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라는 동요가 1948년 남북한에 각기 다른 정부가 수립된 이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지난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우리에게 불쑥 나타난 분단을 없애고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줄기차게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남북한 분단과 갈등 상황은 지속되고 강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대화보다는 새로운 무기개발 등 군비경쟁 모습을 보이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내년에 출범하는 새로운 정부에게도 부담이 되는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의 통일 노력은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 박정희 정부의 선 건설 후 통일,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등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북진통일은 6.25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주장이었지만 현실성이 없었다. 이후 정부들은 ‘전쟁 불원과 북한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이 평화 공존하고 상호 번영하여 궁극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8년 들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하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다시 전 세계를 초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달 말 남아프리카공화공에서 처음 보고된 지 일주일여 만에 한국을 포함 최소 30개국 이상에서 감염자가 발생했다. 오미크론의 위력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세계가 함께 끝나야 끝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백신 양극화로 접종완료률이 아직 한자릿수인 나라도 있다. 낮은 접종율은 새로운 변이 출현에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며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 늪의 함정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의 연속이다. 우리도 코로나에 대한 전면전인 재검토 대응을 고민할 시점이다. 단순히 방역체계를 넘어 경제, 사회 등 일상에 대한 총체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코로나 확진자 증가와 오미크론 변이의 출현은 고용 위축과 공급망 교란 등으로 인플레이션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적인 전염병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도 “앞으로 수주 또는 수개월안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5차 팬데믹을 경고했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오던, 이를 사전에 대응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든 지금까지 겪어온…
진정한 예술 작품은 그것을 접하는 사람의 의식 속에서 그와 예술가가 한 마음이 되고, 나아가서는 그와 예술가뿐만 아니라 그 작품을 접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되는 작용을 한다. 바로 거기에 개개인과 타자의 분열로부터의 해방과 고독으로부터의 해방이 있고, 바로 이러한 개개인과 타자의 융합 속에 예술의 매력과 공적이 있다. 사상적 저술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견, 새로운 사상을 전달할 때 비로소 사상적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와 마찬가지로, 예술작품도 그것이 인간의 삶 속에 새로운 감정을 가져다줄 때 비로소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은 인류의 진보를 위한 두 기관 중의 하나이다. 언어를 통해서 인간은 서로의 사상을 주고받으며 또 예술작품을 통해서 단순히 현재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의 사람들과도 감정을 주고받는다. 지식이 점점 완성되어 가듯, 바꿔말하면, 더욱 진실하고 더욱 필요한 지식이 그릇되고 불필요한 지식을 몰아내듯, 감정에 있어서도, 예술작품에 의해 더욱 높고 더욱 뛰어나며, 인류의 복지에 더욱 필요한 감정이, 그보다 저급하고 불필요한 감정을 몰아낸다. 바로 거기에 예술의 사명이 있다. 에
앞서 인용한 매클루언의 말을 다시 상기해보자. “기계시대 동안 우리는 우리 몸을 공간적으로 확장해왔다. 전기 테크놀로지가 등장한 지 1세기 이상 지난 오늘날, 우리는 우리 행성에 관한 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폐지하면서 우리의 중추신경체계 자체를 지구를 품을 정도로 확장해왔다.” 매클루언에게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대표 저서인 『미디어의 이해』의 부제가 ‘인간의 확장’이다. 미디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는 얘기다. 신체의 확장, 그중에서도 중추신경의 확장이다. 의사소통의 매개체라는 정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매클루언에게는 옷과 집도 인간의 확장으로서 미디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바깥 온도가 낮으면 몸 안의 열이 밖으로 이동해 추워진다. 특히 35도 이하가 되면 위험해진다. 이때 옷은 체온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피부의 역할을 한다.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의 더운 지역에서 지낼 때 털을 포기하게 된 후, 유럽의 추운 지역으로 이동해서는 옷을 입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이후 사계절의 변화가 있는 지역에 상주하면서 사는 동안 진화에 의해 지금과 같은 피부를 갖게 되었다. 더울 때는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한자를 쓰려면 확인을 해야지...” 지적하니 그는 의아한 표정이다. 저널리즘 글쓰기 강의에 제출한 리포트, ‘...여론(與論)을 무시하면 안 된다.’라고 쓴 것을 ‘輿論’으로 고쳐야 한다고 얘기해주니 그 학생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한참 보더니 “아, 글자가 좀 다르군요.” 한다. “그래도 발음은 같으니 그냥 쓰면 안 되나요?” 반문한다. 알아들으면 되지 않느냐는 항변인 셈이다. 여론 ‘여’의 한자는 수레 輿다. 차(車) 즉 바퀴 여럿인 수레를 여러 사람이 움직인다고 하여 ‘여럿’ ‘다수’의 뜻이 됐다고 푼다. 여럿이서 뭔가를 들어 올리는 그림글자 舁(여) 안에 車가 들어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여론이다. 조선시대 김정호의 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輿이기도 하다. 수레(輿)처럼 만물을 실은 땅(地)이 여지(輿地)다. 이 말은 대지(大地)나 천지(天地)의 은유적 표현이다. 모양 비슷해도 ‘그냥 쓰면’ 안 되는 이유다. 그 리포트의 與자는 ‘주다, 패거리, 따르다, 편들다’ 등의 뜻이다. 이 與論은 사전에 없다. 굳이 해석하자면 ‘(누구를) 편들거나 따르는 의견’이다. 여건(與件)이 ‘주어진 조건’ 임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까? 조작 여론인 것이다.
이웃에 대한 물질적 도움보다 그를 정신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진정한 자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적 지지는 그의 인간 존엄성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잘 먹고 잘 입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면, 초라한 집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 가난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하라. (성현) 너희가 자신에게 남는 것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것까지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자신을 자비로운 인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사랑은 거기서 더 나가 너희의 마음속에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성현) 비방과 험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비로운 사람이다. 올바른 재판관은 자신의 이웃을 심판하는 것과 똑같이 자기 자신도 심판하는 것이 마땅하다.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미망에 빠진 사람을 만나면 너그러운 사랑으로, 그가 올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라. 길을 잃은 나그네가 우리를 찾아오면, 우리는 그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가? 환자에게 화를 내는 의사가 어디 있겠는가? (세네카) 바르게 살라, 화를 내지 말라. 요구하는 자에게는 주어라. 그는 너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6일 개청을 앞둔 수원시 팔달구 지동행정복지센터에서 지난 1일 관계 공무원과 인권영향평가협의회, 장애인 단체 등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입주를 앞둔 사전 점검이 열렸다. 수원시는 지동행정복지센터를 수원시 최초의 ‘인권청사’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장애인, 노인, 영·유아 부모, 다문화 가족 등 지역주민들이 편리하게 공공청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었기 때문이다. ‘사람 중심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수원시의 설명대로 눈길, 손길, 발길 닿는 곳마다 ‘인권’을 고민한 흔적들이 보인다. 지동행정복지센터 신축사업은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됐다. 시가 이 건물을 첫 번째 인권청사로 건축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타 지역에 비해 지동의 주거 환경이 낙후돼 있는 데다, 노인이나 외국인 등 취약계층이 많고, 사회기반시설 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구의 21%가 노인이고, 외국인도 10%나 된다. 건축물도 노후화돼 1960~1970년대에 지은 집이나 상가가 60%다. 행정복지센터도 마찬가지로 30년이 넘은 데다 공간도 매우 협소해 주민과 직원 모두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특히 노인과 장애인, 외국인에 대한 배려도 미약했다. 수원시청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6년 수원
고향은 지척에 있어도 오갈 수 없으니 지구의 반대편보다 더 멀리 있는 듯하다. 때로는 미움에 온 몸을 불사르다가도 때로는 술 한 잔에 목메는 날도 있다. 아니 생각하려 해도 기억을 소환하지 않고서는 나도 모르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어 취중에라도 목 놓아 불러보고 싶은 것이 고향이다. 술이라면 제일 먼저 아버지를 떠올린다. 세상살이 어려워 숫 덩이 같은 마음이라도 술 한 잔으로 해독할 수 있다며 이유를 붙여가시면서 드신다. 어떤 술을 마실가. 대부분 누룩을 발효시켜서 만든 증류이다. 알코올을 얻으려면 먼저 누룩이라는 곰팡이 균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화학공장에서 나온다. 시장에 나온 것을 사다가 재료(가루)와 섞어 놓으면 곰팡이 균이 자라고 두 번째로 독에 넣고 보름 정도 지나면 술 익는 소리가 엄청 요란스럽다. 뚜껑을 열어 향긋한 냄새가 나면 잘 익은 것이고 시큼한 냄새가 나면 술도 시어져 버린다. 가마에 넣고 열을 가해 오르는 증기를 냉각시키면 관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것이 술이다. 여기에 세신 뿌리나 오미자를 넣으면 정품보다도 더 맛있는 향기로운 술이 된다. 이 것을 서민들이 먹는 농태기(소주)라고 한다. 식량이 귀한 때일수록 술에 대한 수요가 더욱 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