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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24시] ‘강화문학관’이어야 하는 이유

지난 16일 강화군 용흥궁 공원에서는 가칭 ‘강화 조경희 문학관’ 기공식이 있었다.

명칭을 확정 짓지 못한 채 플랜카드에 ‘가칭’이라고 붙인 데는 문학관의 명칭을 두고 ‘강화문학관’과 ‘조경희 문학관’을 주장하는 대립이 노정되었기 때문이다.

조경희 문학관을 주장하는 인사들은 선생께서 생전에 자신의 소장품(미술158, 도자기74, 서예35, 조각10, 도서 8천권)을 강화군에 기증해 고향의 문학관에 전시되길 원하셨고 수필문학의 한 획을 담당한 선생의 업적을 기려 그를 추모하며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여기서 ‘조경희문학관’으로 하기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선생에 대한 지명도가 ‘강화’라는 명칭보다 우위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타 지역에 있는 문학관들을 살펴보면, ‘이효석 문학관’의 경우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이강원도 오지의 ‘봉평’이라는 지명을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전남 하동의 평사리나 원주의 박경리 문학관 또한 선생의 소설 ‘토지’가 지역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최근에 조성된 경기도 양평의 ‘황순원 문학촌’은 그의 단편 ‘소나기’에 ‘소녀가 양평읍으로 이사한다’는 대목이 나오는 것에 착안, 고향이 평안북도인 선생의 작품 배경지라는 이유를 들어 건설했다.

위의 사례들을 볼 때 개인 문학관의 명칭이 붙여진 이유는 그 지역의 지명도 보다 작가의 이름이 더 알려졌거나 국민적 추앙을 받는 작가들로서 그 명칭이 지역 명칭을 뛰어넘는 유명세를 갖고 있다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조경희 선생에 대한 존함은 ‘강화’라는 한민족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지역 유명세를 뛰어넘지 못하고 ‘동명왕편’을 저술한 고려의 문신 이규보(1168~1241)나 한말 ‘강화학파’라는 계보를 형성하고 하곡문집(霞谷文集) 등 수많은 시문집을 남김 양명학(陽明學)의 대가 정제두(1649~1736) 선생 등을 뛰어넘지 못한다.

또한 선생께서는 문학인으로서보다 언론인으로서 또 정치인으로서 더 잘 알려져 있다.

물론 한국수필가협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회장, 한국예총회장 등을 역임하며 문단에 기여한 바는 클지 모르지만 선생의 작품이 그 명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고 최초의 여성정무장관이었다는 사실이 선생의 이미지를 정치 지향적으로 느끼게 하고 있다.

더구나 강화가 품고 있는 고귀한 문학적 가치에 비해 선생의 문학적 성과는 강화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강화는 단군의 신화로부터 그 아들이 쌓은 삼랑성을 비롯 전등사의 나녀상과 고려의 항몽, 팔만대장경, 한말의 각종양요 등등 신화와 전설과 역사와 문화가 모두 문학적 주제나 소재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강화에 지어지는 문학관은 강화의 역사와 문화 속에 존재하는 모든 문학작품들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강화문학관’이 되어야하며 모든 문인들이 자랑스러워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한번쯤 오고 싶어 하는 문학관이 되어야 한다.

강화는 민족의 성지로서 그 자체가 역사의 중심이며 문학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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