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5일은 리영희 선생(1929-2010) 10주기였다. 리영희 재단 등에서는 몇 차례 추모세미나를 열었고, 창비출판사에서는 새로운 《리영희 평전》과 《리영희선집》을 펴냈다. 추모 논술대회나 글쓰기 공모전도 열렸고, 리영희상 시상식도 이어졌다. 리영희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는 《다큐 리영희》 5부작을 제작하여 공개했다. 리영희선생 관련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리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리선생을 다시 소환하는 동력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이고, 시민의 열망이다. 리영희를 통해 검찰(법조)과 언론, 재벌과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한국 지배 권력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고, 동시에 한국사회의 근본적 개혁방향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리선생은 언론사 기자로 지낸 10여년을 포함하여 평생을 정론직필의 투사로 살았다. 반공주의와 파시즘체제, 베트남전쟁과 중국사회주의, 6·25전쟁과 미제국주의, 친일파와 일본군국주의, 분단체제와 통일, 수구권력과 언론매체 등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모든 ‘우상’의 본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군부정권은 물리적 탄압으로 응답했다. 언론사와 대학은 리선생을 내쫓았고, 검찰은 체포·
1970년대 버스는 3인조가 운영했다. 운전기사, 버스안내원, 조수 등 3명이다. 운전기사는 운전에만 집중하고 중간문은 여성 안내원이 담당하고 뒷문은 남주 조수가 문을 열고 닫았다. 앞문으로 버스를 타고 여성 안내원에게 요금을 낸다. 도심 출발지에서는 미리 차비를 받고 요금쪽지를 준다. 그래서 차표를 끊는다고 했다. 3칸까리 버스표는 원본, 차표, 영수증로 구성된다. 버스터미널에서 받은 표는 차표+영수증이므로 중간에 내면 차표는 가져가고 영수증을 내준다. 혹시 요금을 냈는가 확인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서 내릴때까지 잘 보관해야 했다. 몇 년이 지나자 뒷문을 담당하던 조수들이 사라졌다. 아마도 조수는 차량이 고장났을경우에 작업을 돕기위한 인력이었는데 차량관리가 양호해 지면서 운행전, 운행후에 잘 점검을 하면 운행중에는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운전기사와 안내양 2인조 버스는 회수권과 토큰이 생기면서 운전기사 1인 운영시스템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버스는 앞문으로 타고 뒷문으로 내리는 시스템으로 개편되었다. 중간문이 앞문이 되고 뒷문이 중간문으로 개편되었다. 회수권, 토큰, 현금이 혼용되었으므로 운전기사 옆에는 돈통이 설치되고 거스름돈을…
코로나19으로 일상을 멈춘 채 맞는 연말이다. 얼마 전 온라인 좌담회 형식인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제인 구달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류는 이번 재난도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고, 자신은 세계 제1, 2차 대전도 겪어본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쯤 되면 인생은 재난 극복의 연속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와 같은 젊은 세대들에게조차 몇 가지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아직 어린 학생이었을 때, 요즘처럼 추웠던 어느 날 IMF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시거나 하시던 사업이 어려워졌다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자주 들렸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는 건가 진심으로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세월호, 메르스, 국정 농단,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한 나라 전체가 휘청거렸던 사건을 여러 번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사건들의 직접적인 피해자나 당사자인 적은 없었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꽤나 깊은 불안감을 마음속에 키워왔던 것 같다. 얼마 전까지는 사전예약만 하면 방문할 수 있었던 많은 전시 공간들이 지금은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온라인상으로라도 전시 공간을 열심히 방문해보지만 홈페이지에 콘텐츠를 제대로 갖춰놓
지난 2014년에 처음 발의된 '사회적경제기본법'과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실현에 관한 기본법', '사회적경제기업을 위한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 사회적경제 3법이 19대, 20대 국회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있다. 기본법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사회적경제기업, 사회적경제 활동가 등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의 실망감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중소기업통계(2018년 기준)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99.9%에 이르는 380만여 개의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직원 수는 1588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89.7%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은 1986년 5월 12일 중소기업의 창업과 신규 중소기업 지원 및 중소기업 성장 환경 조성을 위해 중소기업창업 지원법이 시행되면서부터이다. 그 이듬해인 1997년 10월 1일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시행된 이후 작금의 코로나 19 영향 속에서도 벤처기업 수는 큰 폭으로 증가하여 3만9307개의 벤처기업이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기업가치 1조…
태어나서 이런 날들은 처음 이다.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다. 언제나 절망속에서도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말했던 것처럼. 2019년 12월 프랑스 개인전을 마치고 영국을 거쳐 한국에 돌아와서 터진 코로나19는 차라리 휴식 시간 같았다. 하지만 일년동안 나아질 기미 없이 계속 되는 일련의 상황들은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한 작가에게도 점점 마치 질주하던 기차가 멈춘 것 같이 답답한 상황이다. 미술계 또한 많은 국제 전시를 취소 하면서 다양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소통 방식을 강구 한다. 하지만 공간 안에서 입체적인 감상이 절대적 우의를 차지 할 수밖에 없는 미술 전시 특성상 고민은 더욱더 깊어 진다. 누군가가 말을 할 때 들어 보아도 정확한 제시는 없이 그럴 것이라는 추측만 들려 온다. 예측할 수 있는 경험의 시간들이 사라진 지금의 미술환경에서 모니터로 주고 받는 영상, VR 전시, 증강현실 접목등은 이 시간들을 새로운 미술 시스템을 마련하는 시간들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모두들 동의 한다. 하지만 인간의 깊은 내면을 시각적 표현으로 손이 익숙한 작가들에게는 참으로 황당한 말이다. 2020년 국내외 미술계도 코로나19의 거리두기로 전시장은 여닫음을 반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