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했던 대선이 끝나고 윤석열 정부가 닻을 올리고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윤석열호를 끌고 갈 국무총리도 발표되었고, 정부부처 장관들도 속속 지명되고 있다. 덧붙여 모 신문이 “차기 국정원장으로 원출신이 유력”하며 구체적인 이름까지 보도한 이후 향후 국정원의 위상과 활동방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의 국정원은 한마디로 ‘빈사상태’였다. 최대의 업적이자 성과로 자부할 남북정상회담도 상당수의 북한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대로 ‘일회성 쇼’였음이 최근 북한의 ICBM 발사나 남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 시사’ 등의 발언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본질이 바뀌지 않는 평화타령은 헛된 구호이자 판타지임이 드러내 주었다. 이 같은 냉랭한 현실은 윤 정부의 국정원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주고 있다. 국정원이 그간 ‘동네 국정원’이란 비아냥을 들어왔어도 국민들이나 여론선도층의 기대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만큼 국가 안위와 국익을 위해 떠받치는 막중한 기관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정보환경은 갈수록 복잡다단해지고, 국제현실은 짙은 농무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보기가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안보를 등한시하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실증하고 있는데도
‘문해력’이 또 하나의 과외 과목으로 올라서는 분위기다. 특히 학령기 아동의 엄마(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코딩도 벅찬데 문해력 까지 해야 한단다, 어쩌자는 것이냐. 자녀의 ‘경쟁력’에 모든 걸 걸다시피 하는 우리 엄마들의 열정이 교육현장의 새 국면을 열고 있는 것인가. 문해력, 노인 할머니 등 형편 어려워 한글 못 깨우친 분들 교육하는 (정부)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최근 문득 ‘문해력이 학교교육 전반의 문제라서 하루라도 먼저 깨우쳐(줘)야 한다.’고 교육방송이 연예인들 앞세워 방송 시작하는 바람에 이 걱정이 시작됐다. 아이들이 선생님 말씀, 교과서의 설명, 문제의 예문이나 지시문 등을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생한 현장을 TV는 보여주었다. 설문조사나 관련 통계도 절실하게 제시됐다. 낱말 뜻 모르고, 말귀 못 알아듣고, 글눈 어두워 교육이 아이들과,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모습, 충격적이었다. 몰라도 그냥 지나가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을 새삼 걱정하게 된 것이다. 학교가 무엇인가. 그걸 당연하다 여기는 분위기를 우리 교육이 이제야 실감한 것일까. 가나다 깨치고 영어도 배웠는데, 문해력이 부족하다니(엉망이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도 작지
윤석열 차기 정부 조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부처 장관급 인선을 사실상 끝내고 이제 대통령 비서실과 차관급 등 후속 인사만 남았다.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법무 장관 후보자로 전격 발탁했다. 관심을 끌었던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엔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내정됐다. 김 전 실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기획예산처 예산실장, 통계청장,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을 거쳐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지냈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이 경제통으로 짜이게 됐다. 윤석열 당선인이 능력을 인사의 최고 덕목으로 강조해온 만큼 새정부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가 경제에 있음을 확인시켰다. 우리나라가 처한 정확한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최근 우리 경제는 나라 안팎의 거세 도전 요인으로 위험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미 세계적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물가는 서민경제를 구석구석 옥죄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4일 기준금리를 다시 0.25%포인트 올렸다. 지난 1월 이후 3개월 만이다. 대외적으로는 코로나19 변수에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국의 초긴축 움직임까지 겹치며
부유한 지배계급과 가난한 피지배계급으로 나눠져 있는 세상이란 애초부터 잘못된 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황금만능주의의 결과 공정한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전쟁과 다름없는 생존경쟁의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부유한 기업인은 말한다. “노동자가 굶어죽는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냐? 난 약속한 대로 임금을 다 지불했다. 그 이상 나더러 어떡하라는 말이냐?” 카인도 아우 아벨을 죽이고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야훼께서 물었을 때,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답했다. 공장주도 그렇게 말한다. “내가 형제인 노동자에게 약속한 임금을 다 치르지 않았다는 말이냐?” (칼라일) 인간은 땅 위에서 땅에 의해서만 살 수 있는 존재이므로, 어떤 사람이 사는 땅을 다른 사람이 빼앗는 것은, 그 사람의 피와 살을 빼앗는 것과 같다. 땅의 약탈에서 생기는 사회제도는 덜 직접적이고 덜 노골적인 뿐, 과거의 노예제도보다 더욱 잔인하고 더욱 사람을 타락시키고 만다. (헨리 조지) 지금 우리는 앞서간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온갖 편리한 물건 속에 파묻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한가? 설령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치더라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직장 구하기 힘들어”라는 푸념들. 선진국이면 으레 겪는 통과의례다. 귀에 딱지가 붙었다. 2차 산업 비중이 줄어드는 산업 구조에서 국민의 다수는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당연히 ‘성장엔진’이 꺼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 경제의 전형적인 생태다. 지식을 자본으로 하는 4차 산업이 ‘경제 도약 산업’으로 주목을 받지만, 대한민국의 ‘수출형 경제’를 감당하기엔 무리로 보인다. 고도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금융 산업은 자본 규모나 전문지식 측면에서 ‘K-한류’ 위상에 턱없이 못 미친다. 국제 경쟁력은 고작 30위권이다. 플랫폼 대표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또 어떤가. ‘국내용(國內用)’이라는 ‘딱지’를 아직도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한편, 많은 수의 제조업체들은 이 땅을 떠났다. 온실가스 제약은 없으면서 저렴한 노동력 조달이 용이한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결과는 ‘실업 증가’로 나타났다. 생산 기반을 상실한 투자 환경에서 뭉칫돈은 ‘투기’로 쏠렸다. 규제가 주된 원인이란다. 하지만 투자처가 마뜩잖은 시장 환경도 부동산 가격 폭등
1. 『쇼크독트린(The Shock Doctrine : The Rise of Disaster Capitalism)』은 캐나다 출신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이 쓴 책이다. 자연발생적 혹은 계획에 따른 구조적 충격을 발생시켜 특정국가에서 극단의 이익을 탈취하는 다국적 자본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다. 발간된 지 10여 년이 훌쩍 넘은 책이지만 함의가 늘 새롭다. 그래서 수시로 서가에서 꺼내 펼친다. 이 책은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무기로 하는 글로벌 독점자본들이 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저지르는 폭력적 욕망을 영화처럼 펼쳐 보인다. 1973년 CIA와 합작으로 민주주의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피노체트의 쿠데타. 덩샤오핑 집권기에 일어난 1989년의 천안문 사건. 1991년 몰아닥친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그리고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대내외적 쇼크(충격요법)와 위기 조성을 통해 압도적 부를 긁어모으는 그들만의 은밀한 작동방식이 폭로되어 있다. 다국적 자본의 금고로 전 세계 민중의 고혈이 꿀로 바뀌어 흘러드는 마술 말이다. 2. 『쇼크독트린』에는 1997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IMF 구제금융 사태 이야기도 나온다. ‘아시아의 호랑
사회적경제는 고도성장과 무한경쟁 사회에서 협동과 연대를 통해 사람 가치를 중시하며 경제적 이윤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해 가는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다. 지속가능경영, 지역사회문제 해결, 사회적가치 창출, 공유가치창출(CSV), 기업가정신, 자율경영공시, 윤리경영 등이 사회적기업 창업과 연관된 키워드들이다. 효율과 경쟁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발생하는 양극화, 고령화 사회, 환경문제 등 많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경제기업 창업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창업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사회적 이슈나 문제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문제해결자로서 단체나 활동가들의 참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그에 부합하는 조직화나 창업 단계로 이어 가야 한다. 사회적 기업가에게는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들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이나 활동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모험정신을 발휘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와 추진력이 요구된다. 경청과 공감 그리고 배려와 나눔에 기반하는 소통과 올바른 태도가 사회적경제가 필요로 하는 사
지난 3월 15일 자 조선일보 동서남북 칼럼에”정권은 바뀌어도 방송은 안 바뀔 것”이란 글이 실렸다. ”공영방송이나 정부, 지자체가 대주주인 방송사들은 언제나 여당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5월 대통령이 바뀌어도 방송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 내용이다. 보수세력이 집권했으니 공영방송과 정부가 대주주인 방송도 친여 보수적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노조 등 장애요인이 있어 어렵다는 내용이다. 공영방송은 죄 없다.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 정치인과 정파적 집단 그리고 그에 붙어먹는 일부 경영진과 경영진 희망자들이 문제일 뿐. 왜 보수가 집권했다고 공영방송이 친여 보수적으로 가야 하나? 제발 공영방송이 제자리 잡도록 놔둬라. 욕하고 이용해먹으려 하지 말고. 신문사가 경영하는 종편이나 잘해라. 종편은 극단적인 보수 방송이다. 조선일보는 공영방송의 편파적 방송태도를 문제 삼는데 TV조선의 편파성은 어떠한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공영방송이라 편파적이면 안되고 종편은 신문사가 운영하는 민영방송이라 극단적 편파성을 가져도 문제없다면 공영이 아닌 민간기업이 만드는 제품들은 불량해도 아무 문제없다는 논리다. 신문과 방송이 만드는 제품은 뉴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