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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는 우리들의 춤이자, 노래이자, 이름이었습니다"…뮤지컬 '향화'

여성 독립운동가 김향화 열사, 창작 뮤지컬로 되살아나다
권번 기생에서 독립운동 주체로…이름 지켜낸 삶의 서사

 

“잠시만요! 언니, 우리들 본래 이름을 아시오? (중략) … 그리고 나는 김향화요. 나는 향화라는 이름이 자랑스럽소!”

 

무대 위에서 터져 나온 향화의 외침은 객석을 깊은 침묵 속에 빠뜨렸다.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존재를 지킨다는 일이자 그것이 조선의 독립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순간 관객은 숨조차 가다듬지 못한 채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수원시립공연단 창작 뮤지컬 ‘향화’는 기생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향화 열사의 삶을 따라가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과 목소리를 다시 불러냈다.

 

이야기는 기자 박명근이 세월이 지난 뒤 김향화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곧 무대는 과거로 흘러가, 16세에 수원으로 시집 온 향화, 학교 진학이 좌절된 소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시집과 갈등을 겪다 결국 이혼을 선택한 청년, 그리고 수원 권번에 들어선 기생으로서의 향화가 차례로 그려진다.

 

무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장면마다 살아 움직이는 공간으로 작동했다. 거대한 스크린과 얇은 천, 세밀한 소품들이 결합해 입체적인 공간감을 만들었고, 조명과 영상은 극적 긴장을 증폭시켰다. 특히 빨래터 장면에서 스크린에 흐르는 물길과 화성의 풍경, 무용수들의 춤사위는 무대와 현실이 교차하는 듯한 몰입감을 이끌어냈다. 

 

 

2막은 갈등의 정점이다. 권번의 기생들이 만세운동을 앞두고 있는 순간, “이름을 버리고 떠나라”는 훈련장의 말에 향화는 동료들의 본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도화, 연향, 능파, 그리고 자신이 김향화임을 선언하는 장면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기생이라는 굴레를 넘어 각자의 이름과 존재를 되찾고 독립의 주체로 서겠다는 결의였다.

 

그러나 결단의 결과는 가혹하다. 향화는 투옥되고, 박명근 기자가 남기려 한 기록은 권력의 압박에 묻힌다. 마지막에 기자가 “왜 만세를 불렀습니까”라고 묻자 향화는 짧지만 분명히 답한다. “만세는 우리의 노래였고 춤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세는 우리들의 이름이었습니다. 한바탕 노래하고 춤을 춘 것이지요” 공연은 이 대사와 함께 암전되며, 잊혀진 목소리를 현재로 불러낸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수원시립공연단이 올린 이번 작품은 단순한 전기극이 아니다. 전통 장단과 창작곡, 국악 선율은 극의 메시지를 더욱 깊게 울려 퍼지게 했고, 무엇보다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독립을 외쳤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무대 위로 올린 데 의미가 있다. 

 

뮤지컬 ‘향화’는 한 인물의 삶을 넘어 이름과 존재를 지켜내려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독립에 대한 민족의 열망을 담아낸다. 무대 위 향화의 목소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그리고 역사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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