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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역사 빛나는 자부심, 아름다운 ‘강화 8경’

 

어느새 여름의 한 가운데서 초점 없는 시선을 두리번 거릴때 저만치서 잠자리가 여름을 밀어내려 맴돌고 있다.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 의외의 즐거움을 찾고 싶다면 강화도로 떠나보자. 육지 같은 섬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 크기의 섬이다.

 

이곳에는 많은 문화유산 중 풍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강화팔경이 있다. 바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강화도의 명소 8곳은 삶의 기쁨과 안식을 제공하고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연미정

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돼 있으며 강화읍 월곶리 242번지에 있다. 이 정자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고종이 구재(九齋)의 학생을 이곳에 모아놓고 면학케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후 조선시대 때에는 황형(1459∼1520)이 국가에 공로가 많아 조정에서 세워 하사했다 한다. 장무공 황형은 중종7년(1512) 함경지방에 북로가 침입하자 순변사가 되어 이를 진압했으며 함경절도사, 공조판서를 역임한 인물이다.

 

이 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한 줄기는 서해로, 또 한줄기는 강화해협(염하강)으로 흘러 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 해서 ‘연미(燕尾)’라 했다 한다. 높은 석주 위에 세운 팔작집으로 영조 20년(1744) 중건, 고종 28년(1891) 중수 등 수차에 걸쳐 보수를 했다.

▲적석사

내가면 고천리 210-3번지에 있다.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중종39년(1544)과 선조 7년(1574) 그리고 그 후 6차에 걸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동편에 있는 우물은 돌 틈에서 나오는 샘이 맑고 찬데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거나 흉년이 들 때면 별안간 마르거나 6.25 한국동란 때처럼 별안간 흐려져서 먹지 못했다고 한다. 서쪽상봉은 낙조봉이라 하여 서해 수평선이 붉어지며 파도 위에 해지는 광경은 강화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갑곶돈대

사적 제306호로 강화읍 갑곶리 1020번지에 있다. 이 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몽고와 줄기차게 싸울 때의 외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고종 3년(1866) 9월 7일 병인양요시 프랑스 극동함대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산성, 문수산성 등을 점령하였다. 같은 해 10월13일 프랑스군은 삼랑성(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 패주 하였다. 이때 강화성 내에 있던 강화동종을 가져가려 하였다가 무거워 가져가지 못하고 성내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 등을 약탈하고 조선궁전 건물은 불을 질러 소실되었다. 돈대 내에는 조선시대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마니산

마니산은 백두산이나 묘향산 등과 함께 단군왕검의 전설이 얽힌 강화도의 명산으로서 화도면 문산리 소재 해발 468m로써 북으로 배두산과 남으로 한라산의 정 중앙에 위치해 있다. 산 정상에는 단군성조께서 우리민족의 번영을 기원하던 제단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사적 136호의 참성단이 있다. 지금은 해마다 개천절에 이곳에서 개천대제를 지내며, 전국 체육대회 때마다 대회장에 타오르는 성화는 이 참성단에서 칠선녀에 의해 채화되어 행사장까지 봉송되고 있는 민족의 영산이다.

기(氣)수련가들 사이에 생기처 불려 심신 수련의 최적지로 알려져 있다. 등산로는 세갈래로 주등산로는 참성로(계단있는 길), 단군로(계단이 없는 길), 함허동천로가 있다.

▲보문사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에 있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섬 산중에 둥지를 틀고 있다. 여기에는 불상을 모신 석실과 마애불이 있는데 석실은 천연동굴속에 21개의 감실을 설치하고 석불이 안치되어 있다.

이들 석불들은 신라 때 어떤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현몽대로 안치했더니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남해 보리암, 낙산사의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기도 사찰중의 하나이다. 또 보문사마애석불좌상(시 유형문화재 제28호)은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 일명 눈섭바위에 조각한 것이다.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정병을 들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초지진

사적 제225 호로 지정돼 있으며 길상면 초지리 624번지에 있다. 이곳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 (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고종3년(1866)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 극동함대 및 고종 8년(1871)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 함대, 고종 12년(1875) 8월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이다. 이곳은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으로 애국애족 및 호국정신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1973년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전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성보

사적 제227 호로 불은면 덕성리 23-1번지에 있다. 광성보는 조선 효종 9년(1658)에 설치 되었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돈대가 축조되었다. 영조 21년(1745)성을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고 안해루(按海樓)라는 현판을 달았다. 고종 3년(1866) 프랑스의 극동함대와 치열한 격전(병인양요)을 치루었으며, 고종 8년(1871) 미국의 아세아함대(신미양요)가 이 성을 유린하여 우리 수비군은 탄환 및 화살이 떨어지자 어재연장군 이하 전 장병이 백병전으로 맞서 용감히 싸우다 전인원이 장렬히 순국한 곳이다.

▲전등사

전등사는 정족산(鼎足山) 삼랑성(三郞城) 안에 있는 사찰로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72) 아도화상이 진종사(眞宗寺)를 연데서 비롯됐다, 이곳이 전등사로 불리게 된 것은 고려 충렬왕의 원비인 정화궁주(貞和宮主)가 불전에 옥으로 된 등잔을 올린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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