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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편지라는 감정의 거울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퇴계 이황(李滉)은 13년 동안 학문과 처세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았다. 특히 8년 동안은 사칠 논변(四七論辨)을 통해 조선 성리학에 깊은 영향을 끼친 논쟁을 펼쳤다. 전라도 광주의 기대승은 경상도 이황 선생과 13년 동안 인편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26살 아래의 자기를 깍듯이 대해 주신 대유학자로서의 이황 선생의 훌륭한 모습을 존경하였다. 퇴계 이황 선생이 돌아가신 뒤 기대승은 퇴계에 대한 존경심을 비문에 모두 담아내지 못하여 별도의 돌에 남몰래 추모의 글을 아래와 같이 새겨 묻었다.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 산도 허물어져 낮아지고 / 돌도 삭아 부스러지겠지만 / 선생의 명성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영원하리라.’

 

지금이야 우체국에 가서 4-500 원 주고 편지를 보내면 2-3일 내에 수취인의 손에 들어간다. 그러나 지금부터 500 년 전 두루마리 한지 종이에 쓴 편지글은 사람이 전라 경상도를 오가며 전해주고받았다.

 

‘애정 깊은 아들에게’

 

오늘 나는 평소보다 출근을 빨리하여 봄의 창을 열고 네게 편지를 쓴다. 나는 가끔씩 한두 통의 편지를 쓴데 그 순간이 행복하단다. 그게 나의 호흡이며 나를 사는 시간 같다는 느낌에서다.

훈이 너를 보내고,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몰랐더냐 /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나는 황진이의 시심에 젖어 너를 그리워한단다. 

 

‘아버님께’

 

건강은 어떠신지요? 요전 전화 통화 때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 걱정이 앞섭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시며 평안하시길 매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계실 아버님을 생각하며 저도 책상 앞에 앉아 이 글을 띄웁니다. 정말 걱정 마시고 정신적 육체적 건강 부탁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 보고 싶고요.

 

아버지 and 나 Fighting! 1995. 4. 25. 영국 런던에서 훈 올림

 

위 편지글은 나의 수필집 『하늘가는 작은 배』 289쪽의 편지글이다. 아들이 영국으로 가서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할 때도 나는 부지런히 편지를 써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다.

 

퇴계 선생은 55세 무렵 맏손자 안도(15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여 70 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16년 동안 153통의 편지를 보냈다. 당시 퇴계는 상계마을에 살고, 손자는 서울과 봉화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16년간 편지를 보내며 퇴계는 공부에 임하는 자세와 선비(지성인)가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을 맏손자에게 세세히 일러주었다.

 

나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때이다. 돈 떼어먹은 사람보다 정 떼어먹은 사람이 더 나쁘다는 생각으로 편지 쓰기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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