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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집] 광주 만해 한용운 기념관을 찾아서

 

■ 탄압·폭거에 침묵하지 않은 뜨겁고도 절절한 ‘님의 魂’이…

민족과 독립위해 한평생 저항한 실천의 삶

만해 한용운은 1879년에 태어나 60세로 잠들기 전까지 오로지 겨레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저항하는 실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선사로서, 독립 운동을 주도한 민족지성인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한용운은 불교에 귀의한 승려이자,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앞장서던 독립 운동가였으며 문학에 뜻이 깊은 시인이었다. 그는 항일 민족운동의 최일선을 지키며 그 삶 자체가 저항이며 운동이었다.

어릴 적 그는 고향 홍성에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조선왕조의 비참함을 지켜보았다. 이후 나라와 겨레의 운명을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출가를 통해 민족운동의 대열에 뛰어 들었다.

초기에는 시베리아와 일본 탐방 등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일제의 국권강탈을 겪으며 본격적인 민족운동의 무대로 들어가게 된다.

한용운의 민족운동 첫걸음은 ‘임제종운동’의 주도였다. ‘임제종운동’은 일본불교가 한국불교를 통제·관리해 민족불교를 일본불교로 개조하려는 것에 저항한 불교운동이다. 이로써 민족불교의 자존이 유지된 것이다.

그 후 만해 한용운은 불교의 자주화를 주장, 점차 그 무대를 넓혀 민족자존과 독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한용운이 가진 독립에 대한 갈망과 변치않는 지조는 민족 지성인의 표본이 됐다. 일제의 배급마저 거부했던 저항정신은 그가 민족대표로 설 수 있었던 기개를 보여준다.

▲ 독립운동가, 문학가, 불교인으로서의 만해 한용운

불교계 대표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그는 기독교, 천도교 지도자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기획, 주도했다. 한용운은 3·1운동이 성사되게 한 중요한 인물이었고 나아가서는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추서해 3·1운동의 방향을 정립하였다.

또한 불교 근대학교인 중앙학림 학생들을 만세운동의 선두에 서게해 전국의 사찰이 만세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가진 독립에 대한 갈망과 변치 않는 지조는 민족 지성인의 표본이 됐다. 일제의 배급마저 거부했던 저항정신은 그가 민족대표로 설 수 있었던 기개를 보여준다.

만해 한용운은 시인으로 이름나 있지만 그의 문학세계는 시작에만 국한돼 있지 않았다. 시와 시조, 수필, 한시,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자라온 환경을 안다면 한용운이 문학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는 학교를 다니지도, 문학에 대한 교육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탐구 정신과 도전 정신, 그리고 어릴 때 집안에서 배운 전통 한학이 그의 문학 활동에 밑거름을 제공했다.

▲ 남한산성의 만해 한용운 기념관

남한산성의 오랜 역사와 기개가 만해 한용운의 청빈한 삶과, 깊은 학문, 민족을 향한 사랑과 닮았다. 그래서 한용운 기념관이 서울 심우장에서 남한산성 마을로 옮겨온 이유다.

이러한 만해 한용운의 뜻을 기리고자 경기도 광주 산성마을 안에 만해기념관이 개관한 것은 지난 1990년이다. 이에 앞선 1981년 개관했던 심우장 시절을 거쳐 오늘이 이르게 된 것이다.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남한산성 안에 자리 잡은 마을로 기념관이 옮겨온 데에는 큰 뜻이 있다.

남한산성은 한성백제시대 때 천재를 올리던 성스러운 땅이었다고 한다. 또한, 산성축성은 조선 8도 도총섭 벽암 각성대사를 중심으로 8도의 승려들이 모여 국난 극복을 위해 모두 하나가 된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은 8도민이 모여 화합하고 어울리는 통일의 장소였고, 호국정신의 도량이었다. 이런 남한산성의 오랜 역사와 기개가 만해 한용운의 청빈한 삶, 깊은 학문, 민족을 향한 사랑과 닮아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터를 옮겨온 것이다.

산성마을 안으로 옮긴 뒤 관람객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하니 이 이상 좋을 수가 없다.

만해기념관은 ‘님의 침묵’ 초간본을 비롯해 만해 한용운이 평소 즐겨보던 수택본들과 일제 강점기 때 금서였던 ‘음빙설문집’과 ‘월남망국사’ 등이 전시돼 있다.

또한 만해 한용운의 친필유묵과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가 쓴 만해 찬시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전시실을 한 바퀴 돌면 만해 한용운의 기개 있는 푸른 삶에 깊이 감동받게 될 것이다. 만해 한용운의 사상과 삶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만해기념관에서 운영하는 만해학교에 참여하면 된다. 그의 시 세계와 연대기, 아름다웠던 삶에 대해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문을 나서 옆 정원을 둘러보았다. 돌에 조각 된 시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 만해 한용운은 민족과 겨레를 위해 온 생을 다 바친 위인이요, 훌륭한 문장가였다.

남한산성 마을 나들이도 갈 겸 만해 한용운의 얼도 만날 겸 뜻이 맞는 이들과 나서보자. 몸과 마음 모두 평안을 얻고 올 것이다. 만해기념관(www.manhae.or.kr, ☎031-744-3100)

<자료제공=경기관광공사>



나룻배와 행인(行人)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나는 소설을 쓸 소질이 있는 사람도 아니요, 또 나는 소설가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도 아니올시다. 왜 그러면 소설을 쓰느냐 반박하실지도 모르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동기까지 설명하려 고는 않습니다. 하여튼 나의 이 소설에는 문장이 유창한 것도 아니요, 묘사가 훌륭한 것도 아니요, 또는 그 이외라도 다른 무슨 특징이 있는것도 아닙니다. 오직 나로서 평소부터 여러분께 대하여 한 번 알리었으면 하던 그것을 알리게 된 데 지나지 않습니다.(중략) 많은 결점과 단처를 모두 다 눌러보시고 글 속에 숨은 나의 마음까지를 읽어주신다면 그 이상의 다행이 없겠습니다.

- 1935년 4월, 조선일보에 장편소설 ‘흑풍’을 연재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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