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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예술기행] 샤갈과 생폴드방스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선명한 색채로 사람과 동물을 섞어 환상적이며 신비한 그림을 수없이 그렸다. 그의 그림엔 아이와 여인, 꽃을 든 남자와 비둘기, 뛰어 오르는 염소와 아이들, 방긋 웃는 해님이 등장한다. 동심을 부활시키는 이 소재들은 우리의 맘을 녹여주고 꿈꾸게 한다.

 

20세기 프랑스에 귀화해 성공한 최고의 예술가 샤갈.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와 네오 프리미티즘 성격을 띤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동유럽의 유대인 마을 슈테틀과 유대전통, 그리고 러시아 민속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샤갈은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식료품 가게를 했고 아버지는 시나고그에서 일했다. 다정한 어머니는 항상 아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며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르쳤다. 그림에 소질이 많은 샤갈은 일찍부터 데생을 공부했고 스무 살 때 생페테르부르크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레옹 박스트(Léon Bakst)가 연 프랑스 인상주의에 눈을 떴고 파리를 사모했다.

 

러시아의 반유대주의가 극성을 부리자 그는 스물세 살 때 파리로 피난 왔다. 이때 원래 이름인 모이슈 자카로비치 샤갈로프(Moishe Zakharovitch Shagalov)를 프랑스식 마르크 샤갈로 개명했다. 그러나 기구한 유대인의 운명은 파리 정착을 어렵게 했고 끝없이 세계를 떠도는 노마드로 만들었다. 나이 오십이 돼서야 그는 그토록 원했던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파리를 제2의 고향으로 자부하던 샤갈. 하지만 맘속엔 언제나 조국 러시아가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비테프스크는 그의 상상 속에 동심의 천진난만한 낙원이었다. 센 강의 다리들과 에펠탑을 그릴 때도 배경은 언제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 장식했다. 그 유명한 ‘눈 내리는 마을’도 샤갈이 프랑스 방스에 살면서 비테프스크가 그리워 그린 그림이다.

 

샤갈은 말년에 프랑스 남부로 떠났다. 니스 근처 방스(Vence)의 마티스 예배당 근처에 정착한 그는 마티스, 피카소, 마그넬리, 레제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교류했고 미술적 테크닉을 넓혀 갔다. 하지만 곧 생폴드방스(Saint-Paul de Vence)로 이사해 마을 어귀에 ‘동산’을 짓고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 샤갈이 친구들을 자주 만났던 콜롱브도르와 플라스드카페, 그가 산책했던 트리우스 교차로와 생 클레르 길은 그의 그림 속에 등장했다.

 

 

샤갈의 생폴드방스의 그림은 모두 사랑에 진동하는 서정시였다. 사랑하는 연인들, 푸른 하늘 속 평온한 둥지, 성벽과 마을 위에 떠도는 새와 꽃다발. 실제의 그곳 역시 그러하다. 골목골목 깔려 있는 매끌매끌한 돌멩이마저 예술인 그곳. 마르셸 파놀이 ‘내 아버지의 영광’을 영화화한 ‘마르셀의 여름’에 너무도 잘 드러나 있다. 주인공 샤를이 꿈속에서 조차 그리워했고 죽어서도 오매불망 잊지 못한 동화 속 나라. 그곳은 바로 샤갈의 마을 생폴드방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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