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성 소수자를 총칭하는 용어다.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영어권에서 퀴어(queer)와 같은 뜻이다. 성소수자는 신화와 성서에도 기록될 만큼 뿌리가 깊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수천년 간 금기였다. 금기는 20세기 후반 들어 깨지기 시작했다.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최초 레즈비언 단체 ‘빌리티스의 딸들’이 조직되면서 부터다. 이후 1973년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하면서 성소수자 인권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 지금은 자유로운 인권이 강화되면서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물론 여러 가지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LGBT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들중 트랜스젠더는 ‘신체적 성과 역할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를 뜻한다. 다시 말해 ‘외모는 남자, 마음은 여자’ 혹은 거꾸로인 사람들이다. 로마제국의 23대 황제 엘라가발루스는 트랜스젠더의 원조(?)로 꼽히다. 짙은 화장과 화려한 여장을 즐겨한 그는 심지어 “짐을 여자로 만들어주면 제국의 절반을 주겠노라”고 공표 까지 했다니 여성 갈망
오랜만에 결혼식 주례를 보았다. 대부분은 거절을 하는 편인데 지인의 자제라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내용을 할까 주례사를 고민하던 중에 가장 평범한 것이 낫겠다 싶어 평소 생각해오던 빛과 소금의 역할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 내용은 대개 다음과 같다. 빛!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러나 이 빛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하여 성북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시창작 강의를 19년째 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었다. 평소에 거의 지각 한 번 안하시던 분이 강의 시간이 다 끝나서 도착하셨다. 왜 이렇게 늦으셨냐고 물었더니 길을 잘못 들었는데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답이 없길래 내내 기다리다 보니 늦었다는 거였다. 또 다른 분은 친구 집에 갔다가 큰 봉변을 당했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새벽이 되어 소변이 마려워 문을 열고 나갔는데 그것이 화장실이 아니고 난간도 없는 밖이어서 그대로 추락했다는 거였다. 이분들에 비하면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빛이다. 출세를 하고 영광을 가져야만 빛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는 모두가 빛이고 영광이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을 자신만을 위해서 비출 것인가. 어두운 남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인 자기결정권이 중요한 것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모나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본인만의 방법으로 결정하는 권리인 셈이다. 최근, 교육계에서도 고교학점제 추진을 위한 일환으로 학생들의 교과목 선택권을 확대하고자 하는 추세이며, 주문형 강좌, 교육과정 클러스터, 중학교 자유학기제 등의 주제선택 등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배운다. 학생 자신이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여 꾸준히 해 나가는 학생들은 자신의 삶과 진로에 대해 계획하고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위해 부모, 교사나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처럼, 스스로 결정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않는 경우에도 크게 실망하거나 쉽게 포기하기 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성찰하며 좀 더 나은 방안을 다시 선택하고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나 주변 사람의 권유로 혹은 앞으로 전망이 좋다는 이유로 선택한 학생들은 별로 행복하지 않은 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런 학생들은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부모를 비롯한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
외가집 /백석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가집은 초저녁이면 안팍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 지근한 복쪽재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쨩쨩 쨩쨩 쇳스럽게 울어대고 밤이면 무엇이 기와골에 무리돌을 던지고 뒤울안 배남에 쩨듯하니 줄등을 헤여달고 부뚜막의 큰솥 적은솥을 모주리 뽑아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덜미를 그냥그냥 나려 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 그리고 새벽녘이면 고방 시렁에 채국채국 얹어둔 모랭이 목판시루며 함지가 땅 바닥에 넘너른히 널리는 집이다. 넘너른히는 여기저기에 마구 널려 있는 것을 말한다. 집을 떠나서 시인이 외가집에서 지내는 짧은 시간을 기억하면서 쓴 시다. 새로움은 늘 두려움들이 있다. 아는 것도 그렇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출발하는 일도 새로운 것은 무서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낯선 풍경에서 기이한 일들이 눈으로만 인식되지 않고 적막한 밤이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음습한 두려움들이 일어나는데 족제비들이 지저대는 소리에 화자에게는 어떤 섬뜩함 들을 체험하는 모습들이다. 화장실문화가 지금은 바뀌고 청결했지만 유년시절에는 혼자서 화장실 간다는 일은 무서운 불안감이었다. 그래서 혼자서 못가고 밖에 보초를 서듯 누나와 동생이 볼일을 보는 동안
갑작스레 재난을 당하면 누구나 당황한다. 장애인은 말그대로 무방비다. 게다가 장애인을 위한 대응방법이 담긴 설명서조차 전무한 실정이니, 세상 참 잔인했다. 그런 위험을 견디는 장애인들에게 하루하루는 살얼음판이고 벼랑끝이다. 그나마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난대응 설명서를 발간해 다행이다. ‘시각·지체 장애인 및 조력자를 위한 재난대응 표준매뉴얼’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이 책자는 민선 7기 경기도의 핵심가치인 ‘공정’을 재난분야에 접목시켰다고 도는 설명한다. 도가 설명서 발간을 서두른 것은 경기도에서 화재로 인한 장애인 사망율이 비장애인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는 결과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4~2018년까지 도내에서 화재로 사망한 장애인은 36명이었다. 전체 화재 사망자 376명의 9.6%다. 2018년 4월 기준으로 도내 장애인 비율이 4.1%였으니 2.3배 정도 높다. 장애인을 위한 재난 대응방안 설명서가 절실했던 이유다. 장애인이 편하면 비장애인은 ‘더더더’ 편하다. 재난 대응방식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장애인이 안전하면 비장애인들에게는 더 안전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모든 기준은 장애인이 돼야 한다. 이번에
수원광교박물관에 ‘사운실(史芸室)’이 있다. 사운 이종학 선생은 독도와 이순신장군, 일본침략사, 항일 운동사 자료수집에 평생을 바쳤다. 사운실에 현재 전시중인 자료와 유물 중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의 것이라고 표기된 ‘삼국접양지도’ 등 독도 관련 자료와 함께 이순신장군의 ‘이충무공전서’와 수원화성, 간도, 금강산 등 귀중한 자료가 눈에 띤다. 국내외에서 수집한 독도 관련 사료 중 일부는 1997년 독도박물관(울릉군)에 기증했으며 일부는 수원시에 기증했다. 2002년 11월,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후 유가족들은 수원시에 고서, 고문서, 관습조사보고서, 사진엽서, 서화 등 2만여 점의 방대한 사료를 기증했다. 지금 사운실에서는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사운 선생의 자료를 볼 수 있다. 과거사를 감추고 왜곡하는가 하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과의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 특히 요즘은 더욱 사이가 좋지 않다. 일본정부는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고 치졸한 경제 보복을 하고, 우리 국민들은 자발적인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 여행 거부운동으로 맞서고 있다. 이 시점에서 더욱 눈여겨봐야 할 사료가 수원광교박물관 사운실에 있다. 바로 1905년의 ‘시마네현
아침 산책을 한다. 호숫가를 걷다보니 가장자리에 작은 집이 보인다. 누런 박스로 된 허름한 집 한 채. 마침 주인장이 고개를 파묻고 아침잠을 자고 있다. 하얀 바탕에 노란 얼룩. 부드럽고 따뜻하게 보이는 등을 쓰다듬고 싶어진다. 그 작은 박스가 고양이의 보금자리인 모양이다. 홍콩의 센트럴역이 생각난다. 내 눈을 붙잡은 것은 동남아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보도블록에 박스를 깔고 앉아 있었다. 가로 세로 120센티미터 정도 되는 공간을 각각 차지하고 박스를 낮게 세워 경계를 구분한 그곳에서 밥도 해먹고 이야기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가사도우미로 온 필리핀 여자들이었다. 임금도 훨씬 싸고 영어를 쓰기 때문에 홍콩 사람들이 고용한다. 그런데 홍콩의 집값이 워낙 비싸고 면적도 좁다보니 그들에게 방 하나를 내줄 수가 없다. 주어진 공간은 선반이나 다락같은 곳이라고 한다. 평일에는 거기에서 잠을 자지만 주말에는 일을 쉬니 그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사람들이 오가는 복잡한 역 주변에 박스를 깔고 앉아 휴일을 보낸다.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위 중 하나가 노예무역이다. 노예선박의 해상 이동 과정은 알다시피 끔찍하다. 선박 갑판 아래 사람이 겨우 누울 자리, 그것도 서
‘아카데미 시상식’ 세계 최대·최고의 영화제 중 하나다. 거기서 분야별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트로피가 있다. ‘오스카’라는 애칭의 인간입상(人間立像)이다. 금 도금된 오스카상은 높이 34.5㎝, 무게 3.4㎏로, 5개의 필름 릴 위에 검을 짚고 선 기사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밑부분 5개의 필름통 형상은 아카데미의 초기 시상 부문인 배우, 감독, 제작, 기술, 각본의 5개 분야를 상징한다. 아카데미상에는 상금이 따로 없다. 오직 트로피만 수여된다. 그렇다면 24K로 도금한 트로피 가격은 얼마나 될까. 아카데미측은 원가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개당 제작비는 350달러로 추정된다. 하지만 수상에 따른 영예는 여느 영화제와 비교 불가다. 부가가치 창출효과 또한 천문학적 이다. 권위와 역사가 수상작의 작품성과 흥행성을 담보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최고의 영화제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아카데미를 꼽는다. 1929년 5월 16일, 할리우드에서 270여 명의 영화 관계자들이 모여 제1회 아카데미 상 수상식이 시작된 이래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덕분이다. 물론 영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혹자들은 아카데미의 지나친 상업성과 할리우드 자본력의 영화
운(運)은 내가 사는 자리, 가는 장소, 만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 다음 하늘에서 온다. 운의 정체도 역시 살아있는 에너지이다. 처음부터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기운들이 뭉쳐지는 것이기에, 한 번의 방향을 잡으면 흐름을 타고 파도처럼 크게 일어난다. 일단 보이지 않는 운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가짐이 겸손해진다. 분명한 것은 운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성공요인을 물어보면 절실함, 실력, 꾸준함, 심지어 분노까지 여러 가지 요인들을 들지만 하나같이 “운이 따라줬다”라고 답을 한다. 그렇다. 성공한 그들에게는 운을 부르는 말과 행실들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운(運)경영’ 4가지 원칙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답답한 곳보다 여유 있는 곳에 좋은 운이 모인다. 운은 살아있는 에너지이다.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 차 있으면 좋은 운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하루에 한번이라도 좋으니 생각을 내려놓는 평온한 시간을 가져보자. 바빠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운이 다가설 틈이 없다. 바쁠 때일수록 운이 말을 걸어 올 수 있도록
적막 /이원규 개가 짖는다고 따라 짖으랴 그 뉘시오? 외딴집 앞마당에 홍매화 피는지 강물 속으로 황어 떼 오르는지 바람결에 킁킁거릴 뿐 혀를 말아 넣은 지 오래 자라목 내밀며 섬진강을 바라본다 - 이원규시집 ‘달빛을 깨물다’ / 천년의시작 지리산 깊은 골에 자리 잡은 지 꽤 오래된 시인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주유천하 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가끔 방영되기도 했다. 젊은 시절 뜨겁게 살았다. 지금은? 혀를 말아 넣은 지 오래란다. 개가 짖는데 따라 짖으랴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시인이 10년 동안 걸으며 세상 공부를 하고 10년 동안은 생의 한 수 한 수를 복기하며 전국 오지의 야생화와 별들을 찾아다녔으니 도합 21년이다. 혀를 말아 넣었으나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시인의 시를 부분 인용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 허공에 비문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그라제, 그라제, 겁나게 좋았지라잉!“ 그라제, 그라제, 새봄엔 막걸리나 한 병 차고 시인을 찾아 지리산으로 가야겠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