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은 항상 특별하다. 첫사랑, 첫학기, 첫등교, 첫만남 등. 매년 3월이 되면 학교는 다시 처음을 맞이한다. 새 학년, 새 학기의 출발이다. 움크렸던 겨울을 지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이 될 때, 아이들은 한살 더 커서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러 학교로 온다. 항상 설레기만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설렘보다 떨림이 더 많다. 나만해도 그렇다. 개학날이면 늘 배가 아팠다. 원체 예민한 장을 가졌기도 했고, 불안과 걱정 많은 성격이 장을 괴롭힌 탓이기도 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학교에 도착하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교문에서부터 교실까지 가는 길이 꽤 멀게 느껴졌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면 뛰어가서 나와 같은 반인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서며 아는 얼굴을 찾아 두리번 거렸다. 친한 친구가 반에 앉아 있으면 기뻤고, 아는 얼굴이 보이면 배 아픔과 심장의 덜덜거림이 좀 나아졌다. 운 나쁘게 생면부지의 사람들만 그득그득 할 때도 있었다. 그때부턴 일주일 내로 어떻게든 친밀한 존재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쳤다. 운 좋게도 반에는 나와 기운이 맞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의 기운을 영양분 삼아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었
지난달 25일 이 나라 법치에 중대한 진화(進化)의 싹을 보여 준 소중한 판결이 있었군요.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가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으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사람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시중에 말이 많네요. 너도나도 병역 면제를 위해 양심을 악용하면 어쩔 거냐는 걱정이 흐드러졌네요. 분명 그런 우려는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양식을 언제까지 ‘짐승’ 수준으로 보는 편견으로 갈라 세우고 난도질할 건가요? 지난 2013년 2월 제대하여 예비역에 편입된 A씨는 2016년 11월부터 10여 차례나 예비군 훈련, 병력 동원훈련을 거부했습니다. 예비군법과 병역법 위반 혐의로 14번이나 고발돼 재판을 받아온 그는 훈련 불참 사유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행위’라고 강변해왔답니다. 우·무죄를 가른 법리적 판단기준은 ‘진실성’ 여부였습니다. 같은 날 대법원에서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은 B씨는 ‘유죄’ 판결을 받았거든요. B씨의 경우는 군사훈련과는 본질적 관련성이 없는 ‘권위주의적 군대 문화, 군대 내 인권침해·부조리’ 등을 병역거부 사유로 들었지만 ‘진실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앞서 얼마 전
선거가 없다면 유권자는 과연 정치인으로부터 무얼 얻어낼 수 있을까. 직접민주주의를 신봉했던 루소는 “영국시민들은 선거 때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는 순간 노예로 전락한다”며 대의제 민주주의를 꼬집었다. 이러한 풍경은 비단 영국에서만 연출된 것일까. 루소가 살았던 프랑스는 어떠한가. 2017년 대선을 한 번 보자.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각종 공약들을 내걸었다. 그 중 ‘대박’을 친 정책은 아몽 후보가 내건 기본소득제였다. 아몽은 사회당 오픈프라이머리가 열리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발스(Manuel Valls) 후보에게 크게 밀렸다. 그러나 정작 오픈프라이머리가 열리자 기본소득제를 크게 쟁점화해 발스를 무려 18% 포인트 차로 물리쳤다. 본선에 나간 아몽은 2017년 프랑스 대선을 기본소득전으로 몰아갔다. 그 덕에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졌고, 프랑스인 60%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반전이 일어났다. 만성병에 걸린 기존 복지제도로는 청년실업률과 소득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유권자들이 기본소득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몽은 완승했다고 볼 수 없다. 우선 대선에서 졌고, 또한 그의 기본소득은 엉성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
길을 걸어갈 때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듯이 나의 활동과 사회의 활동들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인생은 단순히 즐기라고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투쟁이며 전진이다. 악에 대한 선의 투쟁, 부정 불의에 대한 정의의 투쟁, 압제에 대한 자유의 투쟁, 사리사욕에 대한 박애의 투쟁이다. 인생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여명의 빛을 던지는 이상의 실현을 향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진이다.(주세페 마치니) 이념(理念)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고, 이념의 실현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요인도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이념을 실현해야 하는 재료에 지나지 않는다. (칼라일) 장애물과 디딤돌의 차이는 시각(視覺)의 차이이다. (조헌정) 완전성은 신의 본성이며, 완전성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괴테) 완전성이란 이상의 실현을 향해 줄기차게 나아갈 때만 참으로 그 이름에 보답한다. 우리가 의식하는 선은 우리의 내면에서도 또 세상 속에서도 반드시 실현될 것임을 기대하고 또 믿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운명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있는 것을…
백기완과 정경모. 두 분이 하루 사이에 연이어 별세함으로 인해 정경모 선생은 그다지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정경모는 요즘 말로 하면 작가다.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다 일본에 망명한 정경모의 본격적인 저술 활동은 광주항쟁으로 촉발되었다. 광주의 원혼들의 슬픔을 노래해주기 위해 1981년 ‘シアレヒム(씨알의 힘)’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잡지의 제6호(1983년 6월)에 여운형 · 김구 · 장준하의 구름 위 정담(三先覺雲上經綸問答)을 게재했고, 그것을 1984년 단행본으로 내놓은 게 ‘찢겨진 산하’다. 그 내용은 세 분 선각자의 말이기도 하고 작가 정경모의 생각이기도 하다. 주제의식은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이 별개가 아니기 때문에 상호관련 속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운동을 한다면서 통일운동을 경원시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킨 근원이 분단에 있기 때문에 둘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은 동학농민혁명 사상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을 결론적으로 강조하면서 글을 마친다. ‘찢겨진 산하’는 정경모의 창작이지만 철저히 검증된 자료를 근거로 쓴 역사책이다. 해방 후 친일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친일파들이…
2019년 말 발표된 논문 한 편이 근래 들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남성을 벌레에 비유하고 비하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 유명 유튜버는 이 논문이 자신을 ‘여혐’으로 몰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편 직접 학자의 연구실을 찾아가고, 학술단체 임원과 대화한 내용을 공개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논문을 읽어보면 주제가 불법 촬영의 근원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이 논문이 혐오와 차별의식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억지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신랑‧신부의 초야에 문구멍을 뚫어 엿보거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무언가를 몰래 보고, 금지된 것을 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시선이 남성을 중심으로 하며 범죄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러한 관음증의 표현과 실행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면서 더욱 강도가 세지고 집단화되고 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자 친구와 애인, 엄마, 누나, 여동생, 사촌 등 주변 여성들의 샤워하는 모습과 옷을 갈아입는 장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모습을 공유하며 은밀함을 즐긴다. 갈수록 수위는 높아져 술에 취한 여성을 성폭행하거나 약물을 투여해 집단 강간하고
지난 2월 24일 국회에서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에 관련한 공청회가 열렸다. 방송관련법 개정안의 핵심은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선임방식 변경 문제였다. 사실 지난 20여 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논의가 이어졌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을 보니 이사와 사장 선임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사람들이 넷플릭스 같은 OTT(범용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와 개인맞춤형 콘텐츠에 매료되는 글로벌 미디어 시대에 공영방송은 철 지난 잡지 표지처럼 낡아 보인다. 영향력이 현저하게 낮아졌고 신뢰도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재정은 파산 직전인 것 같고, 보도의 공정성 시비에서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이런 공영방송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인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문과 방송 같은 ‘레거시 미디어’ 체제는 언론인의 게이트 키핑과 수용자의 선택적 소비를 축으로 움직인다. 언론소비자 입장에서 편파적이거나 정파적인 내용을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체제다. 게이트 키퍼들도 수용자의 ‘확증편향’이 문제라고 반박하면 그만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빅데이터에 근거한
내일은 오곡밥에 지난해 말려 두었던 나물을 먹는 날이다. 예전에는 정월 보름하면 명절 못지않게 큰 명절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을잔치를 벌이는데 윷놀이는 상금이 걸린 큰 놀이였고 여기에 아녀자들은 널뛰기 대회를 열기도 한다. 지방마다 행사 내용이 다르지만 내가 살던 김포에서는 윷놀이, 그네뛰기, 널뛰기, 달님에게 절하기, 액막이로 연 날려 보내기를 했다. 여기에 더하여 짚단에 불을 붙여 달님에게 절하며 소원을 비는데 남자 애들은 구멍 뚫은 깡통에다 불을 담아 회전시키며 불을 키우기도 했다. 아버지는 두꺼운 송판을 인천에서 사다 주셔서 언니 친구들이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에서 널뛰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윷놀이만 남은 것 같다. 시골에 가도 연날리기를 하거나 불놀이 할만한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귀하게 호두하고 땅콩 몇 알 얻어먹는 것도 기다려지는 일이다. 호두를 딱하고 깨트리며 그 소리에 귀신이 도망간다는 귀신 쫓는 방법이라는 말도 있으나 나중에야 조상들의 지혜라 할 수 있는 풍습을 알고 경이로웠다. 예전에는 영향 부족으로 오는 버짐이 심했다. 그래서 영향 보충의 일환으로 식물성 기름을 섭취함으로써 예방하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
작은 새 한 마리 골목길 담장 아래 쓰러져 있다 늦가을 볕이 수의 한 벌 지어오고 하늬바람이 조심조심 새의 주검을 감싸주었다 저 새가 불러준 노래의 부피만큼 세상은 맑아지고 슬픔의 무게도 덜어냈겠지 먼 허공에 길을 내어 캄캄한 별들에겐 등을 꺼내 주던 새 언제부턴가 노래가 울음으로 변한 새 눈물 없는 세상 차마 그리웠던 것일까? 감긴 눈 속에 파란 하늘 한 조각 담고 못다 부른 노래의 날개도 접었다 새를 잃어버린 허공이 부르르 슬픔으로 온 몸 떠는 것을 보았다 약력 ▶조은설(본명;조임생) ▶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미네르바] 신인상 등단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당선 ▶시집 [거울뉴런] 외 3권 ▶장편동화 [밤에 크는 나무들] 외 30여 권
시의적절한 우화 하나. "장자가 쌀독이 비어 말단관리인 친구에게 쌀 한 됫박을 얻으러 갔다. 친구가 말하기를, '걱정말어. 추수 끝나면 쌀 몇 가마니를 줄테니까.' 장자가 대꾸했다. '이 동네 오는 길에 뒤에서 누가 부르길래 고개 돌려 자세히 살펴봤지. 수레바퀴 패인 자국에 빗물이 조금 고였는데 거기서 물고기 한 마리가 헐떡거리며 날 부른 거였어. 왠 일인가 물었지.' '내 황해바다 용궁의 사신이오. 어찌어찌 하다가 이꼴 났으니 물 한 바가지만 속히 부어주오.' 내가 말했네. '걱정하지 마. 내가 황제를 설득해서 황해의 물줄기를 이쪽으로 끌어올테니...' 물고기는 눈 크게 뜨고 핏대를 올리며 나에게 온갖 저주를 다 퍼부었어. 지금쯤 죽었을 거네." 코로나19로 인하여 쌀독 비는 집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이 바이러스가 사실상 생사여탈권을 쥔 강적이다. 생업이 날로 위축되는 바람에 민초들은 지금 몹시 위태롭다. 특히나 제도의 사각지대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독거 노인들, 미혼모 등 소외계층, 부당한 계약으로 사실상 노예신분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존재의 위기로 몰고 있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은 '물 한 바가지'와 '쌀 한 됫박'을 놓고 정쟁을 멈추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