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 중에 가장 난감할 때가 피해를 본 학생이 있는데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이다. 예를 들어 사촌이 외국에서 선물한 특이한 볼펜이 분명히 오전 수업시간에는 필통에 있었는데 점심시간 후에 없어졌다거나, 똑같은 스티커를 교실 안에 여러 명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의 스티커가 사라졌다거나.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거나.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문제의 난이도가 낮은 편이지만 이마저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아이가 담임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일단 다른 아이들에게 물건이 저절로 어딘가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가방이나 책상 서랍, 사물함을 확인해 달라고 말한다. 이때 없어진 물건이 돌아오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이런 경우는 잘 없다. 아이들이 열심히 찾아도 물건이 나오지 않으면 속상한 피해자를 달래면서 앞으로 학교에 소중한 물건은 가져오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끝난다. 이렇게 사건이 종결되는 줄 알았는데 한참 뒤에 잃어버렸던 물건이 다른 아이에게서 발견되면 더 난감해진다. 물건을 잃어버린 A는 네가 가지고 있는 특이한 볼펜은 한국에서 팔지 않는 것이므로 본인의 것이 틀림없으니 돌려달라고 말하지만, 물건을 사용한 B는
택배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 이즈음 동네 식당에서 밥 먹다 중년 남성 몇이서 욕하는 것을 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택배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동정하자 어떤 이가 "누가 그 일을 시켰어?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 죽든 살든 해내야지!" 하고 쏘아붙였다. 그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토를 달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동네 버스 정거장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젊은 친구 A는 동년배로 보이는 B의 짐을 들어 버스에 올려주었는데 배려받은 그가 나머지 짐마저 들어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은 A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머지 짐 하나를 들고 버스에 올라탄 B는 A에게 도와줄 바에는 끝까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무랐다. 급기야 A가 모르는 사람에게 선의를 베푼 제가 잘못입니다, 하고 사과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런 반사회적 인격 장애 사례는 과연 일반화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일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포털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지금 당장 방역 당국의 소상공인 영업 제한에 관한 뉴스에 어떤 댓글이 주를 이루는지 들여다보자. "자영업자들에게 왜 돈을 주냐? 세금이 아깝다.", "이 기회에 저것들 망해야 한다.…
A와 B가 교실에서 무언가 훔친다고 했다. 특수학급 보조교사는 문구용품과 간식이 사라진다며 ‘범인’으로 아이들을 지목했다. 장난과 호기심에 한두 번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세 번째 도적질이 보고되자 두 녀석을 불렀다. “너희들이 한 짓을 이미 알고 있다. 이실직고하면 부모님께는 말씀 드리지 않겠다. 대신 교실에서 가져간 것을 낱낱이 써내라” 녀석들을 협박했다. 가정에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인지 열심히 훔친 내역들을 써내려갔다. 자백을 받아내는데 나름 효과가 있구나 하고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발달장애 아이들이라 정직하고 순수했다. “아닌데. 더 있는데. 선생님은 너희들이 뭘 가져가는지 몰래 지켜봤다. 아직도 빠진 게 있으니 빠짐없이 써내라” 했다. 당황한 녀석들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적고 또 적었다. 열심히 작성한 도난품 목록에 순진하게도 ‘정수기 물’까지 등장하자 비로소 취조를 멈췄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도난품 목록을 읽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A는 책, 교구, 문구류, 간식 등 가져간 물품이 다양했다. 단지 재미로 훔친 것 같았다. 가정형편이 넉넉했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가져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B가 적어낸 건 거의 ‘먹을 것’이었다
1. 겨울밤, 인터넷 다운로드로 오래된 영화를 봤다. 《패왕별희(覇王別姬)》. 1993년 첫 상영 당시 잘라낸 15분을 추가한 완전판, 이른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다. 알다시피 이 작품은 유명한 경극(京劇) 제목을 영화 이름으로 빌려왔다.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과 천하쟁패를 겨룬 초패왕(楚覇王) 항우. 그와 일생의 연인 우희(虞姬) 사이의 비극적 사랑과 죽음을 다룬 공연극이다. 이 경극의 정점은 사면초가에 빠진 항우의 탈출을 위해 우희가 칼로 자기 목을 찌르는 장면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항우본기(卷七. 項羽本紀)'에서 쓰러진 우희를 안고 패왕이 부른 애절한 노래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름하여 해하가(垓下歌)다.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지만 때는 불리하고 추(오추마, 烏騅馬)는 가지 않는구나.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고 우희야 우희야 어찌하면 좋을고“ 영화 패왕별희는 어떠한가. 경극 연습장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의형(義兄)을 사랑하게 된 데이(蝶衣, 장국영 분). 경극에서 주인공 우희를 연기하는 이 남자 또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다. 패왕과 우희의 고사를 이중적 메타포(metaphor)로 차용한 것이다. 하지만 커튼
조선 태조 이성계의 문자점(問字占)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왕이 되기 한참 전에 함경도 안변(오늘의 강원도 안변군) 지역에서 앞에 놓인 많은 글자 중 ‘물을 문(問)’ 자를 짚고 점괘를 물으니 점쟁이가 “큰 대문 안에서 커다란 밥상을 받을 것이므로 왕이 될 팔자”라고 말하며 큰절을 올렸대요.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거지가 같은 글자를 짚자 “문(門) 앞에서 입(口)을 딱 벌리고 있으니 천생 거지 팔자”라고 핀잔하더래요. 비슷한 에피소드로 복자점(卜字占) 이야기도 있어요. 암행어사가 ‘점 복(卜)’ 자를 짚으니 “마패를 차고 암행어사가 될 팔자”라고 하던 점쟁이가, 지나가던 거지가 옷까지 바꿔 입고 같은 글자를 짚자 대뜸 “쪽박을 찬 거지 팔자”라고 멸시했다죠. 우리 정치인 중에 점을 치기 위해 철학관이나 무당을 찾는 이들이 유독 많다는 사실은 다 알려진 불편한 진실이에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리학(역리학)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상당한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어요. 불가측(不可測)한 요소들이 특히나 많은 선거를 앞두고 그들이 운세 풀이를 탐닉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죠. 손바닥 왕(王)자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후보가…
지혜로운 사람이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알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학자란 책을 읽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교양인이란 그 시대에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 지식과 풍속, 관습을 완전히 터득한 사람을 말한다. 현자란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오늘날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필요 없는 지식을 산처럼 가득 채워 넣고 자신을 학자나 교양인, 현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의의도 모르면서 오히려 그 모르는 것을 자랑하는, 깊은 미망의 구렁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학 분자식도 모르고 라듐의 시차와 그 성질도 모르는 무지한 문맹자 가운데, 인생의 의의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지혜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지도 내세우지도 않으며, 다만 끝없는 자만에 의해 더욱 미망의 구렁에 빠져드는 사이비 지성인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유일한 학문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학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사람의 손에 닿는 학문이다. 생명의 원리는 스스로 함이므로 이론으로 하면 진리는 곧 나 자신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생각만 하면 스스로 깨달
법원이 서울 지역 청소년 방역패스 적용에 대해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이후 백신 접종을 코로나 종식의 분기점으로 삼으려던 정부의 방역대책이 난관에 봉착했다. 전국의 대형마트, 백화점, 보습학원 등의 방역패스 적용을 해제함으로써 당초 17개였던 적용시설은 11개로 축소됐다. 다만 정부는 3월로 예정된 청소년(12~18세) 방역패스 시행은 고수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방역패스를 향한 부정적인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는 위중증 환자가 500명대로 떨어지고 의료체계가 안정화됐다는 점을 방역패스 적용시설 축소 결정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살벌한 코로나19 전선이다.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 검출률은 지난주 26.7%로 직전 주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한 설 연휴도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전문가들은 3월 중 신규 확진자가 2만 명에 달할 수 있다는 끔찍한 전망까지 내고 있다. 대형마트를 비롯한 일부 생활 밀접시설에서 미접종자 출입 제한이 풀렸음에도 반발은 여전하다. 일반 시민은 물론 의료계 전문가까지 나서서 백신 접종을 강제하려는 방역패스는 ‘기본권 침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방역패스는 미접종자를 감염 위험에서…
잠룡(潛龍)들 세상을 노리다. 선거 얘기다. 개천에서 용 났다. 이재명 대통령후보 얘기다. ‘개천용’은 우리와 친근한 이미지다. 중국 황제의 상징 용, 우리나라에선 그 그림 흉내도 못 냈다. 대신 봉황이 임금의 상징이었다. 청와대 문장(紋章)의 봉황은 이 굴레 벗지 못한 결과다. 20세 조지훈의 시 ‘봉황수’(鳳凰愁)는 뒤틀린 역사의 한(恨)을 품었다. 이제 그 한의 대상은 미국과 일본인가. 정신력 허전한 저 나라들의 짜증스런 사슬, 풀어버리자. 저 시의 해석과 해설들, 상당수가 헷갈렸더라. 입시용 상투적 문안의 몰(沒)지성에 섬뜩했다. 용을 서양신화의 드래곤과 혼동한 경우도 잦았다. 어찌 탓하랴, 구미(유럽과 미국)의 지식의 틀로만 가르쳐 왔으니. 요즘 뜬금없이 문해력(文解力)이 유행이다. 이는 여태 한글 못 배운 세대에게 가나다 깨쳐주는 ‘특수교육’이었다. 연예인과 교수 내세운 교육방송의 프로그램에 엄마들이 놀란 것이다. 초중고교생 상당수가 말귀 못 알아듣고 글눈 어두워 (책을) 읽고도 뜻을 짐작도 못 한단다. 그런데 그 원인과 해결책은 구미의 리터러시(literacy)에서 찾고 있다. 시청률도, 책 판매도 좋고, ‘문해력유치원’도 방송 중이란다. 문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