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의 채널별 시청률 추이를 보면 큰 흐름이 있고 미래에 대한 예측의 단초를 제공한다. 가구시청률을 보면 2016년 대비 2021년 KBS는 5.7%에서 4.2%로, MBC는 5.0%에서 2.2%로 TV조선은 1.4%에서 2.5%로 TVN은 1.4%에서 1.6%를 기록했다.(12월 1주차 까지, 닐슨 시청율) TVN은 주시청 계층인 M세대에 X세대와 Z 세대까지 가세하면서 시청자층이 안정화된 결과다. TV조선은 트로트라는 킬러 콘텐츠 성공사례의 연장이라 보인다. 2017년 JTBC의 1/2에도 못 미치던 TV조선이 트로트의 성공과 코로나의 확산에 따라 트로트의 현장이 공연에서 TV 프로그램으로 들어오면서 예능뿐 아니라 프로그램 전방위적인 선순환효과를 만들어 이젠 JTBC를 압도한 것이다. 메인뉴스 시청률을(가구시청률) 봐도 이런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KBS가 2016년 17.1%에서 2021년 10.7%, MBC가 2016년 6.2%에서 2021년 5.2%, TV조선이 2016년 1.5%에서 2021년 5.9%, JTBC가 2016년 4.2%에서 2021년 2.5%로 나타났다. 채널별 시청률의 변화가 뉴스에도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TV조선의
진정한 행복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은 물체의 그림자처럼 선한 생활에 항상 따르기 마련이다. 신은 우리를 더욱 선하게, 더욱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의 눈앞에 또는 우리 가까이에 갖다 두었다. (세네카) 자신의 생명을 정신적 자기완성 속에 두는 사람은 불만을 느끼는 일이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 진정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활동은, 언제나 쾌락의 획득을, 고뇌의 회피를,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의 도피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쾌락에 대한 욕망은 타인과의 투쟁에 박차를 가하고, 고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며 죽음을 끌어당긴다. 그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 그들이 알고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더욱더 많은 쾌락을 좇는 것이다. 그러나 쾌락에는 한계가 있어, 그 한계를 넘으면 쾌락도 고뇌로 바뀌고 더욱더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바뀌어버린다. 진정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뇌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없는, 남으로부터 힘으로 빼앗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쾌락으로 생각하는 데 있다. 남으로부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힘으로 빼앗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유명한 저서이다. 제목은 지식인을 위한 변명인데 내용은 지식인을 비판하고 있다. 왜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비판했을까?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지식인은 사회의 특정 계층에 묶여 그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닌,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서고 초월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진리의 수호자이다. 그들은 사회 진보에 기여하고 다수의 이익에 봉직함으로써 그 정체성을 현재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지식인을 지배 수단을 연구하는 단순한 기능인으로 취급하여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데에 이용할 뿐이다. 이때 피지배계급에게 지식인은 지배계급의 앞잡이로 전락한다. 이런 지식인을 사르트르는 지식 판매꾼이라며 맹비난했다.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부당한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자들은 지식을 팔아먹는 지식 판매꾼이라는 것이다. 과거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을 만들고 또 그 정당성을 홍보하고 다니던 학자들부터 4대강을 꼭 정비해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조용조용히 설파하던 뱀의 혀를 가진 자들이 그들이다. 대선 정국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각 진영마다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지식인들이 지지그룹으로 발표되고 있다. 눈에 가장 띄는 것은 교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시면 진료실 외에 임상심리실이 있는데 여기서 하는 일 중에 심리평가가 있다. 심리평가는 개인의 행동, 인지, 정서와 성격, 대인관계 등을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문제 해결과 의사결정을 돕고자 실시한다. 특히 의료 및 건강관리 영역에서의 심리평가는 증상을 평가하고 진단하며, 치료의 효과를 최적화하고, 개인의 강점과 약점, 질병 취약성 등을 평가해서 질병의 예방 및 재발 위험을 저하시키는 목적도 있다. 심리검사는 심리평가 과정의 일부다. 대부분의 심리검사는 표준화되어 있고, 규준점수를 제공하는데 이 점수를 심리측정적 자료라고 한다. 임상가는 수검자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가설의 적합성을 판단하는데 검사점수라는 자료를 부분적으로 활용한다. 즉 심리검사의 점수 자체는 심리평가 결과가 아니며, 검사점수는 심리평가를 위해 수집된 자료다. 검사뿐 아니라, 평가 면담, 관찰, 행동평가, 개인의 생활과 대인관계 맥락, 문제 영역에 대한 지식, 복합적인 원인과 상호작용, 사회적 변인 등을 고려해서 다양한 원천의 정보를 통합적으로 판단하면 비로소 심리평가의 결과가 된다. 심리평가 과정에서 수검자는 자신이 직접 수행할 심리검사가 무엇인지 궁금
사람들 사이에 사랑을 전파하는 것만이 현재의 사회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위험한 말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사악한 행위가 저질러지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사악한 행위가 자행되며,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큰 사악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사랑이 인간 생활에 의의를 주고 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 도대체 그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동서고금의 현자들에 의해 해답이 제시되어 왔지만, 그것은 언제나 부정적인 답이었다. 즉, 흔히 사랑이라 불리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마치 서로 이방인이나 원수처럼 살고 있는 이 피폐하고 낡은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준다.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여, 그들은 당장 정치가들의 외교활동과 거대한 군대, 수많은 요새가 아주 쉽게 사라지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조상은 어떻게 저런 불필요하고 사악한 것을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고생을 해왔을까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에머슨) 중국의 현자 가운데 맹자와 비교되는 묵자(墨子)가 있다. 그는 권력자들에게 힘
최근 정부와 한적이 발표한 이산가족 실태조사 결과와 관련해서 이산가족 1세대분들이 고령화되어 물리적으로 상봉이 가능한 시기도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 감안시 수년에 불과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보도가 있었다. 이산가족 문제는 역대정부 최우선 해결과제였지만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는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 이념적 차원에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산가족을 북한 정권이 싫어서 떠난 사람 즉, 정치적 반대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서 우리처럼 최우선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북한의 부정적 태도만을 탓한 체 고령의 이산가족분들이 이산의 아픔을 안고 세상을 떠나시는 상황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정부는 그 해법을 서독정부가 활용했던 ‘프라이카우프(돈을 주고 자유를 산다) 방식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이산가족 상봉 경비 지원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 성사 조건으로 식량 지원 등의 시도가 그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답례 차원에서 응해주는 형식으로 소수 인원의 2박 3일간 상봉행사 만을 허용했을 뿐이다.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2018년에도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단 한차례만 이루어졌다. 서구 문물을
매클루언(M. McLuhuan)은 논쟁적인 개념을 다수 제기했다. 미디어가 메시지(Medium is Message)란 통찰도 그중 하나다. 미디어 효과 이론에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메시지라는 게 정설이다. 메시지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미디어가 메시지라니 무슨 의미일까? 미디어 학자들은 미디어가 메시지의 내용을 규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같은 사안이라도 미디어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매클루언이 말하고자 한 바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역사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는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라는 인식이다. 이는 미디어의 역사가 증명해주는 진실이다. 현생 인류를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해 준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언어의 사용이다. 세이건과 드루얀이 공동 집필한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은 대체로 언어에 의한 홍보활동을 과도하게 발달시킨 자동 기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활동은 주로 그들 자신의 결함을 변명하고 약점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298쪽)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간이라는 동물을 살펴본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배우자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허위 수상 경력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윤 후보는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 아내와 관련한 논란으로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과거 저의 일관된 원칙과 잣대, 저와 제 가족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법과 원칙에 대해 누구도 예외가 없다”고 말했다. 정말로 ‘법과 원칙’에 의해서 의혹이 모두 밝혀지길 바란다. 김건희 씨에게로 향한 허위 경력·허위 수상 경력 논란 외에도 사생활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지만 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즉 사생활이므로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당사자에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사실 따지고 들자면 사생활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지만 허위 경력·허위 수상 경력 문제는 다르다. 김씨는 2007년 수원여대 겸임교수 초빙 지원서에 허위 경력 및 수상 실적을 기재했다는 의혹이 있다. 2001년 한림성심대학교 강사 임용을 위해 제출한 이력서에 미술 공모전 수상 이력을 허위로 작성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1995년 5월 '미술세계대상전 입상'(우수상)이라고 했지만 당시 당선자 명단을 보면 김씨의 현재 이름과 개명 전 이름(
주연 기주봉에게 연출자는 “이놈아, 욕하고 물 찌끄라니까(퍼부는다는 뜻) 그게 뭐냐. 웃음 터지면 코미디지 모독이냐?” 차마 입에 못 담을 욕설 더해 조진다. 여배우 조주미에게는 “연극 좋아하네. 꺼져!”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제목이 좀 있어 보였나, 신촌 76소극장 첫 공연에 표가 좀 팔렸다. 송승환 등과 소극장운동을 하던 연출가 기국서의 ‘관객모독’은 그의 의외의 똘기 폭발까지 더해 화제가 됐다. 그래도 돈벌이는 안됐다. 1978년 11월의 일. 관객이 느그들 구경하는 거 아니여, 배우가 저 사람들 바라보고 욕설 퍼부어 무참하게 하는 거야. 모르겠어? 저 사람들이 세상 뒤집어 보도록 판단의 새 계기와 경험을 주는 게 이 연극이여. 모독당하겠다고 돈 낸 놈이 웃으면 니는 사기여, 저런 도둑놈... 또래여서 가끔 들렀다. 몇몇은 통행금지 사이렌 불면 부근 내 하숙집으로 술병 품고 몰려오기도 했다. 안주는 내가 샀다. 아마 반체제(反體制)로 찍혔을 불평분자들이었다. 그게 세상에서 연극이 해야 할 역할이었다.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 ‘관객모독’(1966년 作)이라는 이 희곡으로 ‘저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다. 2019년 ‘그 유명한’ 노벨문학상을 받으
-군산복합체의 등장 “맥더글러스(Mcdouglas) 없는 맥도널드(McDonald) 없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얼핏 단어와 발음도 비슷한 이 조합은 군수산업과 미국 자본주의의 대표 상징의 결합이다. 전쟁경제체제로 무장한 토대 위에서 번성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대를 일깨우는 말이다. 제국주의의 군사적 토대와 자본이 하나의 몸이 되어 움직이는 걸 보여준다. 1961년 1월 20일, 퇴임하는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TV로 중계된 고별사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최근까지 세계적 대전쟁의 과정에서 미국은 영구적 군수산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군수산업 시스템을 장착한 나라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합법적 권력도 아니며 그 권위가 인정되지 않은 영향력(unwarranted influence)에 의해 장악되고 위협받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바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다.” “군산복합체”라는 말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작이었다. 그는 이를 가리켜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그런 위치를 준 바 없는 권력의 재앙적 수준의 등장이 가진 위력(the p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