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젊은역사학자모임에서 낸 책 몇 년 전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한 학구파 목사님이 필자의 책을 보고 전화를 주셨다.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영성원도 운영하는 목회자인데, 필자의 역사관과 다른 학자들이 쓴 책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른바 젊은역사학자모임이 지었다는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을 소개했다. 이 책은 ‘역사비평’이라는 역사잡지에 실은 논문들을 묶은 책이다. 이른바 젊은역사학자모임은 기경량, 위가야, 신가영, 안정준 등을 지칭하는 것인데, 당시 이들이 ‘역사비평’에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비판’이란 논문들을 게재하자 ‘조선일보’에서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이라고 칭찬하고, 한겨레·경향·한국일보 등에서 대서특필해 찰떡같은 좌우공조를 자랑했다. 얼마 후 그 목사님이 다시 전화를 주셨다.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을 다 봤다면서 “무슨 이따위 인간들이 다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인터넷 서점의 독자 서평도 비판 일색이었는데, 그중에 “자칭 전문가인 그들은 우매한 대중을 꾸짖는다. 아직 배움 중인 젖비린내 나는 글을 책으로 내는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라는 비판도 있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현상의
어둠이 짙을수록 아주 작은 불씨도 밝은 빛이 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많은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희망의 불씨를 밝히려고 애쓰는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있어 소개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며. [편집자 주] ‘플렉스(flex‧과시)’가 곧 트렌드인 시대다. 소통의 수단이던 SNS는 자기과시의 수단이 됐고, 저마다 ‘인증샷’과 함께 행복한 일상과 멋진 경험을 자랑한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행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SNS 우울증과 피로를 호소한다. 자기 PR의 시대, 조금 과한 자기표현도 허용되는 소셜 미디어가 있다. 익명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목소리로 털어놓고 공감을 구하는 감정기반 오디오 플랫폼 ‘머머링’이다. 머머링을 만드는 스타트업 (주)생산적문화활동의 김사익 대표를 만났다. Q, 감정기반 오디오 플랫폼이라는 소개가 독특한데,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기존에 네오위즈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세이클럽과 벅스뮤직을 거쳤다. 각자 커뮤니케이션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접목하면 재미있을 거란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후 독거노인들이 무엇보다 대화할 상대를
국가가 형성되면서 적으로부터 영토를 지키기 위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성을 쌓았다. 적으로부터 방어를 할 목적으로 만들다보니 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도 있었지만, 탄탄한 성은 지금까지도 남아 역사의 이야기를 전해주곤 한다. 유럽의 성은 입구에 수십m 높이의 땅을 둘러파고, 성에서 내려주는 다리를 통해서만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 성안의 공간은 대부분 좁고 복잡하다. 왕을 죽이기 위해 자객이 침투해도 자칫 성 안에서 길을 잃을 정도다. 일본을 대표하는 오사카성도 비슷한 형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3년 건립한 오사카 성의 천수각은 35m 높이의 5층 규모인데, 내부를 복잡하고 설계하고, 방을 작게 만든 점은 서양의 성 구조와 비슷하다. 모두 막대한 인력의 희생을 바탕에 둔 성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성은 어떠했을까.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성을 축조해 노동력을 최소화하고, 외적 방어라는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성안 거주자들의 소통을 염두에 둔 성의 구조라는 특징을 지녔다. 국내에는 삼국시대 흙으로 쌓은 토성에서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쌓은 수원 화성까지 수많은 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연천의 고구려 3성은 천년을 훌쩍 뛰어넘은 역사의 흔적을 간
# 이진희의 청강을 거부하는 스에마쓰 야스카즈 쓰다 소키치와 이케우치 히로시는 이병도가 와세다대를 졸업한 후에도 자신들의 저서와 논문을 보내주었다. 이병도는 남한 강단사학계의 이른바 태두가 된 후에도 이 일본인 학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매우 존경할만한 인격자였다”고 높였다(본 연재 7월 20일자 참조) 또한 경성제대 교수이자 조선사편수회 간사였던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는 해방 후에도 한국을 들락거리면서 서울대 교수들을 지도했으며(27일자 참조) 한국인 제자들에게 이렇게 친절했던 식민사학자지만 재일 사학자 이진희(李進熙:1929~2012) 교수가 자서전 ‘해협’에서 말하는 이들의 모습은 아주 다르다. 이진희는 1950년 메이지(明治)대학 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했는데, 6·25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53년 도쿄예술대학 교수인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가 케이오대학(慶應大學)에서 ‘조선고고학’을 강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학습원대학(學習院大學)의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도쿄대학에서 ‘여말선초(麗末鮮初:고려말 조선초)’라는 제목으로 강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진희는 후지타 료사쿠의 ‘조선고고학’을 듣기 위해서 후지타의 친구인 고토 슈이
* 제국주의 역사학을 반성했던 일본 사학자들 전 호에서 사례를 들었지만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에 대한 남한 강단사학자들의 존경심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중에서도 조선총독부 직속 조선사편수회 간사였던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1904~1992)에 대한 존경심은 남다르다. 광복 후에도 서울대 사학과를 들락거리면서 교수들을 지도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1927년 도쿄제대를 나와서 조선사편수회 간사가 된 스에마쓰는 1933년에는 경성제대 조교수를 겸임했다. 한 해 전에 ‘<삼국사기> 불신론’을 주창하던 경성제대 교수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2)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자 그 자리를 꿰찬 것이다. 스에마쓰는 조선총독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편찬하던 <조선사> 편찬사업을 주도했고, 이런 공을 인정받아 1939년에는 경성제대 교수로 승진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일본인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반성의 기운이 일었다. 일본의 역사학이 침략전쟁의 도구로 전락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제국주의 역사학을 황국사관(皇國史觀)이라고도 하는데, 대표적인 이론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평양설’과 서기 369년 고대 야마토왜(大
세상 바뀐 줄 모르는 강단사학계 추미애 법무장관은 6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던 ‘초선의원 혁신포럼’에 참석해 현 검찰의 행태를 질타하면서, “해방이 돼 전부 태극기 들고 나와서 ‘대한민국 독립만세’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일제 경찰 불러서 신고해야 한다고 하는 건 시대 흐름을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비판은 한국 강단사학계에 적용하면 더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이다. 남한 강단사학계는 75년 전에 일제가 패망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아직도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역사관을 교리로 신봉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계를 완벽하게 장악한 채 학문의 외피를 입고 자신들과 일본 극우파만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국민들을 호도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잘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가 2019년 12월 3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이 개최했던 ‘가야본성(本性)’이라는 제목의 가야 특별전이었다. 역사서 이름은 왜 축약했나? ‘가야본성’이란 이름 자체가 일본식인 것은 둘째치고 이 가야특별전의 연표는 ‘369년’에 이런 사실이 있었다고 써놓았다. “369년 가야 7국(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어둠이 짙을수록 아주 작은 불씨도 밝은 빛이 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많은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희망의 불씨를 밝히려고 애쓰는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있어 소개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며. [편집자 주]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펀더멘탈 브루잉’은 옛 인성전자 제조공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수제맥주 양조장이다. 아직 창업한지 2년도 되지 않은 브루어리(맥주 공장)지만, 개성 있고 품질 좋은 맥주로 소위 ‘맥덕(맥주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인지도를 쌓고 있다. 김장희 펀더멘탈 브루잉 대표는 미국 유학 시절 수제맥주의 매력에 빠졌고, 직장을 다니다가 영국과 독일에서 맥주를 배워 양조장을 차렸다. 이제는 서울·경기뿐만 아니라 대전·대구 등 전국 곳곳에 위치한 수제맥주 펍에 공급을 책임지고 있다. Q. 수원시에 위치한 옛 공장 부지를 양조장으로 만들게 된 이유가 있나. “처음에는 서울 쪽을 알아보다가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브루어리 장소를 알게 됐다. 원래 식품 제조를 하던 공장이 아니다 보니 수압이 약하거나 건물 방수가 덜 되는 등의 단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부지가 널찍한 것도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임나일본부설은 극복되었나 ① 가야사 국정과제 우리나라 강단사학자들은 입만 열면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라고 말한다. 저간의 사정을 잘 모르는 국민들은 실제로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논리를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과연 임나일본부설이 극복되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극복은 커녕 더 확산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연히 든다. 총론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고 말하지만 각론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임나일본부설이란 메이지 때 일본군 참모본부가 만든 학설로서 그 핵심은 고대 야마토왜(大和倭)가 369년 가야를 점령해서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562년까지 지배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임나설’ ‘임나가야설’이라고도 한다. 남한 강단사학은 총론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은 극복했다”라고 말하고는 곧이어 “임나는 가야다”라고 말한다. 동전의 앞면은 대한민국이라고 써놓고 뒷면은 일본이라고 써놓은 것이다. 남한 강단사학의 이런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에서 전시한 ‘가야본성-칼과 현’이라는 특별전이다. 가야본성이라는 특별전 국박이 ‘가야본성’이라는 제목의 전시회
두 사람만 받은 대한민국 건국훈장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1919년 4월 11일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지 29년 만에 ‘임시’자를 뗀 정식 정부가 국내에 수립된 것이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후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순국했는지는 정확한 자료조차 없다.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을 포함시킬 경우와 뺄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15만~20만 명 정도가 독립전쟁에서 순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9년 4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공로훈장령〉을 공포했다. 대한민국 건국에 공을 세운 독립운동가들을 표창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해 8월 15일 건국공로훈장 수여자는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 두 사람뿐이었다. 이승만이 〈건국공로훈장령〉을 공포한 것은 자신만은 건국훈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자기 혼자 받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으니까 부통령 이시영을 들러리로 세운 것이다. 망국 직후 만주로 망명해 광복되는 날까지 독립전쟁을 계속했던 성재 이시영은 건국훈장을 탈 자격이 충분했다. 그러나 두 달 전 육군소위 안두희에게 저격당해 서거한 백범 김구가 배제된 것은 차치하고라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친일파들에게 다시…
어둠이 짙을수록 아주 작은 불씨도 밝은 빛이 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많은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희망의 불씨를 밝히려고 애쓰는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있어 소개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며. <편집자 주> 화성시 동탄 신도시에 위치한 창고형 과일가게 ‘탐스(TAMS)’.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많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매출이 줄었지만, 탐스는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그 비결을 탐스를 운영하는 김형조(43), 안효정(39) 부부를 만나 들어봤다. Q. 탐스는 코로나19 이후 상황이 어떠한가. “탐스는 오히려 매출이 더 좋아진 편이다. 코로나19 이전보다 1.5배 늘었다. 자녀들이 학교나 어린이집에 안 가고 집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간식으로 과일을 찾는 젊은 부부들이 늘어서인 것 같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형마트 대신 한적한 곳에 있는 탐스를 찾는 경우도 많고,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더 좋은 과일을 찾는 수요가 늘은 게 아닌가 싶다.” 탐스는 창고형 과일가게이다. 최근 몇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