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하고 놀란 점은 아이들이 생각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는 사실이었다. 첫 미술 수업 때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걸 보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에게 이미 선생님이 그림을 얼마나 못 그리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약간의 부담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반 아이들의 대다수가 잘 그린다면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리는 방법과 순서를 정확히 알려준다면 아이들이 찰떡처럼 완성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가진 주지 교과 관련 지식이나 체육, 음악의 실기 기능은 교사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 임용고시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이를 보장한다. 다만 미술 실기만큼은 도무지 자신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초, 중, 고, 대학 내내 미술 실기에서 낙제점을 겨우 면한 상태로 졸업했다. 사실 낙제인 적도 있었을 거다. 초등학교 때는 찰흙으로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 제출했는데 찰흙에 장난을 쳤다고 선생님이 혼내셨다. 중학교 때는 미술 선생님이 내 수묵화를 친히 찢어버리시고는 본인이 직접 그려서 하사하셨다. 고등학교 때는 미술이 선택과목이라 빼버렸고, 대학에서는 몇 시간 내내 그린 풍경화를 보고 교수님께서 “나무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요”라고 말
삶은 꿈이고, 죽음은 깨어남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죽을 때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 한번 죽었다가 다시 숨결이 돌아와,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을 가사(假死)라고 하는데, 죽었다가 새로운 육체의 기관들을 가지고 다시 깨어나는 것이 태어나는 것이다. (리히텐베르크) 사라지는 생명과 그 뒤에 나타나는 다른 생명은, 단순히 약간의 변용을 통해 존재양식을 바꿨을 뿐 결국 동일한 존재이며, 따라서 개체 자신에게는 잠인 것이 그 개체가 속한 종에 있어서는 죽음이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설사 영혼은 불멸이라고 믿는 내 생각이 틀렸다 하더라도, 역시 나는 행복하고 내가 틀린 것에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나에게 이토록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안과, 이토록 충실한 만족감을 주는 그 신념을 나한테서 빼앗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키케로) 죽은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물음은 물음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죽음 뒤의 세계를 얘기하는 것은 시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인데, 우리는 죽음과 함께 시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 초월을 하게 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식용 금지를 신중히 검토할 때’라는 언급은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해묵은 논란거리를 다시 한번 들췄다. 이에 따라 이런 논란의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찬반 양측의 논란’ 식의 보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상투적 표현이 등장한다. 관련 부처 역시 굳이 임기 말 대통령 언급에 찬반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 할 것이고,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있는 남북평화 문제나 한반도 종전선언, 내지 검찰개혁 사안마저 여당과 정부 관련 부처의 적극적 호응이 없어 흐지부지 되는 상황처럼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식용에 대한 대통령 언급이 있다 보니 여야 대선후보들의 입장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는 개고기 금지를 분명히 하면서 육견협회 등 찬성 측과의 대타협을 통해 개식용 종식을 정리할 것을 공언하였고, 야당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반려견과 식용견은 따로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물론 후자의 발언은 개고기 식용을 찬성하는 이들이 종종 취하는 논리로서,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서 K-Pop과 오징어게임 등 국제사회를 이끌고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왜곡된 견해다. 이미
꽃 속이 따뜻하다. 너무 아프면 세상이 다 꽃으로 보여 천지간 온통 꽃 아닌 것 없으니 /이승희, 푸른 연꽃 인적 드문 사막에 숙소를 잡고 매일 느린 걸음으로 산책에 나섰다.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걷다 보면 브라만 사원이 나왔다. 거기서부터 작은 사원과 신전, 상점이 즐비한 바자르가 이어졌다. 사원 주변에는 걸인들이 우글거렸다. 인도 전통의학 아유르베다에서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해독요법인 ‘판차카르마(Panchakarma)’에 참여하고 있던 때였다. 내가 머물던 푸쉬카르는 “푸른 연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었다. 생명의 여신 사비트리와 지혜의 여신 가야트리가 지키는 사막의 성지라고 한다. 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무기력과 우울함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몸과 영혼이 길거리 걸인들처럼 누더기였다. 어느 날 기도를 드리고 나오다 한 사람에게 돈을 주니 그걸 본 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자기한테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심지어 "쟤는 주면서 나는 왜 안주냐? 공평하지 않다"며 따지는 걸인도 있었다. 그들은 ‘나는 너에게 선(善)을 쌓을 기회를 주는 거야’라는 듯 당당했다. 구걸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최소한의 돈을 준다. 그런 적선 행위를 비판
수원시가 11월 한 달간 ‘SNS 동물등록 인증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동물등록률을 높여 반려동물의 유실·유기를 막기 위해서다. 반려견·반려묘 몸 안에 마이크로칩을 넣는 ‘내장형 무선식별장치’ 등록을 한 수원시민이 대상이다. 내장형은 목걸이로 된 외장형 칩보다 훼손·분실 위험이 적고, 반려견 유실·유기 예방효과도 높다. 수원시 공식 블로그 등에 올라온 ‘2021년 수원시 SNS 동물등록 캠페인’ 게시물을 선택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참여한 시민 중 추첨을 통해 강아지 또는 고양이 간식, 커피 모바일 상품권을 준다. 수원시의 이 캠페인이 전국으로 확산돼 책임감 있는 반려동물 돌봄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 시는 캠페인과 함께 ‘동물등록제 비용 지원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내장형 무선식별장치 동물등록 비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진료·상담비(1만 원 이내)만 부담하면 내장형 방식으로 동물을 등록할 수 있다. 경기도의회도 지난 제355차 경기도의회 본회의에서 ‘동물보호 조례 개정안’을 의결, 이달 2일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개정안은 동물학대 방지와 유기동물 보호 등 동물보호·복지정책 추진을 위한 동물복지계획 수립 지원 근거를 명확히 하고 있다. 유실·유기동
김정은 정권은 지난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언급한 ‘무기체계 5개년 계획“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 한편으로 남한의 ’종전선언 목매기‘를 이용하여 ’한미연합훈련 영구중단‘을 조건으로 제시하는 등 남한의 방위력 약화 기도와 동시에 자신들의 군사력 확충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하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신포항 인근 동해상에서 발사한 소형SLBM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북극성을 개량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무기체계임을 공언했다. 요격이 쉽지 않은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인 지대지전술유도탄(KN-23)과 유사한 수중발사용 버전이다. 북한 잠수함에 실린 SLBM이 선제기습공격 능력을 갖고 있고 전술핵과 결합할 경우, 가공할 파괴력을 갖는 것은 상식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한미 양국의 방어수단이 미비한데다, 우리 최고지휘부에 대한 기습공격능력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북한산은 전통적으로 최고지휘부를 보호하는 천연의 요새로 작용해왔다. 북한의 장거리포와 방사포, 지대지탄도미사일의 공격에서 안심할 수 있는 지역으로 평가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소형SLBM은 남해상에서 우리 최고지휘부를, 120도 각의 미사일방어망을 갖고 있는 사드기지 후방을 동남해상에서, 서남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 데이터, 블록체인, 로봇공학, 바이오, 재생에너지 등 신기술분야가 가장 유망한 기술과 직종이 될 전망이다. 모두 디지털 대전환과 에너지 대전환을 뒷받침하고 고부가가치 지식경제를 확산하는 데 필수적인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기술들이다. 위의 신기술분야에 종사하는 경제활동인구가 많을수록, 그리고 그 비중이 높을수록, 국민경제가 상대적으로 윤택해질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우리나라에서 향후 신기술인재는 몹시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공식추계에 따르면 2030년엔 부족인력이 무려 2만 5000명에 달한다. 예상되는 신기술인력 부족사태 앞에서 팔짱만 끼고 있을 순 없다. 당연히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향후 10년 동안 기존대학이 아무리 관련학과를 신설하거나 학과정원을 증원해도 부족인력을 길러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어떻게 더 빨리, 더 많이, 더 고르게 배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신산업기술은 이미 생업에 종사하는 경제활동인구에게는 그림의 떡, 아니, 공포의 신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고부가가치에 고소득이 보장돼도 생업을 내려놓고 새로운 대학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
우리가 도덕적 완성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향해 다가가는 것은 인생의 법칙이다. 아예 실천이 불가능하다면 처음부터 도덕률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원래 이기주의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색하고 음탕한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원래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마음속 깊이 느끼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줄 것이다. (솔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네가 지금 그대로의 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대답하리라. 너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가능한 한 자타의 이기심과 무관심의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를 그만두고 비록 위대하지는 않지만 청정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는 일이다. 너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영혼의 흔적이나마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 형제들이여!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내면에 영혼과 양심을 눈뜨게 하고, 우리의 게으름을 성실로, 생명 없는 돌 같은 심장을 살아 있는 그것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앞날에 기다리고 있는 무한한 선의 계열을 조금이나마 확실한 일관성
첫눈이 내렸다. 감정은 나이 들지 않는다고 하던가. 첫눈......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눈사람 되도록 걸었던 스무 살로 돌아간다. 첫눈 오면 내 어린 시절부터 청춘시절까지, 라디오와 거리의 음반가게에서 종일 틀어대던 노래, 프랑스 샹송 가수 아다모(Salvatore Adamo)의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가 환청처럼 들린다. 고등학교 불어 시간에 처음 들었던 샹송도 아다모의 그 노래였다. 팝송보다 샹송에 더 빠졌던 그때, 에펠탑 아래에 샹송을 들으며 앉아있는 꿈을 꾸곤 했다. 코르시카를 듣지 않았다면 지금도 프랑스 노래는 샹송으로만 알았을 것이다. 노래가 넘쳐나는 세상, 대개의 노래는 나뭇가지에 잠시 앉았다 뜨는 새처럼 귓가를 맴돌다 멀어진다. 그런데 심장으로 직진하는 노래가 있다. 페트루 구엘푸치(Petru Guelfucci)의 코르시카(Corsica)가 그랬다. 지중해에 떠있는 프랑스령 섬, 코르시카. 나폴레옹과 콜럼버스가 태어난 곳이며 스페인 카탈루냐처럼 분리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지엽적인 곳의 지엽적인 역사로 알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성스럽고 웅장하면서도 비애 서린 페트루 구엘푸치의 목소리를 듣고서 노래 제목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