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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그리다 산과 ‘소통’ 순박하고 우직한 붓 끝…

 

최근 제18회 이중섭 미술상을 거머쥔 민정기(57) 화백을 만났다.
그를 만난 곳은
차 두 대가 마주치면
돌아가지도 못할 만큼 좁은 도로를 10여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양평군 양서2리의 끄트머리.
드디어 도착한 그의 작업실은 1988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어올린 50여평의 공간으로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작업실 안은 수많은 화구와 작품,
책 등으로 꽉 차 있다.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미술 인생’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후 줄곧 붓을 놓지 않았던
그가 ‘수상의 기쁨’을 맛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한국 미술계의 거장으로 떠오른
그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 국내 미술계의 대표적인 미술상인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소감은.
▲미술상은 처음 받았습니다.(웃음) 작업실에 앉아있는데 위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수상 소식을 알게됐지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얼떨떨했습니다. 기분이 좋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까 예전 작품들이 떠오르면서 반성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이전 수상자들과 비교된다는 사실에 어깨가 무겁고 부담도 됩니다. 특히 이 상이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1년 후에 개인전을 열어야 한다는 부담이 함께 주어졌습니다. 몇 일 전에 갤러리를 가서 봤는데 생각했던 만큼 공간이 넓지 않아서 부담감을 덜게 됐습니다. 남은 시간동안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해서 전시회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부담만큼이나 기대가 됩니다.
- 수상 이후 가장 변화한 점이 있다면.
▲수상을 통해 개인 작업 활동에서 나아가 지역에서 인정받고 지원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양평의 정체성과 지역 이미지를 보여주는 구조물을 계획 중인데 생활을 윤택하고 밀도있게 하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지역에서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어 더욱 책임감을 갖고 궁리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작가들 또한 공동작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작업하고 있으니 지역미술발전에도 일조하리라 믿습니다.
미술상 첫 수상, 책임감에 어깨 무거워
‘민중작가’ 닉네임 편가르기 같아 싫어
후원자 양평 주민에 ‘예술 봉사’로 보답

- 양평에서 전업작가로서의 삶은.
▲사실 처음에는 고생을 좀 했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구상하는 것이 좋아 20년 넘게 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앉아 있는 이 작업실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어준 공간입니다. 당시에는 건축업자들이 기계를 끌고 들어올만한 도로도 없었고 농한기에 주민들이 ‘우사공법’으로 함께 만들어준 의미있는 장소입니다. 양평지역에서 나이 있는 사람이어서인지 미술협회 회장도 시켜 줬습니다. 양평이라는 지역 자체가 개발이 어려운 동네이다보니 미술적 문화공간이 가능한 장소입니다. 최근에 시·군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역의 문화거리 조성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보며 그림만 그려도 시간이 모자랍니다.(웃음)

-‘민중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작가다. 이 타이틀에 대해선 어떠한가
▲ 많이 들었지만 사실 맘이 편치 않다. 민중작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작품이라든지 작업 행태, 책임 소지 등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답변하기가 어렵지요. 나는 작가의 작업이 삶의 환경과 그 변화에 따라 반응한다는 것에 대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생각하고 변화하는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민중작가’라는 타이틀이 매력적이거나 나에게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작가는 ‘편가르기’를 하거나 구분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이를 구분하자면 민중작가에 대한 폭넓고 섬세한 자료가 있어야 하고 그 기준과 수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림을 얼마나 오래 그렸느냐에 따라 주제와 표현, 의도가 각기 다르게 나타납니다. 경험에 의해 축적되는데 일상속의 아름다움을 전하면서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좋은 부분을 환기시키는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계절마다 꽃과 물가의 오리 등 일상속의 작은 부분들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희망이라는 점 등 관람객들이 작품을 통해 무엇인가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산을 주제로하는 작품들을 많이 그리는 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산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명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느날 산 위의 한 바위를 보며 ‘저것을 어떻게 그리나’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지나가면서 말했습니다. “화가양반, 바위 이름이 농바위야”. 지금의 장롱처럼 집 안에 수납함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수납함을 쌓아놓은 것처럼 각진 바위들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이처럼 지역의 삶과 자연이 융화돼 조화를 이룬 지명을 이해함으로써 쉽게 데생을 진행했습니다. 또 지명의 유래와 실제 자연을 보면서 상상의 고리가 생겼지요. 이를 바탕으로 신나게 작업하다보면 생기있는 작품이 나옵니다.

- 영화 출연 등 외도도 했다. 또 다른 외도계획은.
▲ 동아리에서 연극을 했었는데 얼떨결에 영화 출연까지 하게됐어요. 영화를 만드는 동기들과의 술 자리에서 오고간 농담이 실현된 것 입니다. 최근 노근리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작은 연못(가안)’에도 할아버지로 출연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주인공인데다 중간에 일찍 죽어서 촬영은 먼저 끝냈지요.(웃음) 작품에서는 외도 아닌 외도를 해볼 생각입니다. 판화기법으로 신문삽화를 그린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동판을 부식시키는 과정에서의 냄새가 고약해서 하지 않지만 목판 작업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목판작업한 것으로 공방에서 실크스크린 작업을 통해 70~80장을 제작했었습니다. 당시 양평에서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은 후 재활원을 만드는 등 좋은 일을 하는 분들과 연결돼 이 소품을 50여장 제공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예술품이 팔려 사람들의 집에 걸리고 그들이 감상함으로써 안목도 높아지고, 이는 조금 과장하자면 국력이 높아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는 시간나는대로 이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류설아기자 /rsa@kgnews.co.kr

민정기화백은?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민정기(57) 화백은 1792년에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했다.
1981년 2회 파리 비엔날레(파리), 1988년 ‘민중 미술’전(Artists Space, 뉴욕), 1994년 민중미술 15년 평가전(국립현대미술관·서울), 1995년 광주비엔날레 ‘광주 5월 정신전’(광주시립미술관·광주) 등을 통해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우리의 풍경을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양평미술협회 회장으로 지역 미술계 발전을 이끌고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서울시립미술관(서울), 주캐나다 한국대사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이발소 그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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