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주의자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오히려 반역자들로부터 갖은 고문과 심지어 암살까지 당했던 뒤틀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민주주의는 분단이라는 냉혹한 현실과 불가분의 관련성을 지닌다. 76년 동안 민족국가 건설(nation-state building)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주의는 분단체제의 제한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주의를 탄압한 자들이 다름 아닌, 분단에 기생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가로막는 자들인 상황에서 더 무슨 말을 하랴! 여기서 우리는 민주화 운동과 민중 생존권 투쟁을,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큰 틀의 독립운동에 포함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등 강대국에 의한 한반도의 강제 분할이 만든 현실에서 민주화 운동은 앞으로 여전히 독립운동의 연장선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단은 민족을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몰아넣었고 민주주의를 압살했으며, 민족융성의 순간순간마다 우리의 창조적 에너지를 소진시켰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분단체제가 철폐되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을 웅변하는 것이다. 허리가 잘린 긴 수난의 세월이 사회 곳곳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완전
오늘날 전쟁이 무익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어리석고 잔인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치인들에게 그 해결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여러 가지 행위를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연구해보면, 결국 다음과 같은 슬픈 생각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지상에서 악의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으며, 군대의 존재가 그 악을 얼마나 조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군대제도라는 것은 원래부터 필요 없는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어리석음 탓이며, 또 그들이 몇 사람밖에 되지 않는 교활하고 부패타락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착취하는 대로 내버려 두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움과 슬픔을 금할 수가 없다. (패트릭스 라로크) 이 지구상의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참으로 어리석고 생각이 얕고 둔감하여, 언론은 매일같이 가상적국에 대항해 군사동맹을 맺으려는 각국 수뇌들의 외교활동과 전쟁준비 기사로 장식되어 있고, 한편으로 국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자기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듯, 마치…
불륜과 혼외자. 드러나는 순간 사회적 인간으로서 종신형에 처해진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했다. 더불어 민주당이 대선 영입 인재 1호로 내세운 조동연 씨가 전국에서 날아든 돌팔매를 못 견디고 결국 사흘 만에 자진 사퇴했다. 조 씨 사퇴 후 ‘선출직 공직 후보자도 아닌데 과거의 사생활로 전 국민 앞에서 공격받고 망신당하는 게 온당한가’라는 질문을 곱씹는다. 정치와 국민정서의 냉엄한 현실이라고 하자. 이제 그 현실에 손절한 이후의 조 씨와 아들의 삶은 어찌할 것인가. 사회적 사건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게 문학과 예술이다. 삶은 수학처럼 공식과 정답이 있을 수 없고 모든 문제는 시대, 문화에 따라 달리 해석되며 인간의 죄 역시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이주일 이상 걷지 않고서는 그 인간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처럼 속단하지 말라는 게 문학과 예술이다. 사랑과 불륜 이야기가 넘쳐나는 영화에서도 걸작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배경음악 때문에 나를 미치게 한 페드라(Phaedra)가 떠오른다. 남편의 전처 자식을 사랑한 비극, 그리스 신화 파이드라와 히폴리투스 이야기는 1962년, 미국 천재 감독 줄스 다신에 의해 영화화됐다. ‘천재 감독’이라는 찬사는
-드라마 <지옥>의 “시연”, 그 공포 사람이 죽는 걸 모두가 보면서 그를 구하려 들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거나, 또는 그걸 즐기는 일이 가능할까?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데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상황을 압도하면서 그런 일을 벌이는 경우라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걸 모두가 무슨 연극을 관람하듯 보면서 즐기거나 환호하기는 어렵다. 혹여 그러는 경우라도 바라보면서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게 될 것이다. 바로 이 “공포의 작동과 지배”는 이런 현장을 주도하는 자들의 포기할 수 없는 목적이다.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 <지옥>이 말하는 “시연(試演)”이 이것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죽음이 미리 고지(告知)된 사람이 죽음의 사자(使者)에게 지옥으로 끌려가는 장면을 생중계하기조차 한다. 고지된 당사자에게 중계료 30억 원이 거래되는 일도 일어난다. 이왕 죽게 된다면 그 돈을 유가족이 되는 아이들에게 주겠다고 마음먹는 어느 엄마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지옥의 사자로 짐작되는 괴생명체의 습격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리고 이 사건의 비밀은 사실
5일은 1985년 UN이 제정한 ‘세계자원봉사자의 날’(12월 5일)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6회 자원봉사자의 날’ 기념식에서 수원시가 2021 대한민국 자원봉사 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자원봉사 등 민간협력을 통해 코로나19 대응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수원시는 이에 앞서 2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자원봉사자의 날 기념식’을 열고, 헌신적인 활동을 한 자원봉사자들에게 표창과 감사패를 수여하기도 했다. 수원시공유냉장고 시민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전복례 씨와 수원시다문화협회에서 활동하는 이상란 씨, 수원공군전우회시민봉사단 등이 표창을 받았으며, 예방접종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한 나눔사랑민들레, 나눔·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션킴모터스 등 단체는 감사패를 받았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다. 이들이 있어 사회공동체가 원활하게 운영된다. 수원시는 우리나라에서 자원봉사 활동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모범적인 도시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빛났다.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지자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천마스크 5만 2000여 개와 마스크 분실방지 목걸이 3만 5
코로나19가 다시금 우리 사회의 절체절명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루에 수 천 명의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 코로나는 내년 대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동안 현 정권은 이른바 K 방역의 우수성을 홍보하면서 그나마 일정 수준의 지지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이것도 더 이상 먹히기 힘들 것 같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K방역이란 것은, 우리 국민들의 높은 민도와 의료진들의 헌신적 노력에 의한 것이지, 정부 덕분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현 정부의 코로나 초기 대응을 돌이켜 생각하면, 이에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백신 도입이 늦었고, 마스크 부족 사태 등을 생각하면, 정부의 초기 대응도 칭찬받을 수준은 아니었음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접종률도 국민들 덕분에 단시간 내에 올라갈 수 있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위드 코로나도 높은 접종률 덕분에 실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인데, 만일 백신을 좀 더 일찍 도입했더라면 위드 코로나도 조기에 실시할 수 있어 자영업자들의 손해를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다. 조기에 위드 코로나를
초등학교는 담임교사가 반 아이들과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중, 고등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조례, 종례 시간과 특정 과목 수업 시간에만 만나는 것과 다르게 초등은 전담 과목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지낸다. 단순히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종일 소통을 해야 하기에 아이들과 담임교사의 합이 얼마나 잘 맞는지가 한 해 교육 농사의 관건이다. 담임교사가 반을 정하는 방식은 매년 2월 중순쯤 교사들의 학년 구성이 끝나면 반 아이들 명부를 앞에 놓고 랜덤으로 뽑는다. 특별한 이유로 먼저 명부를 확인하고 반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하면 명부 봉투를 앞에 놓고 선택한다. 한 해의 명운이 반 아이들 명부 뽑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하게 좋은 반, 나쁜 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와 잘 맞는 아이들이 뽑혔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명부 봉투를 열어보곤 한다. 작년까지는 딱히 뽑기 운이 좋거나 나빴던 적이 없다. 무난한 아이들이 무난하게 사고를 치는 와중에, 교실은 대체로 분란과 다툼의 도가니 속에서, 가끔은 행복이 넘실대는 분위기에서 간신히 간신히 굴러갔다. 우리 반이 사건 사고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
한뎃잠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노숙(露宿)이라고 해야 쉬 이해하려나. 덮을 신문지 한 장 없이 겨울밤을 견딜 때, 한 방향의 바람이라도 막아줄 벽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지. 열아홉 살 때였을까. 혼자서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비둘기호 열차였다. 비둘기호 열차는 한반도의 평화만큼이나 느리고 굼떴다. 반나절이 걸려 영등포역에 도착했을 때, 혼자라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다. 갓 상경한 촌놈에게 서울은 빠져나오기 힘든 미로 같았다. 눈보라 치는 밤, 의지할 것이라곤 편지봉투에 적힌 친구의 자취방 주소뿐이었다. 그 시절에는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면 병역이 면제되었다. 5년을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마다하지 않았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친구는 자격증을 따기 무섭게 방위산업체에 취업했다. 철이 바뀔 무렵이면 편지를 보내오곤 했는데, 언제든 놀러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말만 되새기며 서울행 열차를 탄 게 화근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자취방은 굳게 잠겨 있었다. 주말에도 야근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까마득히 몰랐다. 공중전화로 회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작업 중에는 바꿔줄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졸지에 미아가 되어서 밤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