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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정책가’ 백남준의 모습

백남준아트센터 특별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
사회 문제에 의견 개진했던 ‘정책가’ 백남준 조명
백남준이 1960-70년대 작성한 세 편의 보고서 다뤄
2022년 구입 신소장품 ‘걸리버’ 공개…내년 3월 26일까지

 

백남준이 2001년에 제작한 3채널 비디오 설치 작업 ‘걸리버’. 바닥에 누워있는 거인 걸리버는 총 길이 4m가 넘는 거대한 로봇으로, 몸체를 이루는 11개의 CRT 텔레비전에선 두 종류의 비디오를 보여 준다.

 

백남준아트센터가 2022년 구입한 이 새 소장품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1726년작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감을 따왔다. ‘걸리버 여행기’는 주인공 걸리버가 소인국과 대인국 등을 여행하는 이야기다. 어린이들이 많이 읽지만, 동화적 내용보다는 인간사회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풍자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백남준의 ‘걸리버’ 역시 다양한 사회의 이야기와 상상을 담고 있다. 특히, 총 18대의 소인국 로봇들은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걸리버의 온몸을 전선으로 포박하고 있다. 생기발랄한 소인국 로봇과 상대적으로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거대한 걸리버의 모습이 대비된다.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비디오아트의 아버지’가 아닌 사회 문제 해결을 꿈꿨던 ‘정책가’ 백남준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지난달 13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는 백남준의 뉴욕 활동 초기인 1960년대 후반 그가 작성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정책가 백남준을 조명한다.

 

인류 문화역사의 기록과 보존을 위한 디지털 전환, 타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해결하는 도구로서의 비디오 교환, 세계를 연결하는 소통 체계로서의 전자초고속도로 구축, 다양성을 담보한 공영방송 콘텐츠의 지속 등 당시 백남준의 제안은 예술을 매개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들이었다.

 

관람객은 보고서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1968),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1974), ‘PBS 공영 방송이 실험 비디오를 지속하는 방법’(1979) 등과 작품을 함께 보며 새로운 백남준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는 ‘인스턴트 글로벌 대학’, ‘전자초고속도로’, ‘연구소, 방송국, 미술관’ 등 총 3장으로 구성돼 오늘날의 전쟁, 사회 양극화, 기후위기 속에서 백남준의 제안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 준다.

 

 

◇ 서로 다른 문화·언어를 연결하는 비디오

 

백남준은 1968년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인스턴트 글로벌 대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비디오를 제작해서 우편으로 주고받는 것으로, 이 가상 대학에서 비디오는 다름에 대한 몰이해를 해결하고 타문화를 배우는 도구로 기능한다.

 

이 보고서를 작성할 무렵 백남준은 벨 전화연구소에서 초청 아티스트로서 컴퓨터 실험을 진행했고, 스토니브룩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컨설턴트로 일했다. 대학과 연구소를 오가며 아직 일반에 보급되지 않은 컴퓨터와 선구적인 기술 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학교, 도서관, 연구소 등 사회기반시설은 물론 예술도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각의 근간이 됐다.

 

1994년작 ‘해커 뉴비’는 다음 세대의 표상 담고 있다.

 

‘뉴비’는 인터넷에서 파생된 조어로, 인터넷을 처음 사용하는 신규 사용자 또는 새로 온 사람을 칭한다. ‘해커’는 이 작품에서 기존의 것을 변형해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한 손에 게임기를 들고 있는 어린이 로봇 조각은 전자초고속도로에서 삶의 여정을 시작할 미래 세대에 대한 백남준의 바람을 담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윤서 학예사는 “백남준은 다음 세대에 대한 구상을 많이 했다”며 “작품을 통해 그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 새롭게 개척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미디어를 통한 실시간 전송·공유

 

백남준이 주창한 ‘전자초고속도로’ 개념은 실제 고속도로에서부터 출발한다. 1930년대 미국이 고속도로 건설로 경제 부흥을 이루었듯, 전자초고속도로를 구축해 아이디어를 실시간 전송하고 공유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 인종, 성별, 세대를 초월한 다양한 주체가 어우러질 수 있는 지구촌을 구상하며, 기술 전문가와 ‘의심쩍은 권력 복합체’가 미디어를 독점하지 못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자초고속도로’ 구상에 천착한 연구 주제를 반영하듯이 백남준의 작품에는 수레, 가마, 자전거, 자동차 등 탈 것이 종종 등장한다. ‘꽃가마와 모터사이클’은 각각 과거와 현대를 직접적으로 지시하며 두 개체가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꽃가마를 탄 로봇과 모터사이클을 탄 로봇을 나란히 배치해 오래된 미디어를 사유하며 미래적 관점을 제시하는 백남준의 의도를 간결하게 나타낸다.

 

작품은 1995년, 광복 50주년에 롯데칠성의 의뢰로 제작돼 당시 칠성사이다 광고에 등장했다. 백남준은 상업광고의 형식을 빌려 비디오아트를 모든 가정의 텔레비전으로 송출하는 데 성공했다.

 

 

◇ 자유롭게 소통하는 즐거운 세계를 꿈꾸다

 

1980년대 백남준은 국가가 주도하는 위성 방송 시스템을 이용해 대륙 간,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소통을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다.

 

전시 마지막에 만나게 될 작품 ‘나의 파우스트’는 총 13점의 대규모 연작이다. ‘파우스트’는 괴테가 60여 년에 걸쳐 집필한 희곡 대작으로, 백남준은 ‘나의 파우스트’라는 작품 제목을 통해 그가 예술가로서 달성하고자 했던 평생의 과업을 전한다.

 

특히 ‘나의 파우스트–자서전’은 예술, 교육, 농업, 건강, 교통, 통신 등 앞선 작품에 부여된 주제를 집약한다.

 

서양 고딕 교회 또는 제단의 형태를 차용한 구조물 안에 텔레비전 25대가 설치돼 있고, 그 바깥에는 레이저디스크, 신문 기사, 편지, 악보 등을 콜라주했다. 최상단에는 모니터와 안테나가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작품에는 백남준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외투 주머니에는 그가 늘 읽던 신문이 꽂혀있고, 물감, 팔레트, 머플러, 멜빵 등이 눈에 띈다.

 

 

한편, 이번 전시는 백남준아트센터가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기획한 마지막 특별전으로 내년 3월 26일까지 진행된다. 앞서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 ‘바로크 백남준’ 두 번의 전시가 개최됐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관장은 “백남준아트센터로서 백남준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것에 주안점을 둔 세 번의 전시를 준비했다”며 “저희가 1년 내내 축제처럼 백남준을 바라보고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많이 제공하고자 노력했던 한 해였다”고 소회를 전했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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