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목련은 걸음마도 못하고 죽은 아기 발바닥 같다 어떤 어미가 있어 잘 드는 칼로 죽음의 발바닥을 벗겼을 것이다 목련나무 아래 한 겹 두 겹 내려놓고 아장아장 걸어가길 한없이 빌었을 것이다 목련나무 아래 사월에는 발도 없는 아기가 와서 발바닥으로만 발바닥으로만 하얗게 걸어다닌다
“우리 때는 공장에 가는 학생의 수가 많은 대학 순서대로 명문대였는데, 지금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시험도 거부하며 반발하는 이기주의자가 많은 순서대로 명문대다.”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흔드는 8090년대의 청년들은 이 시대의 20대 청년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1980년까지 대학생들 대부분은 대학교 배지를 달고 다녔다. 다른 건 몰라도 80년대의 대학생들이 제 옷깃에 달았던 대학 배지를 스스로 뗀 일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었다. 80년대의 대학생들은 80년 5월, 광주가 짓밟히는 것을 외면하고 침묵했던 자신들이 정의와 진리를 표상하는 대학의 배지를 달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80년대 청년들의 힘은 반성을 실천으로 옮긴 결단과 행동력이었다. 모든 언론이 광주민중항쟁을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도들의 만행으로 도배질을 하고 있을 때,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싸우다 제적당하고, 감옥으로 간 것이 80년대 청년 학생들이다. 고작 ‘가리방’으로 등사한 유인물 몇 장 뿌리고 개처럼 두드려 맞으며 끌려간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검사와 판사들이 구형하고 선고한 형량을 합하면 몇 만 년이 될지 모른다. 그렇게 감옥으로 간 숫자보다 더 많은 대학생이 졸업장을 포기
코로나19 2년차를 지나가고 있는 우리 사회는 모든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지적·정서적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소리없이 신음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애처롭다. 최근 한국교총과 한 언론사가 전국 초·중·고 교사 1천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가운데 7명 정도의 학생이 코로나 이전 학생들에 비해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응답했다. 또 고3 모의고사 평균 성적이 무려 10~15점이나 떨어진 학교도 있다고 한다. 충격적이지만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지난해 1월20일 국내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이후 바로 2~3월에 대구 신천지발 1차 전국 대유행이 시작됐다. 이로인해 새학기 학사일정이 모두 멈췄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사설학원까지 비정상의 일상화가 이제 1년도 넘었다. 지금도 등교 수업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원격 수업은 부실논란 등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경제적 조건이나 교육 환경이 괜찮은 일부 학생들의 경우는 코로나 충격에 덜 노출돼 있다. 하지만 지방이나 시골로 갈수록, 특히 부모가 제대로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자녀들의 경우에는 적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성장기 자녀들은 클 때는 1년에 10cm 이상
지난 4월 7일이 신문의 날이었는데, 신문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신뢰의 추락이 그것이다. 편파보도와 허위 선동으로 독자들을 속이고 있다는 오랜 불신에 이어서 부수조작으로 더 큰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최근 드러난 대규모 부수조작은, 지금까지 구독의 대가로 자전거와 비데를 제공하고 나아가 현금 살포로 부수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선다. 최근 방송 보도를 보니 조중동을 비롯한 자칭 우리나라 유수 신문사에서 발행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신문뭉치들이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팔려 나간다는 것이다. 이제는 심지어 동남아시아로까지 폐지를 넘겨야 할 만큼 발행부수를 더 늘린 셈인가? kg당 5백원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신문의 유료부수를 조사하는 기관인 한국ABC공사가 집계한 각사의 유료부수는 정책광고를 수주하면서 정부로부터 받는 요금을 결정하는데, 이 자료 자체가 엉터리이다. 각 신문사가 자신의 부수를 크게 부풀려 허위보고를 하는데도 이에 대한 실사는 하지 않는다. 발행부수가 모두 유료부수인 것처럼 속여 ABC협회에 보고해도 당국에서 그 실태를 검사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누가 순수 유료부수만을 보고할 것인가? 오죽하면 부수공사 사무국장을 지낸 사람이 이 같은 잘못된 관
20년 전에는 우산 없이 등교해서 비가 오면 별다른 수가 없었다. 비 사이로 뛰어가는 축지법을 쓰면 좋겠지만 그럴 능력은 없어서 그냥 맞고 갔다. 어둑어둑한 학교 정문에 학부모들이 우산을 들고 서 있다가 자신의 아이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우르르 쏟아져 나가는 아이들 틈에서 많던 사람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나처럼 우산도 데리러 올 부모님도 없는 아이들만 남아 있게 되면 급하게 뛰어서 집으로 갔다. 요즘은 이런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우산을 대여해주는 사업을 벌이는 곳도 있고, 교실에 남아 있는 우산들이 4~5개씩은 있어서 담임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우산을 빌려준다. 없으면 옆 반에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아이 손에 우산을 들려서 보낸다. 그러니 아이가 비 맞는 걸 강력하게 원하지 않는 이상 혼자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서 집에 갈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봄비가 내렸던 며칠 전 일이다. 퇴근하려고 나가는 데 정문 앞에서 3~4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 하나가 머리를 신발 주머니로 가린 채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우산이 없어서 집에 못가나 싶었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태권도…
우리의 행위 자체는 우리에게 속해 있지만 그 행위의 결과는 이미 하늘에 속한 것이다. (프란체스코) 우리는 날품팔이꾼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서 그날의 품삯을 받도록 하라. (탈무드) 우리의 행위에 대한 결과는 다른 사람이 평가한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네 마음을 깨끗하고 바르게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존 러스킨)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또 우리가 노력한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적으면 적을수록, 성공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 (존 러스킨) 인간의 행위 가운데, 결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것일수록 더 훌륭하고 더 가치가 높으며 더 위대한 일이다. (존 러스킨) 만일 네가 자신이 일한 결과를 직접 볼 수 있다면, 네가 한 것은 결국 하찮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라. 인간이 자신이 한 행위의 결과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행위는 중요한 행위이다. 우리는 신의 사업을 행하면서 인간의 대가를 바라고 있다. 사람의 얼이란 것은 온갖 힘의 물둥지다. 모든 냇물이 흘러서는 물둥지에 고이고 또 고였다가는 흘러나서 여러 갈래의 냇물이 되듯이,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마지막에 한 번은 반드시 정신으로
사월이면, 깜깜하고 시린 사월 어느 밤이면, 소주 한 잔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밤바다로 향하는 아비가 있어. 아비의 손에는 까만 비닐 봉투가 들려있지. 철 지난 겨울 양말과 장갑과 내복이 들어있는 봉투 말이야. 바다는 그때의 바다나 지금의 바다나 다를 것 없어. 칠년이라는 세월에도 어김없이 침묵할 뿐이야. 어둠은 수평선 너머로 가라앉고, 그리움만 하얀 띠가 되어 파도처럼 달려들지. 술을 비워도 아비는 취하지 않아. 취할 수 없어. 봉투를 풀어 시커먼 바닷물에 내복을 입히지. 양말을 신기고, 장갑을 끼어줘. - 추웠어? 아비는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밤을 지새워. 술도 목으로 넘어가질 않아. 술에서 바닷물에 흔들리는 해초 냄새가 나. 흔들리는 해초 이파리가 딸의 손가락 같아. 아빠, 안녕.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 같아. 교복에 붙은 이름표 같아. 이름표에 새겨진 이름 같아. 딸의 숨소리 같아. 아비는 숨을 쉴 수가 없어. 자식을 잃고도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이 죄인 같아서. 때만 되면 고파지는 배가 기가 막혀서. 이런 것도 아비라고 할 수 있을까. 토해내고 토해내도 밤바다는 말이 없어. 목이 쉬도록 불러도 대답이 없어. - 추웠어? 숨이 막혀서, 사월만 되면 잠
“부르주아 체제의 헤게모니를 가진 소수 지배세력은 물리적 폭력을 발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계급(노동자 계급)을 속인다. 이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제대로 형체를 갖출 수 없도록 확실한 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건 부르주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작업이 된다.” 헝거리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쓴 《역사와 계급의식(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의 한 대목이다. 이대로라면 자본주의의 지배세력은 “속임수를 제도화”해야만 한다. 왜 그래야 할까? “날이 갈수록 부르주아 체제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이에 도전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 《역사와 계급의식》, 루카치의 고뇌 하지만 그 도전은 그냥 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지배계급에 의해 끊임없이 세뇌되고 자본주의 전체의 구조와 모순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교육, 그리고 지배 사상의 작동이 매일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이 손에 쥐고 있는 언론은 그 대표적인 도구다. 감수성까지도 그렇게 만들어져간다.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무엇을 혐오해야하는지 조차 입력된다. 심지어 자신을 지원하는 운동과 조직까지도 혐오하게 만든다.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