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마 씨고 이름은 승미다. 더하면 마승미가 되는데, 나는 그녀의 이름을 쉬 부르지 못하고 입안에서 머금고 있다가 잃어버리기 일쑤다. 하기는 우물쭈물하다가 잃어버리는 것이 어디 이름뿐일까. 무심한 척 웃어넘기지만, 내 속은 갈치 꼬랑지마냥 좁아터져서 그녀의 눈길 하나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담아냄이란 담을 것 보다 크고 넓어야 가능한 일인데, 담을 수 없음을 빤히 알면서도 내밀 수밖에 없는 그릇은 얼마나 옹색한가. 그러함에도, 어쩌지 못하고 그녀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는 까닭은 그곳에 뒷마당이 있기 때문이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그녀의 집 뒷마당에만 서면 오금이 저려 쩔쩔매고 만다. 그녀의 집 뒷마당은, 그러니까 마승미가 사는 집의 뒷마당은 마당 자체로 산이다. 그 산을 사람들은 두륜산(頭輪山)이라 부른다. 듣자마자 떠올리는 그 산이 틀림없다. 대흥사(大興寺)와 일지암(一枝庵), 초의(草衣)와 다산(茶山)을 품고 있는 바로 그 산이다. 산이 내어준 것은 동쪽 끄트머리의 숲과 계곡과 오솔길인데, 그녀는 산이 내어준 경이로움을 집 뒷마당의 차밭에 오롯이 담아냈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집 뒷마당은 마당 자체가 산이다. 뒷마당에 일군 만 오천 평의 녹차밭 역시 밭이
인조반정(仁祖反正)은 쿠데타다. 쿠데타로 왕좌를 빼앗은 자는 능양군(綾陽君) 이종(李倧)이고 빼앗긴 자는 광해군(光海君) 이혼(李琿)이다. 조카에게 왕좌를 빼앗긴 광해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쿠데타에 성공한 자들은 쫓아낸 광해군의 죄상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중국을 섬긴지 2백여 년, 의리로는 임금과 신하관계요 은혜로는 부모와 자식관계로다. 그러함에도, 배은망덕한 광해군은 천명을 어기고 오랑캐에게 투항하는 대역죄를 범하였음이라.” 명(明)과 후금(淸) 사이에서 관형향배(觀形向背)하던 광해군의 외교정책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사정이 그러하였으니, 쿠데타로 등극한 인조가 ‘숭명반청(崇明反淸)’을 부르짖은 건 당연했다. 인조와 쿠데타 세력은 명나라를 끔찍이도 ‘추앙’했다. 추앙의 정도가 어찌나 지극하던지, 왕은 명나라 황제의 신하이기를 자청했고, 쿠데타 주역들은 명나라 황제의 자식이기를 갈망했다. 신하이자 자식의 눈에 청나라가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그들에게 청(淸)은 오랑캐에 불과했다. 아버지 나라를 도와 청(淸)과 싸우겠다던 인조는 전쟁이 일어나자 궁을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칠 때, 인조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감고 닫은 왕의 마음에 백
기역자 모양이다. 기역 니은 하고 부르는 그 기역(ㄱ) 말이다. 기역자를 따라 방들이 늘어서있는데, 방문 앞으로 길게 누운 마루가 방과 방을 이어주는 길 같다. 방이 아니라 섬이었다면 섬과 섬을 이어주는 물길 같았을까. 그러든 말든 마루는 개의치 않는다. 지붕에 앉힌 기와가 그러하듯 마루 또한 기역자 모양 따라 반듯하다. 도시의 기와집은 어떠할까. 산 아래 터를 잡은 시골집의 하루는 기와 끝에서 떠올랐다가 마루 끝에서 저문다. 처마 밑에서 일어났다가 툇돌 아래 눕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바다남쪽의 기와집은, 처마 끄트머리의 기울기만큼 허락하고, 마루 끄트머리의 넓이만큼 보듬는다. 거절하고 밀어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햇살은 툇돌 보다 높은 곳을 탐내지 않고, 그늘은 마루보다 낮은 곳을 욕심내지 않는다. 빗방울도 낙엽도 그윽한 달빛조차도 예외일 수 없다. 떨어지는 것들은 어김없이 처마와 마루 사이에 몸을 던지며 삶을 마감한다. 사람이라고 해서 다를 게 있을까. 아무리 발돋움을 하고 서도 처마 밑이다. 바닥을 기어도 툇돌 아래 누울 순 없다. 억지로 해보려 해도 안 되는 것이 삶이다. ‘만류의 영장’이라는 계급장은 얼마나 부끄러운가. 밤에 싸인 지구별에서 인간과
새가 운다. 새는 스스로 부리를 열어서 운다. 사람이 운다. 사람은 스스로 가슴을 두드리며 운다. 귀뚜라미가 운다. 귀뚜라미는 스스로 날개를 비벼서 운다. 새도 사람도 귀뚜라미도 우는 것에 막힘이 없다. 막힘은 자유의지와 별개의 영역이어서, 스스로 울 수 있는 것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울음이 막힘없는 건 아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시커멓게 속이 썩어 문드러져도 울지 못하는 것들. 치미는 설움이 가슴을 찔러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는 것들. 제 혼자의 힘으로는 끝내 소리쳐 울 수 없는 것들. 울지 못하고 마른 땅에 쿵쿵 머리만 찍어대는 것들. 나는 그것을 ‘오월 광주’라 부른다. 오월 광주의 울음은 아픔 너머에 있다. 두들겨 맞고 질질 끌려갔던 망월묘지 지하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월 광주의 울음은 타악기를 닮았다. 때리고 두들겨 맞고서야 비로소 울음을 토하는 북과 장구와 꽹과리를 닮았다. 북과 장구와 꽹과리를 들고 팔십년 오월 광주를 누볐던 광대들을 닮았다. 때리고 두들길수록 거세게 울어대던 도청 앞 궐기대회를 닮았다. 투사회보를 뿌리던 학생들과 들불야학에 다니던 여공들을 닮았다. 헌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고
글처럼 그리운 게 또 있을까. 그립고 그리워서 보물 같은 게 또 있을까. 보물은 박물관에만 있지 않아서, 달력에 적힌 글 몇 줄도 보물일 수 있다. 이를테면 농촌지도소에서 농민들에게 배포한 달력도 그중 하나다. 그림은 없고 숫자만 커다랗게 인쇄된 달력에는, 음력과 절기와 국경일이 적혀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날마다 그 달력에 기록을 하였다. 날짜가 인쇄된 네모난 칸 안에 ‘찹쌀 한 말(육손네)’, ‘비료 열 포대(화원댁)’, 같은 글귀를 써넣었는데, 빌린 것과 빌려준 것의 수량과 액수를 분명하게 밝혀 적었다. 빼곡하게 적힌 글귀가, 그러니까 잡다한 기록들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음을 그녀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시골집 방에 걸린 달력이 그녀의 눈에 처음 밟혔다. 하마터면 불쏘시개로 태워지고 말았을 달력이었다. 아버지의 하루는 무엇으로 기록되었을까. 어떤 생각들이 아버지의 하루를 채웠을까. 달력을 들추다 그녀는 울고 말았다. 이빨 틈으로 흘러나오는 울음의 정체는 부끄러움과 죄송함이었다. 달력 앞장의 기록이 거래내역이라면 뒷장은 금전출납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매달 수입과 지출내역을 달력 뒷면에 적었다. 적을 때, 모아두어야
도망치는 것들은 직선으로 달리지 않는다. 토끼는 지그재그로 달리고 사슴은 펄쩍 뛰어 오른다. 맹수의 추적을 따돌리는 방법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본능으로 안다. 사람 역시 다르지 않다. 몸을 숨기려는 사람은 목적지까지 단숨에 가지 않는다. 버스나 전철을 이용할 때도 미행하는 자가 있는지 먼저 확인한다. 버스나 전철이 도착해도 바로 타지 않고 기다렸다가 문이 닫히기 직전에 올라탄다. 내릴 때는 목적지로부터 두 정거장 전에 내리는데, 역시나 문이 닫히기 직전에 내린다. 최종 목적지로 향할 때도 곧장 가지 않는다. 큰길을 피하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만 골라서 걷는데, 뒤따르는 그림자가 없는지 모서리를 꺾을 때마다 확인한다. 사내 역시 그랬다. 삼십여 년 전, 사내는 시국사건 수배자로 청춘의 한 토막을 보냈다. 그 시절, 사내에게는 지켜야 할 수칙이 있었다. 함께 수배된 청춘들과 약속한 원칙이었다. 원칙 가운데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은신처를 지켜내는 것이었다. 은신처는 수배된 청춘 모두의 것이어서, 그곳이 털리면 모두의 안전도 털릴 수밖에 없었다. 털리지 않기 위해서, 사내와 또 다른 청춘들은 멀리 걷고 많이 걷고 오래 걸었다. 명절이나 기념일이 되어도 집에 가지
할머니가 앉았다. 시장 입구다. 기다란 우산에 비닐을 씌워 비를 피한다. 생김새만 보아서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천막 같다. 생김새만 닮았을 뿐, 저렇게 작은 천막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쪼그리고 앉은 라면 박스 위로 비가 들친다. 할머니 발치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에도 비는 어김없다. 상추랑 쑥갓은 이천 원이고 고추는 천오백 원이다. 파란 바구니가 상추랑 쑥갓이고 빨간 바구니는 고추다. 빨간 바구니는 파란 바구니보다 작다. 할머니의 굽은 어깨도 비닐을 씌운 우산보다 작다. 우산을 씌운 비닐을 타고 빗물이 줄줄 흐른다. 비닐 안쪽은 할머니의 입김으로 뿌옇다. 비 오는 날의 하루가 뿌옇다. 할머니 앞에 아주머니가 앉는다. 두부가게 아주머니다. 기다란 우산에 비닐을 씌워 비를 피하는 할머니에게 콩물을 건넨다. 콩물 담은 바가지에서 모락모락 김이 난다. 으짤라고. 오늘 같은 날은 나오지 말고 쉬어야제. 말은 억세도 눈빛은 살갑다. 아주머니는, 손사래 치는 할머니 비닐 천막 안으로 콩물 바가지를 밀어 넣고 돌아선다. 한참을 꿈쩍도 하지 않던 할머니가 콩물 바가지를 집어 든다. 한 모금이나 마셨을까. 할머니는 빈 페트병에 콩물을 부어 담는다. 페트병 두 개에 콩물이 가득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공항에 도착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친히 맞이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을 맞이하는 북녘 동포는 울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마주하는 남녘 동포는 TV앞에서 뭉클하였다. 이제 통일이 되는 건가. 이렇게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건가. 백날을 그리워하였던 사람들은 천날을 끌어안고 울어도 되는 건가. 손수건 꺼내 분단의 눈시울을 적실 수 있는 건가. 아, 백록담의 물을 퍼 담아 백두산 천지에 부을 수 있는 건가. 반도의 허리에 숨겨진 지뢰란 지뢰는 모두 무효일 수 있는 건가. 2000년 6월 15일, 남과 북은 이렇게 발표하였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은 분단 이래 최초로 열린 정상 간 상봉과 회담이 남북화해 및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데 큰 의의를 갖는다고 하면서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선(線)은 점(點)이 모여 흘러가는 강이다. 점과 점을 딛고 걸어가는 길이다. 앞선 점의 어깨와 다음 점의 이마를 밟을 때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다. 그런 이유로, 흘러가는 것들은 죄다 서럽다. 끌려가는 것들은 고달프고 밀려나는 것들은 안쓰럽다. 도시의 뒷골목은 둥둥 떠내려가는 것들의 비명으로 한낮에도 먹먹하다. 먹먹하든 막막하든 도시는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호등에 있는 빨간불이 세상살이에는 없다. 멈추면 죽고 흘러야 산다. 깨지든 말든 멈추지 마라. 침 발라가며 돈을 세는 손가락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전염병이 별을 삼켰다. 입과 코에서 뱉은 작은 점들이 집과 마을과 도시로 흘러들었다. 강처럼 바람처럼 흘러드는 바이러스의 점들 앞에 사람이 쳐놓은 방어선은 속수무책이었다. 점이 서고 선이 자빠졌다. 총구를 겨누는 군대도 힘으로 무장한 권력도 무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봉쇄와 추적과 격리의 선을 전염병은 놀리듯 넘나들었다. 전염병 앞에서 만물의 영장은 한없이 무력했다. 급히 만들어진 백신과 치료제는 흥정할 틈도 없이 팔려나갔다. 돈 많은 나라 국민은 천천히 죽었고 가난한 나라 백성은 빨리 죽었다. 집에서 죽고 길에서 죽고 병원에서 죽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는
호미 같은 할머니다. 꼬부라진 허리가 호미를 닮았다. 호미를 닮아서, 반듯하게 서도 얼굴은 땅으로 쏟아진다. 할머니는 종일 땅만 보고 산다. 이불을 개고, 밥을 하고, 마당을 쓸고, 풀을 뽑고, 밭고랑을 맨다. 할머니는,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것보다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을 내려다보는 게 편하다. 내려다보는 것에 익숙한 할머니가 집 앞 자갈밭에 물을 준다. 한 마지기 자갈밭은 할머니의 전부다. 호미로 긁어 판 한평생이 고스란히 자갈밭에 묻혀있다. 아들 하나에 딸 하나, 고구마 같이 튼실한 자식들도 밭일을 하다 낳았다. 호미 같은 할머니가 자갈밭에 물을 준다.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에 호스를 꽂아 물을 뿌린다. 호스는 마당과 텃밭을 이어주는 탯줄 같다. 가느다란 호스를 타고 밀려온 수돗물이 마른 자갈밭에 찔끔 떨어진다. 전립선(前立腺) 걸린 늙은 사내의 오줌발도 저러할까. 할머니의 한숨이 물을 따라 자갈밭으로 추락한다. 딸을 건져 올릴 때도 저렇게 물이 떨어졌었다. 사십년 세월이라고 지울 수 있겠는가. 그날, 저수지로 물놀이 간 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밭일을 하던 할머니는 맨발로 저수지로 달려갔다. 건져낸 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호미 같은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