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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툭’ 끊긴 길에 가파른 경사…아는만큼 보이는 ‘장애인 보도’

가파른 경사각에 휠체어 전복 위험·장애물 옆 점자블록 등
경기도 전국 유일 ‘이동편의기술지원센터’ 운영 및 조례
도면·현장 사전점검 무료 지원, 개선 결과 시·군 전달까지
31개 시·군 사전점검 의뢰수 1위는 남양주…꼴찌는 가평
장애인 이동편의시설 설치는 의무…기술 사전점검은 권장
“‘사회적 공감대’ 형성돼 법적 근거 마련되길 기대한다”

 

장애인·비장애인 할 것 없이 보행도로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바닥의 노란색 점자블록과 신호등 옆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안내버튼 등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이같은 장치의 ‘설치’만으로 장애인의 이동편의를 위한 조건이 충족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자가 직접 체험한 결과 해당 장치들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현재 경기도는 전국 유일 ‘이동편의기술시설지원센터(이동편의기술센터)’ 보유 지자체다. 건물과 도로 설계 과정에서 장애인 이동편의를 위한 도면 사전점검 및 실태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도내 31개 시·군에 도로 등 설계 시 이동편의기술센터에 장애인 시설을 선(先)의뢰하는 조례가 있지만 법적 의무가 없어 지역별로 편차도 크다.

 

법에 명시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기준에도 불구하고 들쑥날쑥한 설치가 이뤄지는 데는 ‘시공자의 이해도 부족·공무원의 의지’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있는데 없다’…비장애인만 문제 없는 장애인 이동편의시설

 

경기신문은 창간 21주년을 맞아 이동편의기술센터 관계자들과 함께 평택시 일대 이동편의시설 실태조사에 나섰다.

 

처음 방문한 곳은 올 2월 준공을 마친 평택의 신축 아파트 인근 보도다. 언뜻 보면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점자블록, 음향신호기, 볼라드 등이 잘 설치돼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자 ‘횡단보도’에서 집중적으로 문제점이 드러났다.

 

휠체어 등의 횡단보도 진입을 위해 턱 낮춤이 돼 있었지만 12.4도의 가파른 경사 탓에 횡단보도 진입과 인도로 올라오기 힘든 구조였다. 자칫 전복될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횡단보도 진입로에는 휠체어 등의 안전한 진입을 위해 평균 1.2m의 평지를 확보한 다음 6도 이하의 완만한 횡경사를 내게 돼있다.

 

다만 시공 과정에서 시공자(대부분 비장애인)들의 이동에는 문제가 없어 ‘제대로 된’ 이동편의시설 설치가 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동편의기술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턱 낮춤이 된 횡단보도 구간에는 차량의 인도 진입을 막기 위한 ‘볼라드’가 설치돼 있었다.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거리 확보를 위해 장애물(볼라드) 앞뒤로 30cm 간격을 두고 점자블록을 설치하게끔 되어 있는데 해당 볼라드는 점자블록과 15cm도 안 되는 좁은 간격으로 설치됐다.

 

배수로는 가로폭 3cm, 세로폭 10cm 이상으로 설치돼 있었다. 휠체어 앞바퀴나 지팡이, 여성구두 등이 빠지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보행로 상의 배수로는 가로·세로폭 1cm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사거리 횡단보도의 ‘음향신호기’는 1개 전주에 2개가 설치돼 있었다. 리모컨으로 음향신호기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어느 신호를 안내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사용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았다.

 

양주시, 하남시 등에서도 유사 문제점이 다수 발견됐는데 일부 점자블록 위로 버스정류장이 설치돼 시각장애인 보행 시 부딪힐 수밖에 없게 설치돼 있었다.

 

또 점자블록과 횡단보도의 폭이 불일치하거나, 관할기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점자블록이 끊긴 채 시공돼 길이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동편의기술센터 관계자는 “사실 이렇게 실태조사를 한다고 해도 (시설이) 예산 등의 문제로 바로 수정되진 않는다”며 “시청 측에서도 다음 개보수 때 반영한다고 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경기도 적극 행정에도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

 

경기도는 지난 2014년 1월부터 전국 최초 ‘경기도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의 사전·사후 점검에 관한 조례’를 시행하고 도 이동편의시설기술지원센터(이동편의기술센터)를 구축·운영 중이다.

 

해당 센터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을 바탕으로 도로, 교통수단, 여객시설 등 이동편의시설 설치에 관한 도면검토·현장기술지원 등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시·군이나 시공사 측에서 설계단계 초기 도면 또는 현장 검토를 의뢰하면 지원센터는 점검 후 관계업체 또는 기관과 조율한 최종 수정사항을 시·군청에 전달한다.

 

정일교 이동편의기술센터 부장은 경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약 20년 전부터 장애인편의증진센터라고 건축물에 대한 검토가 활발히 이뤄졌던 반면 도로 시설을 검토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며 “경기도만이라도 조례로 점검해 나가보자 해서 센터가 만들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 부장은 “검토 의뢰에 있어서 시나 시공사 등이 돈이 들지 않는다”라며 “경기도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 시에서 승인 내주기 전 딱 3일만 저희한테 검토받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동편의시설 (점자블록 등) 설치에 관한 법적 근거는 존재한다. 그러나 설치 검토에 관한 법적 의무는 없어 도 지역별로 적정설치율 편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센터 출범 후 지금까지(2019년~2023년 5월 말) ‘31개 시·군의 도면·현장점검 의뢰 건수’를 살펴보면 남양주시가 300건으로 가장 높았다. 또 의정부시(255건), 안산시(197건), 안성시(121건)가 뒤를 이으며 적극 행정 사례를 보였다.

 

반면 동기간 가평군은 1건을 기록했고 동두천시와 하남시는 각각 5건, 광주시, 안양시, 양주시, 양평군은 7건 등으로 나타나며 시·군간 최고·최저 의뢰 편차는 299건이다.

 

경기도 조례로 지정됐음에도 사전점검에 대한 높은 편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크게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 ▲시·군 담당 공무원 의지 등 2가지로 꼽힌다.

 

이에 이동편의기술센터는 장애인 등을 위한 시설들의 적정 설치를 위해 도내 준공 완료 지역을 찾아 사후 실태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시·군청에 전달하고 있다.

 

이동편의기술센터 관계자는 “경기도도 조례로서 권장하는 부분이지 사전검토 의뢰를 안 한다고 해서 위법한 건 아니다”라며 “센터 자체적으로 사후 실태조사에 나서서 시·군 관련과에 꾸준히 얘기해도 저조한 곳은 계속 저조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전점검을 통하면 관련기관 등 설계 도면 종합적으로 판단해 적법한 편의시설을 체크할 수 있지만 부서별로 도로사업을 진행할 경우 설계상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잘 안되기도 한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법적 근거가 없고 조례로 권장만 하고 있다 보니 인사가 잦은 시·군청 특성상 관련부서 인수인계 과정에서 사건검토 관련 내용이 사라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사실 법의 의무가 없음에도 경기도가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해 조례를 제정하는 등 지원에 나선만큼 도내 31개 시·군에서라도 이동편의기술지원의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고, 나아가 법적 근거도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경기신문 = 김한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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