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언어 정서에 비상이 걸렸다. 비속어와 욕설이 뒤범벅된 청소년들의 언어 습성을 정상화하는 일이 난감한 숙제로 떠오른 가운데, 상당수 경기도 초·중·고 학생들이 언어폭력의 그늘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대로 된 가정교육과 학교에서의 인성교육 시스템 붕괴가 불러온 참사로 해석된다. 아이들의 비뚤어진 언어 정서를 바로잡는 일만 가지고는 안 된다. 언어폭력이 상시로 흘러 다니는 사회·문화적 환경 개선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이 도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언어폭력’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도교육청이 지난 4월10일부터 한 달간 초4~고3 학생 112만여명(전수)을 대상으로 ‘2023년 1차 학교 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해 88만2000여 명(78.7%)으로부터..
언론은 내년 총선 얘기로 뜨겁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언론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는 선거에 더 관심이 크다. 바로 이장 선거다.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 이장이 있는 마을에서 요즘 선거가 한창이다. 다양한 복지행정 수요 등을 파악하고 행정 서비스를 원활히 민생의 현장에 전달하기 위해서 이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마을의 발전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마을 이장이 누구냐가 마을 발전에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마을 발전을 잘 이끌던 이장이 바뀐 후 마을이 침체하는 예도 봤고 그 반대의 경우도 봤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면서 마을이 소멸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장을 보면서 많이 개탄스러워하기도 했다. 이장은 촌 기초지자체의 말단 직책이다.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이장이 움직이질 않으면 그 정책은 주민들에게 전달되기 힘들다. 이토록 중요한 이장은 주로 누가 될까? 일단 이장 일 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시시때때로 행정 일을 봐야 하고 주민의 민원에 응해야 하기때문에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수 있는 주민이어야 한다. 그러니 고정된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맡기 어렵고 주로 마을에서 농사를 짓거나 소상공업을 하는 사람이 맡기 쉽다. 또 마을에서 나고 살아왔던 선주민이 이장으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다. 주민 입장에서 어려운 민원을 넣거나 정부의 지원 혜택 정보를 먼저 얻기 위해서라도 학연, 혈연으로 얽혀있는 사람이 편할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이장 일로 받는 보수는 얼마일까? 행정안전부는 현재 월 30만 원이던 이장 수당을 내년부터 4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지난 10월 30일 발표했다. 상여금, 회의 수당 등을 합치면 월 50만 원 수준이 된다. 월 50만 원을 받고 아무 때나 부르면 달려가 온갖 민원을 처리해야 하고 때로는 주민에게 욕도 먹고 공무원에게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하고,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는 일. 독자라면 하겠는가? 유휴인력이 있는 도시에서도 찾기 힘든 주민을 소멸위기의 초고령화된 마을에서 찾기는 더더욱 힘들다. 설령 시간과 소득의 여건이 맞더라도 마을을 위한 헌신성이 없으면 맡기 어려운 자리다. 상황이 이러니 역량이 부족해도 또는 이장 일 싫다고 해도 ‘마지못해 이장을 맡는 거니까 어려운 일 시키지 마라’ 라고 하는 주민을 이장으로 모셔야 할 판이다. 그렇게 뽑힌 이장이 마을 일을 열심히 또는 잘할 리 만무하다. 행안부는 이장 수당을 인상하면서 ‘안전관리 기능의 강화, 역할의 증가’ 등의 이유를 들었다. 헛웃음이 나온다. 대한민국 초고속발전의 중요 동력으로 우수한 인력을 꼽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 우수한 인력들은 촌을 떠나 도시로 간 인력들이다. 촌에 남아있는 선주민 중에는 우수한 인력이 거의 없거나 있었더라도 고령화돼서 활동이 어렵다. 농업 종사자의 문해 능력, 정보화 역량이 모든 직업군 최하위라는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 이장은 그런 선주민들 중에서 주로 뽑힌다. 10만 원을 더 올리면 무엇이 바뀔까? 인력에 대한 투자 없이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 지면의 제약으로 더 하고픈 말은 못 담겠다. 중앙의 탁상행정에 그저 또 돈 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산길은 사람의 발에 밟힌 낙엽이 으깨져 흙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생명은 왔던 그 길이나 그곳으로 가는 것인가! 내 나이 적지 않은데 나의 갈 곳은 어디며 언제쯤일까. 12월의 가슴은 무겁고 축축하다. 청주에 사는 수필가에게서 수필집을 보내왔다. 꽤 오랜 인연 속에 한 번도 인사를 거르지 않은 작가다. 그와의 인연은 J신문사 신춘문예 심사를 내가 맡았을 때 그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힌 결과로써 시작되었다. 그런 그가 내게 금년을 마무리하는 결실의 의미로 보낸 선물 같았다. 존경했던 고하 선생님은 얼마 전 고인이 되었다. 생전의 선생님은 누가 책을 보내오면 꼭 편지나 우편엽서로 ‘잘 받았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연말연시의 인사나 덕담을 편지로 주고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휴대폰 문자 때문에 우체국에서도 경조카드 자체를 없앴다. 을유문화사에서 낸 『동국세시기』 12월을 보면,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믐날 밤(除夕)에는 2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이 대궐에 들어가 묵은해 문안을 드렸다고 적혀 있다. 사춘기를 벗어난 성인으로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을 체감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해한다지만 쓸쓸하고 저리다. 그래서인지 작은 일에도 서운해지며 우울하다.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착하게 살아온 결과가 이거냐 싶다. ‘마음의 지게’를 한 번도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온 그 세월이 얼마인데- 수많은 날 공들여 잡은 물고기들을 상에 떼에게 물어 뜯겨버린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 생각이 날 때도 많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인지 그릇된 편견인지- 가끔은 인류를 ‘털 없는 원숭이’라고 한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이 생각난다. 12월도 가운데 토막이 지나간다. 크리스마스 성탄절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내와 근사한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했어도 그녀는 한 번도 불평한 일이 없었다. 아이들 또한 착하게 성장해 주었다. 앞으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친 아우 같은 오 선생에게 전화가 걸려와 그의 차로 편백 숲 영화촬영지를 거쳐 가마솥에서 담백한 점심을 먹었다. 이어서 차를 한잔 마시며, 그는 내가 형님에게 우리 손자 지온이가 과학고에 들어갔다고 자랑했으니 오늘은 손주 자랑 턱으로 잘 모시겠다고 했다. 이성계가 개국 전 기도하고자 다녀갔다는 상이암(上耳庵) 이 있는 산을 올라갔다. 암자 곁에는 ‘커피 한잔 어떻소!’라는 간판을 건 나무집의 무인 카페도 있었다. 하산하는 길에서의 생각이다 홀로 되어야 가족의 가치를 발견한다고, 가족과 아이들에게 너무 교육적으로만 건조하게 대했다는 후회가 가슴을 저리게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당당하게 노년을 보내라고 한다. 로마 최고의 정치가요 문인이기도 했던 키케로는 ‘무엇이 노인을 명예스럽게 하는가.’에서 말했다. ‘노년을 스스로 지켜가면서 자신의 권리를 유지해 나간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것들을 다스려 나간다면, 노년은 매우 영예로운 인생의 한 시기라네.’라고. 명예로운 권위! 그것은 젊은이의 쾌락보다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며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인가. 그러면서도 이 생각 저런 일들이 나이 드는 재미요 나이 값인가 하는 생각으로 갈아들면 하늘을 쳐다보곤 한다.
지난해 9월 24일 미국에서는 ‘전진당(Forward)’라는 정당이 창당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뉴욕시장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탈당한 앤드루 양과 공화당 출신인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 전 뉴저지 주지사가 주도해서 만들었다. 이들은 미국 정치의 뿌리깊은 양당 구도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에게 대안 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알리면서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스스로를 급진적 중도로 규정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대표적인 정책으로 내세웠으며, 오픈 프라이머리와 선호투표제를 미국 전역에 도입하는 것 등을 내세우고 있다. 나름의 정책비전과 양당제 폐해 극복이라는 대의명분을 제시하면서 제3당에 대한 지향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제와 소선구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 의회내 제3당이 만들어지는 것은 매우..
고령층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거주 비율이 비교적 높은 경기도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안전사고 발생 건수가 해마다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안전사고의 절반 이상이 넘어짐과 미끄러짐 등 ‘낙상사고’인 것으로 집계돼 안전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보강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상대적으로 생활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안전사고 위험에 시달려서야 될 말인가. 정책적 관심 집중이 긴요한 대목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경기도 내 임대아파트 생활안전 사고유형 및 위험요인을 분석한 결과, 지난 2021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경기지역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생활안전사고는 6714건으로 집계됐다. 또 경기도 내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241건으로, 6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을 입었다. 연도별 생활..
수원 비행장 이전은 화성시민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화성시민만이 참가하는 주민 투표에서 수원 비행장을 화성시 관할 구역에 받아들이는 안건이 찬성으로 가결되어야만 한다. 정부의 주요 정책이지만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이 임의로 결정하고 강행할 수 없다.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인 만큼 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야 한다.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약칭:군공항이전법)에서 이와 같은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대구국제공항으로 사용되고 있는 K2공군기지의 대구비행장도 이전 지역인 군위와 의성이 각각 주민 투표를 진행하였고 찬성으로 가결되어 현재의 부지는 재개발하게 되었고 새로운 지역으로의 신공항 건설 사업 계획과 규모가 완성되었다. 정부에서 이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광주나 수원 비행장의 이전도 이와 같은 신공항 건설..
킬러(killer)는 살인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의미가 무시무시해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할 용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 대상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능에서 정답률이 극히 낮은 문항을 ‘킬러 문항’이라고 언론이 써왔다. 대통령이 ‘킬러 문항’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유명세를 치뤘다. 지난 6월 15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던 윤 대통령이 수능의 어려운 문제를 지칭해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했다.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사업이 카르텔이냐”고도 했다. 특유의 과한 용어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교육부 대책이 이어졌다. 이 장관은 “올해 수능부터 킬러 문항을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은 수능 관련 이슈를 연일 대서특필했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교육부와 총리실은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감사에 착수했다. 평가원장은 나흘만에 사임했다. 5개월이 지난 11월 16일, 2024학년도 수능이 치러졌다. 언론은 시험난이도를 ‘킬러 문항은 없었지만, 국·영·수 다 어려웠다’는 기조로 보도했다. 정문성 출제위원장은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 문항’을 배제했고,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변별력을 확보하도록 출제했다”고 브리핑했다. 내용은 빠짐없이 기사에 담겼다. ‘킬러 문항’을 잡는 교사단이 가동됐고, 출제진서 ‘카르텔 교사’도 다 뺐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여기까지는 대통령의 지시가 완벽하게 이행되는 듯했다. 수험생들은 전혀 달랐다. 대부분 언론이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았으나 ‘불수능’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불수능’을 넘어 ‘용암수능’으로 불렸던 2022학년도 수능에 버금간다고 평가했다. 조선 칼럼은 ‘이어령도 울고 갈 국어’, 중앙일보는 ‘망국 공범 불수능’이란 표현을 써가며 어려운 수능을 연달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채점결과를 전하는 기사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했음에도 ‘불수능’이어서, 만점을 받은 학생은 1명이었다고 했다. ‘킬러 문항’이란 용어를 애써 피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9일자 1면 머릿기사에 ‘킬러 문항’ 용어가 제목으로 등장했다. 킬러 문항에 지방 학력이 저격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방에서 상위권 학생은 대폭 줄어들고 하위권 학생은 늘어났다는 기사였다. 대통령의 지시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음을 직격했다. 프레시안은 6월 윤 대통령이 수능출제에 직접 개입했던 것이 책임 부메랑이 돼 돌아온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여러 언론이 수능 만점자와 표준점수 전국 수석이 다닌 강남의 학원 등록금이 월 300만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만점자는 공교육만으로 수능 문제를 충분히 풀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6월 대통령 발언과 교육부의 발표 내용을 ‘수능이 쉬워질 것’으로 받아들인 수험생들은 어떤 마음일까. ‘킬러 문항’은 없었는데 ‘불수능’이었다는 언론보도에 수긍할까? 동의어를 수험생을 대상으로 말장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이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하나회가 군사쿠테타를 일으켰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박정희 사망 후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아 그들만의 봄을 누린 참혹한 계절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속 대사는 “세상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였다.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 싶은 강력한 메시지라고 본다. 현실로 돌아와서 보면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민초들은 아등바등 좀 더 나아진 세상으로 바꿔보려고 애를 쓰지만 수포로 돌아가거나 제자리 걸음일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선거시즌이 되면 여의도 정치권은 개혁을 한다, 혁신을 한다는 명분으로 혁신위원회, 비대위원회를 만들지만, 혁신이나 개혁과는 거리가 먼 용두사미로 끝나버리기 일쑤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도, 국민의힘의 인요한 혁신위도 반짝하..
외상환자 가운데 빠른 시간 내에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신속하고 안전한 이송과정을 거쳐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외상으로 인한 사망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이 높다는 것은 의료체계 또한 후진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있다. 경기도의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경기도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이 전년(2020년) 대비 2.9%p감소, 9.1%로 나타났다. 2018년에는 22.8%나 됐는데 4년 만에 무려 13.7%p 줄어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외상사망자 1000명 중 137명을 살려냈다는 이야기로 크게 칭찬을 받을 만하다. 경기도는 2024년 예방가능 외상사망률 목표를 10%로 잡은 바 있는데 이보다 1년 앞당겨 목표를 달성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를 두고 한 말처럼 들린다. 소설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은 오늘도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우리 곁을 떠난 지는 138년이 된다. 위고가 숨을 거둔 건 1885년 5월 22일. 공화당의 아이콘이자 정의의 사도였던 그는 1802년 2월 26일 브장송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정치인, 작가, 만화가로 활약하면서 평생 자유를 열렬히 수호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빈곤타파, 표현의 자유, 여성과 아동의 인권, 노예제와 사형제 폐지, 그리고 무상교육 실현을 위해 불살랐다. 이러한 투사의 죽음은 프랑스를 깊은 슬픔에 빠트렸다. 의회는 휴회를 하고 위고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개선문 꼭대기에는 커다란 검은 베일이 걸렸다. 그의 시신은 개선문 아래 전시 돼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말을 탄 기병들은 VH 이니셜이 새겨진 영구대를 밤새도록 지켰다. 파리의 언론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열일곱 개의 신문이 5월 23일 한 판을 검은 액자로 장식했다. 위고가 직접 창간한 ‘르 앙코르’ 신문의 기자들은 장례식 날까지 상복을 입었다. 일간지 ‘질 블라스(Gil Blas)’는 위고의 죽음을 애도하는 거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노동자들은 경건한 자세를 취했고, 노인들은 숨죽여 울었다. 귀부인들은 여염집 아낙네들과 나란히 서서 슬퍼했다. 많은 공화당 깃발, 청백색-빨간색 깃발이 파리의 모든 창문에 걸렸다.” 그의 관이 묘지로 향하던 6월 1일 오전 11시, 스물 한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위고를 실은 빈민들의 영구차에는 손자들이 바친 하얀 장미 화관 2개만이 장식됐다. 파리 생제르맹 대로에서 거대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12시 40분부터 시작된 이 퍼레이드는 오후 6시 20분이 돼서야 끝났다.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나온 인파는 2백만 명이 넘었다. 이들은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영구차를 따라 파리 서쪽 에투알 광장에서 중심부 팡테옹까지 천천히 걸었다. 유복한 가문의 아들이었지만 위고는 유독 가난한 사람을 좋아했다. ‘레미제라블’은 그에게 필연의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싸웠다. 이 투쟁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눈을 감으면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5만 프랑을 기부합니다. 나는 그들의 영구차를 타고 그들의 묘지에 묻히고 싶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이 유언을 어기고 그를 팡테옹(Panthéon)에 안장했다. 파리 5구 대학가에 자리 잡은 팡테옹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위인’을 기리기 위해 신성화된 곳이다. 1816년 예배당으로 복원되었지만, 1830년 다시 ‘인류의 신전’이 됐다. 그러나 “나는 (나의 죽음 앞에) 모든 교회의 연설을 거부하고 모든 영혼을 위한 기도를 요청합니다”라는 유언장을 남긴 위고가 여기에 안장되면서 팡테옹은 신전이 아닌 위인들의 성전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죽어서도 역사를 바꾸는 위고의 위대함 앞에 잠시 숙연해진다.