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남을 수 있는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사진가는 마음의 눈으로 대상 인물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음이야말로 인물을 바라보는 진정한 렌즈이기 때문이다. -유섭 카쉬- 인물사진의 거장, 유섭 카쉬 1902년 아르메니아 공화국에서 태어나 2002년 사망한 카쉬는 터키인의 박해를 피해 시리아로 거처를 옮겼다. 16세 때 캐나다에서 사진관을 경영하는 숙부를 찾아가 1933년부터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총독 부처(夫妻)를 비롯해 고관과 그들의 가족을 찍기 시작했다. 1941년 기념비적 인물인 윈스턴 처칠의 사진을 찍은 것이 LIFE지 표지를 장식하면서 유명해졌다. 그의 사진을 보니 첫인상이 해맑다. 사람의 모습 속에서 그 1초도 안되는 순간을 찾아 대상 인물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려면 감각, 재능, 기법..... 등 수없이 나열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작가 자신 속에 순수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카쉬가 찍은 명사들의 포트레이트 그의 작품을 대표하는 것은 당연히 인물사진이다.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흑백의 강한 컨트라스트와 마치 직접 인물을 대면하여 보는 듯한 섬세한 감정이 드러난다. 또한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슴속에 묻어두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계절별로 옷을 가지고 있다. 드레스룸이 아주 큰 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옷들을 매일 사용하는 옷장 속에 모두 걸어놓을 수 없어서 계절에 맞는 옷 이외에는 상자나 드레스룸의 자주 사용하지 않는 구석에 보관한다. 나 또한 그래서 철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옷장을 열어보면 그 주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옷을 정리해 놓은 스타일이나 옷의 형태, 컬러, 브랜드, 수량 등등 옷장에는 옷의 주인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올해는 여름이 너무 일찍 와버려서 겨울과 이른 봄 옷들을 모두 꺼내고 일찍이 여름 옷들을 옷장 메인 옷걸이에 걸었다. 매일 아침마다 출근을 하기 위하여 옷장 문을 열고 무엇을 입을까 고르는 일상적인 행동을 하다가 문득 옷장에 걸린 옷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루 동안의 나의 삶을 감싸고 기쁜 일, 슬픈 일, 모든 일상을 함께 한 옷들이 다시 옷걸이에 걸려 등과 배를 맞대고 차분히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애처럽기도 하고 기특하게도 느껴진다. 하루를 열심히 달리고나서 깨끗이 세탁되어 다시 내일을 위해 빈 마음을 다독이는 것만 같다 생각하니 옷 한 벌도 거룩하게 여겨진다. 새 날이 밝으면
르누아르의 작품을 보면 그의 평범하고 평온한 아름다움과 평화가 깃들어 있고 사랑과 행복이 넘쳐 있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하지만 너무 명확한 르누아르의 행복이 때로는 마음에 가시처럼 걸리기도 한다. 뭐랄까? 너무 평온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을 보면 더는 다가갈 수 없고, 더는 내가 존재할 틈 같은 게 없다는 느낌과 통한다고 할까? 오늘은 행복을 원하면서도 자신이 행복과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르누아르의 행복한 그림을 감상해 보자. 일상의 행복 일상생활 속에서 찾는 행복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행복이 아닐까? 가끔씩 떠나는 여행이나 외식과 같은 설렘이 적어도 당신이 매일 눈뜨고 생활하는 그 속에서 잔잔하고 평온한 행복감을 누린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그런 행복의 모습을 르누아르는 작품에 담고 싶어 했다. 환하고 반짝이는 빛 속에서 아라베스크 춤을 추고 있는 두 남녀, 르누아르가 표현한 춤에 대한 몇 작품에는 이와 같이 춤에 도취한 아름다운 연인들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춤추는 여자 주인공, 알린느가 이 작품에서는 다소 통통하나 미인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그림을 본 당시의 친구들이 실제로 알린느를 보고는 통통이 아니라 지나치게 뚱뚱해 무척 실망
일러스트도 예술인가? 일러스트는 처음에는 광고나 출판물의 내용을 보조하는 실용 디자인이어서 예술이라고 보지 않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같은 전시에 가보면 순수미술에 못지않은 감동과 공감을 부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요즘의 컴퓨팅 신기술에 의하여 탄생하는 많은 이미지들의 퀄리티는 예술과 실용의 구분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어린이 그림책 일러스트로 잘 알려진 노라 힐브(Nora Hilb)의 대화하는 일러스트들로 필자의 블로그에서 단 하루에 800개 이상의 덧글이 달렸던 인기 있는 그림들이다. 5월 가정의 달에 진정으로 필요한 건 대화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은 가정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남모르는 고민을 가슴에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고민들은 제3자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당사자에게는 너무 심각하고, 어떤 고민들은 너무 심각해서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대부분 현대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문제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 정신, 갈등과 괴리감, 관계의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 같다. 가정의 달을 맞아 아이들에게, 부모님에게, 스승에게 선물을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진정한 대화가 아닐까?
카르페디엠(carpe diem)은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로마제국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쓴 시에서 유래되었으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이 학생들에게 한 말로 유명해졌다. 카르페디엠과 댓구처럼 사용되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고대 로마 시대에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의 개선행진시 노예 한 명이 장군과 함께 하여 계속 이 말을 장군의 귀에 되뇌었다고 한다. 아무리 개선 장군이라도 우리는 신이 아닌 인간이며,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고 겸허히 살라는 뜻이다. 필자는 몇 개월 전에 인천 송도 끝인 인천대교 시작 지점으로 잠시 거처를 옮겼다. 그후 회사나 고객 상담을 갈 때에도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3000세대가 넘는 아파트 주차장의 구조가 불편하여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불만을 입에 달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거실에서 보이는 인천바다의 노을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 말문이 막혔다. 그후부터 나는 자주 노을을 보러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노을 하나는 아름답네.’ 불만의 마음이 조금 위로되었다. 그리고 출퇴근할 때에 거리를 눈여겨 보니 내가 어느
작품, 어디서 무엇을 봐야 할까 예술에 관심이 없던 독자들이 칼럼을 읽고 조금씩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냥 자신이 느끼는 대로 작품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척 고무적인 현상인데, 그럼 어디서 무엇을 봐야 하는 걸까? 대개 전시회라고 하면 국립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고흐, 모네, 샤갈….. 등 유명 화가의 전시를 떠올린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은 원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그러나 조금 덜 유명해도 좋은 작품에 기획까지 참신한 전시들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와 더불어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식사를 하거나, 자연을 감상하거나 멋진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며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립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의 대규모 유명 화가 전시도 좋지만 경험자는 동감할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채워서 그림보다 사람 구경만 하다 오거나 관람료가 너무 비싸서 망설였던 경험. 반면에 의외로 지역의 사설미술관들 중에는 가볼 만한 곳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미술관은 2023년 12월 기준으로 286개(전국), 문화 선진국이라고
묵직한 삶과 죽음을 그린 마크 로스코 내가 그의 그림을 처음 대한 것은 Orange and Yellow(오렌지와 노랑)였다. 캔버스에 오렌지색과 노란색이 반쯤씩 칠해져 있는 그의 그림을 보고 ‘아, 이게 뭐지?’하는 것이 나의 처음 느낌이었다. ‘와아~환하다!’가 나의 두번째 느낌, 그때만 해도 로스코는 내게 희망을, 빛을 가져다주는 화가였다. 그를 흔히 색면화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1903년에 태어나 1970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20세기 거장 마크 로스코. 그는 러시아 빈에서 태어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0세에 아메리카로 이주했고, 화가로서의 입지를 세운 뉴욕에서 많은 동료 화가들과 교류하였고, 구상 회화에서 초현실주의까지 활동하였다. 1940년대 후반부터 풍부한 색채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추상회화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바네트 뉴먼, 잭슨 폴록과 함께 1950년대의 아메리카 추상회화의 설립자로서 활약하였고, 색채 표현의 가능성을 크게 넓힌 화가이다. 1958년에서 59년에 걸쳐 뉴욕의 레스토랑을 꾸미는 시그램 벽화에 손을 댄 이후 대형 화면에 깊이 있는 정신을 표현하는 작품을 담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
요즘 삶의 방식 중 현대인들이 따르고 싶어하지만 쉽지 않은 삶이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적게 가지고 심플하게 살며, 느리고 여유 있는 삶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너무나도 값싸고 품질 좋은 물건들도 많고, 우리는 늘 구매의 욕구를 촉진하는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물욕을 끊기는 정말 힘들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그래서 호텔처럼 정갈한 집 인테리어를 꿈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싼 집 안에는 대부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살고 있다. 며칠 전 셔츠 단추가 떨어져 오랜만에 바느질을 했다. 요즘 옷은 잘 헤지지도 않지만 헤진다 해도 바느질을 해서 다시 입지 않고 그냥 버린다. 바늘 귀에 길고 가느다란 실을 꿰다가 무심코 바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바늘의 모양이 이렇게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와 바늘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얼마나 적합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보니 바늘이야 말로 미니멀리즘의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바늘은 목표가 정확하다. 단 하나의 점을 뚫기 위해 모든 장식은 필요 없고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은 버리고 그 한 점의 중심에 집중하도록 단순하다. 눈도 코도 입도 없고 따끔거리는 촉각을 모아서 예리하게 씨
키스 해링이 누구야? 사실 키스 해링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그의 작품은 팬시용품, 데커레이션용품 등에 많이 활용되어 친근할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이게 유명한 그림이야? 아이들 낙서 같아. 나도 그리겠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그렇다. 그의 그림은 가볍고 경쾌하고 즐겁고 만화 같다. 그러나 꽤 많은 그의 작품들을 보고 나면 그가 왜 그토록 유명한지, 왜 그를 팝아트의 완결자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커다란 한 장르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서도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키스 해링의 굵고 짧은 31년 인생 그는 1958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1974년 감수성이 예민한 10대에 워싱턴 허시혼 미술관에서 앤디 워홀의 마를린 먼로 연작을 보고 평생 예술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1976년 펜실베니아 피츠버그 아이비 전문 미술학교 광고 그래픽 과정에 입학하지만 1977년 상업미술가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여 학교를 그만둔다. (결국 가장 상업적인 미술가가 되는 그가....) 1983년 뉴욕 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면서 앤디 워홀을 처음 만났으며 앤디 워홀은 그의 예술가의 삶 전반에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 '샘' 현대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 사람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마르셀 뒤샹을 선택한다. 예술의 오리지널러티(작가 고유의 작품성의 기준이 되는 것)가 중요했던 1900년대 초반, 정확히 1917년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뉴욕 독립미술가전에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 회사에서 나온 제품에 R, Mutt라는 사인을 하고 제목을 '샘 (Fountain)'이라고 붙인 후 출품을 했다. 이 작품을 받은 전시 담당자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성품(레디메이드)에 사인만 한 후 작품이라고 출품한 비도덕적인 행위에 분노하고, 게다가 관객을 모독하는 것만 같은 남성용 소변기라는 천박하기까지 한 이 작품은 엄청난 논란을 일으킨 후 당시 전시장에 놓이지 못하고 뒤 창고에 버려지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이 작품이 이제는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마르셀 뒤샹의 샘의 가치는 그때까지의 가치와 인식과 개념을 무너뜨리고 예술의 영역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장했다는 것이다. 남성용 소변기가 화장실에 있지 않고 작가에 의해 새로운 이름이 붙어 전시장에 놓이는 순간 이미 그것은 소변기로서의 용도가 폐기되고 예술의 오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