보다 위에 서는 까닭은, 우리가 동물을 냉혹하게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동물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 아이들로 하여금 벌레를 죽이지 못하게 하라. 무서운 살인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동물에 대한 연민의 정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사냥과 육식을 끊음으로써 잃는 만족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닮았다는 말은 신을 대신하여 모든 생명들을 잘 보살피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